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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 선종.. 이라는 말이 있다.
승려가 돌아가시거나 신부님이 돌아가실때 사용되는 언어다.
선종의 뜻은 "대죄(大罪)가 없는 상태에서 죽다" 이다.
대죄란 그가 살면서 지옥에 갈 죄를 짓지 않았다는 표현이다.
열반은 승려의 죽음에 사용되는 언어로
그 뜻은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즉 생사의 윤회와 미혹의 세계에서 해탈한 깨달음의 세계를 말한다.
스님이 "열반하셨다" 라는 것은 깨달음을 통하여 번뇌와 고뇌가 소멸된 상태로 돌아감을 말한다.
선종의 중요 의미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가로막힌 죄를 해결함을 말하고..
열반의 중요 의미는 업을 벗어남을 말한다.
개신교인 기독교에서는 소천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늘로 가셨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표현하기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 5:1)고 이야기 한다.
인생이 한 번 태어나서 한번 죽는 것은 이치이다.
누구나 거쳐가는 죽음이다.
어떤 사람은 찰나의 죽음을 당하기도 하나..
어떤 사람은 목숨이 끊어지지 않아 괴로움속에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보내기도 한다.
이는 절에 다니는 분도.. 천주교에 나가는 분도.. 교회에 다니는 분도..
무신론자도.. 기타 다른 종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살면서 선을 많이 쌓았기에 그가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아니고.
악행을 많이 하였기에 그의 죽음에 고통이 따르는 것도 아니다.
죽음은 선을 행한자가 더 고통스러웁게 죽을 수도 있고..
악을 저지른 자가 더 수월하게 죽을 수 있다.
죽음에 이르러서 수월함과 고통의 차이는 신체와 장기의 생존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죽음은 선인이나 악인이나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이나 모든 자들에게 공평하게 다가 온다.
그러나 이러한 공평하게 다가오는 죽음 뒤에는 뒤따르는 두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거기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선인들은 이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겨 놓았다.
그 내용은 대체적으로 권선징악이다.
선하게 산 사람들은 좋은 곳에 악하게 산 사람들은 나쁜 곳에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이면
선하게 산 사람들은 좋은 곳에 가기 때문에 죽음을 그리워하고 환영해야 하지만
선한 사람들조차도 죽음을 그리 반기지 않는 분위기이다.
죽음자체가 주는 의미가 공포가 있기 때문이다.
큰 업적을 남기고 간 스님들을 보면 그분들은 자신의 죽을 때를 대략 알고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이 갖고 있는 육체의 에너지를 대략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왕성했을 때의 삶의 모습과.. 죽음 직전의 모습..
죽어가는 자신을 속절없이 바라만 봐야 하는 모습속에 그들은 죽으면서 "무로다"를 외치고 돌아 갔다..
모르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속절없이 무너지는 장막을 바라보며 마지막 외마디의 비명이다.
저들은 생사와 사계를 바라보며 윤회를 생각했을 것이다. 저들은 화복을 바라보며 업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간에서 바라보는 추측이다.. 막상 끝에 서보니 깜깜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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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새 몇일 강상원 박사님의 언어의 어원을 몇개 보았는데...
유럽여러 나라와 스페인어의 어원을 라틴이지요.
한자도 한글도 ... 그 어원을 찿아 가니
산스 크리스토 단어를 쓴것이라 하더 군요.
4대 문명과 남미의 잉카 마야 문명의 언어들이 그 뿌리는 같은데
한국말의 8도 사투리들이 산스 크리스트 어를 아직도 사용한다는 내용입니다.
그중 마고 하는 말이 있는데
카톨릭에서 마고 라는 것은 삼성이라는 뜻이지요.
마야 라는 것도 마고라는 것이고...
내가 잠시 삐끗했는지..
노아의 홍수와 빙하기 마고의 역사 4대문명 홍산 문명
그리고 스페인의 14000년전 동굴 벽화
어제는 파키스탄과 인도의 종교전쟁 그리고 영국독립으로
서로가 원수가 됨
하나는 돼지를 숭상하고 다른 하나는 소를 숭상을 하고
전부 쓰잘데 없는 것이지만
저는 여기서
숫자 놀이이야기 많이 해줌니다.
1이 진리냐? 2냐? 3이냐?아니면 10이냐? 12냐?
카톨릭에선 3이고
유대교에선 1이고
불교에선 12죠.
유교에서는 5이고..
사랑과 자비가 무엇이냐? 라고 물어 본다면
사랑을 알기 위해선 돈을 알아야 하고
돈을 알기 위해선 건강을 알아야 한다.
맨날 그말이 그말...
스페인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이야기는 그만 해야 겟어요
내가 손해 나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