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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半島), 조선팔도(朝鮮八道) 허구(虛構)를 논하다. [제2편]
(2) 왕성(王城) 기내지지(圻內之地)【圻 : 京畿 圻 : 왕성(王城)을 중심(中心)으로 오백(五百)리의 땅】
➊《王 城 圻 內 之 地. 本 馬 韓 之 域. : 왕성(王城)은 경기(京畿) 내(內)의 땅으로 본래 마한(馬韓)지역이었다.》고 하였는데, 오늘날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은, “마한(馬韓)의 땅은, 충청(忠淸)·전라(全羅)의 땅”이라고 한다.
뭐가 잘못된 것이냐? 또 기(圻)란 기(畿)와 같은 말로, ‘기내(圻內)=기내(畿內)’의 땅은 천리(千里)이고, 황성(皇城)을 기준(基準), 5백리 땅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동서(東西) 천리(千里), 남북(南北) 천리(千里)의 땅으로, 천자(天子)가 직접(直接) 다스렸던 곳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규모(規模)는 작고, 좁은 반도(半島) 땅과는 관계(關係)없는 이야기다.
일례(一例)로,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에는, 경도(京都) 한성부(漢城府)의 ‘봉경(封境)’에 대해 말하기를 : [封境 : 東至襄陽五百四十里,西至豐川六百里,南至海珍九百八十里,北至閭延一千四百七十里,東北至慶源,東南至東萊八百七十里,西南至泰安三百九十里,西北至義州一千一百四十里.봉경(封境) : 동쪽으로 양양(襄陽)에 이르기 5백 40리, 서쪽으로 풍천(豐川)에 이르기 6백 리, 남쪽으로 해진(海珍)에 이르기 9백 80리, 북쪽으로 여연(閭延)에 이르기 1천 4백 70리, 동북쪽으로 경원(慶源)에 이르고, 동남쪽으로 동래(東萊)에 이르기 8백 70리, 서남쪽으로 태안(泰安)에 이르기 3백 90리, 서북쪽으로 의주(義州)에 이르기 1천 1백 40리이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당시(當時)의 한성부(漢城府)가 관할(管轄)했던 땅’을 말하는 것으로, 바로 ‘기내(圻內)=기내(畿內)’의 땅으로, 천자(天子)가 관리(官吏)을 임명(任命), 직접(直接) 다스렸던 땅을 말하는 것이며, 그 외(外) 팔도(八道)에는, 관찰사(觀察使)인 왕사(王師)를 파견하여 다스렸다.
➋《四 方 輻 湊. 蠻 戎 賓 服. : 왕성(王城)은 사방의 중심이 되었으며, 만융(蠻戎)이 와서 복종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곧 당시(當時) 조선(朝鮮)의 도성(都城)에는, 사방(四方)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남(南)쪽의 만이(蠻夷)들과 서(西)쪽의 서이(西夷)들까지 와 복종(服從)하였다는 이야기다.
만이(蠻夷)와 서이(西夷)가 와, 복종(服從)하였다. 반도(半島) 땅에서 이런 이야기가 먹힐까?
➌《開 京 士 女 素 服. 尙 聲 律. 古 國 之 風 也. : 개경(開京)의 선비와 여인은 흰옷을 입고 성률(聲律)을 숭상하였으니, 고국(古國)의 풍모이다.》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그동안 해방(解放)이후(以後) 70년이 넘는 동안 가르침을 받은 것을 보면 : 동방(東方)의 예의지국(禮儀之國) 소중화(小中華)는, “백의민족(白衣民族)”으로 흰옷을 숭상(崇尙)하며…하였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개경(開京)은 고려(高麗)의 황도(皇都)였다. 이성계(李成桂)의 역성(易姓)혁명(革命) 곧 ‘쿠데타’로 인하여, 나라가 망해버리자, 사대부(士大夫)와 여인(女人)네들은 소복(素服) 곧 흰옷을 입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해석(解釋)하면 : 다른 곳의 사람들은 흰옷을 많이 입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라가 망해버린 옛 나라 사람들 중에서 특히 도성(都城)에 사는 사대부(士大夫)와 여인(女人)들이 소복(素服)했다는 말은, 조국(祖國)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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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패서도(浿西道)
➊《浿西朝鮮古地.中略.獩貊,句麗,玄菟皆屬焉.西濱大海.其北閭延,虞芮連靺鞨.: 패서(浿西)는 조선의 옛 땅이다. 중략(中略). 예맥(獩貊), 구려(句麗), 현도(玄菟)가 모두 이 지역에 속한다. 서쪽은 바다에 닿아 있고, 북쪽의 여연(閭延)과 우예(虞芮)는 말갈(靺鞨)과 연접해 있다.》
패서도(浿西道)를 보면, 평안남북도(平安南北道)를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패수(浿水)라는 하천(河川)이 어떤 강(江)이냐? 하는 것이다. 본문 (1)의 ➋를 보면 :《句麗末世.失玄菟,遼東地七百里.以浿水爲界.南北三千里.東西千里. : 고구려 말기에 현도(玄菟)와 요동(遼東) 땅 700 리를 잃어 패수(浿水)로 국경을 삼았다. 남북으로 3000 리이고, 동서로 1000 리이다.》라고 하였으므로, 압록강(鴨綠江)이 곧 패수(浿水)인 것처럼 해 놓았다.
그러나 (3)의 패서도(浿西道)편을 보면 : 대동강(大同江)【황초령(黃草嶺) 북방에서 발원(發源)하는 강(江)으로, 동북(東北)에서 서남(西南)으로 흐른다.】을 패수라고 하여 대동강의 서(西)쪽 지방(地方)을 패서도(浿西道)라고 해 놓았다.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의 패수(浿水)는 정확히 어느 강(江)일까? 패수(浿水)는 옛 원전(原典)에서는, 동(東)쪽 바다로 들어간다[東 入 海]고 한 하천(河川)이다.
● 패수(浿水)에 대하여 /【[네이버 지식백과] 패수 [浿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패수(浿水)를 살펴보자 : 17세기 초에 한백겸(韓百謙)은,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에서 패수(浿水)를 오늘날의 청천강(淸川江)에 비정(比定)했으며, 그 뒤 이병도(李丙燾)가 이 설을 상세하게 고증하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패수(浿水)를 압록강(鴨綠江)으로 보기도 하고, 또는 요서(遼西)지방의 대릉하(大凌河)나 난하(灤河)로 보는 설도 있다. 중략. 때문에 패수(浿水)는 대릉하나 난하로 보기는 어렵고, 청천강(淸川江)이나 압록강(鴨綠江)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삼국시대(三國時代)의 패수(浿水)는 대동강(大同江) 혹은 예성강(禮成江)인데,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에 기원전 6년(온조왕 13)경 백제의 북쪽 경계선으로 기술되어 있는 패하(浿河)는 예성강을 가리킨다. 하지만 735년(성덕왕 34)에 당나라가 정식으로 신라의 영유권을 공인한 이른바 ‘패강 이남의 땅’의 패강은 지금의 대동강을 지칭한다. 중략(中略).】고 하여, 도대체 어디가 패수(浿水)인지 알 수가 없도록 해 놓았고, 또 이해(理解)할 수 없는 것은,
패수(浿水)라는 강(江)이, 무슨 유기(有機)생물체(生物體)처럼 살아있어, 심심하면 나들이 가는 것처럼, 여기저기로 옮겨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수경주(水經注) 패수(浿水)편을 보면 : 첫 머리에 [浿水出樂浪鏤方縣,東南過臨浿縣,東入于海.許慎云:浿水出鏤方,東入海.一曰出浿水縣. : 패수(浿水)는 낙랑(樂浪) 루방현(鏤方縣)에서 나와 동남(東南)으로 임패현(臨浿縣)을 지나, 동(東)쪽 바다로 들어간다. 허신(許愼)의 말에 따르면 : 패수(浿水)는 루방(鏤方)에서 나와, 동(東)쪽 바다로 들어간다. 첫째로는 패수(浿水)현에서 나온다.]라고 기록(記錄)하였다. 중요한 것은, 浿水(패수)는, 半島(반도)의 물을 기술한 책이 아니라는 거다.
또 이곳에 예맥(獩貊)과 구려(句麗)와 현토(玄菟)가 모두 속해 있었다고 하였는데, 예맥(獩貊)은 곧 예(獩)와 맥(貊)인데, 이 중에서 맥(貊)은 ‘북방(北方)종족(種族)’으로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륙(大陸)의 북방지대(北方地帶)를 일컫는 말로, 연(燕)과 함께 있었다.
그래서 전한서(前漢書) 고조(高祖)편에서도 〈‘북맥(北貉)=북맥(北貊)’이 효용(驍勇)스러운 기마(騎馬)를 보내 도왔다.〉는 기록(記錄)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대륙조선사(大陸朝鮮史)로 바라보면 : 연(燕)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북방지대(北方地帶)로 발하슈 호(Balkhash 湖) 서(西)쪽에 있었다. 맥(貊)은 그 동(東)쪽에 있었다.
또 현토(玄菟)는, 진서(晉書)재기(載記)에서 말하기를 :〈진(秦)나라의 장성(長城)을 쌓은 곳이었던 천산(天山)과 하(河) 주변에 있었다.〉고 하였다.【晉書卷101-110.載記第1-10/晉書卷101.載記第一:然則燕築造陽之郊,秦塹臨洮之險,登天山,絕地脈,苞玄菟,款黃河,所以防夷狄之亂中華,其備豫如此.】
어떤 경우(境遇)를 가정(假定)하더라도, 패수(浿水)가 있었던 땅은, 반도(半島)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➋《成川.古沸流之國.亦曰東扶餘.見檀君世家. : 성천(成川)은 옛 비류국(沸流國)이니, 또한 동부여라고 한다. 단군세가에 보인다.》
성천(成川)은 평안남도(平安南道) 평양(平壤) 동북(東北)에 있는데, 강동(江東)의 바로 북(北)쪽에 있다. 이곳에 옛 비류국(沸流國)인데, 동부여(東扶餘)의 땅이라고 한다. 동부여(東扶餘)가 있었다면 서부여(西扶餘)나 남부여(南夫餘) 또는 북부여(北扶餘)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북부여(北扶餘)는 오늘날의 반도(半島) 북방(北方)의 ‘농안’ 이북(以北)지방에 있었다고 설명(說明)한다. 그렇다면 성천成川)의 부여는 남부여(南扶餘)가 맞는 말이지, 동부여(東扶餘)가 웬 말일까?
…대동강(大同江) 상류(上流)의 지류(支流)인 비류강(沸流江)주변에 비류국(沸流國)이 있었다는 이야기고, 이곳이 동부여(東扶餘) 땅이란 이야기다. 북부여(北扶餘)의 남(南)쪽에 있음에도 동부여(東扶餘)란 말은 이해(理解)할 수 없는, 동서남북(東西南北)도 구분(區分)하지 못하는 역사해설(歷史解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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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중원(中原)과 하남(河南)
➊《中原, 河南, 馬韓之地. : 중원(中原), 하남(河南)은 마한(馬韓)의 땅이다.》라고 하였다. 도대체 중원(中原)은 어디며, 하남(河南)이란 어느 땅을 말하는 것일까 궁금하기만 하다.
대동강(大同江) 이남(以南)일까?
임진강(臨津江) 이남(以南)일까?
한강(漢江) 이남(以南)일까?
금강(錦江) 이남(以南)일까?
이곳은 백제(百濟) 온조(溫祚)가 병합(倂合)해버렸다고 하였으니,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 의하면 : 충청도(忠淸道)와 경기도(京畿道)일부(一部) 땅이다.
어떤 큰 하천(河川)이, 횡(橫) 곧 가로 방향(方向)으로 흘러가기에, 이 하천(河川)을 기준(基準)하여, 남(南)쪽 땅을 “하(河)의 남(南)” 곧 “하남(河南)” 이라고 불렀을까? 그런데 〈그 기준(基準)이 되는 하(河)가 어디에 있는, 어떤 하(河)냐〉는 거다.
중원(中原)이란 : 충주(忠州)를 경덕왕(景德王)이 중원경(中原京)으로 했다는 것에 따르면 오늘날의 충주(忠州)지방이다.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 국원(國原)ㆍ대원(大原)ㆍ예성(蘂城)ㆍ중원(中原)ㆍ창화군(昌化軍)이라고도 했고 또 토산(土産)으로, [철(鐵) 주연리(周連里)에서 산출된다. 잣[海松子]ㆍ송이[松蕈]ㆍ활석(活石)ㆍ수달(水獺)ㆍ꿀[蜂蜜]ㆍ지치[紫草]ㆍ대추[棗]ㆍ인삼ㆍ사향(麝香)ㆍ안식향(安息香)ㆍ쏘가리[錦鱗魚]ㆍ석이버섯[石蕈]. 『신증』 석류황(石硫黃) 노오(老烏)ㆍ시물(柴勿) 두 골짜기에서 산출된다.]고 하였다.
홍귀달(洪貴達)의 시에, [수려한 물 아름다운 산이 명승(名勝)의 땅 만들어, 만가(萬家)의 밥 짓는 연기 성 모퉁이를 덮었도다.]하였는데, 「이곳에 일만(一萬) 가(家)가 있었다고?」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 《본래는 임나국(任那國)이었는데 백제의 영토가 되어서는 낭자곡성(狼子谷城)이라 하였다. 낭자성(狼子城)이라고도 하고, 미을성(未乙省)이라고도 한다. 명종(明宗) 5년(1550)에 유신현(維新縣)으로 강등시켰다. 이홍윤(李洪胤)의 난 때문이다. 선조(宣祖)가 즉위하여 정묘년(1567)에 다시 복귀시켰다 무옥(誣獄)으로 하옥되었기 때문이다. 광해주 5년(1613)에 현으로 강등시켰다. 유인발(柳仁發)이 반역하다가 주륙당했기 때문이다. 인조 원년(1623)에 다시 복귀하였다가 6년에 다시 충원현(忠原縣)으로 강등되었다. 안집중(安執中)이 반역으로 주륙당하였기 때문이다. 15년에 다시 복귀하였다가 25년에 현으로 강등되었다 채문형(蔡門亨)이 반역으로 주륙당하였기 때문이다. 효종 3년(1652)에 다시 복귀하였다가 숙종 6년(1680)에 현으로 강등되었다. 아비를 죽인 죄인 때문이다. 15년에 다시 복귀되었다가 영종 5년(1729)에 현으로 강등되었다. 이조겸(李祖謙)이 반역으로 주륙당하였기 때문이다. 14년에 다시 복귀되었다가 15년에 현으로 강등되었다. 지아비를 죽인 죄인 때문이다. 24년에 복귀되었다가 31년에 현으로 강등되었다. 유수원(柳壽垣)이 반역죄로 주륙당하였기 때문이다. 40년에 다시 복귀되었다. 고종(高宗) 32년(1895)에 군으로 고쳤다.》하였다.
➨ 증보비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 이곳 충주(忠州)는 본래(本來) “임나국(任那國)”의 땅이었는데, 백제(百濟) 땅이 되었다면, 도대체 임나국(任那國)의 정체는 뭐냐?
위의 내용(內容)에 따르면 : 이곳은 “반역(叛逆)의 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충주(忠州)라는 한 지방에서 이렇게 많은 반란(叛亂)이나 난(亂)이 일어났다면, 그곳은 그에 걸 맞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충청도(忠淸道) 충주(忠州)는 그런 땅이 될 수 없다.
➨ 세종(世宗)지리지(地理志) : 별호(別號)는 대원(大原), 또는 예성(蘂城)이다. 그 속군 인 단양(丹陽)에서는, 자단향(紫檀香)ㆍ북나무진(安息香)ㆍ모향(茅香)이 난다.
➋《太原出琉黃.西州蘇泰出竹箭.風俗儉嗇.多富人. : 태원(太原)에서는 유황(琉黃)이 나오고, 서주(西州)와 소태(蘇泰:태안군)에서는 댓살(竹箭)이 생산된다.》고 하였는데,
소태(蘇泰)는 현 태안군(泰安郡)이라고 한다. 그러면 서주(西州)는 어디냐?
태원(太原)에서 유황(硫黃)이 산출(産出)된다고 하였는데, 태원(太原)이 어디냐? 대원(大原)과 태원(太原)이 같은 곳이냐?
➌ “자단향(紫檀香), 안식향(安息香), 모향(茅香)”이 토산(土産)으로 산출(産出)될 수 있는 곳은?
자단향(紫檀香) : 본초명 자단향(紫檀香) : 활용부위 : 나무줄기의 심재(목재 안쪽의 빛깔이 짙은 부분) 인도(印度)가 원산지(原産地)이며 인도(印度)와 동남아시아에서 재배한다. 동의보감(東醫寶鑑) : 원문 : <我國江原道多有之旅>라고 했다.
안식향(安息香) : 원산지 및 재배지 : 자바, 수마트라, 베트남, 라오스, 태국, 중국에서 생산한다. 동의보감(東醫寶鑑) : 아국(我國) 제주(濟州) 및 충청도(忠淸道)에 있다고 하였다.
모향(茅香) : 재배지 :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브라질, 베트남이 주산지이다.
충청(忠淸)·전라(全羅) 땅이 백제(百濟)의 고지(故地)라고 한다면 : 이곳엔 수많은 “소택(沼澤)과 대택(大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백제(百濟)를 일컬어 〈택국(澤國)〉이라는 별칭(別稱)으로까지 부르지 않았는가! 더불어 또한 백제(百濟)를 가리켜 남국(南國)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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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강남(江南)과 해양(海陽)
➊《海 陽. 江 南. 今 全 州. 海 陽. 今 光 州. : 강남(江南)은 지금의 전주(全州)이고, 해양(海陽)은 지금의 광주(光州)이다.》라고 하였다.
강남(江南)이 전주(全州)란 말은, 강(江)의 남(南)쪽 지방(地方)이란 것일 게다. 어떤 강(江)의 남(南)일까? 해양(海陽)은 광주(光州)라고 한다. 이곳은 서(西)쪽과 남(南)쪽이 바다(海)에 접해 있는 곳이다. 그래서 해양(海陽)이라고 했을까?
➋《有鹽,鐵,海錯,橘,柚,梔,榧,竹箭之利. : 소금, 철, 해산물, 귤, 유자(柚子), 치자(梔子), 비자(榧子), 댓살(竹箭)의 이로움이 있다.》고 하였는데, 귤(橘)과 비자(榧子) 및 치자(梔子)가 산출(産出)된다는 말은 사실일까?
귤(橘)과 치자(梔子)는, 전라도(全羅道) 땅에서 자랄 수 없다. 물론(勿論) 당시(當時)를 말하는 것이다. 귤(橘)에 대해서는 우리 카페(Cafe)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논(論)한 바 있어, 더 이상의 이야기는 식상(植傷)할 뿐이다.
➨ 두산백과 / 치자나무[梔子─] : 중국이 원산지이다.
➌《全州江海之都會.物貨之途.商賈之所.尙儇利.民不椎朴. : 전주(全州)는 강과 바다의 곧 사방 각지에서 모두 모이는 곳으로, 물화(物貨)가 유통되는 길이고, 장사치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래서 재빠르고 영리함을 숭상하여, 백성이 순박하지 않다.》고 하였다.
전주(全州) / 세종(世宗)지리지(地理志) : 호수는 1천 5백 65호요, 인구는 5천 8백 29명이다. 민간 풍속이 장사(儇利)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강해(江海)에서 곧 사방(四方)에서 전주(全州)라는 도회지(都會地)로 몰려온다는 것은, 이곳에 재화(財貨)가 풍성(豊盛)했다는 뜻이며, 물화(物貨)가 유통(流通)되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이곳에 바다가 있는가? 큰 강(江)이 있어 배가 들어올 수가 있나? 사방(四方)에서, 어떻게 이곳으로 모여들 수가 있을까? 오직 육로(陸路)만이 있을 뿐이며, 이곳에서 유통(流通)되는 물화(物貨)의 종류가 많은 것도 아니다.
반도(半島) 땅의 이야기라면 : 이해(理解)하고, 설득(說得)하기 매우 어렵다.
➍《乇羅南海中國.幅員四百里.其種宜麥宜黍,秫.土瘠民貧.其民癡騃.其俗儉嗇.有柑,橘,玳瑁,蠙珠,梔,檀. : 탁라(乇羅)는 남해 가운데에 있는 나라이다. 강역(疆域)이 400 리다. 곡물로는 보리가 잘되고, 기장과 차조가 잘된다. 토질은 척박하고 백성은 가난하며, 그곳 백성은 어리석고, 풍속은 검소하고 인색하다. 자원으로는 감, 귤, 대모(玳瑁), 빈주, 치자, 박달나무(檀)가 있다.》고 하였다.
탁라(乇羅)는 곧 탐라(耽羅)이며, 오늘날의 반도(半島) 제주도(濟州島)라고 한다면,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 논거(論據)를 갖고 해석과 설명(說明)했듯이, 자연환경(自然環境)이 전혀 맞지 않는 전형적(典型的)인 ‘짝퉁’지명(地名)이다.
〈감(柑)이나 귤(橘), 대모(玳瑁)등은, 제주(齊州)의 토산(土産)이 될 수 없다.〉 대모(玳瑁)는, 인도양·태평양의 열대(熱帶)바다에 많고, 타이완(臺灣)·오키나와(冲繩), 일본의 규슈(九州)·혼슈(本州)의 연해에서도 산다고 한다.
➨ 제주(濟州)해역(海域)에도 종종 나타났다는 말은, 동물(動物)분리학상으로는, 한국산은 없다. 다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제주(濟州)의 토산(土産)이라고 하니, 이것을 보고, 반도(半島)의 학자(學者)님 네들이 “반도(半島) 제주도(濟州島)”로 착각(錯覺)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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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령(大嶺)의 남(南)족, 옛 진한(辰韓)의 땅
➊《大 嶺 之 南. 古 辰 韓 之 地. : 대관령(大關嶺) 남쪽은 옛 진한(辰韓) 땅이다.》하였는데,
여기에는 논거(論據)거 절대적(絶對的)으로 부족(不足)한 한글 해설서(解說書)에서 춤추고 있을 뿐이다. 고전(古典)에 기록(記錄)되어 있는 많은 조건(條件)에 전혀 부합(附合)되지 않는 전형적(典型的)인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이다.
진한(辰韓)의 전신(前身)은 진한(秦韓)이다. 진(秦)의 여러 난(亂)을 피해 유랑(流浪)하던 무리들에게 이를 탁하게 여긴 마한(馬韓) 왕(王)이, 동(東)쪽 일부 땅을 내어주어 살도록 한 것이 시초(始初)다. 그래서 처음 진한(秦韓)이라고 한 것이다.
진한(辰韓)에 대해서 이러한 논거(論據)를 해결(解決)하지 않는 한, 더 이상(以上)의 반도(半島) 경상도(慶尙道) 땅 진한(辰韓)이야기는, 역사(歷史) 이야기가 될 수 없다.
➋《其利魚,鹽,銅,鐵,銀,石,楮,漆,竹箭,梅,橘,石榴. : 자원으로는 생선, 소금, 구리, 철, 은석(銀石), 닥나무, 옻, 댓살, 매실, 귤, 석류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곳 경상도(慶尙道) 땅에서도 귤(橘)이 토산이라고 한다면 : 한반도(韓半島) 전라도(全羅道)와 경상도(慶尙道)는 당시(當時) 아열대성(亞熱帶性) 기후(氣候)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야 하는데, 이러한 징후(徵候)나 흔적(痕迹)이 없다.
➌《萇 山 通 日 本. 賈 蠻 夷 百 貨. : 장산(萇山)에서는 일본(日本)과 통하여, 만이(蠻夷)의 온갖 물화를 사들였다.》고 하였다.
장산(萇山)이 어디 메에 있는 지명(地名)인가? 《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을 보면 : 장산[長山, Jangsan] : 부산광역시의 해운대구 우동에 소재한 산이다(고도 : 634m)》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곳이 부산(釜山)에 있었던 지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문제(問題)는 이곳에서 만이(蠻夷)의 온갖 물화(物貨)가 매매(賣買)되었다고 하였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 어떤 만이(蠻夷)들이 이곳까지 배를 몰고 와서, 물건을 사고팔고 했냐는 거다.
만이(蠻夷)는 남쪽에 살고 있는 오랑캐들이다.
➍《有北嶽,松孼,氷穴,潮泉,合浦,月影九千七億二萬八千尺有奇. : 북악(北嶽)의 송얼(松孼), 빙혈(氷穴)과 조천(潮泉)이 있고, 합포(合浦) 월영대(月影臺)의 9007억 3만 8000척의 절경이 있다.》고 하였는데, 도무지 이해(理解)되지 않는 지세(地勢)다.
➎《其嶼鹽田,絶影.出善馬.其外馬島七百里. : 섬으로는 염전도(鹽田島)와 절영도(絶影島)가 있는데, 좋은 말이 산출된다. 그 바깥으로 마도(馬島)는 700 리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 〈염전도(鹽田島)와 절영도(絶影島)의 바깥으로 마도(馬島)는 700 리에 있다.〉는 말이 된다.
염전도(鹽田島)와 절영도(絶影島)의 밖(外)으로 700 리라면, 부산(釜山)에서 열도(列島) 본토(本土)까지 ‘구글어스’ 직선거리(直線距離)로 겨우 180km 떨어져 있을 뿐이다. 이것은 「한반도(韓半島) 땅의 지형지세(地形地勢)를 설명(說明)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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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교주(交州)
➊《交州淮陽府東界.古獩貊之地.自沃沮至句麗南境沙海千里其西貊. : 교주(交州) 회양부(淮陽府)이다. 의 동쪽 경계는 옛 예맥 땅이니, 옥저(沃沮)에서 고구려에 이른다. 남쪽 경계는 백사장이 1000 리이고, 그 서쪽은 맥(貊)이다.》하였는데,
〈사해(沙海)천리(千里)〉란 말이, 고작 모래사장(沙場) 1리나 수십(數十)리를 부풀려 말하는 것은 아닐 터다. 반도(半島) 땅 그곳에 “명사십리(明沙十里)”가 있다고 한다. 설마 이곳 명사십리(明沙十里)를 명사천리(明沙千里)라고는 하지 않을 터, 반도(半島) 땅이 아니라고 저자(著者)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➋《海濱鬻魚,鹽.多大澤.食螺蛤.海岸多竹箭.峽中絲,麻,林,漆,蔘,歸,群藥,紫檀.: 바닷가에서는 생선과 소금을 팔아 생활한다. 큰 못(澤)이 많고, 소라와 대합을 먹는다. 해안에서는 대살(竹箭)이 많이 나고, 산골에서는 사(絲), 삼〔麻〕, 목재, 옻, 인삼과 당귀 등 여러 약재, 자단목(紫檀)이 산출된다.》고 하였다.
동해안(東海岸)에 염전(鹽田)이 많다?
교주(交州) 땅 어느 곳에, 대택(大澤) 곧 큰 못(澤)이 있을까? “한 개나 두 개 정도 가지고 많다”라는 이야기는 아닐 거다. 교주(交州) 땅, 여기저기에 소택(沼澤)이나 대택(大澤)등의 못과 늪과 호수(湖水)가 널려 있었다는 이야기다.
교주(交州) 땅에서 「자단목(紫檀木)이 토산(土産)」이라고? : 아열대에서 자라는 상록교목(常綠喬木)으로 재질이 아주 단단하고 색깔이 적색이며, 나무 조각을 물에 담그면 금방 가라앉는다. '청룡목(靑龍木)'이라고도 부르는 이 나무는 최고급 가구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단목 [紫檀木] (홍루몽: 인명, 용어사전, 솔출판사)
* 자단목(紫檀木)은 아열대에서 자라는 상록교목(常綠喬木)으로 재질이 아주 단단하고 색깔이 적색입니다. 목재가 자줏빛이고 박달나무처럼 단단하기 때문에 자단(紫檀)이라고 불립니다. 자단목은 나무 조각을 물에 담그면 금방 가라앉습니다. 청룡목(靑龍木)이라고도 부르는 자단목은 최고급 가구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됩니다. 반도 땅엔 없다.
➌《東州楓泉原.弓裔所據.廣野三百里. : 동주(東州)의 풍천원(楓泉原)은 궁예(弓裔)가 웅거했던 곳이다. 넓은 들판이 300 리 정도이다.》라고 하였는데,
동주(東州) 곧 철원(鐵原) 땅 전체(全體)를 다해도 3백리(百里) 되는 곳이 있을까? 반도(半島) 땅에서는 불가능(不可能)한 이야기다.
동주(東州)는 철원(鐵原)의 옛 이름이라 한다. 고적(古跡)으로는 궁예(弓裔)가 이곳에 도읍(都邑)한 뒤 지은 화려한 궁전(宮殿)의 옛 터가 ‘풍천원(楓川原)’에 남아 있다고 전한다.
그러면 이곳 “풍천원(楓川原)의 들이 크고 넓어, 3백리(百里)나 되었다”는 이야기다. 강원도(江原道)는 남북 280km, 동서(東西) 110km 정도 되는 땅인데, 특히 철원(鐵原)주변의 평야(平野)가 비록 넓다고는 하지만, 3백리(百里)가 될 곳이 없다. 곧 〈땅이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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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삭방(朔方)
➊《朔方.沃沮之地.或曰置溝婁.在蓋馬.東濱於浡海.北自挹婁.南至獩貊千餘里. : 삭방(朔方)은 옥저 땅으로, 옥저를 혹 치구루(置溝婁)라고도 하는데, 개마대산(蓋馬大山)에 있었다. 동쪽으로는 발해(浡海)에 닿아 있고, 북쪽으로 읍루(挹婁)에서 남쪽으로 예맥까지 1000여 리이다.》라고 하였다.
삭방(朔方)이란 북방(北方)과도 같은 말이다. 반도(半島) 땅의 북방지대(北方地帶)는 평안북도(平安北道)로부터 함경북도(咸鏡北道)까지 횡(橫)으로 넓은 땅이다. 이곳의 북방지대(北方地帶)는 수천(數千)리 사막지대(沙漠地帶)라고 하였다. 답답한 이야기다.
그러나 평안북도(平安北道)는 패서도(浿西道)에 포함(包含)시키다보니, 삭방(朔方)이란 함경도(咸鏡道) 땅을 말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곳 삭방(朔方)이 옥저(沃沮) 땅이란다. 또 개마(蓋馬)가 있고, 동(東)쪽은 발해(浡海)에 닿아있다고 한다. 그런데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논자(論者)들이 즐기는 대륙사(大陸史)의 후한서(後漢書)에서 말하기를 :〈개마(蓋馬)는 평양(平壤) 서(西)쪽에 있고, 옥저(沃沮)는 개마(蓋馬) 동(東)쪽에 있다〉고 하였으니, 반도(半島) 땅일 수 없으며, 또 동해(東海)를 발해(浡海)하고 했다는 고증(考證)이 없다.
➋《挹 婁. 在 不 咸 山 北. 古 肅 愼 氏 之 地 也. : 읍루는 불함산(不咸山) 북쪽에 있으니, 옛 숙신씨(肅愼氏) 땅이다.》라고 하였다.
읍루(挹婁)란 후한(後漢)시대(時代) 숙신(肅愼)씨의 후손(後孫)에 대한 명칭(名稱)이다. 이들은 불함산(不咸山) 북(北)쪽에 산다고 하였으니 옛 숙신씨(肅愼氏)의 땅이자, 이들의 후손(後孫)들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있었던 불함산(不咸山) 북(北)쪽이란 말은, 서북방(西北方)을 일컫는 말로, 북방지대(北方地帶)가 될 수 없는 방향(方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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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韓國史)가 정말 조선사(朝鮮史)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程度)로 판이(判異)하게 다른 역사(歷史)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社會)라 할 수 있다.
조선사(朝鮮史)가 왜곡(歪曲)되고, 조작(造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人間)의 삶의 이야기요, 발자취일 것이다.
➨ 이를 세계화(世界化) 또는 행성화(行星化)한다거나 판타지(Fantasy)화하여, 축지법(縮地法) 또는 순간(瞬間)이동(移動)을 하는 판타지(Fantasy)속에 나오는 광대(廣大)처럼, UFO를 타고 다니며 소리 소문(所聞)없이 왔다가갔다 하는 외계인(外界人)인 냥 만드는 것에 절대(絶代) 반대(反對)한다.
옛 조선왕조(朝鮮王朝) 백성(百姓)들을 낙하산부대(落下傘部隊)로 훈련(訓鍊)시켜, “C-130J 슈퍼 허큘리스” 수송기(輸送機) 수백(數百), 수천(數千)대를 운용(運用)하며, 행성(行星)안 이곳저곳에 낙하(落下)시켜 점령(占領)하고, 조선국(朝鮮國)을 만들었다는 식(式)의 이야기는, 조선사(朝鮮史)를 암매장(暗埋葬)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조선왕조(朝鮮王朝)는, 흑인(黑人)이나 또는 붉은 머리에 벽안(碧眼)을 갖고, 온 몸에서 비린내를 풍기는, 구레나룻가 많아 미후(獼猴)처럼 보였다는 그런 자(者)들의 나라가 아니었다. 이런 자(者)들은 조선(朝鮮)의 변방(邊方) 이족(異族)으로, 조선(朝鮮)에 의해 토벌(討伐), 정복(征服)당한 자(者)들이었을 뿐이다.
기껏해야 일백(一百)여년(餘年), 또는 이백(二百)여년(餘年) 전(前) 시대(時代)를 살았던 고인(故人)들이 남겨 놓은 기록(記錄)은, 그 내용(內容)에 있어 너무도 달라, 무슨 이야기인지 조차 판별(判別)하기가 어렵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틈을 이용(利用)하여, 「우리의 역사(歷史)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행위(行爲),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행위(行爲), 전설(傳說)화 내지 신화(神話)화하는 것」등에 대해 절대적(絶對的)으로 반대(反對)한다.
➨ 조선(朝鮮) 백성(百姓)들의 삶의 이야기가 바로 조선사(朝鮮史)가 아닌가!
우리들이 70여년 배워온, 가르쳐온 사실(事實)들과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이런 의심(疑心)이, 조선사(朝鮮史)를 다시 쳐다보게 되는 이유(理由)가 된다.
2018년 07월 08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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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위의 패서도(浿西道)에 대해서 : 강단이든 재야든 수많은 주장과 의견이 난무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수경주는 반도 땅의 물(水) 이야기가 아니라, 대륙(大陸)의 河(하)와 江(江)사이의 물 이야기인 것>을 잠시 잊거나 또 무시하려 한다.
<대능하니 난하니, 압록강이니, 대동강, 청천강, 심지어는 임진강이나 예성강>등등, 대한민국 사학계의 강단과 재야를 막론하고, 이러한 면에서는 똑같다고 보아진다.
북방 3성(省), 반도 땅에는 "패수(浿水)"란 하천은 없다. 심심하면 여기저기로 나들이 가는 하천이냐? 하는 거다.
<조선사는 조선백성들의 삶의 애환이 깃든 이야기일 뿐, 신(神)의 얘기가 아니다.>라는 것을 꼭 전해주고 싶군요.
좋은 글 잘 읽어습니다
조선의 강토를 잊지 말라고 또 다져주시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