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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창우(碧昌牛)
평안북도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지방의 크고 억센 소, 미련하고 고집이 센 사람의 비유이다.
碧 : 푸를 벽(石/9)
昌 : 성할 창(日/4)
牛 : 소 우(牛/0)
매우 우둔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고집불통, 고집쟁이, 고집불통이, 벽창호, 목곧이 등으로 부른다.
고집을 포함하는 단어들이 고집이 센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나, 벽창호(壁窓戶)나 목곧이가 그러한 의미로 쓰이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평안북도의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지방의 소는 유난히 크고 힘이 셌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지방의 소를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의 앞자를 따서 벽창우(碧昌牛)라고 불렀다.
즉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지방의 소라는 듯으로 불러 오던 것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차차 발음이 벽창호(壁窓戶)로 변했으나 이것은 마땅히 본디말이 벽창우(碧昌牛)로 불러야 한다. 아울러 말 뜻도 성질이 무뚝뚝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생기게 된 것은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지방의 소가 성질이 억세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지역마다 소를 부르는 말이 달랐기 때문이다.
소를 끌면서 ‘이랴 이랴’ ‘워워’ 하는 말들이 지방에 따라 조금씩 그 억양과 어투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지방 사람이 소를 끌면 소가 제대로 그 뜻을 알아 듣지 못해서 버팅기고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남쪽 지방에 사는 사람이 와서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지방의 소를 끌고 가려 하면 당연히 고생스럽고 힘들었던 것이다.
단어(單語) 구조(構造)로 보면 벽창우(碧昌牛)는 지명(地名)이 선행(先行)하고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特産物)이 후행(後行)하여 그 대상의 이름이 된 예(例)이다.
안주(安州)에서 나는 항라(亢羅)라는 뜻의 안주항라가 줄어든 안항라, 명천(明川)에서 나는 태(太)라는 뜻의 명천태가 줄어든 명태, 통영(統營)에서 나는 갓 이라는 뜻의 통영갓 등도 지명(地名)과 그 지역 특산물(特産物)을 복합(複合)하여 만든 물건 이름이다.
그런데 같은 단어 구조라 하더라도 벽창우(碧昌牛)는 안항라,명태,통영갓 등과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안항라, 명태, 통영갓 등이 그 특산물의 이름에 충실한 반면, 벽창우(碧昌牛)는 그러한 기능도 가지면서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쓰일 때는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띤다.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에서 나는 소(牛)가 매우 억세기 때문에 그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이러한 비유적 의미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벽창우(碧昌牛)가 비유적 의미로 쓰일 때는 벽창우보다는 벽창호(壁窓戶)로 더 많이 쓰인다. “벽창호 같다”라는 관용구의 벽창호(壁窓戶)가 바로 그것이다. 벽창우(碧昌牛)가 벽창호(壁窓戶)로 변하여 그 비유적 의미 기능을 보다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벽창우(碧昌牛)가 벽창호(壁窓戶)로 바뀐 데에는 아마 이것을 “벽에 창문 모양을 내고 벽을 친 것”이라는 의미의 벽창호(壁窓戶)와 혼동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빈틈없이 꽉 막힌 벽(壁)과 그러한 속성(屬性)을 지닌 사람과의 연상(聯想)이 벽창우(碧昌牛)를 벽창호(壁窓戶)로 바꾸게 하였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한편, 목곧이는 ‘목 곧-’에서 파생된 명사(名詞)이다. ‘목 곧-’은 신체명사(身體名詞) ‘목’과 형용사(形容詞) ‘곧-’이 결합(結合)한 구(句)로 ‘억지가 세어 남에게 호락호락하게 굽히지 아니하다’의 의미(意味)이다.
‘목곧이’는 바로 그러한 속성을 지니는 사람을 뜻한다. 항상 ‘목’을 세워 ‘목’이 곧은 사람은 십중팔구(十中八九) 자기밖에 모르는 고집쟁이일 것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 때 조괄(趙括)은 명장(名將)이었던 아버지의 병서(兵書)를 맹목적(盲目的)으로 읽은 인물이다. 진(秦)나라가 쳐들어 오자 염파(廉頗) 대신 장수가 돼 전장(戰場)에 나간 그는 임기응변(臨機應變)을 모르고 병서(兵書)의 가르침대로만 전쟁(戰爭)을 치르다 참패(慘敗)했다.
이것은 사기(史記)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교주고슬(膠柱鼓瑟)의 고사(故事)이다. 아교(阿嬌)로 기러기발(雁足)을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타는 것처럼 고지식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앞뒤가 꽉 막힌 이런 고집불통(固執不通)을 우리말로는 벽창호(碧昌戶)라고 한다. 고집(固執) 센 사람을 동물(動物)에 비유(比喩)하는 것은 동서양(東西洋)에 차이가 없다.
벽창호(碧昌戶)는 물론, 황소고집이란 직설적(直說的) 표현(表現)처럼 우리는 소(牛)를 고집(固執)의 상징(象徵)으로 보지만 영어권(英語圈)에선 노새(mule)를 고집(固執)의 화신(化身)으로 꼽는다.
노새(mule)처럼 완고한(as stubborn as a mule)이니 노새같은(mulish)이란 말은 고집이 센 사람을 지칭(指稱)할 때 쓰는 표현(表現)이다. 독일(獨逸) 사람들은 염소(bock)의 고집을 더 치는지 고집이 세다는 뜻으로 bockig란 형용사를 쓴다.
천성적(天性的)으로 고집(固執)이 센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나이가 들어 가면서 고집(固執)이 는다고 한다. 정신적(精神的), 육체적(肉體的) 능력이 떨어지면서 매사를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기억을 기준으로 판단하려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집(固執)이란 단어가 꼭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최씨(崔氏) 고집이란 불의(不義)에 타협하지 않고 잔재주를 피우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온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긍정적 표현이다.
물론 당사자(當事者)가 최씨(崔氏)인 경우(境遇)이며, 독일(獨逸)에서 박사(博士)만큼 사회적(社會的) 대접을 받는 마이스터(장인)들도 자기 일에 대한 철저한 고집(固執)으로 오늘날의 명성(名聲)을 얻었다.
벽창우(碧昌牛)
벽동과 창성지방의 소, 고집이 세고 우둔한 사람
조금도 융통성이 없이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사람이 있다. 소신(所信)이 있다고 칭찬하는 사람보다는 고집불통(固執不通)이라고 대부분 돌아선다. 고집도 종류가 많아 생고집, 땅고집, 왕고집, 옹고집, 외고집 등이 있고, 목을 굽힐 줄 모른다 하여 목곧이란 말도 있다. ‘바보와 죽은 사람만이 결코 자기의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집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우리 속담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집이 세어 융통성이 없으면 ‘꼿꼿하기는 서서 똥 누겠다’며 조금도 굽히지 않는 사람을 비웃었다. ‘항우는 고집으로 망하고 조조는 꾀로 망한다’고 하여 잔꾀 부리는 사람과 함께 고집을 경계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야 마는 사람을 소나 닭에 비유한 ‘쇠고집과 닭고집이다’란 속담도 덧붙는다. 새벽을 알리는 부지런한 닭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 닭고집이 생겼어도 소와 비교는 안 된다. 묵묵히 인간을 위해 일만 해 온 소가 힘이 셀뿐만 아니라 우직하게 앞만 보고 가니 쇠고집이다.
쇠고집이라면 바로 떠오르는 말이 벽창우(碧昌牛)다. 평안북도 압록강변의 수풍호(水豊湖)가 있는 곳이 벽동(碧潼)군이고 인접한 昌城(창성)군의 앞 글자만 따서 그 지역의 소를 가리켰다. 생선 명태(明太)가 처음 잡았다는 함경도 명천(明川) 지방의 태(太)씨란 이름에서 유래한 것과 같다.
이 두 지역에서 나는 소들은 대체로 몸집도 크고 힘이 셌다. 또 대부분 말을 잘 안 듣고 제 고집대로 움직였다고 한다. 소가 부리는 사람의 명령에 따라 앞으로 가고 멈춰서기도 하는데 남도의 사람들이 이 지역의 소를 탐내어 자기 고장으로 몰고 가려 해도 말을 알아듣지 못해 이런 말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고집불통의 소를 나타내던 벽창우가 우둔하여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을 지칭하게 됐다. 변형되어 벽창호라고도 하는데 물론 벽에 창문 모양을 내고 벽을 쳐서 막은 부분을 말하는 벽창호(壁窓戶)와 다르지만 벽으로 가로막혔다는 의미는 통한다.
의리와 명분을 앞세워 목이 달아나도 굽히지 않은 선비들을 우리는 많이 우러러왔다.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그런데 처음 좋은 계획이 사정이 바뀌거나 결과가 아주 좋지 않게 나왔을 때도 변명만 앞세우며 조금씩 달리 바꾼다면 쇠고집이 된다. 뜻이 굳은 것이 좋기는 하지만 너무 굳기만 하고 휘어야 할 때 휠 줄을 모르면 부러지는 법이다.
▶️ 碧(푸를 벽)은 ❶형성문자로 玉(옥; 구슬)과 石(석; 돌),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명백하다의 뜻을 가진 白(백, 벽)으로 이루어졌다. 옥돌의 맑고 푸른 기가 있는 흰색이, 전(轉)하여 푸르다, 녹색의 뜻으로 쓰인다. ❷형성문자로 碧자는 ‘푸르다’나 ‘푸른빛’, ‘푸른 옥’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碧자는 珀(호박 박)자와 石(돌 석)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호박이란 소나무 송진이 화석화된 것을 말한다. 고대부터 호박은 보석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보석을 뜻하는 珀자에 石자를 더한 碧자는 ‘푸른 옥’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그러나 지금은 주로 ‘푸른빛’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碧(벽)은 벽색(碧色)의 뜻으로 ①푸르다 ②푸른빛 ③푸른 옥(玉) ④푸른 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푸를 창(蒼), 푸를 록(綠), 푸를 취(翠), 푸를 청(靑)이다. 용례로는 짙게 푸른 하늘을 벽공(碧空), 안구가 푸른 눈을 벽안(碧眼), 깊고 푸른 바다를 벽해(碧海), 물빛이 매우 푸르게 보이는 맑은 시내를 벽계(碧溪), 푸른 물결을 벽랑(碧浪), 푸릇푸릇한 구름을 벽운(碧雲), 푸른 이끼를 벽태(碧苔), 이끼 끼어 푸른 바위를 벽암(碧巖), 푸른 하늘을 벽주(碧宙), 푸른 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벽간(碧澗), 풀과 나무가 무성한 푸른 산을 벽산(碧山), 푸른 비단을 벽라(碧羅), 푸른 하늘을 벽락(碧落), 짙은 푸른빛을 벽록(碧綠), 푸른 물의 흐름을 벽류(碧流), 곱고 짙푸른 빛깔을 벽색(碧色), 푸른 나무를 벽수(碧樹), 깊어서 푸른빛이 나는 물을 벽수(碧水), 푸른빛을 띤 옥을 벽옥(碧玉), 푸른 빛깔의 매우 단단한 기와를 벽와(碧瓦), 푸른 하늘을 벽우(碧宇), 푸른 하늘을 벽천(碧天), 구리에 녹이 나서 생기는 푸른 빛깔을 벽청(碧靑), 푸른 물결을 벽파(碧波), 푸른 하늘을 벽허(碧虛), 푸른빛을 띤 진한 피를 벽혈(碧血), 항상 푸름을 상벽(常碧), 약간 검은빛을 띤 청색을 감벽(紺碧), 짙은 푸른빛을 남벽(藍碧), 푸른 바다가 뽕나무 밭이 되었다는 벽해상전(碧海桑田), 푸른 시내가 흐르는 산골이라는 벽계산간(碧溪山間), 이끼 낀 푸른 바위와 그윽한 돌을 벽암유석(碧巖幽石) 등에 쓰인다.
▶️ 昌(창성할 창)은 회의문자로 날 일(日; 해)部와 曰(왈)의 합자(合字)이다. 해(日)처럼 영원히 전해질 말(曰)이라는 뜻에서 널리 사물(事物)이 창성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昌(창)은 ①창성(昌盛)하다, 흥성(興成)하다 ②번성(繁盛)하다 ③아름답다, 곱다 ④착하다, 선량(善良)하다 ⑤방종(放縱)하다 ⑥어지럽히다, 어지러워지다 ⑦외치다, 주창(主唱)하다 ⑧(기운, 세력 등이)성(盛)한 모양 ⑨기쁨, 경사(慶事) ⑩예쁜 모양 ⑪훌륭한 말 ⑫물건(物件), 사물(事物) ⑬창포(菖蒲: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 ⑭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높을 융(隆), 우거질 번(蕃), 필 발(發), 성할 성(盛), 일어날 기(起), 일 흥(興)이다. 용례로는 성하여 잘 되어 감을 창성(昌盛), 착하고 아름다운 말을 창언(昌言), 기세 좋게 잘되어 나가는 세상을 창세(昌世), 탁 트인 좋은 운수를 창운(昌運), 나라가 번성하고 세상이 태평함을 창평(昌平), 말리지 않은 쇠가죽을 파는 가게를 창전(昌癲), 일이 한창 잘 되어 발전함을 번창(繁昌), 평안북도 벽동과 창성 지방의 크고 억센 소란 뜻으로 미련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비유한 말을 벽창우(碧昌牛), 매우 적절하고 정대한 언론을 이르는 말을 창언정론(昌言正論), 덕에 의지하는 사람은 번창한다는 말을 시덕자창(恃德者昌) 등에 쓰인다.
▶️ 牛(소 우)는 ❶상형문자로 뿔이 달린 소의 머리 모양을 본뜬 글자로 소를 뜻한다. 뿔을 강조하여 羊(양)과 구별한 글자 모양으로, 옛날 중국에서는 소나 양을 신에게 빌 때의 희생의 짐승으로 삼고 신성한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글자도 상징적이며 단순한 동물의 모양은 아니다. ❷상형문자로 牛자는 ‘소’를 뜻하는 글자이다. 牛자의 갑골문을 보면 뿔이 달린 소의 머리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다. 갑골문에서부터 소전까지는 이렇게 소의 양쪽 뿔이 잘 묘사되어 있었지만, 해서에서는 한쪽 뿔을 생략해 ‘절반’을 뜻하는 半(반 반)자와의 혼동을 피하고 있다. 농경 생활을 하는 민족에게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다. 느리지만 묵직한 힘으로 밭을 갈거나 물건을 옮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소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牛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제물(祭物)’이나 ‘농사일’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牛(우)는 성(姓)의 하나로 ①소(솟과의 포유류) ②별의 이름, 견우성(牽牛星) ③우수(牛宿: 28수의 하나) ④희생(犧牲) ⑤고집스럽다 ⑥순종(順從)하지 않다 ⑦무릅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소 축(丑),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소의 젖을 우유(牛乳), 소의 뿔을 우각(牛角), 소와 말을 우마(牛馬), 소를 부려 밭을 갊을 우경(牛耕), 소를 잡는 데 쓰는 칼을 우도(牛刀), 소의 가죽을 우피(牛皮), 소 걸음이란 뜻으로 느린 걸음을 우보(牛步), 소의 궁둥이로 전하여 세력이 큰 자의 부하에 대한 비유를 우후(牛後), 소의 수컷으로 수소를 모우(牡牛), 소의 암컷으로 암소를 빈우(牝牛), 털빛이 검은 소를 흑우(黑牛), 소싸움 또는 싸움 소를 투우(鬪牛), 식용할 목적으로 사육하는 소를 육우(肉牛), 주로 일을 시키려고 기르는 소를 역우(役牛), 쇠귀에 경 읽기란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소가 물을 마시듯 말이 풀을 먹듯이 많이 먹고 많이 마심을 우음마식(牛飮馬食),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으로 큰 일을 처리할 기능을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씀을 이르는 말을 우도할계(牛刀割鷄), 소가 밟아도 안 깨어진다는 뜻으로 사물의 견고함의 비유를 우답불파(牛踏不破), 소를 삶을 수 있는 큰 가마솥에 닭을 삶는다는 뜻으로 큰 재목을 알맞은 곳에 쓰지 못하고 소소한 일을 맡기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을 우정팽계(牛鼎烹鷄), 소 궁둥이에 꼴 던지기라는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가르쳐도 소용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우후투추(牛後投芻),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