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한 달여 만에 만난 예진이는 그새 또 자랐습니다.
함께 하는 기간이 짧지만 주님 안에서 행복한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으로 인한 것이니 더욱 기뻐합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시간과 이 자리가 얼마나 감사한지....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오니
저를 덮어 정결케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0.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11.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12. 만일 너와 화평하기를 거부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기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14. 너는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성읍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너를 위하여 탈취물로 삼을 것이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적군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을지니라
15.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19. 너희가 어떤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 이는 너희가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들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20. 다만 과목이 아닌 수목은 찍어내어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
(본문 주해)
10~15절 : 가나안 땅 밖에서 해야 할 전쟁에 관한 내용이다.
이는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수행해야 하는 전쟁 즉 언약과 거룩함의 전쟁이 아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주변의 나라들과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는 진멸전쟁이 아니기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는 것이다.
그 성읍이 평화하기를 원하여 성문을 열면 그들로 조공을 바치고 섬기게 할 것이지만, 평화를 거부하면 성읍을 에워싸고 공격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임의대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여주시는 경우에만 공격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그 성읍의 남자만 죽이고 여자와 유아들과 육축과 탈취한 것들은 취하라고 한다. 이 전쟁은 그들이 화평을 거부하였기에 당하는 것이다.
이 전쟁은 정복 전쟁이 아니라 영향력의 전쟁이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세상에 대해 제사장 나라 백성인 것은 힘으로 세상을 정복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에 대해 복음의 생수를 흘려보내 것을 말한다.
16~18절 : 가나안 땅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전쟁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여섯 부족(신명기에는 일곱 족속 : 헷 족속, 기르가스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을 진멸하라고 하신다.
그 이유는 첫째, 죄악이 관영한 땅에 대한 심판이요, 둘째, 진멸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그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하나님께 범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역사를 보면 진멸하지 아니함으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의 옆구리에 가시가 된다.
이는 정복 전쟁이다.
가나안 원주민의 문화적, 종교적인 공격이 치열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진멸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갈 때 유혹 받을 만한 원인을 철저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나안에서의 전쟁은 순종과 거룩을 요구하는 전쟁인 것이다.
19~20절 : 이 모든 전쟁은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해야 할 영적 전쟁이다.
이 영적 전쟁을 치르며 살아갈 때 성도의 정체성이 붕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나의 묵상)
내 안(16~18절)과 밖(10~15절)에서 치러지는 전쟁이다.
내 안의 전쟁은 진멸 전쟁이요, 밖의 전쟁은 영향력의 전쟁이다.
그리고 이 모든 전쟁은 지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19~20절) 치러야만 하는 전쟁이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땅을 살아가는 내 인생의 목적은 참으로 분명하고 확고해졌다.
그것은 복음으로 살고 복음으로 살리는 일이다.
나 자신이 복음으로 살기 위해서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한다.
그 교제 가운데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십자가에 연합된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십자가에 연합된 삶이란 죄 짓는 나의 옛 사람이 죽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는 세상에 대해 내가 죽고, 나에 대해 세상이 죽었음을 선포함으로 죄의 세력이 내게 더 이상 그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자기의(自己義)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다.
어떤 선한 일도 다 주님께서 하셨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일이다.
이는 아담의 범죄 이후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아는 자, 즉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그러므로 이 진멸 전쟁은 내 안에 철저히 치러져야 할 영적 전투이다.
대충 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그러니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말씀에 비춰지는 내 모습을 날마다 점검한다. 그리고 어느 새 내 안에 들어와 자리 잡고 나를 유혹하고 협박하는 세상 것들, 나를 지배하려는 세상 정신을 십자가로 단호히 물리치는 것이다.
이 십자가에 연합된 삶으로 이제 세상과 관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시고 관계 맺게 하신 세상으로 나아가 또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는 복음을 선포함으로 죽은 영혼을 살리는 전쟁으로서 역시 단호한 것이지만, 믿는 자의 삶이 영향력을 끼치는 전쟁이다.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주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 내게 맡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바깥의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평화를 선언하는 일이다.
그들과 늘 원수로 지내서는 복음을 전할 수가 없다.
관대하고 용서하고 화평한 자세로 장기적인 이 전쟁을 잘 치러야 한다.
그리고 이 전쟁은 내 안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전쟁이다.
요즘 세상 사람들을 전도를 할 때 될 수 있는 대로 ‘예수 이야기’를 하지 말고, 좋은 느낌을 주어서 관계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소위 관계 전도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복음을 말하는 것이지, 세상에 대해 ‘내가 좋은 사람’, ‘우리교회가 좋은 교회’임을 알리고, 칭찬을 듣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화평을 선언하지만 결국 그들로 하여금 ‘성문’을 열도록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시도록 성문을 열어,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칭찬하고 교회를 칭찬하는 것에 만족하고 그치는 많은 경우를 본다.
그것은 다른 아닌, 자기 만족과 자기의에 빠지는 것이다. 어떤 목사님은 이것을 전도가 아니라 ‘호객 행위’라고 표현하신 것을 들었다. 호객 행위를 많이 한 나로서는 마음이 뜨끔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전도함에 우리가 항상 경계해야만 할 내용이다.
복음을 선포하여 그들이 생명을 얻기까지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치러야 할 전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안과 밖의 전쟁, 모두 내가 치러야 할 전쟁이지만 언제나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승리하게 하심을 믿으며 나아간다.
(묵상 기도)
주님,
저 자신에게는 철저하게,
타인에게는 관대하게 행하게 하옵소서.
하지만 관대하다는 것을 오해하여 변질되지 않게 하시고
생명으로 이끄는 복음을 전함에 타협이 없게 하옵소서.
평생에 싸워야 할 이 영적 전투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행하게 하셔서
지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