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
강비아
낙원에도 있고 난곡*에도 있지요
지명이 바뀌어도
낙원은 구원이 열린 정원
난곡이란 말은 떨어진 열매 같았죠
고양이처럼 착지하는 우리는
떠날 곳만 찾아다녀
남겨진 곳에는 물웅덩이만 차올랐어요
하필 이런 곳에 물방울 방이라니
하얀 손의 그루밍
감싸고 있던 털이 소스라칩니다
봉제선이 조금씩 부풀어 터지려고 해요
지퍼를 올리면 입술이 꿰매지는 줄도 모르고
비를 피하는 간판 뒤에서
가방처럼 웅크리고 있었는데요
머리가 벗겨진 제단사가
붉은 조명 아래서
허밍을 자르고 용서를 자르고 빛을 자르면
그 여름이 지나갔어요
매미들의 울음이 떠내려가고 수박 넝쿨은 뽑히고
아이들이 한꺼번에 물에서 걸어 나왔지요
떠나온 적도 없는데 기다린다는 말
겨울을 견디려 했던 털들은 겨울을 본 적도 없고
비상구가 없는 그곳은 옮기는 손만 있었어요
휴짓조각 위에 쓰인 텍사스 그 어딘가의 주소
쉿, 입술을 가르는 검지는 문고리 같고
물에 젖으면 그만인 것을
아직도 모르겠다구요?
밤마다 굴뚝 위로 솟아오르는 봉제선을 봐요
뜯어지며 하나씩 튀어나오는
얼굴들이요
소리소문없는
* 최초의 베이비박스는 난곡로26길 1004길에 있음
카페 게시글
오늘 읽은 시
베이비박스 / 강비아
유진
추천 0
조회 7
25.03.18 20:04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