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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욘 포세
오늘날 가장 중요한 희곡 작가이자 산문 작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한 욘 포세의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에 상을 수여한다.”
-스웨덴 한림원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의 대표작 『멜랑콜리아 I-II(Melancholia I-II)』가 노르웨이 뉘노르스크어 원전 번역을 통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상영되는 현대 희곡 작가이자 실험적이고 정교한 시적 언어(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노랫말을 짓던 추억이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를 구사하는 산문 작가인 욘 포세는 노르웨이와 북유럽을 넘어 이미 세계 문학의 거장으로서 자리매김했다.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에서 엿볼 수 있듯이, 욘 포세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일상적 세월 속에 자리한 이름 없는 존재들, 생과 사의 간극에서 잊히고 스러져 간 이들의 희미한 궤적을 되살리는 데에 매진해 왔다. 그런데 『멜랑콜리아 I-II』는 욘 포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특히나 독특한 위상을 지닌 작품이다. 보통 욘 포세가 조형해 낸 인물들은 마땅한 이름도, 유별난 개성도 없이 범상한 상황 속에서 갈등을 겪으며 삶이라는 부조리를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작가는 『멜랑콜리아 I-II』에서 19세기 말에 실존한 노르웨이의 풍경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Lars Hertervig, 1830~1902)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역사와 소설적 상상력을 가로지르는 전혀 새로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선보인다. 게다가 더욱 과감하게 신경 쇠약과 우울증(Melancholia)에 시달리는 라스 헤르테르비그(멜랑콜리아 I)와 (먼 세월을 뛰어넘어) 치매에 걸린 화가의 누이 올리네(멜랑콜리아 II)를 통해 서술되는 하루하루의 사건, 착란, 번민, 고뇌, 기억의 편린들은 소외당한 모든 이들(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한 예술가와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한 여성, 우울증과 치매에 고통받는 두 화자)의 목소리를 되살리며 인간 조건의 심오한 깊이와 욘 포세의 매혹적인 작품 세계를, 더불어 어둠을 가르는 눈부신 섬광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이를테면 이 작품은, 노르웨이의 비평가 외스텐 로템의 평가대로 “욘 포세의 일관된 주제 의식을 보여 주는 동시에 가장 강렬하고 도전적인 일면을 드러내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욘 포세의 “문학적 주제, 서술 기법, 예술적 비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아이리시 타임스》)인 작품임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멜랑콜리아 I-II』가 욘 포세의 대표작으로 거론되고, 독일의 명성 높은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에서 선정한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위대한 유럽 문학 70대 작품”에 이름을 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책 소개
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욘 포세
오늘날 가장 중요한 희곡 작가이자 산문 작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한 욘 포세의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에 상을 수여한다.”
-스웨덴 한림원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의 대표작 『멜랑콜리아 I-II(Melancholia I-II)』가 노르웨이 뉘노르스크어 원전 번역을 통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상영되는 현대 희곡 작가이자 실험적이고 정교한 시적 언어(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노랫말을 짓던 추억이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를 구사하는 산문 작가인 욘 포세는 노르웨이와 북유럽을 넘어 이미 세계 문학의 거장으로서 자리매김했다.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에서 엿볼 수 있듯이, 욘 포세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일상적 세월 속에 자리한 이름 없는 존재들, 생과 사의 간극에서 잊히고 스러져 간 이들의 희미한 궤적을 되살리는 데에 매진해 왔다. 그런데 『멜랑콜리아 I-II』는 욘 포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특히나 독특한 위상을 지닌 작품이다. 보통 욘 포세가 조형해 낸 인물들은 마땅한 이름도, 유별난 개성도 없이 범상한 상황 속에서 갈등을 겪으며 삶이라는 부조리를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작가는 『멜랑콜리아 I-II』에서 19세기 말에 실존한 노르웨이의 풍경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Lars Hertervig, 1830~1902)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역사와 소설적 상상력을 가로지르는 전혀 새로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선보인다. 게다가 더욱 과감하게 신경 쇠약과 우울증(Melancholia)에 시달리는 라스 헤르테르비그(멜랑콜리아 I)와 (먼 세월을 뛰어넘어) 치매에 걸린 화가의 누이 올리네(멜랑콜리아 II)를 통해 서술되는 하루하루의 사건, 착란, 번민, 고뇌, 기억의 편린들은 소외당한 모든 이들(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한 예술가와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한 여성, 우울증과 치매에 고통받는 두 화자)의 목소리를 되살리며 인간 조건의 심오한 깊이와 욘 포세의 매혹적인 작품 세계를, 더불어 어둠을 가르는 눈부신 섬광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이를테면 이 작품은, 노르웨이의 비평가 외스텐 로템의 평가대로 “욘 포세의 일관된 주제 의식을 보여 주는 동시에 가장 강렬하고 도전적인 일면을 드러내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욘 포세의 “문학적 주제, 서술 기법, 예술적 비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아이리시 타임스》)인 작품임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멜랑콜리아 I-II』가 욘 포세의 대표작으로 거론되고, 독일의 명성 높은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에서 선정한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위대한 유럽 문학 70대 작품”에 이름을 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출판사 서평
나는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내가 존재할 이유도 없다. 빛도 사라질 것이다. -본문에서
나는 평생 이렇다 할 그림을 그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나 큰 눈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본다. 그림을 그리기엔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본문에서
제가 신을 믿는다거나 또는 믿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이 신으로 존재하므로, 한편 우리 인간도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드메가 말했다. -본문에서
나는 몸을 일으켜 하늘을 쳐다보았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검푸른 바다에 하얀 파도가 넘실거렸다. 나는 라스가 하늘 같다고, 바다 같다고 생각했다. 항상 변하는 사람. 밝음에서 어둠으로, 흰색에서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라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바다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본문에서
『멜랑콜리아 I』은 빛을 사랑했지만 외롭고 그늘진 인생을 살아야 했던 예술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1853년 늦가을, 그는 위대한 풍경화가가 되고자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 한스 구데가 교수로 재직한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를 찾는다. 1853년 가을날 오후, 멋진 보랏빛 코듀로이 양복을 차려입고 자신의 운명을 결단해 줄 구데 선생을 기다리던 헤르테르비그는 돌연 착란에 사로잡힌다. “혹시 나더러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예술적 재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라고 하면 어떡해야 하나? 아니다, 나처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없다. 오직 나만이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 낼 수 있는 예술가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불안과 우울, 편집증적 망상 속으로 깊이 침잠해 가던 헤르테르비그의 눈앞에 또 다른 운명의 서광이 비친다. 바로 자기가 하숙하는 빙켈만 집안의 딸, 헬레네에게 완전히 매료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헤르테르비그의 두 가지 운명은 어둑한 영혼 속에 까마득히 잠들어 있던 파국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멜랑콜리아 II』는 50여 년에 이르는 긴 세월을 건너뛰어 1902년(라스 헤르테르비그가 사망한 해이다.), 노르웨이 서남단에 위치한 스타방에르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2부는 돌연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누이이자 치매로 인해 고통받는, 허구적 인물 ‘올리네’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그는 이미 대부분의 가족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죽음을 바라보는 노인으로, 거친 바람에 흔들리는 위태로운 촛불처럼 한없이 명멸하는 기억 속을 방황하며 라스의 모습, 음성, 그 모든 흔적을 헛되이 뒤쫓는다. 올리네는 과연 라스를 되찾을 수 있을까? 끊길 듯 가느다란, 그러나 슬프도록 찬연한 한 줄기 빛이 여전히 소녀를 간직한 그 나이 든 얼굴에 가닿는다.
예술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에 대하여
라스 헤르테르비그(Lars Hertervig, 1830~1902)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험준한 화성암 산악과 빙하 침식 지대, 호수와 피오르, 장엄한 프레이케스톨렌(다이빙대처럼 공중으로 죽 비어져 나온 암석 지형) 등이 첩첩이 쌓인 라이팔케 지방의 풍경을 그려 낸 대표적인 노르웨이 화가다. 헤르테르비그는 노르웨이 서부, 척박하고 외딴 지역에서 농사를 짓던 가난한 퀘이커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미술에 관심을 보인 그는 가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학교의 교수 한스 구데에게 사사하기 위해 유학을 떠난다. 1854년 어느 날, 동료 학생들의 잔인한 장난에 크게 상심한 헤르테르비그는 모든 활동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급기야 1856년, 가우스타 정신 병원에 입원한다. 그렇게 그는 사망하기까지 30여 년 동안 가난하고 고립된 환경 속에 갇힌 채, 유화가 아닌 수채화와 구아슈화, 심지어 호밀 반죽을 사용해서 가까스로 작품 활동을 이어 간다. 헤스테르비그의 예술 작품은 1914년, 그가 죽은 지 12년 뒤에야 비로소 세상의 빛을 받는다. 오늘날 그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인정받고 있으며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풍경화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욘 포세는 자신의 작품 『멜랑콜리아 I-II』를 통해 우울이라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추구한 그에게 깊은 경의를 표했다. 이번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펴낸 『멜랑콜리아 I-II』의 표지 그림 역시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작품으로, 그의 고향 풍경인 보르그외이섬이다. 정신 병원에 머물며 가난한 생활에 갇혀 있을 때 완성된 이 작품은 화가의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보여 준다.
라스 헤르테르비그(1830~1902)
노르웨이의 거친 풍경 속에 환상성을 담아 낸 것으로 유명한 화가.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후원자를 만나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 회화를 공부했으나, 동료 화가들의 냉대를 받으며 정신병을 얻었다.
사후 12년 1914년에 오슬로에서 열린 ‘1914년 기념회전’에서 재발굴되어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다.
- p14 -
~~~~~~
나는 길을 걷는다
나는 말카스텐에서 벗어나 당신이 사는 집,
당신의 얼굴을 볼수 있는 그 집 창을 향해 걷고 있다.
당신의 굽실굽실한 금발
당신의 반짝이는 푸른 눈
당신의 하얀 드레스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당신의 목소리
나는 당신의 눈을 볼수있다.
당신은 내 가슴속에 있다
당신이 그립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가고 있다
나는 당신을 향한 한 점의 그리움
당신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가고 있다
나는 당신을 만날 것이다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당신은 침착하고 조용한 목소리는 내가슴속을 가득채운다.
당신은 빛이 하루를 채우듯 내 가슴속을 채운다
당신이 없다면 나는 어둠에 불과하다
당신이 그립다
나는 길을 걷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당신을 향한 그리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하지만 나는 웃음소리에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내 가슴속에 있는 것은 당신을 향한 나의 움직임 뿐이니까
나는 당신을 향한 움직임이다
나는 걷고 있다
당신을 향해 걷고 있는 나는 하나의 움직임
나는 당신을 향한 하나의 그리움
나는 당신을 향한 하나의 움직임일뿐
나는 걷고 있다
당신을 향해 가고 있다
당신이 그곳에 있든 없든
나는 당신을 향한 작은 움직임일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당신이 없는 곳
바로 그곳에 존재하는 움직임이다
나는 내가 볼수 있는 모든것
그림으로 그릴수 있는 모든것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움직임으로 존재한다
나는 길을 따라 걷고 있다
나는 당신을 향하는 절망적인 움직임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공허한 움직임
당신이 없는 곳으로 향하는 움직임이다.
당신은 사라졌다
내게서 사라져 나와 함께 있지 않다
나는 더 이상 당신과 함께할수 없다
당신은 나와 함께 있길 원치 않았다
당신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있길 원했다
당신은 내게서 사라졌다 영원히
당신이 없는 나는 공허한 움직임
그림 속에서만 존재하는 움직임이다
아니, 그림조차 공허한 것일까?
이제 내 앞에는 정녕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어쩌면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다시 그림을 그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다시 생각조차 할수 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눈을 뜨고 있을때와 눈을 감고 있을 때를 바꾸어 살면 될까?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를 바꾸어 살면 될까?
……….
- p137~139 중에서
https://naver.me/GieagYrx
1852년 노르웨이 서북쪽 해안에 자리한 스타방에르 출신의 한 청년이 바다 건너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 등록한다.
갓 스무살을 넘긴 청년은 소수의 퀘이커 교도들이 모여 살고 있는 낙후된 섬의 가난한 농부 집안출신으로 조선소 노동자였지만 뛰어난 솜씨와 성실함을 인정 받고 조선소 사업체를 운영하는 거부 한스 가브리엘 부크홀트의 후원을 받고 독일로 건너간다.
청년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최고의 회화 교수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노르웨이 낭만주의 화파의 거목인 한스 구데(Hans Gude 1825-1903)의 문하생으로 들어 간다.
1년 후 1853년 늦가을 오후 여전히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그 청년은 홀로 이런 독백을 주절 거리기 시작한다.
(Hans Gude 1825-1903)의 문하생으로 들어 간다.
1년 후 1853년 늦가을 오후 여전히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그 청년은 홀로 이런 독백을 주절 거리기 시작한다.
'나는 아주 멋진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다.'
청년은 한스 구데가 자신의 그림을 탐탐 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의 아틀리에에 자신의 그림을 갖다 놓지 않을 것이다.
청년은 자신의 그림을 평가 받지 않으려고 오직 침대에만 누워 있다.
'나는 오늘 아틀리에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 청년이 누워 있는 곳의 집안의 다른 방에는 그가 짝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나의 사랑 헬레네도 이 집에 있다.
내 사랑 헬레네. 나는 자취방 침대에 누워 있고, 반짝이는 아름다운 눈을 가진 헬레네는 집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다. 나는 침대에 누워 귀를 기울인다. 그녀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나는 당신이 머리를 보았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당신에게 다가간 뒤 두 팔로 당신을 안았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당신의 머리카락 속에 얼굴을 파묻고 호흡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귀에 대고 이제 우리는 연인 사이냐고 나직이 물었다.
당신은 내 귀에 대고 그렇다고 속삭였다.
그래요.
이제 우리는 연인 사이에요.
청년의 망상 같은 독백은 과거와 현재 사이를 쉼없이 오고 가면서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하나씩 보여 준다.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제 삼촌 말이에요.
삼촌은 당신이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청년은 맨 처음 뒤셀도르프에 도착 한 그 날의 시간으로 돌아가 기억의 회로를 돌리듯 주절거리기 시작한다.
나, 화가, 풍경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거장 한스 구데에게 그림을 보여 줄 용기를 낼 수 없었다.
한스 구데는 그림을 잘 그린다.
티데만도 그림을 잘 그린다.
그리고 나도 그림을 잘 그린다.
내가 아는 단 한 가지 사실은 당신에게 가야 한다는 것 뿐이다.
아침에 눈을 뜰 때 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나는 온종일 당신을 그리워 한다.
헬레네에 대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청년은 하숙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하며 예술 아카데미 교수진과 동료들과 도저히 가까워 지지 못했던 이유, 하숙집 주인인 빙켈만 부인과 그 주변인들의 태도, 단골 술집 사람들 그리고 헬레네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두서 없는 독백을 하는 동안 청년의 주변 인물들은 그가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키고 있음을 알고 있다.
거장에게 재능을 인정 받지 못하니 세상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갖지 않고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소비하는 사회에서 엄격한 금욕주의적 종교관을 갖은 가난한 퀘이커 교 신자의 그림은 아무도 사가지 않고 청년의 그림은 어디에도 전시 되지 못한다.
하숙집에서 쫓겨난 청년은 수트 케이스를 끌고 다니며자신의 사랑 헬레네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다.
그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가족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말카스텐에 있는 내 사랑 헬레네를 만나기 위해 앞으로 걷기만 할 것이다.'
그토록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 머나먼 고향 땅에서 독일에 온 청년은 희고 검은 천에 둘러 싸여서 저주 받은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을 입은 채로 정신병원에 갇혀 버린다.
'나는 노르웨이로 돌아가서 그림을 그릴 것이다.
나는 햇살 아래 자리한 아름다운 풍경,
구름 아래 자리한 아름다운 자연을 그릴 것이며,
헬레네는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디를 가든 항상 헬레네와 함께 있을 것이다.'
병실에 누워 있는 청년은 병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갈매기의 날개 짓을 응시한 채 이렇게 중얼 거린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
나는 두 다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으면 안 된다.
나는 갈매기를 떠올려야 한다.
나는 다시 그림을 그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두 다리 사이에 손을 집어 넣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가우스타 정신 병원에 있다.
나는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강렬한 햇살 아래의 풍경을 너무나 오래 바라 보았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미쳐 버렸고, 지금 가우스타 정신 병원에 있다.'
1830년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에서 태어난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Lars Hertervig 1830-1902)는 1856년, 24살의 나이에 가우스타 정신 병원에 들어가 그곳에서 30년 동안 극도의 가난과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며 밀가루 반죽과 석탄 가루로 덧칠 한 그림을 그리다 생을 마감한다.
그의 그림은 1914년 부터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처음 전시가 열리고 나서야 뒤늦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 한 작가가 그의 생애를 추적하고 있다.
1991년 늦가을 저녁, 오사네: 비드메가 어둠 속의 비바람을 헤치며 걷고 있다.
그는 삼십 대 중반의 작가. 낡은 코트를 걸친 그가 길을 걷고 있다.
오늘 비드메는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그림에 관한 소설을 쓰기로 우연찮게 마음먹었다.
오슬로 거리를 걷던 중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피하기 위해 오슬로 국립 미술관으로 들어간 작가 비드메는 그곳에서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가 그림 <보르그외위섬>이라는 풍경화 작품을 보게 된다.
island Borgøya,1867,Lars Hertervig
인생의 최대의 경험, 순간의 경험을 단 한 장의 그림을 통해 느낀 작가 비드메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행복한 감정에 휩싸인다.
어떤 것도 성취한 적 없는 실패한 작가가 자신의 먼 친척인 라스 헤르테르비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눈물을 훔치며 구름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비밀스러운 본성을 예술의 형태로 표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에 생애 관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는다.
퀘이커교 신자였던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신자 등록증을 확인하기 위해 오슬로의 한 교회에 찾아간 작가 비드메는 그의 이름이 등록되지 않았다는 ..아니 어쩌면 교회측에서 임의로 지워 버렸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그 역시 한 때는 노르웨이 국교회 신자 였지만 가톨릭으로 귀의 했기에 화가의 이름과 함께 자신의 이름도 신자 등록 명단에서 찾지 못한다.
비드메는 세상의 빛 속으로 사라져 버린 화가의 흔적을 찾기 위해 어둠 속 빗줄기를 지나 그가 마지막 생을 보냈던 고향 땅을 찾아간다.
시간은 다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1902년 초 가을 스타방에르의 한 농가, 성실하게 퀘이커 교 신자로 살아가고 있는 헤르테르비그 가족의 모습이 나타난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동생 라스를 돌보고 있는 누나 올리네는 치매 증세를 보이며 지팡이를 짚지 않고는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노쇠했다.
스타방에르에서 가장 작은 집에 살고 있던 누나 올리네는 아이를 많이 낳아 길렀고 그 아이들이 모두 도시로 떠난 후 병들어 버린 동생을 돌보고 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던 동생은 이제 누나가 음식 재료로 쓰던 것들로 낙서 같은 그림만 그리고 있다.
왜 그래, 라스 ?
아무것도 아냐.
거짓말, 뭔지 말해 봐.
아냐, 라스가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가 덧붙였다.
산이 거뭇거뭇해
이젠 바다도 거뭇거뭇하게 변했어.
누가 너에게 나쁜 짓이라도 한 거야?
허름한 아버지의 지붕 위 다락방에서 세상과 단절한 동생을 바라보는 누나 올리네
나는 몸을 일으켜 하늘을 쳐다 보았다.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나는 바다를 바라 보았다. 검푸른 바다에 하얀 파도가 넘실거렸다.
나는 라스가 하늘 같다고, 바다 같다고 생각했다.
항상 변하는 사람, 밝음에서 어둠으로, 흰색에서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가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바다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
바다 같은 사람이였던 화가 라스는 노르웨이에서 극소수 퀘이커교 신자로 주변인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며 '접근 금지' 같은 모욕을 당했다.
신의 말씀대로 살아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의 아버지는 선한 사람들을 이용해서 성실한 농부들이 키워낸 소와 수확물을 착취한 교활한 성직자들에게 속아 영원히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바닷가 어부들이 팔다 버린 물고기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
문고리에 걸린 생선 옆에는 라스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한 남자와 말,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산등성이. 그림은 대부분 누런색과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라스는 어느 날 그녀에게 뛰어와서 이 그림을 주고 갔다.
말쑥하게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을 입고 멋진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겠다며 고향 땅을 떠난 동생은 2년 만에 미쳐서 돌아 왔다.
병원 치료 후 더 이상 거리를 걷는 것도 사람들과 대화조차도 하지 않은 동생은 수시로 바닷가로 뛰어 가 보트 창고 외벽에 기댄 채 온 종일 하늘만 바라 보았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누나 올리네는 동생이 남긴 그림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빛을 보게 된다.
멜랑콜리아 I-II는 엄격한 종교적 신념으로 살아가는 한 가족의 가난과 고통이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힘든 제도와 관습의 장벽에서 정신 착란과 분열증으로 생을 마감 할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한 예술가와 치매를 앓고 있는 그의 누나 올리네의 모습이 다성음을 쌓아 올리듯 화가의 1차적 독백 시선과 그의 가족 중 일부인 누나 올리네의 시점으로 전개 된다.
자신의 작품을 인정 받지 못하는 화가의 내면의 고백 같은 독백은 반복적인 단어가 중얼거리듯 이어지면서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길 수록 화가의 과거와 현재, 환영과 환청이 뒤섞이며 문장이 어느 새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채 세상 밖으로 사라져 버린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음성을 듣게 된다.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끊임없이 사랑하는 여인 헬레네를 찾고 기다리고 있다.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보다 사랑할 대상인 헬레네만 애타게 찾으며 어디를 가든 그녀와 함께 가겠다는 꿈 같은 망상에 사로 잡혀 있다.
정신병원에 갖혀 버린 화가는 사랑할 대상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더 이상 손에 붓을 쥐지 않고 자신의 두 다리 사이에 손을 집어 넣고 자위를 한다.
나는 산드베르그 박사가 말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 안된다.
나는 갈매기 소리를 듣는다.
그려할 대상, 사랑할 대상을 잃어버린 화가는 하늘 위에서 쏟아지던 빛은 구원의 빛 사랑의 빛이 였을까...
House on Islet and Two Boats,Lars Hertervig ,1856
난 석탄과 물을 사용해. 작은 나뭇가지 끝을 깎아 내서 그림을 그린 다음에 손가락으로 번지게 한 거야
난 그게 구름인지 몰랐어.
잘 보면 구름인지 알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