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洞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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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未堂) 서정주가 나이 이십 대 후반인 1942년, 고향에서 부친의 장례를 마치고 상경하는 길에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려고 잠시 선운사 동구 주막집을 들렀습니다. 거기에서 마흔쯤 되어 보이는 인생도 알고 사랑도 알만한, 아직도 미색이 남아있는 주모와 술에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따라 손님도 없는 주막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술잔 속에서 시인과 주모는 요즘 말로 ‘썸 타는 눈빛’도 은근히 주고받았습니다.
말이 통하는 사내를 만나자 술기운을 빌어 주모는 구성지게 육자배기를 불렀습니다.
미당은 막걸리와 육자배기에 취해
“내 생애 에서도 이것이 최고 정상이었네.”
이 말에 주모는 시인에게
“동백꽃이 피거들랑 또 오시오, 잉~” 화답을 하였지요.
시인은 슬그머니 화가 났습니다.
‘내일 오라고 하지…’
미당은 술에 취해 주모가 그 뜻을 알든 모르든 독일어 'Ich liebe dich'를 몇 번 쏟아냈습니다. 우리말로 ‘사랑한다’고 하기에는 겸연쩍었던 시인은 말조차 제대로 못하고 헤어졌구요.
시인은 10년 후 쯤에 이곳을 다시 찾았고, 주모는 전쟁통에 빨치산에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습니다.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소리,
인생은 늘 이렇 게 뒤늦게 알게 되려니. 여인과 동백과 육자배기가 섞인, 흐드러진 감정의 추억은 이런 절창의 시 <선운사 동구>를 낳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25.2.16.일.
선운사 洞口/서정주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