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 유전자 중심의 진화 또는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유전자를 중심에 두고 진화를 설명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생물학적 진화의 핵심 메커니즘은 유전자 이기주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이기주의라는 것은 유전자가 개체나 종 전체보다는 자신의 번식 확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저런 비판의 소리도 있지만 스스로 자신을 잘 들여다 보면 굉장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인간들의 행태나 지금 사회병리학적 측면에서도 이 인간의 유전자가 얼마나 교묘하게 인간들을 옥죄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자신의 가족들을 잘 관찰해 보면 이 이기적 유전자의 위력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정말 씨도둑은 못한다고 부모들의 그 모습과 성격 그리고 행동까지 거의 대부분 아래로 전해 내려간다. 우리 아이는 왜 저런 행동을 할까 내지는 우리 아이의 성격은 누굴 닮아 저럴까라고 생각한다면 자신과 자신의 배우자의 특성과 유전적 상황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정말 후천적으로 치열한 노력을 한 극히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개별적 특징은 부모 나아가 조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들일 것이다. 그게 바로 유전자이다. 상당부분 부모가운데 우성인자를 물려받지만 열성인자와 우성인자의 절묘한 결합이 요상한 모습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이런 것을 보고 너는 누굴 닮아 그러느냐하지만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유전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만 별로 관심밖에 두었던 그런 유전자들이 결합해서 이른바 돌연변이적 형상으로 나왔을뿐 실상은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들이다.
그렇다면 유전자가 인류를 지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뭔가 자신의 유전자와 다른 길을 가고 싶어하지만,그리고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가족의 유전적 병폐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코 쉽게 되지 않은 것을 체험하고 있을 것이다. 유전자가 장악하는 그 틀속에서 벗어나기란 정말 힘들고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사안일 것이다. 물론 엄청난 성인정도의 인내심과 끈기로 부단히 자신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탈피하려는 극도의 초인간적 노력이 있을 경우 다르지만 말이다. 일반인들의 경우 참으로 그 유전자가 만들어 놓고 틀을 깨기가 힘든 것이다.
이런 유전자뿐 아니라 요즘은 바로 도파민이 인간의 행동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파민은 카테콜아민 계열의 유기 화합물로 다양한 동물들의 중추 신경계에서 발견되는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이다. 뇌신경 세포들간에 어떠한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 중에 하나이다. 이 도파민이 바로 인간에게 쾌감을 주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들이 뭔가 기분 좋게 되는 행위를 하게 되면 바로 이 도파민이 분비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업성적이 좋을 경우 생긴다. 보람된 느낌을 갖는다. 정해진 운동량을 완수하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때도 도파민이 분비된다. 인간들이 아주 어릴때부터 얻었던 그 쾌감의 대부분은 바로 도파민의 분비때문에 생긴 것이다. 어릴때 친구들과 얄궂은 장난을 치고 났을 때 뭔가 묘한 짜릿함을 느끼는 것도 도파민때문이다. 집에서 학교에서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 가운데 간혹 주위의 약한 아이들을 집단으로 괴롭혔을때 느끼는 알 수 없는 느낌도 일종의 도파민이다. 성인이 되어서 하게 되는 흡연과 음주에서 상당한 생활의 위로를 얻기도 하는 데 바로 도파민의 분비를 몸이 직접 느끼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었을때 짜릿함도 같은 것이다. 남녀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남녀의 사랑의 경우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은 더욱 많게 된다. 도파민에 굶주린 일부 특정인들은 마약이라는 것에 손을 댄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마약을 접했는데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쾌감을 얻게 된다. 도파민이 굉장히 많이 분비되는 것이다. 이렇게 도파민의 분비에 인간들은 몸과 정신을 맡기고 의존하게 된다. 사회생활의 폭이 넓어지고 경험의 가지수가 증가할수록 도파민의 분비와 연관이 많아진다. 힘들고 지치면 자연히 뭔가에 의존하려고 하게되는데 상당부분 바로 도파민에 기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파민 분비에 대해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도파민의 분비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도한 도파민을 인간 스스로 원하게 되고 그런 경험을 추구하려다보니 바로 중독이라는 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각종 중독들...흡연 중독, 알콜 중독, 도박 중독, 섹스 중독, 마약 중독, 폭력 중독 등등 별별 중독이 다 등장하게 된다. 정신전문가들은 현재 인터넷 중독이 심각하며 다른 중독들과 달리 이런 류의 중독은 중독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데 큰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하루종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행위들과 인터넷 기사에 이런 저런 댓글들을 다는 행위들, 그리고 다른 댓글들에 관심을 가지고 욕을 해가면서도 샅샅히 뒤져 보는 행위들이 바로 심각한 중독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현혹돼 하루종일 유튜브를 보는 것이야 말로 중독의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중독은 바로 도파민의 과대 작용을 노리는 것이라고 보았을때 지금 인터넷 시대에 거의 모든 인간들이 도파민의 조종속에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그런 상황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된다.
인간은 유전자의 틀속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는 연약한 존재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채 이번에는 도파민이라는 중독성 물질에 현혹돼 하루하루를 요상하게 지내야 하는 아주 수동적인 개체로 전락하고 있다. 유전자와 도파민의 지시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태어날 때 이미 유전자속에서 자신의 결정권이 박탈된 상태에서 성장하면서 도파민이라는 그 물질에 노예화되어서 평생을 살아가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물론 그런 중독주변에 아예 가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그런 부족을 제외하고 어느 정도 문명의 상황속에 놓여 있다면 거의 대부분이 도파민의 지시와 도파민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아 보인다. 유전자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도파민은 스스로 제어하고 절제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인간의 연약한 의지력과 쾌락추구에 대한 지대한 욕심으로 인해 도파민에서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쾌락추구의 욕망속에 도파민에 스스로 종속되는 과정이 인간이 지닌 숙명같아 보인다.
2023년 5월 26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