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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님들 안녕하세요!
그동안 많이 기다렸었죠
제가 그동안 라오스 여행을 다녀 오느라
연재를 못해 드렸네요
미안한 마음입니다
이제 정상적으로 연재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사도(生死島) 3-4
제 2 장 생사도주(生死島主) 사공영호(詞空靈昊)
<1>
쿵-!
우렁찬 철고(鐵鼓) 소리가 한 차례 울렸다. 십여 개의 운남(雲
南) 대리석 석주가 지붕을 받치고 있는 웅장한 대전 안이었다.
그 한 가운데에 흑옥(黑玉)의 석탁이 놓여 있었는데, 석탁 앞의
북해산 백곰피 의자에 두 사람이 긴장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금빛 가사의 깡마른 노승 미가불과, 백의에 백색 영웅건을 쓰고
있는 미공자 차림의 냉여옥이었다.
그들의 뒤 이장 여 떨어진 곳에는 십여 명의 흑의 죽립인들이
마치 석상을 세워놓은 듯 눈동자 한 번 움직이는 일이 없이 엄숙
하게 서 있었다.
철고의 웅장한 여운이 가라앉자, 여의주를 다투는 두 마리 황
룡이 살아서 꿈틀대듯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는 석벽이 서서히 양
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한 줄기 냉랭한 바람이 석벽 뒤의 어
둠 속에서 불어왔다. 이어서 은은한 주악 소리와 함께 청아한 향
기가 먼저 실내에 스며들었고, 날아갈 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치
맛자락을 끌며 이십여 인의 아름다운 시비들이 들어섰다.
그녀들의 손에 들린 보홀(寶笏)에서 빛나는 서기가 황홀하게
반짝여 실내를 은은히 밝혔다. 그녀들의 뒤를 따라 다시 이십여
명의 청동역사(靑銅力士)와 같은 대한들이 두 줄로 늘어서서 들
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가운데에서 일남일녀가 각기 청색과 황색
의 비단도포를 걸치고 구름을 밟듯 유현한 걸음걸이로 들어섰다.
청색의 도포를 입고 있는 자는 은빛 수염을 가슴 앞까지 늘어
뜨리고 주사(朱砂)빛 얼굴에 은은한 위엄을 띄고 있는 동안(童
顔)의 노인이었는데, 그 비범한 풍모가 마치 속세에 하강한 신선
인 듯 싶었다. 그 곁에서 황색 도포를 걸친 여인이 수줍은 듯 고
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머리에는 도관을 쓰고 있었고, 손에는
빛나는 학익선(鶴翼扇)을 들었는데, 도화빛으로 물든 투명한 볼
과 서늘한 눈매가 막 한폭의 여신도(女神圖) 속에서 걸어나온 신
녀(神女)인 듯 했다. 그 우아하고 기품 있는 아름다움은 다시 보
아도 하계(下界)의 사람이 아닌 듯 황홀하기만 한 여인이었다.
『흥!』
그들을 바라보던 냉여옥이 냉소를 흘렸다.
『원주 각하, 그리고 대사, 두 분께서 먼 길을 오시느라고 노고
가 많으셨겠습니다.』
황의 미녀와 나란히 석탁의 맞은 편에 좌정한 노인이 정정한
음성으로 먼저 인사의 말을 건넸다.
『별말씀을. 도주(島主)께서는 못뵈온 동안 더욱 정정해지신 듯
하군요. 부인께서도 더욱 아름다워지셨고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의 말을 받은 냉여옥이 쌀쌀한 말투로
응대했다. 그러나 백염(白髥) 노인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듯 얼굴
에 인자한 미소를 띄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인후(仁厚)한 얼굴
을 바라보던 냉여옥이 내심 못마땅한 듯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중원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존재조차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은
화산도(火山島)인 생사도(生死島) 안이었다.
* * * *
『일은 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몇 마디 형식적인 인사말이 더 오고간 뒤에 냉여옥이 먼저 본
론을 끄집어냈다. 백염 노인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가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원주 각하의 그 동안의 활약에 못지 않게 본도에서 추진중인
일도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소이다. 그 점 염려 마시기를...』
『......』
『각하의 뜻대로 본도의 비급 중 일부를 중원에 흘려보낸 지가
사 년. 그 동안 중원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고 있는 것으
로 압니다만...?』
(능구렁이 같은 늙은이.)
냉여옥은 속으로 그렇게 투덜대며 눈을 흘겼다. 중원과는 만리
나 떨어진 절해고도에 있으면서도 그는 중원의 일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추진중인 일의 첫 단계는 그럭저럭 성공한 셈이지
요.』
쌀쌀하게 말한 냉여옥이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계획을 이제 실행에 옮길 때인 것으로 생
각하는데... 사공 도주의 의향은 어떠신지요?』
『하하...』
백염 노인의 상쾌한 웃음소리가 전각안에 가볍게 울려 퍼졌다.
(죽일 놈!)
냉여옥이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노인의 웃음소리에 기혈이 은
은히 진동하는 것을 느낀 탓이었다. 미가불도 눈썹을 살짝 찌푸
리고 있었다. 생사도주가 가벼운 웃음 속에 그의 충만한 진력을
실어 보냄으로써 자신의 위력을 과시하고 냉여옥의 불손한 태도
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그의 웃음소리의 여운이 점점 커지자 냉여옥의 뒤에 시립해 서
있던 십여 명의 죽립인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눈썹을 찌푸리고
있던 미가불이 두 손을 합장하고 장중한 불호를 터뜨렸다.
『아미타불...』
구름 속에서 용이 울부짖듯 무겁고 맑은 그 소리가 백염 노인
의 웃음소리와 섞이며 청량하게 울려 퍼졌다.
『하하하, 대사의 신룡범창음(神龍梵唱音)은 이미 화신지경에
이르러 있구려. 감복했소이다.』
생사도주가 진력을 거두고 유쾌한 듯 웃었다. 그러나 그의 눈
속 깊은 곳에서는 이글거리는 작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과찬의 말씀. 도주의 화후는 빈승이 감히 따라가지 못할 듯하
오이다.』
미가불이 가볍게 겸양하고 다시 지긋이 눈을 내리감았다. 그것
을 본 백염의 노인이 냉여옥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론 노부도 두 번째와 세 번째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라고
생각하고 준비중에 있으니 각하께서는 염려하지 마시오.』
『......』
『철협 강사옥을 제거한 일은 실로 쾌거라 아니할 수 없소이다.
원주 각하의 심계에 노부는 경탄을 금치 못했소이다.』
『과찬의 말씀.』
냉여옥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
던 백염 노인이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한데... 듣자하니 최근 중원 무림에 사자검(獅子劍) 육초량이
라는 자가 새로이 등장하여 왕년의 강사옥 못지 않은 명성을 쌓
아가고 있다 하던데, 그 자에 대한 대책은 세워 두셨는지요?』
냉여옥의 눈에 한 줄기 싸늘한 한기가 어렸다. 그녀가 눈앞의
백염 노인을 쏘아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사공 도주께서는 이곳의 일만으로도 바쁠 텐데 언제 그런 일
까지 염탐하셨나요? 중원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서늘한 기광이 일렁이는 눈으로 냉여옥을 바라보던 백염 노인
이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실례했소이다. 노부는 다만 심복지환 하나가 더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노파심에서...』
『흥!』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고 외면하며 코웃음을 치는
냉여옥이었다. 그러나 백염 노인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
한 듯 다시 자애로운 얼굴로 말을 계속했다.
『머지않아 무림은 노부의 수중에 들어오고, 그리되면 원주 각
하와 부왕의 뜻도 이루어질 터. 축배를 들 날도 멀지 않았소이다.
한데, 노부가 부탁한 것은 가지고 오셨는지?』
그가 의미심장한 눈길로 냉여옥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냉여옥
이 품속에 손을 넣었다.
『물론 가지고 왔소이다.』
그녀가 한 통의 밀봉된 서찰을 꺼내 백염 노인의 손에 건네주
었다. 노인이 만면에 미소를 띄고 그것을 개봉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당금의 황제인 가정제의 옥새가 찍힌 한 통의 밀지였
다. 잠시 그것을 훑어본 백염 노인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좋소, 좋아. 노부가 무림을 장악하는 즉시 노부에게
무림왕의 호칭을 내리겠다는 황상의 친서가 있으니 이로써 원주
각하와 노부 사이의 계약은 더욱 명확해진 셈. 노부는 최선을 다
하겠소이다.』
말을 마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냉여옥에게 정중히 포권의 예
를 올렸다.
* * * *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일엽편주 하나가 있었다. 떠오
르는 아침 햇살이 장엄하게 동녘 하늘을 물들이며 한껏 부풀은
돛폭에 젖어들었다. 뱃머리에 부서지는 거센 파도의 비말들이 햇
빛을 받아 영롱한 호박빛 구슬로 찬란하게 피어올랐다가 사라져
갔다.
잠길 듯 잠길 듯 위태롭게 흔들리는 갑판에서 파도의 포말과
해풍에 젖으며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냉여
옥과 미가불이었다.
『사공 도주는 야심이 큰 자입니다. 누구보다도 그를 더 경계해
야 할 것입니다.』
미가불의 우려 섞인 말을 듣는지 마는지 냉여옥은 굳은 얼굴로
수평선만 응시하고 있었다. 냉여옥의 무거운 얼굴을 바라보던 미
가불이 어깨를 떨었다. 보면 볼수록 실로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
각이 들었던 것이다. 천모백계(天謀百計)를 감추고 있는 그녀의
속마음을 그로서는 감히 엿볼 수가 없었다.
『사공 도주 그 여우같은 늙은이의 곁에 있던 여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
미가불이 의중을 알 수 없는 냉여옥의 질문에 당황할 때, 그녀
의 얼굴에는 한 줄기 싸늘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혼
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녀는...』
말끝을 흐린 냉여옥이 눈을 반짝 빛내며 미가불을 돌아보았다.
『대사, 우객 초유성과 사공 도주가 겨룬다면 어찌될 것 같은가
요?』
『빈승의 생각으로는... 초유성 그 아이가 비록 당세에 보기 드
문 고수이긴 하나 아무래도 사공 늙은이에게는 한 수 뒤지지 않
을까 합니다만...』
미가불이 조심스럽게 냉여옥의 눈치를 살폈다. 냉여옥의 눈에
어떤 자신감이 차 오르고 있었다.
『그러면 초유성과 사자검 육초량이 함께 그 자를 상대한다
면?』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던 미가불이 신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 둘이 힘을 합한다면.... 그것은 실로 무섭다 아니할 수 없
겠지요... 아마도 사공 도주와호각을 이루리라 여겨집니다.』
『틀렸어요.』
『...?』
서슴없이 부정하는 냉여옥의 말에 미가불은 의아하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로서는
뜻밖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생사도주는 실로 두려운 고수였다. 그 자에게
서슴없이 이 시대의 절대자라는 칭호를 붙여 주어도 과하지 않을
것이었다. 당대 제일의 고수로 꼽혔던 철협 강사옥이 살아 있다
고 해도 그가 만일 생사도주와 겨룬다면 꼭 이긴다고 볼 수가 없
었다. 어쩌면 생사도주의 화후가 강사옥보다 한 치쯤 높을 것이
었다.
그런 자인데, 초유성과 육초량이 아무리 당대에 명성을 날리는
고수들이라고는 하나 그들이 생사도주를 꺾을 수 있다고는 장담
할 수 없었다. 미가불은 여전히 그들이 합격해야 겨우 생사도주
와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힘을 합한다고 해서 그것이 혼자였을 때보다 두 배
의 위력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원
래의 능력에 삼 할이나, 많아야 반 정도의 위력이 더해질 뿐인
것이다. 미가불이 의아해 하는 것은 당연했다. 냉여옥이 눈살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미가불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현재의 수준에서 육초량 그 야수 같은 사내를 평가한다면 분
명 대사의 판단은 훌륭한 것이지요. 하지만 대사께서는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어요.』
『...?』
『그것은 그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대
사는 잊으셨나요? 사 년 전, 청목림에서 그는 나형도의 일도에
패하여 달아났었지요. 그러나 석 달 후에는 본원의 특호사령 다
섯을 베었을 정도로 믿지 못할 발전을 했어요.』
『아!』
미가불의 눈에 비로소 감탄과 함께 부끄러운 빛이 어렸다. 과
거를 더듬어 현재를 판단하고 그것으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냉여옥이 담담한 얼굴로 말을 계속했다.
『그로부터 사 년이 흘렀어요. 그 때와 지금의 그와는 또 상상
할 수 없는 차이가 있지요. 그 당시의 그는 단지 거친 수행자에
불과했지만, 지금의 그는 감히 엿볼 자가 없는 거인의 풍모를 갖
추고 있어요.』
『......』
미가불은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육초량의 상상을 불허하는
발전에 대해서는 그 또한 경이롭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육초량에 대해 내심 천부적으로 타고난 검귀(劍鬼)라고까지 생각
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는 또 얼마나 다르게 변모할지 알 수 없는 터. 후
후, 아마도 사공 늙은이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게 분명해요. 그것 때문에 그 자는 초유성과 육초량
의 검을 당해내지 못하고 패하게 될 것이에요.』
『......』
『결국 그는 초유성의 유수검이나 육초량의 폭풍검 아래 죽게
되겠지요.』
미가불은 더욱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냉여옥의 차갑게 가라앉은
옆모습을 바라볼 뿐, 말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
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오나 그들이 꼭 힘을 합쳐 생사도주를 상대하리라고는...?』
그래도 한 가닥 남아 있는 의혹으로 미가불이 고개를 갸웃거리
자 냉여옥이 그를 바라보며 신비롭게 웃었다.
『사공 늙은이와 초유성이 싸울 수 있도록 부추겨 주기만 하면
일은 간단히 이루어져요.』
『그것이 가능할지..... 초유성이라는 자는 강호의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는 별난 자 아닙니까?』
미가불은 그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냉여옥이 다시 독백하듯
낮게 중얼거렸다.
『그 일은 사공 늙은이가 그림자처럼 곁에 두고 있던 그녀에게
달렸어요. 나의 짐작이 틀림없다면 그렇게 될 거예요.』
잠시 말을 멈추고 골똘하게 생각에 잠겨 있던 냉여옥이 까르르
웃었다.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초유성과 사공 늙은이를 부추겨 서로
싸우게 하고 사공 늙은이가 눈치채기 전에 슬며시 빠져 나오기만
하면 돼요. 그러면 초유성과 육초량 그 둘이 깨끗하게 뒤처리를
해 줄 것이에요. 그런 다음에는 다시 그들을 하나하나 잡으면 되
지요. 아니, 초유성은 그럴 필요도 없을 거예요. 그는 곧장 강호
를 등질 테니까.』
『아-!』
미가불은 자신도 모르게 놀람의 탄성을 터뜨렸다. 도대체 이
아름답고 고귀한 여인의 어디에 그런 치밀한 계략들이 들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경이로운 눈으로 냉여옥을 바라보며 실
로 무서운 모사(謀士)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참으로 두 번 다시
상대하고 싶지 않은 모사였던 것이다.
『호호호... 생사도주 그자는 결국 이 일의 결과를 보지도 못하
고 죽게 될 것이에요. 무림왕의 꿈도 헛된 거죠. 호호호, 그렇게
되면 나의 계획은 더욱 완벽하게 성사되지 않겠어요? 힘 하나 들
이지 않고 말이에요.』
상상만 해도 통쾌한 듯 연신 짜랑짜랑한 교소를 터뜨리는 냉여
옥이었다. 격장지계(激將之計)에 금선탈각(金蟬脫殼), 그리고 차
도살인(借刀殺人)의 삼계(三計)를 교묘히 배합한 그녀의 계책은
한 번 얽혀들면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치밀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놓고 그녀 자신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다가 어
부지리(漁夫之利)를 취하겠다는 것이었다.
『바람이 차가워요. 그만 안으로 들어가지요.』
유쾌한 듯 말하고 돌아서는 냉여옥을 보던 미가불이 대체 그녀
의 음모는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알 수 없다고 중얼거
렸다.
<2>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불빛 하나 밝혀지지 않은 대전의 어둠 속에서 무거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웅풍전(雄風殿)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전 밖에서 한 줄기 음사(陰邪)한 목소리가 대답해 왔다.
『그를 들라 해라.』
어둠을 가르고 번쩍이던 눈을 지긋이 감으며 생사도주가 태사
의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대전의 거대한 문이 열리고 한 사나이
가 조심스럽게 머리를 숙인 채 들어섰다. 그의 등뒤에서 다시 문
이 닫혔다. 한치 앞을 알아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사나이가 가
볍게 옷을 털고 공손히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속하 진필생, 도주님을 뵈옵니다.』
긴장으로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는 바로 무림맹의 맹주인 신기
수사(神機秀士) 진필생(陳筆生)이었다.
어둠 속에서 생사도주의 낮은 음성이 진필생의 어깨를 눌러왔
다.
『가까이 오라.』
『명을 받듭니다.』
진필생이 바닥에 이마를 한 번 찍고 조심스럽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시종 대전 바닥을 향한채였고, 어
깨를 미미하게 떨고 있었다. 잠시의 침묵 뒤에 생사도주의 무거
운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동안 네가 고해 온 무림 중의 소식들은 실로 정확하고 유용
한 것들이었다.』
생사도주의 한마디에 진필생이 거듭 차가운 바닥에 이마를 찧
었다.
『신은 다만 소임을 다하였을 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진필생은 스스로를 신(臣)이라고 칭했다. 무거운 침묵이 이어
졌다. 진필생의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바닥을 적셨다.
『한 가지 의심스러운 일이 있어서 묻고자 한다.』
진필생이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가까스로 참으며 겨우 말했다.
『하문하소서.』
『육초량이라는 아이에 대해서다.』
『...?』
『네가 처음 나에게 그 아이의 존재를 보고했을 때는 그 아이가
우연히 천제무황경 상의 혼원장공 비급을 손에 넣었다는 것이었
다.』
『그러하옵니다.』
대전 바닥에 머리를 떨구고 있는 진필생의 눈이 반짝 하고 빛
났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생
사도주의 무거운 음성이 진필생의 머리를 지긋이 눌러왔다.
『한데, 그 뒤 그 아이가 다시 옥풍규를 죽여 그에게서 유마검
보를 탈취하고, 그 후에는 냉여옥에게서 탄지십팔해까지 빼냈다
고 하였다.』
『......』
『옥풍규는 너의 수중에 있었는바, 어찌하여 그가 옥풍규를 죽
이고 비급을 탈취해 가도록 방관했느냐?』
『그것은...』
부르르 몸을 떤 진필생이 마치 그러한 질문이 있을 것을 예상
하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강사옥이 이미 옥풍규에 의하여 제거되었으므로 그를 더 이상
이용할 필요가 없어졌던 탓입니다. 다만 육초량이라는 자가 비급
을 탈취해 가지 못하도록 막지 못한 것은 소신의 실수입니다. 그
자가 옥풍규를 죽인 즉시 들이쳤사오나... 의외의 일에 부닥쳐서
그만...』
『의외의 일?』
『그러하옵니다. 그 자가 옥풍규를 죽인 객사 안에는 놀랍게도
냉여옥이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냉여옥이 그 자와 함께 있었다고?』
생사도주의 입에서 의외라는 듯 탄성이 흘러나왔다.
『신이 생각키로 그녀는 이미 그 자와 내연의 관계에 있지 않았
나 하옵니다. 옥풍규는 홀로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었던 바, 그것
을 알고 분에 못 이겨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가 당한 듯
싶었습니다.』
『......』
『신이 수하들을 이끌고 들이쳤을 때, 그 자는 냉여옥의 도움을
받아 유유히 떠났사옵니다. 신은 냉여옥을 칠 수도 없어서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으음...』
생사도주가 침음성을 발했다. 그는 진필생의 망설임 없는 대답
에 그런 대로 수긍하는 모양이었다. 진필생이 막힘 없는 달변으
로 말을 계속해 나갔다.
『그 뒤 그들은 귀문에 의하여 생포되었고, 다시 찰포사자들에
의하여 구출되었습니다.』
『......』
『그 전에 냉여옥은 이미 육초량에게 몸도 마음도 현혹되어 아
낌없이 그녀가 지니고 있던 비급을 건네주었고, 그 자는 그것을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장소에 감추어 놓은 듯합니다.』
『그래서 귀문에서 그를 사로잡고도 비급을 갈취하지 못했다는
게로군.』
『그러하옵니다.』
다시 한 번 이마를 땅에 찧은 진필생이 눈을 교활하게 굴렸다.
『그 후 육초량은 냉여옥과 헤어져 홀로 강호에 나선 바, 신은
그 자가 적당한 때에 감추어 둔 비급을 찾으러 갈 것으로 보고
수하들에게 엄중히 감시하라 일어두었사옵니다.』
『......』
진필생은 생사도주가 자신에게 묻고자 했던 것들에 대하여 책
을 읽듯이 줄줄 대답했다. 그의 말은 조리가 있었으며 앞뒤가 서
로 맞아 추호도 의심할 만한 꼬투리가 없었다. 그것은 진필생이
여덟, 아홉 가지의 진실에 한 두 개의 거짓을 교묘히 섞어 말했
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은 대부분이 사실 그대로였다. 다만 가장
중요한 부분에 이르러서 살짝 거짓을 섞었기에 누구라도 쉽게 그
것을 가려낼 수 없었다.
그는 또 육초량과 냉여옥을 함께 묶어서 이야기함으로 눈에 띄
지 않는 두 가지의 효과를 노리고 있었다. 그 하나는 육초량의
존재를 고작 냉여옥에게 기대고 있는 미미한 것으로 보이도록 한
것이었으며, 둘째는 생사도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냉여옥을 의
심하도록 유도해낸 것이었다.
육초량의 존재가 작게 보이도록 하려는 것은 만약을 대비한 노
림수를 감추어 두자는 것이었고, 냉여옥과 생사도주의 사이를 벌
어지게 하려는 것은 그 또한 그들 틈에서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
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오직 진필생 그만이 알 일이
었다.
『냉여옥, 그녀가...?』
어둠 속에서 생사도주의 의아해 하는 독백이 흘러나왔다. 고개
를 떨구고 있는 진필생의 입가에 한 줄기 회심의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면 장차 그 아이를 어찌 처리할 생각이냐?』
『그것은...』
이미 모든 계획이 서 있다는 듯 진필생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머지않아 그 자는 결국 본도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니, 그 동안 군웅들이 그 자를 해치지 못하도록 암중에서 도
와줄까 합니다.』
뜻밖이라는 듯 생사도주가 아? 하는 탄성을 발했다.
『어째서?』
『그 자가 살아 있어야 중원 무림의 눈이 모두 그의 몸에 쏠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본도의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강호
인들의 눈을 잠시 가려줄 좋은 연막이 될 것입니다.』
진필생의 대답을 들은 생사도주가 크게 만족한 것 같았다. 그
가 유쾌하게 말했다.
『좋다. 그 일은 너에게 맡기마. 공을 세운다면 후에 큰상을 내
릴 것이다.』
『황공합니다.』
진필생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생사도주가 자신에게 육초량을 잡거나 죽이라는 명을 내릴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마디 말로써 가볍게 그 어려운 일을
피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강호에서 육초량을 해칠 수 있는 자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따로 그를 도와주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그저 마음 편하게 강호인들과 육초량과의 갈등을 구경하고 있으
면 되는 것이다.
몇 마디 말로 생사도주의 신임을 얻어내고, 냉여옥과 그를 이
간시켰으며, 자신은 어려움에서 가볍게 빠져 나온 진필생의 심계
또한 무섭기 짝이 없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생사도주의 무거운 음성이 다시 들려왔
다.
『그 일은 그렇다 치고, 무림맹의 일은 어찌 되어가고 있느냐?』
진필생이 송구하다는 듯 머리를 깊이 숙였다.
『신이 미욱한 탓에 아직... 하오나 몇몇 인물들만 처리하면 소
임을 완수할 수 있사옵니다.』
『시일이 촉박하였는데도 아직 꾸물대고 있었다니...』
생사도주의 언짢아 하는 기색을 눈치챈 진필생이 바짝 긴장하
여 더욱 깊숙이 엎드렸다.
『신이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하오나 남아 있는 몇몇 인물들
은 그 지조와 기개가 남달리 강해 회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섣
불리 말을 꺼냈다가는 오히려 분란을 자초할 듯 싶어 신중을 기
하고 있는 중이옵니다.』
『그 자들이 누구냐?』
생사도주의 말에 짜증이 묻어났다.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진
필생이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했다.
『분타주 셋과 향주 일곱, 그리고 본회의 오대호법이 그들입니
다.』
무엇을 생각하는 듯 잠시 침묵을 지키던 생사도주가 한참 만에
야 다시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 이곳의 일이 끝난 후 본좌가 중원
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무림맹의 방대한 세력이 본좌의 수족과
같이 되어 있지 않다면 본좌의 원대한 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있
게 된다.』
『황공합니다.』
처분만을 바라겠다는 듯 진필생은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
다. 생사도주의 결연한 음성이 어둠을 흔들었다.
『여의치 못하면 모두 제거해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빠른 시일
안에 그들을 복속시켜라.』
『하오나...』
조심히 고개를 들던 진필생이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타오르는
두 개의 눈빛을 대하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가 다시 급히 머
리를 대전 바닥에 떨구었다.
『다른 자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오대호법은 각기 정도 오파의
명숙들이온데..... 그들 오파가 무림맹에 등을 돌린다면 그 또한
막대한 손실인바.... 소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사옵니
다.』
『못난 놈!』
생사도주의 싸늘한 일갈에 진필생이 급히 입을 다물고 숨을 멈
추었다.
『강제로라도 그들을 제압하여 충성을 맹세하도록 하면 될 것이
아니냐!』
『황공합니다.』
한동안 지긋이 진필생을 노려보던 생사도주가 훨씬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너의 고충을 본좌가 모르는 바 아니다. 내 너를 도울 수 있는
인물 하나를 보내 주마. 그와 함께 돌아가 일을 마무리짓도록 하
여라.』
진필생이 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던 바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의 눈에 득의의 빛이 떠올랐다. 생사도주가 어둠 속에서 진력
이 충만한 음성을 터뜨렸다.
『그를 모셔와라!』
(그를 모셔와라?)
대전 바닥에 이마를 박고 있던 진필생의 눈이 의아함으로 반짝
였다. 생사도주의 말투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생사도 안에
서 그는 가히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모
셔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
다.
진필생이 부지런히 염두를 굴리고 있을 때, 육중한 소리와 함
께 대전의 문이 다시 열렸다. 가득히 쏟아져 들어오는 불빛을 등
뒤에 두고 태산처럼 장중한 기도로 서 있는 한 사람이 진필생을
위축되게 했다. 가만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진필생의 눈에
경탄의 빛이 가득 일렁였다.
(대단하다. 누굴까?)
단지 서 있을 뿐인 그에게서 풍겨오는 무겁고 엄숙한 기세가
결코 생사도주의 아래가 아닌 듯 싶었다. 또 한명의 초인이었다.
첫댓글 즐감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별일없이 여행기셨다니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
걱정많이 했습니다
여행가신줄두 모르고 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엄청 기다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즐~~~감!
즐독 감사합니다
생사도...최고...
잘 보고 갑니다
여행다녀오셨다니 다행 입니다! 즐독 합니다!
고맙습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하셨는지요?
감사합니다
역시나 여행 때문에 늦어 졌군요.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감니다;감사
즐감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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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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