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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웃음이 나온다. 한나라당 이재오. 인터넷에 이런 사진이 올려져 있다. ‘교수 명예정치학박사 이재오’라고 검은 색 옷칠 바탕에 칠보 자기로 승천하는 용들과 함께 새겨진 명패, 그 명패 앞에 앉아 있는 이재오. 위엄있는 단어들을 빼곡하게 조합한 명패, 검찰총장이나 대학총장 명패보다 더 근엄하다. 교수? 이재오는 중앙대 대학원에서 교수 직함도 얻었고, 한달짜리 교수인데도 연구실까지 받았다. 명예정치학박사?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명예정치학박사를 땄다. 권력은 달콤하다. 권력을 잡으면, 정권의 창업공신이라는 소릴 들으면 미국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아도 낙타가 바늘 구멍 뚫기보다 더 어렵다는 교수님도 되고, 사각 모자 쓰고 명예정치학박사가 된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수준! 이재오가 경력 관리를 하는 이유? 자명하다. 9월에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열어 당 대표가 되고, 당권을 완전히 장악한다는 거대한 구상이 지금 착착 진행중. 대통령 이명박의 형 이상득이 잠시 그늘로 내몰린 사이 이재오는 한나라당의 요직을 이재오맨들로 장악했다. 원내대표 안상수, 사무총장 장광근, 여의도연구소장 진수희. 당 대표 박희태만 밀어내고 자신이 앉으면 한나라당은 이재오당(黨)이 된다. 박희태는 경남 양산 보궐선거로 밀어내면 그것도 감지덕지해 상황 끝. 집권당 내에서 엄청난 지각변동이 소리없이 벌어지고 있다. 특공대원들이 발소리 없이 침투작전 벌이듯. 사각사각. 이재오가 전당대회를 9월로 잡은 것은 10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내년 6월 지방선거→2012년 국회의원 공천과 총선을 자신이 치르겠다는 야심에서다. 서울 은평을에서 문국현이 선거법 위반으로 자리를 잃으면 그때 당 대표로 출마해 금배지를 딴다는 전략도 있다. 그 다음엔? 꿈이 야물다. ‘포스트 이명박’을 물려받는 집권당 대선후보가 되겠다는 것이다. 정치는 과대망상 환자들이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박근혜에 대한 공격을 정치 재개의 신호탄으로 쏜 것. ‘일가이귀 사내무공(一家二貴 事乃無功)’-한 집안에 귀한 사람이 둘이면 그 집은 무슨 일을 해도 성과가 없다, 그 어려운 한비자의 글귀를 찾아내 인터넷에 올린 것은 박근혜의 저격수로 떠보겠다는 것. 아예 박근혜를 무너뜨려 귀인을 1명으로 만들겠다는 복심이다. 물론 박근혜가 비판과 공격의 성역일 수는 없다. 쓰러지면 그것도 자신의 무능력이다. 쓰러지면 쓰러지는 것. 관심의 초점은 과연 이재오가 한나라당 대표가 되어 당권을 장악하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이냐 하는 점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의 전면 등장은 역발상이고 파괴적이고 후진적이다. 첫째,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 낙선한 인물이 집권당 대표가 된 것은 헌정사상 전례가 없다. 공천에 떨어진 인물을 당 대표에 앉힌 발상보다 더 민의에 역행한다. 대표성의 빈곤. 대한민국 집권당이 낙선자를 당 대표에 앉힐 만큼 그렇게도 인물이 없다? 둘째, 살생부 공천으로 한나라당을 친이·친박으로 두 동강낸 장본인이 다시 당권을 장악하는 문제를 어떻게 합리화할 수 있나! 유권자들은 이재오·이방호의 공천에 대한 심판으로 이들을 떨어뜨렸다. 예외없이. 정권 창업공신은 명패 만들어 ‘교수 명예정치학박사’ 새기듯이 ‘당 대표 이재오’라고 마음대로 명패 만들어도 된다? 이것은 정권 실세들이 박근혜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앉아서 저격 당하거나, 고사 당하거나, 그것도 싫으면 탈당해서 나가거나 하라. 이재오의 전면 등장은 박근혜 세력과의 완전 결별로 이어진다. 한나라당은 완전히 두 동강, 정치대란으로 이명박 정권은 식물 정권이 된다. 식물 정권이. 대통령 이명박은 이를 알아야 한다. 이재오의 전면 등장 시나리오가 대통령의 묵인 내지 동조없이 과연 가능한 일? 대통령 이명박은 이재오의 끝없는 환상에 현혹되고 있다. 정치를 모르는 대통령이 이재오한테 속고 있다. 이재오 문제의 속성을 잘못 보고 있다. 박근혜에 대한 감정의 앙금 때문에. 이재오가 조용해야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다는 민심의 저류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이명박, 결단해야 한다. 결단을! [윤창중 / 논설위원] |
기사 게재 일자 2009-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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