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今井館 뉴스 2024년 5월호에서
니시나가 타타우(西永 頌)
이마이칸교우회 전 이사장/ 逆井성서집회
마태복음 6장 3절에, '베풀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베품'의 그리스 원어는 좋은 일을 행한다인데 바로 '사랑으로 하는 일'이지요. 사랑으로 하는 일은 오히려 위선이라는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그일을 하면서 거짓으로 하는 척 하는 위선을 예수님은 경계하였습니다.
토요타 에미(豊田 江美)는 바로 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 분입니다. 2,000년 어느날 에미 씨가 거금 35억원(3억 5천만엔)을 이마이칸에 기부하셨습니다. 그때 철저한 익명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기부를 한 사람이 에미 씨라는 걸 이마이칸 관계자들조차도 아주 소수만 알고 함구하여 왔습니다.
이마이칸교우회는 이 기부로 인해 임의단체에서 특정비영리활동법인(NPO법인)으로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또 2003년 지하1층 지상 2층의 멋진 '이마이칸 자료실'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건물을 완성하고도 십몇억원(1억 수천만엔)이 남아, 메구로구 나카네(目黑區 長根)에 있던 이마이칸을 작년 분쿄구 코마고메(文京區 駒込)로 신축 이전할 때 잔액을 모두 사용하였습니다. 이전 이마이칸 부지의 권리금만으로 감당이 안 되었는데, 에미 씨의 기부금이 있어 순조로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기부가 아니었다면, 신축 이전이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이마이칸에의 에미 씨의 공헌이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기부금 사용처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었습니다. 철저히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 셈입니다. 이제 에미 씨가 하늘의 부름을 받고 돌아가셨으니,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감사를 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였습니다.
에미 씨는 고등학교 교사인 부모님 아래에서 장녀로 1927년 태어났습니다. 소학교까지는 나가노에서 살았는데, 중학교부터 나고야로 옮겨 고등학교와 대학교(영문과)는 모두 나고야의 금성학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에미 씨 오빠는 나고야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경대 공학부 건축과에 진학하였습니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면서 함께 동경대 공학부에 진학한 테니스 동료 토요다(豊田 信吉郞) 씨가 있었습니다. 오빠는 그 친구를 에미 씨에게 소개하였고, 결혼하여 도쿄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오빠가 야나이하라집회에서 신앙을 배운 사람입니다. 에미 씨 역시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는 세키네 마사오 선생이 주재하는 치요다집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토요다 회사의 창업자인 시할아버지를 도와 계열사를 운영하고 있던 시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에미 씨의 남편이 나고야로 돌아가 회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토요다 방적회사이며 토요다그룹의 발전을 이루는 한 축이 되었습니다.
나고야에서 에미 씨는 나고야 성서연구회와 치토세 성서연구회에 참석하며 무교회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최근 남편의 입원으로 나고야 교외에 있는 노인홈에 들어가면서부터, 그곳과 연계된 그리스도교단의 남산교회 예배에 출석하였습니다.
에미 씨의 활동 범위는 정말 넓었습니다. 공익재단법인 아시아보건연구소(AHI)의 창설 때부터 최근까지 봉사활동을 하셨고, 눈이 부자유한 사람을 위한 낭독 봉사, 노인홈의 간호 봉사, 복지 의료법인의 무급 직원 등을 96세인 올해까지 맡아 하였습니다.
항상 겸손하시고, 명랑한 미소로 대해주셨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