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택배노조 산하 CJ대한통운 노조가 택배 수요 급증기인 연말연시를 겨냥한 총파업을 선언했다. 올 들어 4번째 총파업이다.
정부·여당을 앞세워 노조가 요구해온 ‘택배 분류 인력 별도 투입’ ‘6년 해고 금지’ ‘주 60시간 이내 근무’ 등이 이미 모두 받아들여진 상황에서,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만 콕 찍어 겨냥하는 파업을 또 다시 선언한 것이다.
택배노조 CJ대한통운지부는 23일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조합원 93.6%의 찬성으로 총파업을 가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쟁의권을 가진 조합원 1700명이 28일부터 총파업에 나선다. 택배 시장 약 50%를 점유하는 CJ대한통운에서 총파업이 벌어지면 연말연시 선물 등 택배의 일부 차질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택배노조 요구로 시작된 택배비 인상, 기사소득도 늘었지만
택배노조는 이번 총파업을 앞두고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그 자료 속 파업 이유 제 1항의 제목이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CJ대한통운’. 부제는 ‘택배요금 인상으로 초과이윤 연 3500억원’이었다. CJ대한통운이 지난 4월 택배요금을 건당 170원 올렸고, 다음달에는 100원을 더 올림으로써 연간 3500억원을 더 벌게 됐으므로 “공정하게 분배하라”는 주장이었다. 3500억원은 노조가 자체 산정한 수치다.
그런데 애초 20년간 거의 오르지 않던 택배비 인상은 올해 노조 요구에서 시작했다. 택배노조는 작년 택배기사 연속 사망 사태를 계기로 ‘과로사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에 당정은 올해 1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를 출범시켜 택배사 비용 부담을 늘리는 방향의 해법을 추진해왔다.
지금까지 택배 기사들이 맡아온 택배 분류 작업을 택배사가 별도 전담 인력을 뽑거나 자동화 설비를 갖춰 해결하라는 내용이었다. 합의기구는 합의문에 비용 증가에 따른 ‘택배 운임 현실화’도 명시했다. 택배사들은 비용을 투입해 택배터미널 현장에 대체 인력을 고용하거나 ‘휠소터’라 불리는 자동화 설비를 구축하는 동시에 택배요금 인상을 시작했다.
택배노조는 택배비 인상의 과실을 회사가 모두 가져가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사실은 택배비가 오르면 택배기사의 소득도 자동으로 따라 올라가는 구조다. 택배 1건을 서비스하고 받는 요금에서 기사가 가져가는 요율(料率)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통상 전체 택배비의 약 50% 가량은 택배기사에게 수수료로 배분된다.
작년 기준 CJ대한통운 택배기사의 1인당 평균 연소득(매출)은 8518만원이었고, 여기서 기름값과 대리점에 주는 수수료 등을 뗀 순소득은 6489만원이었다. 요금 인상에 따른 수익을 이미 공유하고 있는 입장에서 또 다시 “공정 배분”을 요구한 것이다.
◇노조, 비규격 택배 방치로 점주 괴롭혀 극단 선택했는데도…
택배노조의 파업 이유 제2항 제목은 ‘택배현장 시계를 수년전으로 되돌리는 부속합의서’다.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와의 표준계약서에 붙이는 추가합의서를 만들어 정부로부터 승인받은 데 대한 불만이었다.
노조는 부속합의서 내용 가운데 3가지를 독소 조항으로 지목했다. ▲당일배송 ▲주6일제 ▲터미널 도착 상품의 무조건 배송이다.
당일배송에 대해 택배노조는 “택배를 실은 차가 지역별 터미널에 오후 2시, 오후 4시에 도착하더라도 무조건 당일 배송을 강요하는 것으로, 심야퇴근과 과로를 낳는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CJ대한통운은 “당일배송은 소비자와의 약속”이라며 “기사 입장에서도 정오쯤 출근해서 8시간 근무하고 퇴근할 수 있는 상황을 과장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주 6일제에 대해 택배노조는 “주5일제 시범운영을 진행하기로 한 사회적 합의 취지에 배치된다”는 입장이다. CJ대한통운은 “소비자에게 토요일에 택배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미리 알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주 5일제를 도입할 순 없다”며 “사회적 합의 내용은 ‘시범운영’을 하자는 것이었으며, 업계가 주5일제 전면 도입 체제를 갖출 때까지 주6일제는 불가피하다”고 반박한다.
‘터미널 도착 상품의 무조건 배송’이란 택배 물품 가운데 커튼봉이나 두루말이휴지 묶음 등 비(非)규격 택배도 일단은 배송하고 사후에 회사에 추가 요금을 청구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택배노조는 “택배 노동자들의 개선 요청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CJ대한통운은 “실제 현장에서는 택배기사가 ‘개선상품’(비규격 택배)의 추가요금을 청구하면 회사가 지불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경기 김포에서는 택배노조원들이 이 같은 비규격 택배를 배달 않고 방치하는 등의 방식으로 택배 대리점주를 괴롭히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대리점주는 8월 택배노조원들을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선택을 했다.
◇택배노조 내부문건, 자신들 요구가 무리임을 자인
택배노조도 자신들의 요구가 무리하게 비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24일 조선닷컴이 입수한 택배노조 내부 문건 ‘투쟁계획안’에서 노조는 “정부가 CJ대한통운의 부속합의서가 법적 위반이나 표준계약서를 위반한 내요이 없다는 입장이 분명한 상황에서 노조 투쟁에 개입해 CJ본사를 압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다.
자신들의 요구가 소비자에게 불리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문건에는 “여론 동향도 당일배송, 이형배송, 주6일제와 관련,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 무엇이 도움이 될 것인가를 놓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 “여론지형도 결코 노조에 유리하게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 적혀 있다.
그 돌파구로 선택한 것이 이번 총파업이다. 노조는 “정부 개입을 강제하고 여론지형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변시킬 수 있는 전술적 조치가 반드시 필요함”이란 결론을 문건에 적어 놨다.>조선일보, 정상진 기자
출처 : 조선일보, '연봉 6500만원 + 인상택배비 절반' 챙기는 CJ택배노조 파업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