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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도(生死島) 2-27
스스스--
가볍게 옷자락 날리는 소리와 함께 중산봉을 두텁게 에워싸고
소리 없이 다가오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달빛 아래 유령들인 듯
흔적 없이 다가들고 있는 자들은 모두 밤보다 짙은 흑의에 죽립
을 깊숙이 눌러쓴 자들이었다.
『속하 십칠호 사령입니다.』
갱도 입구에서 귀에 익은 수하의 음성이 들려왔다. 냉여옥이
흐느낌을 멈추고 일어섰다. 그녀의 표정은 다시 한 겹 서리를 두
른 듯 싸늘해져 있었다.
『인원은?』
『오백입니다.』
산서와 하북의 찰포사자들이 모두 모여든 것이다. 하루 밤이
지나기 전이었다.
『총령이 누구냐?』
『산서분원의 이가범(李伽梵)입니다.』
『좋아, 그를 들라 해라.』
철탑을 연상케 하는 거구의 삼십대 장한이 냉여옥 앞에 부복했
다. 고슴도치의 털처럼 빳빳한 수염과 범의 눈이 그를 더욱 용맹
스러워 보이게 했다. 도찰원 산서 분원을 관장하고 있는 철웅자
(鐵熊姿) 이가범(李伽梵)이었다. 그의 곰 같이 떡 벌어진 등을
내려다보던 냉여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경까지의 호위를 네가 책임진다. 일 각의 시간을 단축시키
면 그만큼 네 공이 커진다.』
『존명!』
이가범이 쿵 소리가 나도록 이마를 땅에 찧었다.
『그러나 도중에 조금의 소홀함이라도 있어 행여 육상공의 몸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 즉시 너를 참수해 죄를 묻고, 관련자들 또
한 참해서 나의 분을 풀겠다.』
이가범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존명!』
다시 이마를 땅에 찧는 그의 콧등을 타고 주르르 땀방울이 떨
어졌다.
한 채의 가마가 급히 대령되었고, 냉여옥이 의식을 잃고 있는
육초량을 소중히 안고 그것에 올랐다. 이가범이 눈을 부릅뜨고
세밀하게 가마의 이곳저곳을 직접 살피고 난 다음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출발!』
그의 호령에 따라 구름이 흐르듯 오백의 흑의 죽립인들이 유연
하게 몸을 움직여 중산봉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가범이 그의
일백 근 짜리 청룡도를 뽑아든 채 가마 곁에서 한 걸음도 떨어지
지 않고 있었다. 호목(虎目)에서 형형한 안광을 쏘아내며 그는
쉬임 없이 전군을 호령했다
『전방의 시야가 좋지 않다!』
그의 한 마디에 가마의 전방을 경계하며 전진하던 일백의 흑인
들이 우르르 달려나가 아름드리 갈참나무 숲을 찍어 넘기기 시작
했다. 일백 개의 삼엄한 검광이 쓸어나간 곳에 이미 갈참나무 숲
은 흔적도 없었다.
『이놈, 가마가 흔들린다! 오른 쪽을 더 들어라!』
이가범의 눈과 입은 쉴 새가 없었다. 눈으로 끊임없이 사방을
경계하면서 계속하여 불호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중산봉을 내려온 그들 오백의
찰포사자들이 질풍이 휩쓸어가듯 거칠 것 없이 중산부를 통과했
다.
『어, 저게 뭐지?』
아침 일찍 길에 나와 청소를 하던 사람들이 눈을 부릅떴다. 검
은 옷자락을 펄럭이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미친 듯 중산대로를
질주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 채의 가마를 가운데 두고 발소리
마저 내지 않으며 휩쓸어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저승의
귀졸들인 듯했다.
『어어, 저, 저거...』
누군가가 눈을 부릅뜬 채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스스스--
유령들처럼 지붕에서 지붕으로 달리며, 담이 있으면 그것을 타
넘고, 숲이 있으면 훌훌 그것을 날아넘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둥글게 원진을 형성하고 가마를 호위하며 내달리고 있는
삼백 여의 흑의 죽립인들이었다.
『누구냐!』
아침 순라를 돌고 귀대하던 중산부의 관병 십여 명이 앞을 가
로막았다. 순간, 번쩍이는 차가운 검광이 쏟아졌다. 가마의 선두
를 맡아 달리던 일백의 흑의인들 속에서 열 개의 검광이 동시에
쳐 나온 것이다.
『으악!』
『큭!』
미처 이유를 알기도 전에 십여 개의 목이 선연한 핏줄기를 새
벽 하늘에 흩뿌리며 날아올랐다.
『좋다. 후미 좀 더 붙어라!』
이가범의 호통이 중산부의 새벽을 흔들고 있었다.
『문!』
선두를 달리던 죽립인의 입에서 싸늘한 일갈이 터져 나왔다.
중산부의 서쪽 성문 앞이었다.
『누구냐, 통행증을 보여라!』
수문 위사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성문을 막아섰다.
『문!』
다시 차갑게 외치며 달려온 자가 기세를 멈추지 않고 검을 뽑
아 쳐나갔다.
『크억!』
뒤이어 밀물처럼 달려든 흑의 죽립인들이 사정없이 검광을 뿌
려댔다. 서문 앞은 순식간에 수문(守門)하던 관병들의 주검으로
어지럽혀지고 말았다.
쏴아아--
가마를 앞뒤로 에워싼 이백 여 흑의인들이 썰물처럼 성문을 빠
져나가고, 그들과 함께 삼백 여의 흑의인들도 귀영(鬼影)처럼 성
벽을 타 넘어 사라지고 있었다.
딸그랑-
후미의 맨 끝을 따라 달리던 흑의인이 품속에서 꺼내 던진 철
패 하나가 수문 관병들의 주검 곁에 떨어졌다. 찰포사자의 신분
을 밝히는 도찰원 발행의 영패였다.
* * * *
가마를 호위한 오백 찰포사자들의 바람 같은 질주가 옥추령을
넘어 하북의 경내로 진입해 들었다. 그들이 쾌마(快馬) 같은 기
세로 현치(賢治), 여주(麗州), 강상(江湘)의 이현(二縣) 일주(一
州)를 이틀 동안 주파하여 구곡현(九曲縣)을 바라볼 무렵이었다.
구곡현을 지나면 북경성까지는 오백여 리 길이었다. 밤을 도와
달려서 내일 오전에는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무사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가범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쯤에서
수하들을 쉬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지난 이틀 동안 제
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질풍처럼 내달려온 것이다.
구곡현 앞의 넓은 평원에 이르자 이가범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정지, 이곳에서 잠시 쉬며 식사를 한다!』
찰포사자들은 고도로 훈련된 무리들이었다. 총령 이가범의 한
마디에 그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일면 경계를 서고, 일면 식
사를 준비하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기계처럼 정확한 행동
들이었다.
구곡평야는 일망무제의 탁 트인 평원이었다. 매복자로부터 기
습을 당할 염려도 없으려니와, 적이 어느 곳으로부터 다가와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가범이 이곳을 휴식처로 택한 것은 최
상의 선택이었다.
『각하, 구곡현 밖 평원입니다.』
그가 수하들이 내려놓은 가마 앞에 공손히 시립하고 섰다. 가
마의 휘장이 가볍게 젖혀지더니 냉여옥이 육초량을 안고 내려섰
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냉여옥이 이가범을 돌아보았다.
『훌륭했다.』
그 동안 이가범이 보여준 뛰어난 통솔력에 대한 진심 어린 칭
찬이었다. 이가범의 험상궂은 얼굴 가득히 천진스러운 기쁨이 떠
올랐다. 좀처럼 수하들에게 칭찬의 말을 하지 않는 원주임을 모
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칭찬을 했다는 것이 그 어떤
상보다 이가범을 기쁘게 했다.
『황공합니다. 소직은 다만 본분을 다하였을 뿐, 좀 더 편히 모
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냉여옥이 미소 띤 얼굴로 끄덕여 답해 주고 대평원을 향해 섰
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함이 마음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가
을을 알리는 팔월 하순의 태양이 머리 위에서 따가운 햇살을 뿌
리고 있었다.
대지의 가슴은 무한히 넓고 관대하다. 천 년의 거목에서부터
작은 풀뿌리 하나까지 그것은 편애하지 않고 두루 사랑하여 받아
들이고 키운다. 이리와 승냥이 같은 흉포한 짐승이나, 작은 들쥐
며 풀벌레, 개미 한 마리까지도 대평원은 고루 사랑하고 포용하
는 것이다.
(육가가는 바로 이 평원과 같은 사람이야.)
냉여옥은 어린 아이처럼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육초량의 창백
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 자루 철검을 통하여 스스로를 뛰어넘
고 초인의 대열에 들기를 갈망하던 그였다. 한 자루 삼 척의 철
검 속에서 그는 이와 같은 대평원의 무한함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드시 살려낸다.)
냉여옥은 멀리 황사를 말아 올리고 있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지
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4>
삐이익-!
우측으로 반 마장쯤 나가 있던 경계조 쪽에서 날카로운 호각소
리가 들여왔다. 이어 좌측과 전후에서도 호각소리들이 꼬리를 물
고 들려왔다.
『어느 놈들이 감히!』
이가범이 씹고 있던 건량을 뱉어내고 벌떡 일어섰다. 그의 이
글이글 타오르는 눈이 메뚜기 떼처럼 뛰어 다가오고 있는 전면의
괴한들을 향했다. 일백 여 명의 무리들이었는데, 벌판을 가로질
러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는 신법이 하나 같이 고수들이었다.
이어서 좌우 측과 뒤에서도 각기 일백 여 명의 고수들이 먹이
를 보고 쫓아오는 이리의 무리들인 듯 무섭게 달려들고 있었다.
긴장한 흑의 죽립인들이 가마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원진을 형성
하여 그들과 맞설 준비를 하였다.
이가범은 그들이 만만치 않은 자들이라는 것을 한눈에 간파했
다. 도합 사백에 이르는 내습자들은 놀랍게도 귀문과 비천맹, 그
리고 무림맹의 고수들이었다. 그들 세 개의 세력은 정족지세(鼎
足之世)로 하북 무림을 삼분하고 서로를 견제하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힘을 합한 듯 한 무리가 되어 사이좋게 나타난 것
이다.
서둘러 육초량을 안고 가마 안에 든 냉여옥은 내심 좋지 않다
고 중얼거렸다. 선두에 서서 오연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자들
이 사국천과 마백조, 그리고 무당의 청송자였던 것이다.
(설마 저 마두들이 직접 나설 줄이야... 그런데 진필생 그 자
는...?)
냉여옥의 눈에 당황과 의혹이 동시에 떠올랐다. 비천맹과 귀문
의 제일좌(第一座)가 직접 나섰는데, 무림맹의 맹주인 진필생은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각하, 거래를 하고 싶소이다만...』
사국천이 한 걸음 나서며 가마를 향해 정중히 포권했다. 냉여
옥이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가마 밖으로 나섰다.
『사 맹주, 마 문주, 안녕하셨소? 아, 청송 도장께서도 오셨구
려. 무슨 일들이신지요?』
『흐흐.... 각하, 그대가 우리 모두를 감쪽같이 따돌린 그 지혜
는 높이 우러르는 바올시다. 허나, 본인들도 그렇게 만만한 허수
아비들은 아닌 터.』
사국천의 오만한 태도에 격분한 이가범이 청룡도를 움켜쥐고
뛰쳐나가려 하자 냉여옥이 그를 제지하고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사 맹주가 우리를 막은 이유는 단지 그 말을 전하고 싶어서
요?』
『흐흐, 물론 아니올시다.』
그가 음침하게 웃고 나서 주위를 한 번 쓸어보았다.
『육가 꼬마 놈을 넘겨주시오. 그러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물
러나겠소이다.』
냉여옥이 실소를 터뜨렸다.
『어이가 없군요. 그까짓 일로 그렇게 뜸을 들이다니...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
사국천과 마백조, 청송자가 모두 할 말을 잊은 듯 눈을 크게
뜨고 냉여옥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이렇게 선선히 응해올 줄 몰
랐던 것이다. 냉여옥이 그들을 하나 하나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런데 그대들 세 사람 중 누구에게 그를 넘겨주어야 하지
요?』
(윽! 이 교활한 계집...)
사국천이 속으로 신음을 터뜨리며 냉여옥을 쏘아보았다. 비록
잠시 힘을 합하기는 했으나 그들의 속셈은 모두 육초량을 차지하
려는 데 있었다. 냉여옥이 그것을 간파하고 누구에게 그를 내주
어야 하느냐고 묻자 사국천과 마백조, 청송자 등은 일시에 대답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바로 나요! 하고 주장하고 나서기가 껄
끄러웠던 것이다.
서로 망설이며 눈치를 살피는 그들을 바라보던 냉여옥이 회심
을 미소를 짓고 다시 말했다.
『자, 어느 분이던지 와서 손수 데려가시지요. 그는 저 가마 안
에 꼼짝 못하고 누워 있으니 쉬운 일이요.』
한술 더 떠서 가마에서 비켜서는 그녀였다.
『으음-!』
그것을 보던 세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이 흘러 나왔다.
그들은 다만 급하게 힘을 모아 추격해 왔을 뿐, 이런 경우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
이, 지난 이틀 간 질풍처럼 내달렸던 찰포사자의 대열을 뒤늦게
눈치채고 우선 있는 대로 수하 고수들을 소집하여 뒤쫓아오는 데
전력을 다했을 뿐, 이마를 맞대고 충분히 대책을 논의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그들은 냉여옥이 필사적으로 저항할 것이
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면 힘을 합쳐 그녀와 찰포사자들
을 쳐 없앨 작정이었다. 그런 다음에 육초량에 대한 문제를 논의
해도 늦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들이 우물쭈물하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자 냉여옥이 쌀쌀맞
게 코웃음을 쳤다.
『흥, 말뿐, 그럴 생각들이 없으신 모양이군. 그럼 본녀는 이만
가보겠으니 세 분이 사이좋게 이마를 맞대고 잘 궁리하여 결정한
다음에 다시 찾아오세요.』
말을 마친 그녀가 수하들에게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만 쉬고 이제 떠나자.』
오백의 찰포사자들이 가마를 호위하여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사국천과 마백조, 청송자의 눈에 당황과 분노가 어렸다. 그들이
수하들에게 저지할 것을 명하려는 순간이었다.
『어?』
대평원을 딛고 서 있던 모두의 입에서 의아해 하는 탄성이 터
져 나왔다.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대지가 조금씩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었다. 그들이 모두 놀랄
때, 우우우... 하는 은은한 굉음과 함께 땅이 더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두두두두-!
먼 곳에서부터 굉장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
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다.
『억!』
『허어, 저, 저게 도대체...?』
사국천과 마백조, 청송자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평원의 북동쪽, 구곡현 방향에서부터 평원을 가로지르며 하늘
을 덮을 듯 치솟아 오르는 황진(黃塵)의 구름이 급속히 다가오고
있었이다. 그것이 가까워질수록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도 더욱 커
졌다.
두두두두-!
그것은 어마어마한 기마들의 질주였다. 오천 여의 철기(鐵騎)
들이 흡사 전장(戰場)을 달리듯 사납게 질주해 오고 있었다.
대평원을 가득히 뒤덮은 채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는 철기들은
실로 장엄한 장관이었다. 햇빛 아래 기치창검이 눈부시게 번쩍였
다. 사국천 일행의 낯빛이 핼쓱하게 변했다. 철갑으로 중무장한
오천의 철기라면 소국(小國) 하나쯤은 단숨에 휩쓸어 버릴 만큼
엄청난 전력이었다.
『으으음-』
눈앞에 밀려드는 그것의 위용을 바라보는 사국천과 마백조, 청
송자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흘러 나왔다.
『돌아간다!』
사납게 냉여옥을 쏘아본 사국천이 먼저 몸을 돌렸다. 비천맹과
귀문, 무림맹의 무리들이 올 때와 같이 썰물처럼 달려 신속하게
평원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갔다. 그들을 바라보는 냉여옥의
눈에 웃음이 떠올랐다.
* * * *
『삼가 공주 저하의 옥체를 뵈옵니다!』
금빛 갑주에 금검을 손에 잡은 범 같은 장수 하나가 말에서 뛰
어내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오오, 화승? 이게 어찌된 일이요?』
냉여옥의 얼굴이 숨길 수 없는 반가움으로 활짝 펴졌다. 그는
북경성의 십만 정병(精兵)을 통솔하고 있는 금군통령(禁軍統領)
이자, 대장군(大將軍) 도통어사(都統御師) 화승(華昇)이었다. 그
가 직접 북경성 외곽에 주둔하고 있던 기마 군단 중 하나를 이끌
고 오백 리 밖까지 냉여옥을 맞이하러 나온 것이었다.
당금의 황제인 세종(世宗) 가정제(嘉靖帝)가 그녀를 얼마나 끔
찍이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황실에서의 그녀의 위세가 어떠
한지는 북경성에 머무르고 있는 고관들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화승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눈에 잘 보일 이런 기회란
극히 드문 것이었다. 화승은 기뻐하는 냉여옥을 훔쳐보며 자신이
알맞게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오신다는 기별을 받고 도중에 혹시라도 옥체에 불경스러
운 일이라도 발생할까 우려하여 소장이 직접 영접코자 서둘러 오
는 길입니다. 행여 늦지는 않았는지...』
『때맞추어 잘 와주셨소. 내 장군의 노고를 잊지 않으리다.』
치하한 냉여옥이 이가범에게 눈길을 주었다.
『장군께 네가 기별했느냐?』
이가범이 공손하게 그 큰 덩치를 숙였다.
『그러합니다.』
『좋아, 이번 일은 썩 마음에 들게 처리했다. 북경에 이르는 즉
시 상을 내리겠다.』
『황송합니다!』
이가범이 감격하여 곰 같은 몸을 쿵, 소리가 나도록 땅에 던져
꿇었다.
북경까지는 그야말로 거칠 것 없는 장엄한 행렬이었다. 가마를
버리고 여덟 필의 오추마가 끄는 화려한 백옥거(白屋車)에 몸을
실은 냉여옥은 흡족했다. 그녀가 품에 안고 있는 육초량의 창백
한 볼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육가가, 가가께서 원하기만 하신다면 이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입니다. 부디 소생만 하십시오. 가가의 명 한마디면 저들은 죽
음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녀는 이제 가가에게 소녀가 가
지고 있는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냉여옥이 육초량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그러나 육초량은 여전
히 혼미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도찰원의 오백 찰포사자가 백옥거를 엄중히 호위하는 가운데
일천의 철기가 씩씩하게 앞길을 열고 있었고, 삼천의 철기들은
창검과 갑주를 번쩍이며 후미를 지켰다. 백옥거와 말머리를 나란
히 한 대장군 화승이 좌우를 맡고 있는 일천의 유군(流軍)을 독
려하여 그들이 분주히 말을 몰아 앞뒤로 치달리게 하였다.
실로 어마어마한 호위였으며, 일생에 한 번 볼까말까한 구경거
리가 아닐 수 없었다. 북경성에 이르는 동안 관도의 연변에는 그
장엄한 행렬을 보기 위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제2권 끝 / 3권에 계속>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육초량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즐독하였습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즐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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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ㅇ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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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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