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서 추도식(시아부지)을 마치고
엄마가 있는 화정으로 애아빠와 같이 가다가
아들놈 땜에 둘이 싸우게 되었다.
아들녀석은 그 날 서울랜드로 소풍을 갔었는데
다섯시에 지하철에서 헤매고 있다고 통화 했던 놈이
여덟 시가 지난 시각까지 지하철을 벗어나지 못했단다.
학원가기 싫어 뻔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돈 몇푼만 생기면 PC방을 기웃거리는 게 하도 속상하여
"오늘 아침에 용돈 얼마줬어?"하고 물었더니
"만오천원인가?"하기에
"아.. 그렇게 많이 주면 어떡해..
요즘 돈만 생기면 피씨방에서 날 새려구 하는 애 한테.." 한게 화근이었다.
나는 아들놈 땜에 화가 난건데
그는 그걸 자기한테 뒤집어 씌운다고 난리 난리..
험한 소리를 구질구질 내뱉기 시작한다.
그리 들었다면 미안하다..
지난주에 이미 자유이용권 값을 학교에 냈기 때문에
그리 많이 주지 않아도 되어서 한 소리다 했는데도
그러면 왜 나한테 자유이용권 값 줬다고 미리 말하지 않았냐..
그러면서 나한테 뒤집어 씌워? 어쩌구 저쩌구....
하이고... 댓거리를 했다간 더 큰 쌈으로 번질 기미에 변명도 하지 않고 꾹 참고 있으려니까
이 양반 기세가 등등 이젠 인신공격에 욕설까지 해댄다..
한계상황...이럴 때 그대들은 어찌 참아낼 것인가?
나도 모르게 안전벨트를 풀어제낀 내가 "차 세워!!" 하고 뛰어내린게 화정 외곽도로였다.
지나가는 택시도 드문데 어쩌다 머리에 불 밝힌 반가운 빈 택시 조차
모두 애아빠가 타고 있는 듯 쌩~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이느무 겡기도에선 택시 세우는 벱이 따로 인능가?
아휴~ 오늘따라 스니커즈를 신느라 양말도 안신었구만..
뒤꿈치가 따가워지기 시작한다.
어찌어찌 화정역까지 걸어서 거기서 버스타고 엄마집에 도착하니 밤 열시가 다 되어가고
어버이 날이랍시고 서울에서 부터 사가지고간 카네이션 하나가 모가지가 뎅강 부러져있다.
이제나 저제나.. 아까 전화할 때까지만해도 밖에서 저녁먹자고
옷 입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한 딸년이 죽상을 한 얼굴로 혼자 들어서는 걸 보며 놀란 엄마...
"나 땜에 싸완? ..... 담엔 어버이 날이고 뭐고 절대로 같이 오지 말라마..
홍서방도 얼마나 맘이 아프간네?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형님까지 보냈는데..."
하시며 허둥허둥 준비해둔 만두를 빚으신다.
어버이 날 이게 뭐냐...
맘 아프게 하고...오히려 내가 미안해 할까봐
"고맙구나...피곤하지? 넌 그대로 앉아만 있으라마~" 바로 일어설까봐 전전긍긍이시다.
구십을 바라보는 가는 귀먹은 노모의 투박한 손길이 그대로 묻어있는 이북식 왕김치만두...
늦은 시각..언짢은 마음..그렇지만 안먹고 일어설 수도 없다.
게다가 괜한 몸고생에 피곤이 몰려와 소파에 픽 쓰러져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버스시간 마저 놓쳐버렸다.
그 덕분에 못난 딸년이 당신 옆에서 자고 있는것만 대견하고 웬 횡재냐는 듯 은근히 신나신 우리 엄마.
밤 늦도록 달그닥거리며 아까 빚다 만 만두를 마저 해 놓으시군
"아이고...자는 모습이 어쩜 이리두 이뿌누..."
내 옆에 살며시 들어와 귀밑머리 희끗해진 딸년의 머리를 가만히 쓸어내리신다.
사족(蛇足)
글 쓴 이는 중년의 고개를 넘는 이 용부 누이 동생이다.
행복은 앵무새 입맞춤 처럼 쪽쪽 소리만 나지 않는다.
거친 엇박자로 어처구니 없는 불협화음도 일어난다.
홍서방은 말 수가 적고 지성적이다.
내 동생은 밝고 활달하고 신앙심이 깊다.
이들 부부가 행복함을 나는 믿는다.
첫댓글 갑자기 서술자 인칭이 애매해설라무네, 끝까장 읽고 나니 알갔구만요. 참 재밌구요, 또 가족 싸이트 한참 궁금해지내요잉.
우리 가족은 많다. 우선 12남매가 있고 아버지대의 8남매와 그 후손들.. 미국에서 소련에서 동남아에서 소식을 전한다. 년령대는 30대에서 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