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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부산 근교에 있는 해수욕장을 찾아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 몰라도 집돌이 생활이 익숙해 좋다고 해도 가끔은 탈출하고픈 욕망 때문에 이루어지는 현상인 듯하다.
처음 발길을 옮긴 곳은 초겨울 광안리 해수욕장이다.
누구나 다 알듯이 광안리는 불꽃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시기 즉 한여름 해수욕 시즌이거나 불꽃 축제가 열리는 날 같이 번잡한 시간대를 싫어한다.
혼자 조용히 걸으면서 주위 풍광을 구경하는 낭만이야말로 나에게 어울리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초겨울의 문턱에 있는 해수욕장은 한산하다 말고 을씨년스럽다.
백사장에 내려 한발 한발 옮기는 순간 모래가 주는 질감은 그래도 한없이 아늑하다.
누군가 써 놓은 연인의 이름과 사랑 마크가 선명하게 모레 판에 적혀있고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오가고 갈매기는 무엇을 구하려 함인지 싸늘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는 내 머리 위를 쉼 없이 기웃대고 있다.
아마 몰라도 연인들이 새우깡을 가져와 그들에게 선심을 써 혹여 늙은이도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인듯하다.
나에게 낭만이 없다는 것을 갈매기는 알지 못하나 보다.
그러니 바보스럽게 자꾸 혼자 걷는 늙은이의 주위를 살피고 있으니 말이다.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걷는 것도 혼자이기에 가능한 상상이며 옛날 어린 시절 동네 바닷가에서 파도 예쁘게 세공한 조개껍데기를 줍던 기억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라 혹여 이곳에도 조개껍데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눈여겨보지만 잘게 부서진 모래만이 햇살에 빛나고 있다.
한참을 걸어 마지막 횟집 어귀 방파제에서 해수욕장 전체 모습을 바라보고 넋 놓는 순간 백사장을 걸을 때 길손처럼 오갔던 갈매기가 밀물로 모습을 드러낸 바위에 다들 모여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갈매기는 알았나 보다.
저 늙은이는 새우깡으로 자신들을 유혹하는 낭만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니 관심 없다는 듯이 옹기종기 모여 그들만의 시간 속에 빠져들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지나온 그 길을 젊은 연인이 걸어오고 있다.
그리고 내가 멈춰 읽었던 사랑의 명세를 그들도 읽고 그 옆에 그들의 사랑도 흉내 내고 있어 아름다워 보인다.
아마 몰라도 다시 돌아가면 무슨 글씨로 그들의 사랑을 아로새겼는지 궁금해진다.
쉼을 멈추고 수변공원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밤과 낮의 풍경은 확실히 다르다.
텅빈 공간만이 이곳이 수변공원임을 알려줄 뿐 사람의 흔적은 없다.
어젯밤 술과 얘기가 연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을 공간이 텅 비워져서 쓸쓸함이 묻어나지만 나는 아무도 없는 이 공간을 독차지한 느낌이 있어 좋다.
수변공원 너머 부두에 작은 어선들이 어구를 한가득 싣고 파도에 자유스럽게 춤추고 있다.
저 배들 또한 밤새 고기를 잡고 새벽녘에 항구에 닿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을것이다.
어부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어부가 없는 배는 왠지 쓸쓸해 보이지만 어둠과 함께 불 밝히고 바다로 나가야 하기에 여유로운 쉼을 가지는 모습처럼 보여 좋다.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간다.
궁금하던 젊은 연인들의 낙서를 항해 가보지만 어느덧 물길이 변해 연인들의 사랑 언약도 파도가 깨끗이 지워버리고 아무런 흔적도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시간과 함께 사라지듯이 파도는 그 엄연한 사실을 증명하려는 듯 깔끔하게 지워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밀려오고 밀려갈 뿐이다.
우린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하지만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오면서 작은 골목들을 구경하기로 맘먹고 큰 길이 아니 사잇길을 선택해 걷는다.
늘 이곳에 있었던 건물이고 골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발견한 장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늘 다니는 길을 선호하고 마냥 그 길만 다닌다.
이 작은 골목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관심이 없으며 오래되고 낡은 담장에 핀 아름다운 꽃의 존재도 모르면서 아는체하는 게 인간이다.
도시는 한순간에 만들어진 공동체가 아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한집이 두 집 되고 두 집에 셋집 되어 군락을 만들었기에 다양한 형태의 모습들이 존재하고 버스나 차가 쌩쌩 달릴 수 있는 커다란 길도 있지만, 사람만이 다닐 수 있는 작은 골목도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아는 자만이 다니는 이런 골목길을 걷어보고 싶은 건 아직도 내 뇌리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는 시골 마을 좁고 굽은 골목길이 그립기 때문이다.
아마 몰라도 이 좁은 골목길에는 수많은 얘기가 숨어 있을 것이다.
이 좁은 골목길은 잊고 살았던 아름다운 광경들을 떠올리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걷다가 멈추고 조용히 소리 내 혼자 웃어본다.
혼자 웃는 것도 오래된 이야기다.
늘 함께 여럿이 여행을 다녔고 깔깔거리며 얘기꽃은 피우며 다녔지만, 내면에서 찾아드는 행복은 느껴보지 못해 혼자 웃을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혼자는 처음이기 때문에 엷게 퍼진 미소가 입속을 따라 머물다 나오는 소리가 좋다.
누구의 간섭과 관심도 없이 오롯이 혼자의 감정에 충실히 하는 이런 시간이 참 좋다.
혼자만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면서 걷는다는 것은 낭만인듯하다.
두 번째 발길은 이른 봄 해운대 해수욕장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곳이 해운대 해수욕장이다.
사실 하와이 와이키키보다 멋진 곳이다.
해운대 해수욕장이 아름다운 것은 어귀에 동백섬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선비취호텔을 옆에 끼고 동백섬을 걷는 순간 안온함이 밀려온다.
동백선 끝 지점에는 누리마루가 있다.
APEC 회의를 위해 지은 건물인데 그곳엔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오는 모양이다.
이날도 내국인은 나뿐이고 유럽 쪽 관광객이 무리 지어 누리마루 내부를 구경하고 나와 등대가 있는 곳에서 사진 촬영에 분주하다.
섬 이름처럼 동백꽃이 한창인지라 초봄임에도 아름답다는 느낌이 있어 좋다.
누리마루를 지나 한참을 걸어오다 보니 쉬어가라고 만들어 놓은 의자 위에다 누군가가 떨어진 동백꽃을 주어 하트모양으로 만들어 놓아 내가 사진을 찍었더니 뒤따라 오던 유럽 관광객도 등달아 카메라 들이대고 누른다.
인간이 가지는 비슷한 느낌과 감성이 존재하는구나 하고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들도 나를 보고 웃는다.
혼자 걷는다는 것은 여유다.
굳이 속도를 내어 걸을 필요도 없고 허둥댈 필요도 없다.
해운대 백사장은 매년 수많은 모래를 채워야 한다.
예전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으나 주변의 개발로 인하여 물흐름이 바뀌면서 밀려온 파도가 자꾸 모래를 실어 바다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인간이 주도하는 개발이라는 이름의 무지가 여실히 증명되고 있음에도 누구 하나 잘못됨을 말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음에 놀랍다.
굳이 개발하지 않았다면 늘 그대로의 모습으로 넓은 백사장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이 머무니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초봄엔 해수욕장은 인간이 들끓지 않아 한적하고 자유스럽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모래를 밟으며 걷는 촉각도 매력적이지만 쉼 없이 밀려 오가는 파도 소리도 정겹기는 마찬가지다.
백사장의 끝자락에 변함없이 파도가 모래를 활키고 실어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또 올 여름에는 손님을 맞이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모래를 끌어와 붓고 늘 이런 모양으로 위장할게 틀림이 없어 씁쓸한 기분이 든다.
한참을 걷다 해수욕장 가장자리로 나와 산책을 겸해 걷다 보면 예전과 달라진 환경에 안타까움이 묻어나지만, 너무 많이 바뀐 해운대 해수욕장 주변이 낯설어 다른 나라에 여행 온 느낌이 있다.
무슨 바램으로 바닷가에 여신상같은 것을 세웠을까?
그냥 텅빈 채로 내버려둔다고 해운대의 멋이 반감되는 것도 아닌데 필요없는 인간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어울리지 않는 모형물을 왜 세웠는지 의아하다.
무작정 걷는 것을 좋아해 미포까지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오륙도를 오가며 유람하는 유람선이 아직 이른 시간을 한가롭게 보내며 부두에 붙잡혀 멍하니 있다.
아직 관광객이 몰려들 시간이 이른 탓인가보다.
주변에 늘린 횟집과 쉼 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혼자 즐길 수 있는 낭만임은 틀림이 없다.
아주 오래전 이곳에 와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수욕을 즐긴 그때가 어렴풋이 떠올라 시간이 주는 황망한 만큼이나 덧없음이 밀려오간다.
다시 뒤돌아 간다.
언제나 그렇듯이 온 길로 되돌아가는 이유는 그냥 조금의 시간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미처 보지 못한 풍광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언제일지 모른다.
오늘처럼 혼자 사람이 별로 없는 해수욕장을 나만의 방식으로 걷게 될지 기약이 없지만 내 가슴과 눈에 새겨진 풍광은 언제가 다시오면 새로운 것들로 채워질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세 번째 발길은 초가을 다대포 해수욕장이다.
우리 집에서 전철을 타고 한 시간 넘게 걸리니 동서의 끝과 끝이라는 표현이 맞을듯하다.
다대포항역에 내리니 바람 맛은 좋다.
혹시 아무도 없다면 혼자만의 낭만보다 우습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역을 나서면서 나처럼 백수가 상당히 많구나 하고 안심한다.
등산을 하러 가는 곳은 분명 아닌데 등산 복장을 갖춘 사람도 있고 연인끼리 손에 손을 잡고 다정히 걷는 사람도 더러 있다.
왠지 낯설다.
다대포 해수욕장은 친구 집이 있어 가끔은 와봤다.
그런데도 생경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백사장 일부를 메워 바다공원을 조성하였기에 전혀 예전의 느낌을 느낄 수 없다.
항상 다대포에 오면 가보고 싶은 곳이 몰운대다.
부산에는 몰운대를 위시하여 해운대, 자성대, 이기대, 태종대 등 대라고 하는 지명이 있는데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나 다른 곳은 다 가본 경험이 있지만 유독 몰운대만 가보지 않아 마음먹고 나선 오늘이다.
다대포 해수욕장의 동쪽 끝자락을 따라 데크로 잘 만들어진 길이 있고 그 길 끝자락이 몰운대란다.
커다란 바위가 우뚝 솟아 바위 위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운치 있게 우뚝 선체로 오가는 사람과 바람과 갈매기를 안내하고 있다.
바닷가 바위에 터 잡고 눌러앉은 소나무는 어쩌면 저토록 멋스러울까?
한 그루는 곧게 자라 위풍당당하고 다른 한 그루는 두 개의 가지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세 그루의 나무로 착각하게 만들지만, 밑둥치 부분은 하나였음에 두 그루가 분명하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남해바다의 광활함에 놀라고 바닷바람이 시원하다며 갯내음의 비릿함에 빠져있다.
큰 바위를 지나 조금 더 발길을 옮기니 여러 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반갑게 맞이하지만, 동네 사람인 듯한 분이 더 가면 위험하니 안 가는 게 나을 듯하다고 해서 발길을 돌려 되돌아온다.
해수욕장 가장자리에는 바닷물이 지나갈 수 있도록 물길을 만들었고 해변공원을 간통하고 있어 그 물길 속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문절망둑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어 정겹게 보인다.
해수욕장은 다른 해수욕장과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모래라고 하기엔 너무 부드러워 왠지 모르게 갯벌 같은 느낌이 들지만 단단하여 빠지지는 않으니 특이하다.
낙동강 하구에 행성되어 지형적인 특성에 의해 완전모래만 있는 해수욕장은 아닌 듯 느낌이 지만 넓고 주위가 확 트여있어 나름의 멋진 모습임은 틀림이 없다.
맨발을 한 사람들이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조개를 잡고 있나 보다.
해변공원을 따라 생각 없이 걷다가 문득 발견한 흔들의자에는 다정하게 앉은 연인들이 몸을 싣고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동네 노인들은 잔디밭에 앉아 따뜻한 가을 햇볕을 쬐고 인생의 어느 시점을 되돌아보는 듯하다.
곰솔 나무를 심어 조성한 공원은 아름답다.
한 가지 의아스러운 것은 유독 많은 솔방울이 떨어져 있어 혹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소나무가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오래 이곳에 산듯한 노인에게 물었더니
공원을 조성한 지가 몇 년이나 되었다길래 어쩌면 소나무는 이미 뿌리를 내리고 적응했을지도 모른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분수광장의 어귀에 앉아 지친 몸의 피로를 풀고 있다.
분수광장은 단장중이다.
여럿이 모여 뭔지 모를 보수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몇 해 전 이곳을 구경하기 위해 시간 맞춰와서 관람하고 아내와 먹은 바지락칼국수의 얼큰한 맛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를 띤다.
여기도 변했으니 다대포 포구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걸어 포구를 향해 걷는데 젊은 시절 회사에 다닐 때 감시정을 타고 와서 처음 보았던 벽돌 깨기 오락기가 있던 장소가 생각나 아직도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어 걸어갔더니 그 자리는 그대로인데 오락기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언제나 변함없이 싱싱한 해산물과 사람을 유혹하는 장사꾼의 정겨운 호객행위가 나를 반기고 있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오락기가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착각을 하는 자신이 의아하지만 그래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
순전히 혼자만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낡은 오락기에 앉아 열심히 벽돌을 깨고 있던 초등학생의 열정과 순수함이 그리운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혼자 아무 생각 없이 수족관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를 가진 고기들을 바라보면서 다대포항과의 추억 더듬기도 멈출 시간이 왔음을 육신은 대답하고 있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은 힘이 든다.
꼬리뼈가 아파 몇 번씩 엉덩이를 들썩이면서도 다음 또 어디로 가볼까 하는 새로운 생각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인생은 떠도는 것인지도 모른다.
옛날 여럿이 왔던 추억이 서린 주변의 해수욕장을 혼자 걸으면서 시간이 덧없이 빨리도 흘렀다는 생각과 함께 환경은 너무 많이 변해 내 기억속에 존재하는 것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허물어져서 마음 한 구석 쓸쓸하게 되살아나고 언제 또 이 길을 걷게 될지에 대한 의구심은 내가 온전히 가져야 하는 감정임을 안다.
혼자 걷는 길이 쓸쓸하지 않는 단 하나의 이유는 자유 그것 때문이지도 모른다.
걷다가 지치면 쉬엄쉬엄 쉬어갈 수 있는 여유와 눈에 보이는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하고 판단하는 멋스러움이 있어 또 다른 장소를 기억하려 함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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