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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정달식의 공간 읽기] 발코니 조경만으로 거리 풍경까지 바꾼 소통의 리모델링
동래 수안동 ‘허그라운드’
부산 동래구 수안동 우리은행 별관 5층 건물을 재생하기 전 건물 투시도 모습.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우리은행 별관 건물을 커뮤니티 공간인 ‘허그라운드’로 재생한 후의 건물 투시도 모습.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허그라운드’ 재생 전 건물 외관 모습.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허그라운드’로 재생된 지금의 건물 외관 모습.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인류와 환경에 공헌한 건축가를 선정해 매년 수여하는 상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이다. 올해는 프랑스 듀오 건축가 안 라카통과 장 필립 바살이 이 상을 받았다. 두 사람은 ‘기존 건물은 절대 부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낡은 공공 건축물이나 주택 등 주거 공간을 저렴한 비용으로 넓히고, 또 그 기능을 살려내는 작업을 해왔다. 세계 건축이 새로운 건물에만 집착하지 않고, 이렇게 그 관심과 대상의 폭을 재생의 분야로 넓혀가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이에 부산처럼 재개발 재건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도시에서는 올해 프리츠커 수상자들처럼 기존 건물을 최대한 살리는 방안 등의 여러 가지 고민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무조건 부수고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는 학교 폐공간을 리모델링해 놀라운 변신을 보여준 ‘알로이시오기지1968’(부산 서구 암남동)을 통해 이미 그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한 바 있다.
‘허그라운드’ 2층 발코니 조경.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동래시장 근처 40년 된 은행 별관 건물
HUG 5억 지원금으로 2·3·5층 재생
숨 쉬는 발코니 공간 만들어 외부와 소통
공유 오피스·셰어하우스로 어울림 강조
■조경·목재의 활용…공간, 말을 걸다
이번에는 부산 동래구 수안동 커뮤니티 공간 ‘허그라운드(HUGround)’다. 올해 3월 가오픈을 거쳐, 6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건물 안에는 커뮤니티, 업무, 주거 공간이 결합된 복합생활공간이 구축돼 있다. ‘허그러운드’ 내부 설계는 김성률(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가 맡았다. 그의 이름이 조금 낯설다면, 부산 동래구 사직동 ‘카페 빌라빌레쿨라’, 중구 부평동 상가주택 ‘남해집’을 설계한 건축사라면, “아 그 건축사”라고 기억할지 모르겠다.
‘허그라운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동래시장에서 100~200m 이내에 있다. 동래부 동헌과도 매우 가깝다. 동래만세거리와도 인접해 있다. 이게 건물이 가진 주변 흔적이며 기억이다. 본래 우리은행 별관 건물로 지상 5층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1981년에 준공된 건물로 많이 낡아 있었고, 최근 수년간 건물은 비어 있었다.
이를 장소와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도시재생 기업 ‘어반브릿지’가 유심히 보았다. 마침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부산도시재생 커뮤니티 사업을 공모했다. 여기에 ‘어반브릿지’가 응모한 뒤 선정돼 HUG로부터 5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공간 운영사인 ‘어반브릿지’의 이광국 공동대표는 “도시재생 대상지로 당초 3곳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은행 별관 건물이 마음에 쏙 들었다. 주변에 역사성을 간직한 곳이 많아, 이를 5년간 임대해 HUG로부터 받은 지원금으로 도시재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원금은 건물 2, 3, 5층 공간 재생에 모두 투입됐다. 층당 100평 남짓한 공간 3개 층을 이 금액으로 리모델링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한 재료가 합판이었다. 3층 공유 오피스 책상, 기둥을 감싼 나무가 모두 합판이다. 이외에도 재생의 기본 재료는 배경색 흰색과 조경, 목재다. 특히 조경은 2층 테이블을 비롯해 각 층 발코니마다 설치했다. 김 건축사는 “예산이 적은 리모델링이라 비용을 적게 들여서 하다 보니 한 듯 만듯한 느낌이 들어 심적으로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운 변신으로 나타났다. 함께 소통하고 어울려 일하는 깔끔한 공간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공간이 비로소 말을 건다고나 할까.
‘허그라운드’ 2층. 부산 로컬 커피를 음미할 수 있는 카페를 비롯해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다실, 매거진 룸 등 6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허그라운드’ 2층 매거진 룸. 정달식 선임기자
‘허그라운드’ 3층 공용 공간. 정달식 선임기자
■건물에 표정을 불어넣다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뭘까? 김 건축사는 “내부의 디자인도 중요했지만, 동래만세거리에서 본 외부 가로 풍경에 다른 표정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도시 재생이란 게 건물을 살려내는 것 이상으로 도시적으로 쓸모 있음의 존재 이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도시적인 쓸모 있음이란 주변 가로와 상호작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무언가여야 했습니다.”
건물은 반듯했지만, 외벽 창들이 기둥 밖으로 나가 있어 공간적으로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기둥을 중심으로 외벽 경계를 짓고 남은 공간을 발코니로 만들어 외부적으로 볼륨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생겨난 외부 발코니 공간에 조경 작업을 해 가로변에 ‘식물의 푸름(Green)’을 주었다. 동래만세거리 도로포장은 깔끔했다. 하지만, 가로수 식재는 안 돼 있어 깔끔함의 이면엔 무미건조함이 있었다. 따라서 건물이 갖는 ‘푸름’은 도시가로의 쾌적성을 한껏 올리는 대안이 될 수 있었다. 건물 밖에서 ‘허그라운드’를 보면, 조경 하나로 마치 건물이 숨 쉬는 느낌이다. 조경이 건물의 아우라가 됐다. 더불어 궁금함과 호기심도 자극한다.
궁극적으로 ‘허그라운드’ 건물 재생은 도시가로 재생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면적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손해일 수 있지만, 고객들을 유치해야 하는 업종에서는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 우선이기에 이런 시도가 가능했다. 실제로 실내에서 도시를 바라볼 때, 외부 발코니 조경은 필터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층 공간을 찾는 고객은 물론이고, 3층 공유오피스와 5층 셰어하우스(Share house) 거주자들도 발코니가 주는 쾌적성을 반기고 있다. 이게 도시 재생의 힘이다. 건물이 ‘사람’이라면, 공간은 ‘마음’이다. 그 마음을 재생을 통해 조심스럽게 채워 넣었다.
‘허그라운드’ 5층 공용 공간. 정달식 선임기자
‘허그라운드’ 3층 평면도.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작지만, 강한 변모로 다가오다
‘어반브릿지’에서는 이제 막 시작하는 예비창업자들과 로컬크리에이터들의 공간을 주문했다. 여기에 더해 김 건축사도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면서, 1인 기업과 스타트업 등 각자 전문성을 갖고 일하는 이들을 위한 지적 인프라와 인적 네트워크가 공간에 더해진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하면서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커뮤니티를 토대로 삶을 키워내는 ‘허그라운드’가 만들어졌다.
‘허그라운드’ 2층은 커뮤니티 센터다. 이곳에선 모모스, 베르크로스터스, 수안커피, 타타에스프레소바, 히떼로스터리 등 부산 로컬 커피를 음미할 수 있는 카페를 비롯해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다실, 매거진 룸 등 6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허그라운드’를 직접 본 안용대(가가건축 대표) 건축사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인데, 적은 비용으로, 재생의 좋은 사례를 보여주는 공간이 탄생했다는 게 매우 놀랍다”고 말했다.
3층은 함께 일하는 맞춤형 ‘공유 오피스’ 공간이다. 1인(10개), 2인(7개), 4인(1개)이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 18개를 비롯해 유튜브 스튜디오와 공유 주방 등 다양한 공용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자유로운 협업과 함께하는 식사의 즐거움, 느슨한 이음과 만남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가 가져오는 또 다른 일상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20석을 갖춘 목재 바(Bar)와 테이블, 그리고 목재 루버(louver)는 공간을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하면서, 나무 질감이 주는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경직된 분위기를 이완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공동대표는 “창업가만 오기보다는 예술가와 서로 협력하면서 시너지를 내고자 하는 청년들이 올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5층은 9개의 셰어 하우스와 2개의 게스트 룸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 공간의 특징은 개별 실을 제외한 부엌과 거실 등의 커뮤니티 공간이 전체 공간의 절반을 넘는다는 점이다. 김 건축사는 “함께함 속에서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객실마다 충분한 채광, 환기를 위해 액자형 창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허그라운드’는 재생의 규모나 공간면에서만 보면 ‘알로이시오기지1968’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작지만 강한 변모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다. 도시의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어울리고 서로의 상품을 경험하며 실험할 수 있는 공간. 주변 상권을 활성화하고 오랜 시간 숨 쉬고 있는 지역의 역사문화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공간을 그리며 말이다.
이 공동대표는 “향후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함께 성과를 나누고 연구하는 로컬리티(locality) 인문학도 이곳 ‘허그라운드’에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 동래구 수안동 우리은행 별관 5층 건물을 재생하기 전 건물 투시도 모습.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우리은행 별관 건물을 커뮤니티 공간인 ‘허그라운드’로 재생한 후의 건물 투시도 모습.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허그라운드’ 재생 전 건물 외관 모습.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허그라운드’로 재생된 지금의 건물 외관 모습.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인류와 환경에 공헌한 건축가를 선정해 매년 수여하는 상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이다. 올해는 프랑스 듀오 건축가 안 라카통과 장 필립 바살이 이 상을 받았다. 두 사람은 ‘기존 건물은 절대 부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낡은 공공 건축물이나 주택 등 주거 공간을 저렴한 비용으로 넓히고, 또 그 기능을 살려내는 작업을 해왔다. 세계 건축이 새로운 건물에만 집착하지 않고, 이렇게 그 관심과 대상의 폭을 재생의 분야로 넓혀가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이에 부산처럼 재개발 재건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도시에서는 올해 프리츠커 수상자들처럼 기존 건물을 최대한 살리는 방안 등의 여러 가지 고민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무조건 부수고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는 학교 폐공간을 리모델링해 놀라운 변신을 보여준 ‘알로이시오기지1968’(부산 서구 암남동)을 통해 이미 그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한 바 있다.
‘허그라운드’ 2층 발코니 조경.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동래시장 근처 40년 된 은행 별관 건물
HUG 5억 지원금으로 2·3·5층 재생
숨 쉬는 발코니 공간 만들어 외부와 소통
공유 오피스·셰어하우스로 어울림 강조
■조경·목재의 활용…공간, 말을 걸다
이번에는 부산 동래구 수안동 커뮤니티 공간 ‘허그라운드(HUGround)’다. 올해 3월 가오픈을 거쳐, 6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건물 안에는 커뮤니티, 업무, 주거 공간이 결합된 복합생활공간이 구축돼 있다. ‘허그러운드’ 내부 설계는 김성률(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가 맡았다. 그의 이름이 조금 낯설다면, 부산 동래구 사직동 ‘카페 빌라빌레쿨라’, 중구 부평동 상가주택 ‘남해집’을 설계한 건축사라면, “아 그 건축사”라고 기억할지 모르겠다.
‘허그라운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동래시장에서 100~200m 이내에 있다. 동래부 동헌과도 매우 가깝다. 동래만세거리와도 인접해 있다. 이게 건물이 가진 주변 흔적이며 기억이다. 본래 우리은행 별관 건물로 지상 5층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1981년에 준공된 건물로 많이 낡아 있었고, 최근 수년간 건물은 비어 있었다.
이를 장소와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도시재생 기업 ‘어반브릿지’가 유심히 보았다. 마침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부산도시재생 커뮤니티 사업을 공모했다. 여기에 ‘어반브릿지’가 응모한 뒤 선정돼 HUG로부터 5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공간 운영사인 ‘어반브릿지’의 이광국 공동대표는 “도시재생 대상지로 당초 3곳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은행 별관 건물이 마음에 쏙 들었다. 주변에 역사성을 간직한 곳이 많아, 이를 5년간 임대해 HUG로부터 받은 지원금으로 도시재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원금은 건물 2, 3, 5층 공간 재생에 모두 투입됐다. 층당 100평 남짓한 공간 3개 층을 이 금액으로 리모델링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한 재료가 합판이었다. 3층 공유 오피스 책상, 기둥을 감싼 나무가 모두 합판이다. 이외에도 재생의 기본 재료는 배경색 흰색과 조경, 목재다. 특히 조경은 2층 테이블을 비롯해 각 층 발코니마다 설치했다. 김 건축사는 “예산이 적은 리모델링이라 비용을 적게 들여서 하다 보니 한 듯 만듯한 느낌이 들어 심적으로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운 변신으로 나타났다. 함께 소통하고 어울려 일하는 깔끔한 공간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공간이 비로소 말을 건다고나 할까.
‘허그라운드’ 2층. 부산 로컬 커피를 음미할 수 있는 카페를 비롯해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다실, 매거진 룸 등 6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허그라운드’ 2층 매거진 룸. 정달식 선임기자
‘허그라운드’ 3층 공용 공간. 정달식 선임기자
■건물에 표정을 불어넣다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뭘까? 김 건축사는 “내부의 디자인도 중요했지만, 동래만세거리에서 본 외부 가로 풍경에 다른 표정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도시 재생이란 게 건물을 살려내는 것 이상으로 도시적으로 쓸모 있음의 존재 이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도시적인 쓸모 있음이란 주변 가로와 상호작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무언가여야 했습니다.”
건물은 반듯했지만, 외벽 창들이 기둥 밖으로 나가 있어 공간적으로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기둥을 중심으로 외벽 경계를 짓고 남은 공간을 발코니로 만들어 외부적으로 볼륨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생겨난 외부 발코니 공간에 조경 작업을 해 가로변에 ‘식물의 푸름(Green)’을 주었다. 동래만세거리 도로포장은 깔끔했다. 하지만, 가로수 식재는 안 돼 있어 깔끔함의 이면엔 무미건조함이 있었다. 따라서 건물이 갖는 ‘푸름’은 도시가로의 쾌적성을 한껏 올리는 대안이 될 수 있었다. 건물 밖에서 ‘허그라운드’를 보면, 조경 하나로 마치 건물이 숨 쉬는 느낌이다. 조경이 건물의 아우라가 됐다. 더불어 궁금함과 호기심도 자극한다.
궁극적으로 ‘허그라운드’ 건물 재생은 도시가로 재생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면적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손해일 수 있지만, 고객들을 유치해야 하는 업종에서는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 우선이기에 이런 시도가 가능했다. 실제로 실내에서 도시를 바라볼 때, 외부 발코니 조경은 필터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층 공간을 찾는 고객은 물론이고, 3층 공유오피스와 5층 셰어하우스(Share house) 거주자들도 발코니가 주는 쾌적성을 반기고 있다. 이게 도시 재생의 힘이다. 건물이 ‘사람’이라면, 공간은 ‘마음’이다. 그 마음을 재생을 통해 조심스럽게 채워 넣었다.
‘허그라운드’ 5층 공용 공간. 정달식 선임기자
‘허그라운드’ 3층 평면도. 리을도랑 건축사사무소 제공
■작지만, 강한 변모로 다가오다
‘어반브릿지’에서는 이제 막 시작하는 예비창업자들과 로컬크리에이터들의 공간을 주문했다. 여기에 더해 김 건축사도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면서, 1인 기업과 스타트업 등 각자 전문성을 갖고 일하는 이들을 위한 지적 인프라와 인적 네트워크가 공간에 더해진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하면서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커뮤니티를 토대로 삶을 키워내는 ‘허그라운드’가 만들어졌다.
‘허그라운드’ 2층은 커뮤니티 센터다. 이곳에선 모모스, 베르크로스터스, 수안커피, 타타에스프레소바, 히떼로스터리 등 부산 로컬 커피를 음미할 수 있는 카페를 비롯해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다실, 매거진 룸 등 6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허그라운드’를 직접 본 안용대(가가건축 대표) 건축사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인데, 적은 비용으로, 재생의 좋은 사례를 보여주는 공간이 탄생했다는 게 매우 놀랍다”고 말했다.
3층은 함께 일하는 맞춤형 ‘공유 오피스’ 공간이다. 1인(10개), 2인(7개), 4인(1개)이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 18개를 비롯해 유튜브 스튜디오와 공유 주방 등 다양한 공용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자유로운 협업과 함께하는 식사의 즐거움, 느슨한 이음과 만남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가 가져오는 또 다른 일상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20석을 갖춘 목재 바(Bar)와 테이블, 그리고 목재 루버(louver)는 공간을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하면서, 나무 질감이 주는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경직된 분위기를 이완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공동대표는 “창업가만 오기보다는 예술가와 서로 협력하면서 시너지를 내고자 하는 청년들이 올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5층은 9개의 셰어 하우스와 2개의 게스트 룸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 공간의 특징은 개별 실을 제외한 부엌과 거실 등의 커뮤니티 공간이 전체 공간의 절반을 넘는다는 점이다. 김 건축사는 “함께함 속에서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객실마다 충분한 채광, 환기를 위해 액자형 창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허그라운드’는 재생의 규모나 공간면에서만 보면 ‘알로이시오기지1968’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작지만 강한 변모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다. 도시의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어울리고 서로의 상품을 경험하며 실험할 수 있는 공간. 주변 상권을 활성화하고 오랜 시간 숨 쉬고 있는 지역의 역사문화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공간을 그리며 말이다.
이 공동대표는 “향후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함께 성과를 나누고 연구하는 로컬리티(locality) 인문학도 이곳 ‘허그라운드’에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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