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후반대의 나이이고 어릴때부터 어머니가
농구를좋아하시고 고려대의 현주엽선수를 좋아하셔서
어릴때 같이 본 기억들이 있습니다. 유명했던 백보드부수는
백덩크도 기억이나고, 2002아시안게임에서 중국과결승전
에서 현주엽선수가 승리에 많이기여했던 그런모습들이
아직까지도 기억이날정도로 임팩트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현주엽선수에대해서 더아는것은 국농겔에 검색등을통해서 알게되었지 프로무대에서 모습을 실제로 잘못보다보니 궁금한게있습니다..
현주엽의 프로 커리어로는 지금까지의 그 많은 인기를 설명하기엔 다소아쉬움이있잖아요??? 그런데도 많은사람들이 그를 한국농구의 전설중의한명으로 인정해주는 이유는 어떤게있을까요????
어그로가아니고, 여전히 방송에서 프로농구스타로 출연이 가능할정도의 인기가있는 인물들이 농구대잔치시절 서장훈, 현주엽 우지원등을 제외하면 없잖아요..:그중에 현주엽 선수는 우승경력도, 프로시절압도적 스탯 찍은것도 다소아쉬운데 인지도가 상당하고..
여러분들은 어떻게 추억하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첫댓글 현주엽, 전희철 정도면 연대 스타들 못지 않는 인지도가 있다고 봅니다~ 또 프로에서도 전성기 시절(개인적으로 ktf시절)엔 국내 탑급 활약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ㅎ
한국 프로농구 최초의 포인트 포워드
한국형 찰스바클리라 불리던 엄청난 파워와 바스켓 센스를 겸비한 재능덩어리
휘문고시절 65점을 내리꽂아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고교생 신분으로 농구대잔치 덩크대회에 참가하는 재능도 있었고 97년 abc대회에서 덩크경연 중에 백보드를 부셔버렸죠 그리고 2002아시안게임 농구금메달 멤버이고 고려대시절 한국농구 인기를 이끈 주역이기도 하죠 득점상도 차지했고 인기도 뛰어났으며 막강기아를 무너뜨린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비록 프로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그외의 업적만으로도 충분히 전설적인 선수라 불려도 무방하죠
재능으로 치면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허재, 서장훈 포함해서요
프로에서는 너무 많은 부상으로 좋지 못했죠
재능만 보면 KBL 이후의 한국에서 5손가락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부상만 없었다면 적어도 트리플더블은 국내 1위를 했을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04~05시즌이 정말아쉽습니다 ㅜ mvp도 거의다받았는데 용병부상으로 막판4위까지인가 밀려서 ㅜ 6강에서 삼성에게진것도 ㅜ 맥기,미나케 진짜 강력했었는데
박상오 mvp시절 업그레이드 버젼 + 리딩 이라고 생각하시면 될듯 합니다
농구센스로만 치면 허재급.
지금 현주엽이랑 비교될만한 국내선수가 전혀없어 이해가 안되시는 겁니다. nba로 치자면 그당시 현주엽은 한국의 앤서니데이비스급은 된다고 생각됩니다
프로커리어로 보면 레전드급이 아니긴 하죠.
생각보다 보여준게 많이 없기도 하고요.
허나 인기빼고도 빼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죠.
윗분 말씀처럼 재능만 따지면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학1학년때부터 막강 고대의 에이스이자 실업 포함 포지션 no.1에 준하는 활약을 보였고 대학4학년때는 대회평균 40점가까운 득점력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아마 mbc배였던 거 같고 준결까지 평득이 45점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프로에서도 데뷔시즌 트리플더블과 함께 3시즌 정도는 20-5-5이상의 스텟을 찍었구요. 많은 사람들이 힘좋고 센스 좋은 선수 정도로 기억하지만 부상전에는 운동능력도 어마어마하고 슛까지 좋았습니다.(점프슈터다 보니 탄력 죽으면서 슛도 안 좋아지더라구요... ㅜㅜ)모 방송에서 슛대결했는데 우지원 꺾고 1등한 기억이 나네요.
혀재의 중학시절, 현주엽의 중학시절부터 봤는데요. 한국농구 역대 최고의 재능이 허재라면 가장 근접한 천재가 현주엽이에요. 여기서 재능이라 하면, 이충희 처럼 기가막힌 슛, 이상민같은 컴퓨터 패스, 강동희의 유연한 드리블 같은 특정 분야의 스킬이 아니라 게임을 지배하는 농구재능을 의미합니다. 소위 말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이죠. 중고등시절의 파괴력으로만 치면 현주엽은 허재나 서장훈보다 위였어요. 저에게 있어 고등학교 경기를 보면서 선수에 대한 경외심을 가졌던 선수는 허재와 현주엽이 유일합니다.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초고교급 선수라는 말이 처음으로 붙은 선수로 기억하네요.
2002 농구 금메달 하나만으로도 리스팩 할 가치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주역이었죠,
선수생활 말년에 와서 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어갔는데 본인이 밝힌 바로는 그 때 몸상태가 안 좋아서 한 스텝을 더 놓고 슛을 올라갈 힘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네요. 그런데 농구팬들은 그 경기를 보고 패스센스에 감탄했죠. 부상이 없었다면 프로에서도 레전드급 활약을 했을텐데 참 아쉽습니다.
프로 출범전 농대 시절에 이미 전국구 스타였지요 농대시절 거의 마지막 스타라고 보시면 되는데 센세이셔널했지요
사실상 상대가 없던 서장훈의 대항마로 대학 데뷔전부터 많이들 꼽았는데 사실 포지션이나 사이즈로
서장훈을 막기는 어려웠으나 비교적 좋은 모습 보여줬고 사이즈 대비 믿기 어려운 스피드와 힘, 탄력을 보여줬습니다 거기다 그 무엇보다 더 훌륭한 건 그의 영리함이었죠
대학1학년때 전체 농구대잔치 베스트5에들었고 전희철,김병철이 졸업한3학년부터 에이스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죠 패스에 주력하다가 팀이 위기상황에선 득점을 하는 스피드가줄고 파워가 생긴 현실판 윤대협이었습니다 용병과 1대1이 가능하며 부상없이 지금의 용병제로 프로농구에 데뷔했더라면 kbl의 르브론이 되었을거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