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이명박이 되어 아래 물음에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이 전시장의 저서 ‘신화는 없다’ 및 ‘어머니’에서 이 전시장은 자신의 병역사항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습니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이후 나는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 어디 하나 정상적인 곳이 없는데다 결정적으로 기관지가 확장되어 있어 군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길로 나는 군대에서 쫓겨났다. … 치료를 받고 다시 오라는 말에 군생활을 하며 치료를 받고 싶다고 사정했지만 군의관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임마, 군대가 무슨 요양원인 줄 알아? …" 매일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시장청소를 하고, 청소 후 나온 쓰레기를 이태원 시장에서 지금의 잠수교 근처까지 리어카로 날라야 했는데 … 그렇게 2년을 보내자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쉬고 싶다. 단 하루라도 이 고달픈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가 찾은 탈출구는 군대였다. … 그런데 남들 다 가는 군대에서조차 퇴짜를 맞은 것이다. …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는 나를 덥석 끌어안고 울먹이셨다. "미안하다. 명박아. … 어릴 때 술지게미만 먹여 키워서 그런가 보다. 다 내 탓이다. … 어미가 잘못했다. 그 몸으로 새벽마다 리어카를 끌었다니 ….”
이런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2) 위 내용은 1963년 8월15일, 이 전시장이 대학 3학년 때 자진 입대하였다가 기관지확장증고도와 악성 축농증으로 강제 퇴소 당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3) 그런데 ‘기관지확장증고도’라는 병을 의사들에게 알아보니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숨이 가쁘고 누런 가래를 뱉어내기 바쁘고 지금도 그런 병이 심하면 목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병으로 당시에는 죽는 병으로 알려져 있고, 축농증 역시 악성이면 그것 하나로도 당시에는 공포감에 사로잡힐 수 있는 무서운 병이라 합니다. 맞습니까?
4) 그런 최악의 병을 두 가지씩이나 가지고 있었다면 자각증세가 있었을 텐데요 자각증세가 없었나요?
5) 당시의 군대생활은 성한 사람도 복무하기기 힘이 들어 탈영이 많고, 자살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전시장이 이런 군대에 자원입대했다는 것은 군대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 지원한 것이 되는데요?
6) 당시에는 죽는 병, 공포의 병으로 알려진 두 가지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각증세를 느끼지 못하고, 군대생활하는 것이 자신 있다며 자진 입대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가지 않는데요?
7) 이 전시장은 저서‘어머니’에서 자신이 1963년에 군에서 퇴짜를 맞은 사실을 기록해 놓고, 퇴짜를 받은 원인이 어려서 술 지게미만 먹고 자랐고, 리어카를 끌어서 몸이 쇠약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맞습니까?
8) 그런데 이전시장은 자서전 등에서 밝히기를 리어카는 입시시험에서 합격자 발표를 보고 난 직후부터 끌었다 하였지요?
9) 어려서 술 지게미를 먹고 자랐고, 리어카를 끌어서 이 전시장의 표현대로 몸이 형편없이 망가졌다면 그 몸으로 어떻게 대학교 1학년 시절인 1961년에 최고의 건강상태를 의미하는 갑종 판정을 받았지요?
10) 1961년도에 갑종판정을 받은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11) 1961년도에 갑종 판정을 받은 이후 불과 2년 만에 어떻게 그런 불치의 병을 앓을 수 있었는가요?
12) 이 전시장은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가 건강 때문에 강제 퇴소당한 시기가 1963년 8월 15일이라 했지요?
13) 퇴소당한 즉시 국가기관이 운영하는 병원에 한 달간 입원하여 병을 말끔히 고쳤다 하였지요?
14) 기관지확장증고도라면 지금도 한달 이내에 고칠 수가 없다고 하던데요?
15) 1963년 8월 15일에 퇴짜를 맞고 병원에서 한 달간 입원하였다면 퇴원한 날짜는 대략 9월15일인데요?
16) 당시 고대신문을 보니 이 전시장은 1963년 9월 20일에 경영대학 학생회장 입후보로 등록돼 있던데, 맞나요?
17) 그리고 위 두 가지의 책을 보면 퇴원하자마자 고향친구들과 이태원에서 대폿잔을 돌리며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기 있던데, 맞나요?
18) 악성 축농증과 기관지 확장증고도라는 당시의 불치의 병이 한 달 사이에 나았고, 병원 문을 나오자마자 학생회장을 해 보겠다는 강한 집념을 가졌고, 친구들과 대폿잔으로 술을 마시고, 건강한 학생만이 할 수 있는 학생회장 선거를 치를 정도라면 그 두 가지 병은 가짜 병이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이해를 하면 좋을까요?
19) 1964년에 6.3 사태가 발생했고, 이 전시장은 자서전 등에서 그 사건의 중심에 이 전시장이 있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이 전시장이 6.3사태를 주도하였다는 의미인가요?
20) 그 사건은 1964년 3월부터 준비하기 시작하였지요?
21) 그 사건으로 이 전시장은 도피생활을 하였지요?
22) 그리고 1964년 6월말에 감옥에 가서 10월 1일 보석으로 가석방될 때까지 3개월간 옥살이를 하였지요?
23) 위 두개의 저서들을 보면 이 전시장은 감옥에서도 학과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해두었다고 하였지요?
24) 그렇다면 1964년 10월 1일까지 즉 4학년 10월 1일까지는 아주 건강한 상태라는 게 증명된 게 아닌가요?
25) 그런데 1965년3월30일, 이 전시장은 병역신체검사에서 기관지확장증과 폐결핵을 동시에 판정받아 병역이 영원히 면제되었지요?
26) 1964년 10월 1일까지도 아주 건강했던 사람이 불과 6개월 만에 당시로서는 죽는 병으로 알려진 두 가지 병이 걸렸다고 판정받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27) 이 전시장은 졸업 직후인 4월부터 대구에 있는 모 섬유회사에 취직하여 사장으로부터 가정교사도 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요?
28) 폐결핵이라는 병 한 개만 걸려도 얼굴이 노랗고 병색이 완연하여 지금도 일단 걸리면 최소한 6개월간 약을 복용하여야 하고, 당시에는 약이 신통치 않아 1년 6개월 이상 한 웅큼씩의 약을 복용해야 한다 하던데 이런 약 드셔보셨나요?
29) 기관지 확장증 고도가 걸렸다면 사람들이 기피할 텐데 가정교사를 요청받았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30) 이 전시장은 당시 현대건설이 해외에서 일할 일꾼을 뽑는다는 말에 곧바로 지원 원서를 냈는데 원서를 낸 이유가 해외건설 현장에서 일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라 했지요?
31) 해외건설 현장 특히 중동과 태국 등은 일기, 환경이 아주 열악합니다. 건설현장에는 분진, 시멘트 가루 등 결핵과 기관지확장증에는 독으로 알려진 물질들이 자욱합니다. 이런 환경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원서를 냈다면 당시 이 전시장은 아주 건강했던 게 아닌가요?
32) 이 전시장은 1965년 7월 1일부터 현대건설에 입사했지요?
33) 입사하자마자 강릉 경포대에서 정주영 회장, 대학 졸업자 신입사원 28명이 술을 마시고 노래를 했는데, 정주영 회장이 ‘저 달이 기울도록 술을 마시자’ 하여 각자 술 실력을 과시했는데 이 전시장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하였지요?
34) 1965년 3월 30일에는 병역검사에서 영원한 부적격자로 판정되었고, 그 병명 두 가지 모두가 당시에는 죽는 병으로 알려져 있는 병입니다. 이렇게 죽는 병을 두 가지씩이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신체검사장을 나오자마자 섬유회사에 취직하여 가정교사직을 요청받고 신체검사장을 나온 순간으로부터 불과 3개월 만에 술의 천하장사가 될 수 있는지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라면 위 두 가지 병은 술과는 상극인 병이고, 취직과는 거리가 먼 병인데 유독 이 전시장은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특수한 생리구조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요?
35) 1964년10월1일까지도 아주 왕성한 활동을 했던 사람이 불과 6개월만에 치러진 병역신체검사에서 죽을 병 두개를 판정받은 다음 그로부터 불과 3개월만에 술의 천하장사가 되었다는 말은 무협지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데요?
36) 전체적으로 보면 이명박은 1961년에 갑종 판정을 받았고, 1963년에는 왕성한 선거운동을 통해 학생회장이 되었고, 1964년에는 6.3 학생운동을 중심에서 주도하다가 건강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도피생활을 했고, ‘내란선동죄’로 만 3개월간 감옥살이를 했고, 감옥에서도 시험준비를 왕성하게 했고, 1965년에 여름, 현대에 들어가 술의 천하장사가 됐고, 40도를 웃도는 열대지역에서 콘크리트 가루를 마시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여 11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하는 신화를 이룩한 600만 달러의 슈퍼맨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유독 1963년과 1965년 봄에 있었던 2차례의 병역관계 신체검사에서만 당시에는 ‘죽는 병’으로 알려진 기관지확장증 중에서도 최고의 위험수위라는 ‘고도’ 판정을 받았고, ‘악성축농증’ 판정을 받았고 또 다른 죽을 병인 ‘폐결핵’ 판정을 받았다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데요?
37) 이런 질문들에 대해 이 전시장은 ‘국가에서 실시한 신체검사에서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라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국가가 실시하는 병역신체감사에는 절대로 부정이나 비리가 없다는 말인가요?
38) 이 전시장은 위의 두 가지 책에서 “남들은 있는 줄 없는 줄 다 동원하여 병역을 면제받으려 하는데, 나는 군대에 가고 싶어도 군의관이 받아주지를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말은 당시 병역 비리나 부정이 성행했는데 이 전시장 자신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닌가요?
39) 위 37항과 38항은 서로 모순이 아닌가요?
40) 이 전시장은 대학시절이라 병역부정을 저지를만한 자금력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1964년 10월 1일에 풀려난 보석금은 어떻게 마련했나요?
41) 이태원 시장에서부터 반포대고 입구까지의 거리는 불과 1.0km 정도 됩니다. 이 전시장은 고대를 합격한 직후부터 새벽에 이 거리를 6번 왕복하여 리어카를 끌었다 했습니다. 새벽에 12km정도를 끈 것입니다. 이 정도의 파트-타임 노동을 해가지고 불과 2개월 만에 대학 등록비를 마련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데요?
42) 리어카를 끌어가지고 대학 등록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지금도 어림없는 이야기입니다. 인건비가 쌌던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누구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나요? 대학으로부터는 받았다는 흔적이 없는데요?
43) 당시 북한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는 학생들이 꽤 있다 합니다. 이 전시장은 이런 이야기 혹시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2007.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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