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기사로 배를 탈 때 기관장님으로는 해대 1기생, 3기생, 8기생 대선배를 모시고 탔다.
모두들 육상에 계시다가 배를 타면 돈이 된다고 해서 다시 면장을 살려 나온 분들이었다.
1기생과 3기생은 기관실에는 아예 내려오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를 그만큼 믿기도 했지만 내려와서 지시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옛날에 다가네(정)와 망치만 있으면 수리가 가능했던 기관이 아니라 전자회로와 시퀜셜회로를 모르고서는 운전을 할 수 없는 자동화선으로 탈바꿈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1ㅣ기생 기관장님은 자고 나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에서 혼자 카드로 그 날의 운수를 점쳤다. 바다 위에서 보이는 것은 사방을 빙 둘러 시퍼런 물뿐인데 변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오후 과업이 끝나고 나면 훌라팀을 만들어 열시 열한시까지 훌라를 하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카드만 만져도 당시 하룻밤을 자고 나면 쌀 한가마씩 생기는 월급이었다. 놀고 먹는 자리가 이 보다 더 좋은 자리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카폐 글 번호가 8888번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9자를 좋아해도 중국사람들은 8자를 좋아하고 서양사람들은 럭키세븐이라고 7자를 좋아한다. 8이 넉장이면 포커게임에서는 포우 카드로 족보가 상당히 높다.
내가 오늘 포우카드를 한 셈이다. 카폐를 개설할 때만 하여도 많은 친구들이 찾아올 것으로 기대를 했으나 요즘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 찾는 손님들이 떨어지고 말았다. 가오마담이 못나서 그럴 수도 있겠으나 각자가 마담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나?
매일 메뉴 글 한 편을 쓰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어떤 때는 저장을 하지 않고 시간이 오래되어 그 동안에 작업했던 상당한 분량들이 일시에 확 다 날아가버릴 때도 여러 번 있었다. 그 때의 황당함이란 .....화가 치밀어 키보드고 모니터고 뭐고 다 때려 부수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루 글 한 편씩 쓴다 해도 8888번을 채우려면 24년이 걸린다. 물론 나 혼자서 쓴 글은 아니다. 여러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서 이룩한 성과다.
나 역시 종심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숱한 고난을 물리쳐야 했다.
병마에 시달리면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도 하고, 선거에 참패하여 좌절을 맛보기도 하였다.
고비를 넘길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희로애락에 물들지 않는 바위가 되고 싶었다.
하여 때론 유치환의 ‘바위’가 생각나곤 했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치환, 바위-
포커 페이스란 말이 있다.
돌부처 같이 표정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포커게임에서는 상대편 표를 읽을 수 있어야 딸 수 있다.
신참들은 패가 잘 들어오면 금세 표정이 밝아진다. 눈치9단인 노름꾼이 이걸 놓칠 리 없다.
손자병법에서도 ‘지피지기면 백전백태’라 했다. 상대를 모르고 어찌 무모하게 이낄려고 하는가?
해군에 있을 때 억지로 포커를 배웠다.
장교가 너댓 명뿐인 소해정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출동 나가서 주야장창 바다 위에서 시간 보내기도 지겨우니까 함장이 귀항해서 술내기 포커를 하자고 하니 빠질 수도 없었다. 내가 빠지면 게임멤버가 구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함장이 고등학교 선배였다. 나중엔 친하게 지내게 돼서 서울 사는 처제까지 소개시켜 주었는데 여자 다루는 데 서툴렀던 내가 놓치고 말았다.
포커게임에서 제일 높은 족보가 로열 스테레이트 후랏쉬이다.
같은 무늬로 10 J Q K A로 5장이 스트레이트로 나열된 카드이다.
평생에 한 번 해 볼까 말까 하는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족보다.화투로 치면 삼팔광땡이다.
이 패가 나오면 주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행운이라 해서 호주머니에 있는 돈까지 탈탈 털어서 패를 잡은 사람에게 준다고 소문을 들었다. 어찌됐든 나도 그런 패를 한 번 잡았다. 행운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듬해 해군에서 제대를 했다.
송출회사에서는 해기사들이 모자라 외국에서 배를 인수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각 선사에서는 해무감독들을 진해에 파견하여 제대하는 해기사들에게 술을 받아주면서
미리 대명비까지 주면서 자기네 회사로 입사할 것을 권유했다
포커 게임에서 로열 스트레이트 후라쉬를 잡았으니 뭔가 행운이 걸릴 것이라고 은연중 기대를 하고 있었으나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다른 동기생들은 제대를 하자마자 신체검사를 마치고 배를 타고 나갔다.
나는 신체검사를 했는 데 ‘승선불가 판정’을 받았다.
해군에서 2년간 술만 퍼 마시고 지내다 보니 몸이 허약할대로 허약한 상태였다.
금산고모님이 위장에 좋다고 옷진액을 작은 병에 담아 보내셨는데 그걸 먹고 옷이 올라 죽을번 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옷을 타지 않아 봄이면 옷 순을 꺾어 아버지와 나물을 해 먹곤 했었다. 그런데도 허약해지니 옷이 올랐고 함께 있던 하사가 결핵에 걸린 탓에 나까지 폐결핵에 감염이 되고 만 것이었다.
친구들을 다 떠나보낸 후에 혼자 남은 심정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집안 식구들이 당장 먹고 살아야 하고 동생들 학비까지 책임져야 할 처지인데 배를 타지 못하고 병원에 다니면서 주사도 맞고 약을 챙겨 먹어야 하니 신세가 말이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대명비까지 챙겨 주어서 그럭저럭 6개월을 허송세월 한 후에 겨우 ‘승선가’라는 판정을 받아 배를 타고 나갔다. 물론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가방 속에 한 보따리를 챙겨넣었다. 해군 복무기간 2년의 세월을 축지법이 아닌 축시법으로 잊으려고 원도 없이 마신 술이 결국은 자신의 몸뚱아리를 해코지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미 만신창이가 다 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