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사도(生死島) 2-26
『육가가! 설마 이렇게까지...』
휴지조각처럼 버려진 육초량의 몸을 끌어안고 냉여옥은 절규했
다. 살아 있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만큼 철저하게 망가진 그였던
것이다.
『세상에...』
의식을 잃고 있는 육초량의 맥을 짚고 난 냉여옥이 몸서리를
쳤다. 기경팔맥, 삼백육십 대혈이 모두 끊어진 채, 그는 살아 있
는 사람이라기보다 그저 숨쉬고 있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것이
다. 냉여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전규 이놈. 내 네놈의 숨통을 가장 잔인하게 끊어놓지 않는다
면 사람이 아니다!』
그녀의 눈에서 쏘아지는 새파란 살기는 세 치의 석문을 녹여버
릴 만큼 강렬했다. 냉여옥이 당장이라도 일장에 석문을 박살내고
뛰쳐나가 전규를 잡아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벌떡 일어섰다. 그
녀가 숨기고 있던 내력을 끌어모아 일장을 때리려는 순간이었다.
『으으...』
죽은 듯 늘어져 있던 육초량의 입술 사이로 미약한 신음이 흘
러나왔다.
『육가가?』
냉여옥이 반가움의 환성을 터뜨리며 육초량의 상체를 품에 안
았다.
『으으... 여옥... 그대는 무사하오...?』
『아, 육가가...』
그 처참한 상태에서도 의식을 찾자마자 자기의 안위를 제일먼
저 걱정하는 육초량의 충심 앞에서 냉여옥은 통곡하고 말았다.
육초량을 부둥켜안은 채 그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볼을 비벼
댔다.
『여옥... 울지마오... 내가 무능하여 그대가 욕을 보게 되었으
니... 나의 잘못이 크구려...』
육초량이 힘겹게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니에요. 육가가 소녀는... 소녀는... 참으로 당신에게 몹쓸
짓을 했어요.』
냉여옥이 피딱지가 앉아 있는 육초량의 굳은 손에 뺨을 비비며
흐느낌으로 말했다.
『육가가, 이제부터는.... 이제부터는 소녀가 당신을 곁에서 보
호하겠어요. 누구도 다시는 당신을 어쩌지 못할 거예요.』
육초량의 입이 일그러졌다. 그는 웃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여옥, 나는 이미 폐인이 되어 버렸소.... 나는 죽는 것이....
차라리 편한 상태라오. 하지만 그대만은 꼭 살려낼 것이니......
이곳을 벗어나면 부디 나를 잊고... 편히 사시오...』
『...?』
냉여옥은 의아했다. 이 몸이 된 상태에서 어떻게 자기를 구해
내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육초량이 입술을 비틀어
애써 웃어 보이며 천천히 말했다.
『나는... 내일 다시 고문을 당할 것이요... 그 때 거짓으로 그
들에게 말하고... 그대를 풀어주도록 할 생각이 났소...』
(아, 오늘 그 처절한 고통 속에서 육가가는 그 생각을 하고 있
었단 말인가?)
냉여옥은 그의 말에 더할 수 없이 큰 충격을 받고 부르르 떨었
다. 육초량이 꺼져 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는 내일... 세권의 비급을 감추어 놓았다고... 그들에게 말
하고... 그대를 풀어주는 대가로 그곳을 가르쳐 주겠다는... 제
안을 할 것이요.』
『...』
『물론 그들은 쉬 믿지 않을 것이요..... 하지만 그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오직... 비급에 있으니.... 내가 고집을 부린다면 그들
은 듣지 않을 수 없을 거요...... 그대가 무사히 떠나는 것을 본
후... 나는... 죽을 것이요...』
『아아, 육가가 안 돼요!』
냉여옥의 부르짖음이 음침한 뇌옥의 어둠을 흔들며 울려 퍼졌
다. 가슴이 메어오는 아픔으로 그녀는 육초량을 힘껏 끌어안았다.
육초량이 가라앉아 가는 의식을 애써 붙들며 중얼거렸다.
『다만 걱정은... 여옥 그대가 혼자서 북경까지 어떻게 갈지...
북경은 아직도 먼데... 그대 혼자서... 무사히...』
점점 흐려지던 말이 멈추었다. 육초량이 의식을 잃은 채 냉여
옥의 품속에 죽은 듯 축 늘어지고 말았다. 그의 피투성이가 된
몸을 끌어안고 냉여옥은 이를 악물며 결심했다.
(내가 이제는 육가가를 지켜줄 테야. 그가 평생을 이렇게 폐인
이 되어 산다고 해도 좋아. 나는 늘 그의 곁에서 그를 바라볼 거
야.)
뜨거운 눈물로 육초량의 볼을 적시며 그녀가 다시는 그를 품에
서 놓지 않겠다는 듯 꼭 끌어안고 차가운 뇌옥의 벽에 등을 기댔
다. 육초량이 자신의 따뜻한 체온을 요처럼 깔고 편히 자게 하기
위해서였다.
밤새 그를 지켜보다가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든 냉여옥이었다.
어렴풋이 밖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고함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냉여옥은 정신을 차리고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호통소리와 병장
기 부딪는 날카로운 소리, 그리고 비명소리들이었다.
『왔다!』
냉여옥이 기쁨의 탄성을 터뜨리고 육초량을 들여다보았다. 그
는 이제 완전히 의식을 잃은 채 기식이 엄엄했다.
『전규 이 놈!』
냉여옥의 눈에서 다시 무시무시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육초
량의 껍데기만 남은 몸에 자신의 내력을 주입시켜 주며 일각 여
를 기다렸을 즈음, 뇌옥의 통로를 달려오는 가벼운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냉여옥이 급히 육초량을 자신의 등뒤로 감추고 긴장했다.
귀문의 무리들이 그를 데려가기 위하여 뇌옥의 문을 열고 들어오
면 전력을 다하여 그들을 치고 빠져나갈 생각을 했다.
『각하, 이곳에 계십니까?』
그러나 석문 밖에서 들려온 소리는 귀에 익은 음성이었다. 그
가 도찰원의 고수들 중 잠입과 추적을 전문으로 하는 십칠호특호
사령(十七號特號使領)임을 안 냉여옥의 얼굴에 참을 수 없는 반
가움이 떠올랐다. 그녀의 기대대로 그 자는 명을 충실히 이행했
던 것이다.
『늦었다!』
낮게 책망한 냉여옥이 두 손에 모든 내력을 끌어 모았다.
『차합!』
낭랑한 기합성과 함께 그녀의 쌍장이 가볍게 석문을 눌렀다.
번쩍이는 청광(靑光)이 한 순간 어두운 뇌옥 안을 번갯불처럼 밝
혔다.
우르릉-!
멀리서 산사태가 나는 듯한 은은한 굉음이 들려왔다. 석 치의
단단한 석문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냉여옥
이 다시 한 번 온 힘을 다하여 그것을 때렸다.
콰콰쾅-!
동굴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터져 나간 석문이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날렸다. 그 무서운 장력은 실전된지 이미 오래인 것으로
알려진 거력패천장(巨力覇天掌)이었다. 두 세대 전의 초인(超人)
인 패왕(覇王) 이력세(李力世)가 천하를 종횡하며 적수를 찾지
못했다던 그 경천동지의 패장(覇掌)이 냉여옥의 섬섬옥수에서 재
현된 것이다. 무림이 이 사실을 안다면 경악할 일이었다. 도대체
냉여옥의 한 몸에는 얼마나 많은 실전 절학들이 모여 있는 것인
지 알 수 없었다.
냉여옥이 의식불명인 육초량을 조심히 안아 들고 자욱히 돌가
루를 날리며 무너져 내린 석문을 밟았다.
『삼가 존안을 뵈옵니다.』
그녀의 발아래 흑의 죽립인이 꿇어 엎드려 있었다.
『밖은 어떠하냐?』
『각하의 지시대로 비천맹에 정보를 흘렸고, 그들은 지금 물불
을 가리지 않고 귀문을 뒤집어 놓고 있는 중입니다.』
『잘했다.』
냉여옥의 입가에 싸늘한 조소가 어렸다. 보지 않아도 뻔한 일
이었다. 육초량이 귀문에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비천맹은 그를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어 달려왔을 것이고, 한 점의 고기를 놓고
서로 다투는 짐승들처럼 그들은 사력을 다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
다. 그 틈을 타고 숨어든 도찰원의 찰포사자들이 잠시 뇌옥을 장
악하는 건 쉬운 일일 것이었다. 하지만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곧 마백조가 눈치를 챌 것이기 때문이었다.
냉여옥은 죽립인이 내미는 흑의로 육초량의 몸을 감쌌다.
『몇 명이나 왔느냐?』
『우선 한단부에 있는 십 삼 명을 모두 동원했습니다.』
『그들은?』
『은밀히 퇴로를 확보해 놓고 각하께서 나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보고를 하는 죽립인의 어조에 숨길수 없는 긴장과 초조함이 어
려 있었다. 위험한 일이었던 것이다. 잘못하면 귀문으로부터도,
비천맹으로부터도 협공을 당할 수 있었다. 냉여옥도 그러한 사실
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먼저 할 일이 있었다.
『너는 육상공을 보호하여 한 발 먼저 가 있어라.』
냉여옥이 그에게 육초량을 넘겨주었다.
『육상공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너는 내 손에 죽는다.』
죽립인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존명!』
그가 육초량을 조심히 등에 업고 바람처럼 달려 사라졌다. 그
것을 지켜보던 냉여옥이 싸늘한 살기를 뿌리며 뇌옥의 통로를 따
라 달리기 시작했다.
『크억, 끄으으...』
한옥신(寒獄神) 전규(全揆)의 눈이 불신과 공포로 일그러졌다.
육초량과의 하루에 걸친 실랑이로 지친 그는 뇌옥 안에 마련되어
있는 자신의 거처에서 편히 잠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꿈결인 듯
가벼운 소란과 비명을 들었다. 의아하여 나와 본 그는 뇌옥 안
여기 저기에 쓰러져 있는 십여명의 수옥(守獄) 무사들을 보았다.
변고가 생긴 게 분명했다. 당황 중에도 그는 우선 육초량을 생
각했다. 그가 아직 뇌옥 안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구부러진 통
로를 급히 지나가는데,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하얀 손 하나
가 목을 죄어 온 것이다.
악마의 손으로 불리는 그 공포의 백색 손은 소수겁(素手劫)이
었다. 투명한 백옥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손으로 전규의 목을 움
켜쥔 냉여옥의 얼굴이 차갑고 오만하며 잔인하게 빛났다.
『네놈에게도 공포라는 것이 있는지 보겠다.』
『그, 그대는...』
그가 육초량과 함께 잡혀온 여인임을 알아본 전규는 더욱 경악
했다. 닭 모가지 하나 비틀 힘도 없어 보이던 그녀가 소수겁의
주인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아아악-!』
두 눈이 파헤쳐지는 고통을 참지 못한 전규가 목청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 그의 정수리 위로 냉여옥의 아름다운 소
수(素手)가 떨어져 내렸다.
퍽!
미처 대응해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독사같이 차갑고 잔인하
던 전규의 머리가 어깨 위에서 두부처럼 으깨졌다.
『흥, 네놈도 역시 뼈와 살로 된 인간이었군.』
더러운 물건을 던지듯 전규의 몸뚱이를 던져 버린 냉여옥이 차
가운 조소를 흘리며 손을 털었다. 그녀의 진면목이 유감 없이 드
러난 순간이었다.
장원은 곳곳에서 솟구치는 화염과 비명소리들로 아수라장이 되
어 있었다. 그 혼란의 와중에서 뇌옥을 빠져 나와 가볍게 산그늘
속에 숨어드는 냉여옥의 그림자를 눈치챈 자는 아무도 없었다.
『흥, 사국천 저 늙은 놈이 몸소 나선 것을 보니 급하긴 급했
군.』
냉여옥이 노송 아래 팔짱을 끼고 서서 여유 있게 싸움을 구경
하고 있었다. 뇌옥에 이르는 암석군 저쪽에서 금포자락을 펄럭이
며 흉흉하게 날뛰고 있는 자는 비천맹주인 사국천이었다. 음침한
인상에 강시처럼 깡마른 귀문의 문주 마백조가 그를 막아서 조금
도 밀리지 않고 흉맹한 권장을 날리고 있었다.
그들 강호의 두 괴물의 격돌은 실로 장관이었다. 일수 일수가
충만한 살기를 띄고 상대에게 다가들고 있었는데, 그 속에서 사
국천의 운신법은 놀란 살쾡이처럼 가볍고 날렵했으며, 마백조의
경신술은 흡사 귀영(鬼影)처럼 흐느적거렸다. 그들 두 괴물은 그
야말로 일초반식도 낫고 못함이 없는 호적수들이었다. 그들의 치
열한 싸움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비규환의 칼부림들을 모
두 하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만큼 굉장했다.
눈부신 손속과 권각의 흉맹함이 처절하기까지 한데, 폭풍처럼
몰아쳐 오고, 노도처럼 쓸어 가는 장력과 지력의 사나움은 위태
롭기 짝이 없어서, 산 속에 숨어 관전하고 있는 냉여옥의 손에
절로 땀이 쥐어지게 했다.
장원의 한쪽에서는 다섯 명의 실혼수라들이 귀문의 문도들을
일방적으로 도륙하고 있었고, 또 다른 쪽에서는 귀문의 열화신통
이 비천맹의 무리들을 숯덩이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긴장하여 지켜보던 냉여옥이 코웃음을 쳤다.
『흥, 어리석은 놈들. 그렇게 싸우다가 모두 사이좋게 이곳에
뼈를 묻어라. 본녀는 이만 가 보시겠다.』
숲 속의 어둠만을 골라 디디며 가볍게 몸을 날린 그녀는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장원의 담을 뛰어 넘어 사라졌다.
* * * *
하북과 산서의 경계를 이루고 높이 솟아 있는 험한 산이 있었
다. 그 동쪽은 하북성 정정현(正定縣)에 닿아 있었고, 서쪽 사면
은 산서성 기주(祈州)의 중산부(中山府)에 솟아 있었다. 그 남쪽
줄기가 분하(汾河)에 닿아 있는 그것을 사람들은 옥추산(玉推山)
이라고 불렀다. 옛날부터 그 산에서 질 좋은 한옥(寒玉)이 많이
생산되기 때문이었다.
그 옥추산의 서쪽 중산봉(中山峰)아래 깊은 계곡에 있었는데,
그곳에는 최근에 버려진 폐광이 있었다. 음침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갱도 입구를 십여 명의 흑의 죽립인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육가가, 육가가, 정신이 좀 드시나요?』
냉여옥이 품에 안겨 있는 육초량을 들여다보며 안타깝게 불렀
다. 폐광의 갱도 안이었다. 기식이 혼미해진 채, 육초량이 끊어
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한 가닥 숨을 붙잡고 힘겹게 헐떡이고
있었다.
『으으으...』
대답이라도 하듯, 그의 입술 사이로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으
나 그는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했다. 냉여옥이 안타까운 눈으로
육초량을 바라보다가 문득 뒤에 시립하여 서 있는 흑의 죽립인에
게 손을 내밀었다.
『내놔!』
『예? 무엇을...』
그가 어리둥절해 하자 냉여옥이 한시가 급하다는 듯 매섭게 눈
을 흘겼다.
『웅신금환단(熊腎金丸丹)!』
『아!』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사나이가 품속에서 밀랍(蜜蠟)으로 단단
히 싼 둥근 환약 하나를 꺼내 공손히 냉여옥의 손바닥 위에 올려
놓았다. 그것은 황궁의 비전 영단으로, 내외상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영약이었다. 냉여옥은 그것을 도찰원의 특호사령들에게 한
알씩 내려준 적이 있었다.
『지금 즉시 모을 수 있는 인원이 얼마나 되나?』
『산서와 하북의 찰포사자 오백이 백 리 안에 집결해 명을 기다
리고 있습니다.』
『좋아, 그들을 모두 이곳으로 불러오도록. 오늘을 넘겨서는 안
된다.』
『존명!』
죽립인이 깊이 허리를 꺾고 쏜살처럼 갱도를 빠져나갔다. 그는
이제부터 발이 보이지 않도록 뛰어다녀야 할 것이었다.
『그들이 모두 모인다면 일단은 안심할 수 있다.』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냉여옥이 결
심하고 환단의 밀랍을 벗겨냈다. 그윽하고 청량한 향기와 함께
엄지손톱 만한 금빛의 단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입에 넣
어 타액으로 녹인 그녀가 허리를 굽혔다. 육초량의 메마르고 거
친 입술이 그녀의 따뜻한 입술에 닿았다. 냉여옥이 흠칫 하고 몸
을 떨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자신의 혀로 육초량의 거친 입술
을 열고 타액과 함께 녹은 웅신환을 그의 입 속에 흘려 넣기 시
작했다.
(황궁으로 데려간다.)
그녀는 입술을 떼고 가만히 육초량의 목을 주물러 식도의 운동
을 도와주며 그렇게 결심했다. 그의 절단된 삼백 육십 대혈들을
잇고, 흩어진 기력을 모으기 위해서는 금침이신(金針移神)의 대
법과 영약이 있어야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황
궁의 어의(御醫)인 신의(神醫) 당문경(唐文敬)에게 부탁해야 했
다.
(그라면...)
당문경을 떠올리며 냉여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 의고(醫
庫)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영약들과, 당문경의 의술이라면 어쩌
면 육초량이 소생할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다시 마음이 초
조해졌다.
<2>
『으으...』
웅신금환단의 효능은 놀라웠다. 일각 여가 흐르자 육초량이 미
미하게나마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육가가!』
냉여옥이 급히 그의 가슴을 쳐 기력을 도왔다.
『커헉!』
한 모금의 검붉은 선혈을 토해낸 육초량의 눈이 힘겹게 떠졌다.
『아, 여옥... 무사하구려...』
그의 흐릿한 동공을 대하자 냉여옥은 화끈한 무엇인가가 가슴
에 치받쳐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격정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흑!』
말을 해야 했으나 먼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여옥, 울지 마시오... 헌데 이곳은...』
『흑흑... 육가가. 우리는 귀문의 뇌옥에서 빠져나왔어요.』
육초량의 흐린 눈동자에 한 줄기 의문이 스쳐갔다.
『아, 어떻게... 누가 우리를...?』
냉여옥이 격정을 참지 못하고 그의 가슴에 엎어져 한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참회의 눈
물이었으며, 애정과 염려의 눈물이었다. 스물 두해 삶 동안 과연
누군가를 이처럼 염려하고, 누군가에게 이처럼 큰 아픔과 후회로
죄의식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차갑고 오만하기만 했던 그녀가 육초량이라는 거친 야수와 같
은 한 사나이 앞에서 자신의 독선과 오만으로 높아졌던 성벽을
허물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육가가, 모든 것을 다 말씀드리겠어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육초량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처
연한 빛이 가득했다.
『당신이 저를 욕하고 꾸짖는다고 해도 저는 기꺼이 듣겠어요.
또 저를 때린다고 해도 순순히 당신의 매를 맞겠습니다.』
『여옥, 그게 무슨 말이요... 내가 왜 그대를 욕하고... 때린단
말이요...』
늘 충만한 힘이 느껴지던 목소리를 가슴속에 기억하고 있는 그
녀는 이제 육초량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 더욱 가슴이 아파 왔
다. 냉여옥은 더 견디지 못하고 육초량의 가슴에 엎어져 통곡했
다. 그녀의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육초량의 힘없는 손이 쓰다듬
었다.
『육가가, 저는... 저는 아주 나쁜 계집이에요.』
오만하고 도도하기만 하던 그녀가 육초량 앞에서 스스로를 계
집이라고 칭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육초량의 가슴에 비
비며 그녀가 처연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처음부터 육가가를 속이고 있었어요. 저는 이목림(梨木
林)의 문약한 소녀 냉여옥이 아니랍니다.』
『......』
그녀의 의외의 말에 육초량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런 육
초량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냉여옥이 애써 울음을 참고 말을 계속
했다.
『저는, 저는... 흑룡보주의... 그의 하나뿐인 여식이랍니다.』
『억!』
육초량이 크게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쓰며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냉여옥의 눈을 찾았다.
『또 당금의 황제이신 가정제(嘉靖帝) 폐하를 모시고 있답니다.
도찰원주(都察院主)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지요. 하지만, 하지만...
진정한 저의 신분은... 그것만도 아닙니다.』
『아, 어찌, 어찌... 여옥 그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육초량이 눈짓으로 그것을 부정했다. 자신
의 가슴에 엎드려 울고 있는 이 연약한 여인이 흑룡보의 금지옥
엽이라는 것을 믿을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다 사실이라고 해도, 강호의 유력한 방파의 여식에 불과한 그녀
가 황궁 내 도찰원의 수장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없
었다.
영락제 이후 도찰원은 동창과 함께 황제를 최측근에서 보필하
는 은밀한 기관이었다. 동창이 황제의 눈과 귀 역할을 하고 있다
면, 금의위와 도찰원은 황제의 손과 발이었고, 보이지 않는 칼이
었다. 냉여옥이 그중 도찰원의 수장이라는 데 대해, 설마 그녀가
황제와 인척관계를 맺고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하
는데, 냉여옥이 눈물을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육초량이 그런 그
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는... 믿을 수가... 없구려...』
『저의 말은 사실입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마음의 침착을 되찾은 듯 냉여옥이 육초량의
볼을 쓸며 또렷하게 말했다.
『저의 참된 성은 냉가(冷家)가 아니라 주가(朱家)입니다. 그것
은 저의 아버님께서 연강왕(延康王)이라는 작위를 받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억!』
육초량이 날카로운 비명을 터뜨렸다. 연강왕(延康王) 주윤문
(朱潤文)은 당금의 황제인 세종 가정제의 사촌동생이었다. 가정
제에게는 세 명의 사촌 동생들이 있었는데, 둘이 일찍 죽고 지금
은 연강왕만 남아 있었다. 가정제가 전대의 황제였던 무종 정덕
제의 바로 동생인 흥헌왕(興獻王)의 아들이었다면, 주윤문은 정
덕제의 셋째 아우인 영평왕(榮平王)의 아들인 것이다.
황제의 동생으로 왕의 봉작(封爵)을 받고 있는 주윤문이 어째
서 성과 이름마저 바꾸어 냉군상이라 하고 흑룡보라는 강력한 방
파를 거느리게 되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그것
이 사실이라면 냉여옥은 가정제의 조카딸이라는 공주의 신분이었
다. 그런 그녀였기에 황제의 측근에 있으면서 무소불위의 감찰기
관인 도찰원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정제는 종종 냉여옥을 가리키며, 저 아이가 사내로 태어났더
라면 내 뒤를 이어 다음 황제의 위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
라고 말하곤 했다. 황제는 세자보다 조카딸인 냉여옥의 수완과
능력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알
리 없는 육초량이었다. 그는 오직 지금 냉여옥이 하고 있는 말들
의 충격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 나는... 나는... 꿈을 꾸고 있었구나...』
육초량이 깊이 탄식하고 눈을 감았다. 냉여옥이 차가운 그의
볼을 쓰다듬으며 지난 일들을 커다란 뉘우침과 부끄러움으로 조
용조용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관음전에 엎드려 자신의 잘못을 참
회하고 뉘우치는 듯한 심정이 그녀의 가슴을 사뭇 떨리게 했다.
육초량을 자신의 수하로 거느리고 싶다는 욕심으로 그 동안 찰
포사자들을 보내 그를 잡도록 한것과, 그의 무명(武名)이 높아질
수록 더욱 그를 탐내 집요하게 뒤를 쫓았던 일. 구룡탄에서 사국
천에게 중상을 입고 사로잡히기 직전의 그를 극적으로 구해낸 일
이며,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접근했던 일과, 옥풍규를 미인계로
현혹하여 강사옥과 이간시키고 끝내는 강사옥을 죽이게 한 일들
을 말했다.
객방으로 옥풍규를 끌어들여 그가 육초량의 검에 죽도록 한 차
도살인지계와, 육초량의 마음을 시험해 보기 위해 그가 귀문에
사로잡히게끔 음모를 꾸몄던 그 모든 일들을 그녀는 떨리는 마음
으로 다 고백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솔직히 고백하며 뉘우친다는 것은 실
로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냉여옥이 그녀의 모든 자존
심을 내던지고 스스로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단죄를 청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은 사랑의 힘이었다. 자기를 위한 육초량의 철
저한 헌신과 희생에 더할 수 없이 큰 감명을 받은 것이다.
육초량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대, 그대가... 그토록 무서운 사람이었다니... 내가 여태까
지 그대의 손안에서 춤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니...』
냉여옥의 말을 다 듣고 난 육초량의 눈이 절망과 분노,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상심으로 어두워졌다. 지난 사흘 동안 몸에 가
해졌던 그 끔찍한 고통보다 지금 이 순간 마음에 입은 상처의 고
통이 더 견딜 수 없었다.
그녀에게 농락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참고 견디기 어려웠다.
우직한 그 마음의 진정과 순수를 두고 그녀가 뒤에서 얼마나 재
미있어 하며 조롱하고 웃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하자 뜨거운 분
노의 불길이 가슴을 활활 태우며 솟구쳐 올라왔다. 눈앞이 캄캄
해졌다.
육초량이 악! 하는 부르짖음과 함께 검붉은 핏덩이를 울컥울컥
토해냈다.
『육가가! 가가!』
냉여옥이 뻣뻣하게 굳어 가는 그의 몸을 흔들며 울부짖었다.
육초량이 가까스로 눈을 떴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멍한 시선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놓으시오. 죽는 것만이라도 나 혼자서 편히... 죽고 싶소...』
그 한 마디 속에 들어 있는 커다란 분노와 절망이 냉여옥의 가
슴속으로 비수가 되어 옮겨들었다.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한 냉여
옥이 육초량의 힘없는 몸을 끌어안고 몸부림쳤다.
『안 돼요! 당신은 죽을 수 없어요.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예요. 살아서 나를 욕하고 때려야 해요! 눈을 떠요, 제발!』
그러나 굳게 닫혀 버린 육초량의 입이었고 눈이었다. 그것이
차갑게 굳어 버린 그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냉여옥은 가슴
이 미어지는 슬픔을 견딜 수 없었다.
한참 만에야 육초량이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전
히 눈은 꼭 감은 채였다.
『그대에게 나에 대한 일말의 애정이라도 있었다면.... 내 부탁
을 들어 주오.』
『...?』
『나에게는 두 명의 여인들이 있소. 모두가 불행한 여인들이요.
한 여인은 화소음이라 하오..... 한때 비천맹에 몸담고 있었으나
지금은 오직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 의지할 곳이 없는 여인이
요. 또 한 여인은...』
육초량의 꺼져 가는 말을 듣고 있는 냉여옥의 눈이 반짝 빛났
다. 숨길 수 없는 질투의 빛이었다.
『그대도 알고 있을 것이요... 그녀는... 신검문의 마지막 혈통
인... 옥청향이요.』
『아!』
냉여옥의 입에서 짤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를 잡기 위
해 소림에 숨어들어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달아난 적이 있
었던 것이다.
『....그녀는 선부가 맺어준 나의 정혼녀... 청목산에서 헤어진
후로 생사를 알 수 없소... 부디 그녀들을 찾아 편히 살 수 있도
록 해준다면... 나는 저승에서도 그대에게 감사...』
마지막 유언을 남기듯 점점 사라져 가는 힘을 붙들며 애써 말
하던 육초량이 기어이 말끝을 맺지 못하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
이제는 영영 깨어나지 않을 듯했다.
『육가가?』
크게 놀란 냉여옥이 그의 몸에 자신의 진기를 불어넣어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 한 군데 진기를 옮기고 모아 둘 경락이
남아 있지 않은 육초량이었다. 냉여옥이 필사적으로 그런 육초량
의 몸을 주무르고 어루만졌다.
『흑흑... 육가가...』
그녀의 애통한 흐느낌만이 어둡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갱도
의 침묵을 흔들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감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여자가 독하기는 하네요! 즐독 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즐감합니다.
즐감 합니다
즐감,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왜우짜지~~~
감사합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
즐~~~~감!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알다가도 모를 여자의 마음
즐감하고 감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병주고 약주고 다하네요 !
즐감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