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조선】<찬송가의 변혁, 성서조선 第 53 號 (1933年 6月)>
찬송은 신앙에서 우러나와야 되는 것이니 결코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한 교회나 한 세대의 신앙상태를 알아보려면 그들이 만들거나 즐겨 부르는 찬송가를 살펴봄이 가장 간명한 방법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요즈음 기독교회에서 가장 즐겨 부르는 대표적인 찬송가는 어떤 것일까?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동산
이 동산에 할 일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날에 일 가려고 누구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 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라고 부르는 아펜젤러 씨를 위원장으로 한 개정찬송가 제219장이야말로 감리교회를 비롯하여 모든 조선기독교도와 교회기관과 각종학교와 유치원 아동에게까지 성대히 유행하는 ‘찬송’이 아닌가.
바야흐로 이는 현대 조선 기독교의 진상을 드러내는 대표적 찬송이 되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조선 사람 된 자는 이 ‘찬송가’를 부를 때에 일종의 흥분을 느끼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마치 운동회에서 응원가를 부르는 듯한 흥분을.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혈기의 흥분임을 벗어날 수 없다. 겉으로는 긴장한 듯하나 영혼 속에는 한없는 적막과 공허가 몰려 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가 처음 배웠고, 또한 지금부터 약 십수 년 전까지 모든 조선기독교인이 즐겨 부르던 찬송가는 구 찬송가 제72장이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깨끗하게 되겠네
하고 부를 때에 결코 혈기의 흥분은 느낄 수 없었으나 영혼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안정이 지배하였고, 정결이 작용하였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이 두 가지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다같이 눈물이 흐를 것이다.
그러나 앞의 경우는 눈깍지에서 흐르는 눈물이요, 뒤의 경우는 영혼 속에서, 심장 속에서, 아니 머리털 끝과 손톱 발톱 끝에서까지 우러나오고 솟아 흐르는 눈물이다. 하나는 세속(世俗)의 것이요, 하나는 영계(靈界)의 것이다. 하나는 사업(事業)이요, 하나는 신앙이다.
우리 조상과 선배들은 영(靈)의 일과 신앙의 일에 관심을 가졌건만, 현대 조선 기독교회를 대표한 찬송가 개정위원들은 그 개정된 찬송가 속에서 구찬송 72장 같은 것은 삭제하여 버리고 자기들의 신앙을 드러낸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같은 것으로써 페이지 수를 늘이고 판매정가를 높였다.
이것이 과연 ‘개정(改正)’인가, ‘개오(改誤)’인가. 신앙이 없는 음악가의 찬송가 편찬과 조선어를 모르는 박사(博士)의 성서 개역은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니 반도의 영계도 한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