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hot chili pe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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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래시 훵크 혹은 멀티컬쳐 로큰롤
우리나라의 록 매니아 가운데에는 의외로 얼터너티브 록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개인의 음악적 취향이겠지만 그 이유들을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얼터너티브 밴드들의
연주력이 시원찮다는 이유를 든다. 록 음악을 탐미적으로 감상하는 이들에게서 나오는 이런 견해는 얼터너티브의
중요한 측면을 감안할 때 다소 일면적이다.
반연주를 넘어서는 길이 꼭 거장적 연주만은 아닐 것이다.
이와는 좀 다르게 얼터너티브에서 흑인 음악의 요소가 적다는 점을 문제삼는 이들이 있다.
록 음악이 전통적으로 흑인 음악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어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런 지적은 이유가 있다.
재밌는 점은 이런 관점이 올드 팬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록 강하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을 세우면 얼터너티브의 주류는 너무나 백인적으로 들린다.
그렇지만 흑인 음악의 필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팬들에게도 LA출신의 레드핫칠리페퍼스의 음악은 흥미진진하게
들릴 것이다. 이들은 플리의 마술적 베이스 라인이 만들어 내는 훵키한 리듬을 기초로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1991년에 발표된 [blood sugar sex magik]은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너바나의 [nevermind]나 펄잼의 [ten]못지않은
예술적 성취와 대중적 영향력을 겸비한 앨범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1980년대 LA 록 음악의 흐름은 머틀리 크루나 래트로 대표되는 '라이트 메탈(LA메탈)' 정도와
블랙 플랙이나 데드 케네디스로 대표되는 하드코어 펑크가 알려진 정도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전자는 상업적 메탈이여서 얼터너티브의 공격 대상 이상의 의미는 없다.
한편 후자의 하드코어 펑크가 얼터너티브에 대해 갖는 의의는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그렇다면 레드핫칠리페퍼스의 훵크한 로큰롤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먼저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특유한 문화적 상황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라는 메트로폴리스가 위치해 있고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캘리포니아는
자본주의 첨단문명의 상징이자, 다양한 인종의 문화가 공존하는 '멀티 컬쳐 공간'이다.
이 곳에서는 '백인 음악'인 펑크와 '흑인음악'인 훵크를 중심으로 그 외에도 여러 인종들의 문화적, 음악적 기호가
뒤범벅되어 독특한 하위 문화를 형성하였다.
만일 우리가 캘리포니아 지역의 록 음악에서 얼터너티브의 한 계열을 찾으려 한다면, 이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리 언급했듯이 음악적 측면에서 얼터너티브가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다양한 음악적 장르들을 혼합해서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는 것이라면 , 쓰래시 훵크도 '얼터너티브적'이다. 주로 다른 밴드들이 백인 음악의 스타일을 혼합하는데 주력했다면,
캘리포니아 밴드들은 백인 음악의 '타자'들을 백인 음악과 융화시킴으로써 대안을 찾아 나선다.
백인이 연주하는 훵크
레드핫칠리페퍼스 혹은 LA식 평등주의
레드핫칠리페퍼스의 실질적 리더라 할 수 있는 플리는
"내게 조지 클린턴의 영향력은 너무나 커서 몸에 붙어 있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표적인 펑크 뱅가드 그룹 갱 오브 포 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갱 오브 포는 나와 진정으로 연결된 최초의 록 밴드이다. .....
그들의 [Entertainment] 앨범은 록 음악을 대하는 내 방식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플리의 이 두 언급은 레드핫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열쇠라 할 것이다.
레드핫칠리페퍼스는 펑크 뱅가드로부터 계승한 정신을 견지하면서 흑인들의 정통 훵크를
진지하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수용한 백인 록 밴드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밴드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앤디 질이 이끄는 갱 오브 포의 두드러진 영향력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갱 오브 포는 '펑크 뱅가드'라 일컬어지는 그룹들 중에 유달리
흑인적 양식을 차용한 밴드이다.
따라서 갱 오브 포의 음악을 듣고 플리가 '빠져든'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가 하고싶어했던 음악 역시 흑인적 훵크를 펑크 속에 수용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초기 레드핫칠리페퍼스의 사운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나는 갱 오브 포의 노래[위대한 인간들에 의해서가 아니야]를 턴테이블에 건다." 는 플리의
고백이 그것을 알려 준다.
레드핫칠리페퍼스의 음악은 조지 클린턴의 훵크에 한 다리를 걸치고 있다.
그것은 플리의 개인적인 음악적 배경이 밴드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상 그룹 멤버들 중에 흑인적 취향에 가장 경도되어 있는 사람이 플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팔을 불었고 (트럼펫, 트럼본 등 레드핫의 앨범에 수록된 나팔 세션은 거의 플리가 도맡는다.),
재즈 쪽에 많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플리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성향은 보다 펑크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의 멤버인 플리(본명은 마이클 발자리, 베이스), 앤소니 키디스(보컬),
힐렐 슬로박(Hillel Slovak, 기타, 1988년 약물 중독으로 사망), 잭 아이언스(드럼)는 모두
패어팩스 고등학교의 동창생으로 절친했던 사이였는데, 이들이 로컬 밴드로 데뷔할 때는 펑크의 요소가 강했다.
이 두 측면(훵크와 펑크적인 측면)을 볼 때, 외형상 이들은 로스앤젤레스의 록 씬이 갖는 독특한 상황을
다른 어느 밴드보다도 '평균적으로'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셀프 타이틀의 첫 앨범 [Red Hot Chili Peppers](1984)를 프로듀스해 준 사람은 다름아닌 앤디 질이었다.
그런데 2집 [Freaky Styley](1985) 를 훵크의 본 고장인 디트로이트에서, 그것도 훵크의 신 Funk God이라
칭송받는 조지 클린턴이 프로듀스하여 녹음하면서, 이들의 스타일은 흑인적인 요소를 대폭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초기의 스타일은 1989년에 나온 히트 앨범 [Mother's Milk]에서 완성된다.
이 앨범은 당시 록 씬에서 전혀 새로운 음악으로 받아들여 졌다.
메탈 중심의 기타 잡지 '기타스쿨'에서조차 이 앨범에 실려있는 [Knock Me Down]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날마다 똑같은 고기덩이와 감자는 이제 신물이 난다고?
그렇다면 여기 뜨거운 젊은 요리사들이 어떻게 리프와 베이스 라인을 조리하는지 알려 줄거야."
이 앨범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중요한 것은 힐렐 슬로박이 죽고난 뒤,
듀안 맥나이트Duane Mcknight 에 이어 팀에 들어온 당시 18세의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엔트의 미니멀적인
접근 방식이 플리의 훵키함과 잘 만났기 때문이다.
레드핫칠리페퍼스는 이 앨범의 성공에 이어 이들의 최대 성공작이자 얼터너티브 사상 손꼽힐 만한 명반인
[Blood Sugar Sex Magik]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서는 랩, 훵크, 펑크, 1970년 대식 하드록, 지미 헨드릭스 등 록 훵크의 거의 모든 요소를 다 만날 수 있다.
이들은 각 스타일을 매우 평등한 시각에서 다룬다. (앨범 첫 곡이 Power of Equality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한 플리와 프루시엔트가 만들어가는 흐름은 자연스러움과 우발성을 매우 중시한다.
단 한 곡도 일부러 구조를 짜맞춘 듯한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게다가 뉴욕의 대표적인 백인 힙합 그룹인
비스티 보이즈를 탄생시킨 릭 루빈의 프루듀스도 세련됐다. 곡의 흐름에 따라 적당히 장난쳐 놓았고
플리의 베이스와 존의 기타가 모두 잘 들리도록 세밀히 신경썼다.
[Blood Sugar Sex Magik]은 한마디로 LA적 상상력으로 가득차 있는 걸작이다.
한편으로는 에너지가 충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조롱하는 듯 하고, 실제로는
모든 것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는 이들의 역설적인 태도 자체가 LA적이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 내가 1972년 호주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온 다음부터 이곳은 가능한
모든 방향에서 엿 shit 같이 변해 가고 있다." 라고 고백하는 플리의 절망, 나아가 로스앤젤레스 이주민들의
절망도 깔려 있다. 확실히 이 앨범은 가르고 구획 짓고 따돌리고 그러면서도'멀티'라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대해
'예술적인 방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저항하는 앨범이다.
그 후, 오랜 지연 끝에 나온 [One Hot Minute] (1995) 은 이들의 돌발성이 안정화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존 프루시엔트를 대신하여 제인스 어딕션의 전 기타리스트였던 데이브 너바로를 받아 들여 훵크적인 요소를
자제하는 대신에 (따라서 플리의 초퍼 베이스도 줄어 든다.),
플리의 말을 빌리면 '레드핫 고유'의 록의 색깔을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데이브 너바로의 접근 방식은 기존의 레드핫칠리페퍼스의 방식과는 완연히 다르다.
그는 중첩된 오버덥에 의해 창조된 기타 음색을 추구했다. 그것은 자연스런 방식이라기
보다 숙련된 방식이고, 우발적인 방식이라기 보다 미학적인 방식이다.
실제로 "믹싱할 때, 가 보니 날마다 스튜디오에 나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고 데이브 너바로는 고백했다.
이제' 레드핫' 은 음악적으로는 점점 안정김과 성숙도를 더해 가고 있고 이들의 아이콘은 가히 지고의 상징으로
전화되어 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똘마니들에서 '얼터너티브 슈퍼 밴드'로 성장한 이 이율배반을 레드핫의 평등 주의가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궁금하다.
[얼트 문화와 록 음악1] by 신현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책 정말 괜찮아요..^^ 전 한겨레 문화 센터에 대중 음악 강좌 들으러 다니다가
신현준 샘을 알게 됐는데...
락 음악에 대해 장르, 시대, 특징 별로 엄청 잼있고 자세히 나와 있는 책입니다.
2권까지 있는데...
제가 특히 맘에 든 부분들은, [쓰리 코드 주의의 묘비명- 그린데이와 오프 스프링],
[목소리없는 세대의 목소리- 너바나와 펄잼]
[로큰롤은 농담일 뿐- R.E,M.].., [록의 부정, 그러나 펑크와는 다른( 조이 디비젼을 알게 됨 ^^;)],
[실락원에 감금된 팝 로맨티스트- 스미스 큐어 버스데이 파티(닉 케이브)] 등등...
소제목들이 넘넘 멋지죠?
이 책 덕분에 다양한 음악들도 많이 알게 되고 듣게 됐어요...여러분도 한 번 읽어 보시길...강추합니닷...^^
"The Power of Equality Is Not Yet
What It Ought To Be."
-Red Hot Chili Peppers,
[The Power of Equality]
L.A. 출신의 매력적인 헐리우드 악동들이 모여 1980년대 초반에 결성한 펑크록(funk-rock)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RHCP)는
90년대 빛을 발하기 전까지 수년간 잦은 멤버교체와 마약중독, 외설혐의 등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70년대 후반 페어팩스 고등학교 동창 사이로 만난 밴드의 핵심인 보컬 앤쏘니 키디스(Anthony Kiedis)와
이미 밴드 활동 중이던 베이시스트 마이클 '플리' 발자리(Michael 'Flea' Balzary)는 1983년 기타리스트
하이렐 슬로벡(Hillel Slovak), 드러머 잭 아이언스(Jack Irons)와 의기투합하여 RHCP를 결성하고
L.A.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멤버들의 마약중독과 계약문제 등으로 1984년 EMI와의 계약 아래 발표된
이들의 첫 데뷔 앨범인 [Red Hot Chili Peppers]는 새로운 기타리스트 잭 셔먼(Jack Sherman)과
드러머 클리프 마티네즈(Cliff Martinez)와 함께 한 결과였다.
그 후 슬로벡은 죠지 클린턴(George Clinton)이 프로듀싱한 두 번째 앨범 작업에 잠시 참여하게 되는데,
앨범 판매량 자체는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거의 전라의 차림으로 공연을 한다든가 하는 기행으로 인해
언더그라운드에서 점점 명성을 얻어가기 시작한다.
1988년도에는 앨범 [The Uplift Mofo Party]와 비틀즈(Beatles)의 [Abbey Road]를
모방한 EP [Abbey Road]를 발표하는데, 건널목을 건너가는 벌거벗은 네 남자의 사진이
재미있는 앨범이다.
헤로인 과용은 슬로벡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그의 오랜 친구였던 마티네즈도 그 충격으로
결국은 밴드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후에 Pearl Jam의 드러머로서 활약한다)
그 후 현재의 드러머인 채드 스미스(Chad Smith)와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트(John Frusciante)가 합류하여
한동안 안정된 라인업으로 왕성한 활동을 계속한다.
이 라인업으로 발표한 EMI에서의 마지막 앨범이자 첫 번째 골드 앨범인 [Mother's Milk]로 인해 이들은
드디어 메인스트림에 들어서게 되었다.
1991년 이들은 릭 루빈(Rick Rubin; Slayer, Danzig 프로듀서)의 프로듀싱으로 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그 유명한 [Blood Sugar Sex Magik]을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랩의 성공과 함께 여러 페스티벌과
MTV등 방송매체에 등장하게 되며, 이들은 90년대 초 가장 인기있는 밴드로서의 위치를 확실히 한다.
한편 1993년 투어 도중 견디지 못하고 밴드를 떠난 기타리스트 존은 후에 자신의 솔로앨범을 발표하는 등
자신만의 음악활동을 지속한다.
몇 달 사이에 두 명의 기타리스트가 거쳐간 RHCP는 1994년 Jane's Addiction에서 활동하던 데이브 나바로
(Dave Navarro)를 영입, 94 우드스탁(Woodstock) 공연에 참가하고 몇 년만의 정규 앨범인 [One Hot Minute]
(1995)을 발표하는 등 다시 활발한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이는 전작인 [Blood Sugar Sex Magik]의 성공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거의 1년 동안이나 줄곧 차트에 등장했고,
96년에는 영화 [Beavis and Butthead]에 삽입된 'Love Rollercoaster'로 no. 1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한다.
1996년 투어를 마친 후 휴식 기간동안 Jane's Addiction의 공연, 앨러니스 모리셋(Alanis Morrissette)의
데뷔 앨범 작업 참여 등 자신만의 음악활동을 해오던 데이브는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인 Spread를 위해서
1998년 결국 밴드를 떠나게 된다.
숱한 해체설에도 불구하고 데이브의 후임으로 존 프루시안트가 5년만에 재합류하여
이들은 초창기 라인업으로 4년의 공백을 깨고 앨범 [Californication]을 1999년 6월에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더욱 성숙하고 잘 다듬어진 깊이 있는 펑크 록 사운드로 일단은 지금까지 RHCP의
앨범들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재결성>
4년간의 어두운 공백 기간과 많은 혼선 끝에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Blood Sugar Sex Magik]의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트(John Frusciante)를
다시 영입하여 펑키(Funky)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 이곳은 프랭크 시나트라가 히트곡을 만들었던 곳이고
브라이언 윌슨이 66년 비치 보이스의 주옥같은 곡 'Pete Sounds'를 만들었던
곳이다. 로스앤젤레스의 'Ocean Way Recording'의 2번 스튜디오,
귀를 멍멍하게 만드는 음악소리가 흐르고 있고
조정실 소파에 누군가 앉아있다.
그는 바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베이시스트, 우리에게 플리(Flea)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마이클 발자리(Michael Balzary)이다.
그가 입고있는 어두운 녹색 스웨터에는 'Rat Sound'라는 글자가 씌어있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Funk You'라는 글이 적혀있다.
그는 'All Around The World'라는 곡의 흥겨움에 못이겨 쇼파위에서 통통 튀어오른다.
이곡은 그들이 재결성한 후 3주만에 만들어진 28곡 가운데 한곡이다.
플리 자신이 연주한 광란의 베이스 사운드와 채드 스미스의 날카로운 드러밍, 6년간의 안식을 마치고
밴드로 돌아온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의 펑키한 사운드 속에서, 플리가 외친다.
"앤소니는 아직 가사를 써야만 합니다." 레드 핫의 싱어 앤소니를 말한다.
선동하는 듯한 랩핑을 자랑하는 키에디스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외침소리가 다만 좋다.
존 프루시안테가 밴드로 돌아온 지난 초여름부터 그들은 새로운 악기를 입밖에 내고 있고
작사, 작곡을 하는 키에디스는 행복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였다. 특별히 흥미있는 곡들은
'Phfat Dance', 'I Like Dirty', 'Purple Strain', 'Gong Li'-중국 여배우의 이름-라는 곡들이다.
'Phfat Dance'는 아직 가사가 붙여지지 않았다.
이곡은 하드하고 화려한 드러밍과 멋진 기타사운드를 자랑한다.
그리고 가사가 붙은 곡 'Scar Tissue'는 뽐내는 듯한 리듬 위로 키에디스의 애수어린 보컬이 흐른다.
'Parallel Univers'는 힙, 그리고 여러 가지가 섞인 둥둥대는 리핑, 술취한 듯한 디스코 비트와
파도처럼 물결치는 코러스로 이루어져 있다. 플리는 거칠게 믹싱된 기타사운드에 관하여 변명하듯 말한다.
"이 부분은 다소 소프트하다."
그럴 때 마치 신호탄처럼 프루시안테의 기타가 휘어잡듯이 디스토션되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키에디스, 프루시안트 , 루빈(Rubin)-91년 프루시안트가 마지막으로 참여하였던
[Blood Sugar Sex Magik]을 프로듀스함-이 녹음준비를 하기 위해 소란스럽게 들락날락 거리는 와중에
플리가 말한다.
"많은 곡들은 잼으로 시작되었다. 존이 밴드에 다시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여름내내 창고에서
잼을 하였고 3주내에 앨범이 만들어졌다."
사실 근간이 되는 곡들은 5일 안에 만들어졌다 한다.
보컬의 오버덥이 흐르고 있을 때, 키에디스가 말한다.
"플리가 처음 제안을 하였다. 존과 다시 함께 연주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꿈과 같은 일일꺼야."
그러나 우리가 함께 연주한 첫날부터 나는 공중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 불안한 요소가 있다. 나는 밴드가 경험한 혼란스럽던 날들을 극복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키에디스는 오리지널 기타리스트였던 하이렐 슬로백(Hillel Slovak)과 프루시안테의
갑작스런 탈퇴를 메운 제인스 어딕션의 데이브 나바로를 포함한 3명의
다른 기타리스트의 절망적인 약물남용에 관해 언급하였다.
92년 5월 롤라팔루자 공연 이브 프루시안트가 갑자기 팀을 빠져나갔고
그는 절망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시절에 쓰여진
곡들로 채운 솔로 앨범 두장을 내놓았다. 한동안은 음악과 전혀 관계없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시절 그는 너바로와 함께 만들어진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95년 앨범 [On Hot Minute]조차 듣지 않았다.
깡마른 몸집에 부끄러움을 타는 프루시안트는
"내가 팀을 빠져나왔을 때 무척 혼란스러웠다. 스타덤이라는 것은 마치 악마와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프루시안트의 갑작스런 탈퇴는 키에디스에게 매우 상처를 주었고 둘은 몇 년동안 말도 하지 않았다.
키에디스는 "나는 단지 그가 잘되기만을 바랬다."라고 했다.
97년에 그는 프루시안트가 있던 약물치료소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약물치료를 통해 점차적으로 회복돼 가는 프루시안테를 보며 다시 그가 밴드의 한몸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프루시안트가 밴드에 다시 들어오자, 그의 나약함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키에디스는 따뜻하고 정직한 미소를 지으며
"난 오히려 내가 더 걱정이 된다. 그는 아마도 나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키에디스는 프루시안트의 암울한 약물복용시절에 관하여 곡을 썼고 그 곡이 바로 탑5을 기록한
'Under The Bridge'였다.
그리고 그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유지하게 도와준 플리와 스미스를 믿고 있다.
지난 7년간 이들은 많은 방항을 했다.
플리는 프루시안테가 돌아오기 전의 해를 아무것도 아닌 해(Year Of Nothing)로 보기까지 했다.
BY HOT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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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유 게 시 판…◎
Red hot chili peppers (레드핫 칠리 페퍼스)
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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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3.24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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