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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하이얀고무신
2009년 12월 6일 칠정교회 주일예배 설교
말라기 2장 17절로 3장 5절 말씀 설교자 / 조한우 목사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우리는 두 가지를 조심해야 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잘못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소위 성경을 수십 번 통독을 했다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가 있는데 그것은 성경을 자꾸 풀려고 하는 거예요.
연대를 짜 맞추고 다니엘이나 요한 계시록과 같은 묵시 문학들을 자꾸 해석하려고 하거든요.
성경에 나오는 숫자들을 풀어서 그것으로써 성경 전체를 명쾌하게 해석을 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숫자나 상징들을 풀기 시작하면 이단으로 가는 첫 걸음이 되기 쉽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6절 말씀처럼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하게 되는 거예요.
조심해야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조심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파고들다가 보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기 십상이라는 겁니다.
‘그래도 내가 성경에 대해서는 최고 권위자다. 여기 나만큼 성경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봐라!’고 하면서 우쭐거리게 되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인간들이 어찌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을 다 안다고 하니 그것이 문제인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웬만한 설교를 들어도 은혜가 되지를 않습니다.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고 앉아서 목사님의 설교를 평가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말씀을 하도 많이 알아서 머리만 커지고 귀만 두꺼워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말씀을 모르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편이 훨씬 더 낫습니다.
신앙생활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지 머리로 하는 게 아니거든요.
가슴이 뜨거워야 하는데, 지식만 가득해가지고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특별히 성경 통독을 인도하시는 분들이나 성경 세미나를 이끌어 가시는 분들은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처음에는 말씀을 깨닫는 재미가 너무 좋아서 말씀을 열심히 연구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된단 말예요.
성경을 풀다가 보면 그렇게 되게 되어 있어요.
자기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기가 막히거든요.
이렇게 저렇게 성경을 꿰어 맞추다 보니까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단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감탄할 만한 대단한 메시지를 발견했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또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좋아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자로 따라나서게 됩니다.
그럴 때 조심해야 되는 거예요.
성경은 그냥 읽기만 하고 묵상하면서 열심히 살면 그게 최곱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꿰고 앉아 있는 것 보다 말씀대로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을 더 좋아하실 줄 믿습니다.
가끔 보면 참 안타까운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요, 자기가 처해 있는 현실은 잊어버리고 말씀 연구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것도 한 두 번 하고 말아야 되는데, 거기에 빠져들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마치 중독이 되듯이 되어 버려요.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찾아본다는 것은 나무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말씀만큼 열심히 살면서 머리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성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인 줄 믿습니다.
특별히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해서 주님께서 오실 그때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우리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 있잖아요?
구약에서는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고요, 신약에서는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언급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 약속들을 백성들에게 전하시기 위해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주셨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직접 오시기까지 구약시대에 수많은 예언자들이 활동을 했는데,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가 바로 말라기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은 한마디로 ‘경고’예요.
말라기 1장 1절 말씀에 이렇게 시작을 하거든요.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기 백성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셨고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마지막으로 경고를 하시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대체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하나님께서 경고의 말씀을 주고 계시는 걸까요?
말라기 1장 2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 도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한 단면입니다.
전에 한 학부형을 만났는데, 자식이 집을 나갔다는 거에요.
남편도 없이 혼자서 시장바닥에 나가서 생선 장사를 하면서 자식을 키웠는데, 아들이 고3이 돼서 대학을 갈 나이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엄마가 아들을 대학에 보낼 능력이 없었던 모양이예요.
그렇다고 아들도 그렇게 썩 공부를 잘 하지도 못했나 봐요.
그런데 친구들은 다 대학에 간다고 하니까 이 아이도 대학에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나 봅니다.
엄마가 아무리 설득을 해도 말을 안 듣는 거에요.
지금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우니까 어디 취직이라도 해서 우선 돈을 좀 벌고 나서 나중에 대학에 가면 안 되겠느냐고 해도 아들이 말을 안 듣는 거예요.
그러더니 이 녀석이 자기 엄마한테 하는 말이, ‘엄마가 그동안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느냐?’고 하면서 결국 집을 뛰쳐나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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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홀어머니가 자식 하나 제대로 잘 키워보려고 추우나 더우나 시장바닥에 나가서 장사를 하면서 자식을 키워놓았으면 그 엄마가 자식을 사랑한 거예요? 사랑하지 않은 거예요? 그 자식을 얼마나 사랑했겠어요?
그런데 ‘엄마가 언제 날 사랑했느냐?’고 ‘엄마가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느냐?’고 그러면 그거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다니까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물도 형편 없는 것만 골라서 드렸어요.
눈 먼 희생제물을 드렸고요, 다리를 저는 짐승, 병든 짐승들을 갖다가 하나님 앞에 드린 거예요.
좋고 실한 놈들을 아까우니까 못 쓰는 것들, 별 볼일 없는 것들을 제물이랍시고 하나님께 갖다 바친 거예요.
하나님 앞에 더러운 떡을 제단에 드리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혔다고 그러느냐면서 하나님께 따지고 드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해서 드리시기 바랍니다.
내가 가장 아끼는 것,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그것이 참된 제물이 될 줄 믿습니다.
지난주엔 김장을 하신 분들이 많았거든요.
김장을 하시면서 다들 양동이 하나씩 김장 김치를 가져다 주셔서 우리 교회는 제가 7년 동안 목회하면서 김장을 한번 했나? 첫해에 모르고 한 번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다른 목사님들께 자랑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김장도 십일조를 합니다!” 그러고 말예요.
김치만 들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양념도 한 통씩 들고 오셔요.
혹시 교회에 김장을 할 거면 배추만 저려 놓으라는 거예요.
다른 교회들도 그렇게 잘 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겠지만, 우리 칠정교회는 정말 아름다운 교회예요.
모두가 다 김장 십일조를 하면 교회에 무슨 김장을 할 필요가 있겠어요?
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입니다.(말2:5)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옳은 길에서 떠나 있습니다.
말라기를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고, 제사장들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성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제사장들이 먹고 살 수가 있는데, 백성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안 하니까 제사장들이 제대로 생활을 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제사장들이 육신의 생활이 보장을 받지 못하니까 영적으로도 무뎌지고 무감각해져서 심지어는 아내를 버리고 이방 신의 딸과 결혼을 하는 일까지 생겼다고 성경은 고발하고 있습니다.(말2:11)
그러면서도 늘 하는 말이,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그러는 거예요.
심지어는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말2:17) 그러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악한 모습인지 몰라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참다못해서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 3장 1절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옛날에 제가 학교에 다닐 때를 생각해 보니까 가끔 학교에 장학사님이 오신다고 하면 학교 전체가 비상이 걸렸던 기억이 나거든요.
며칠 전부터 환경정리를 하고, 마루 바닥에 양초를 문질러가면서 얼마나 열심히 닦았는지 잘못하면 미끄러워서 자빠질 정도로 마루바닥을 맨질맨질하게 닦았었거든요.
창문도 떼어서 물로 닦고 또 마르면 신문지로 닦고, 스치로폼 조각으로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나게 닦고 말이죠.
그렇게 며칠 동안을 열심히 준비해 놓고도 막상 장학사님이 오셔서 교실에 들어오시면 왜 그렇게 두근두근 떨렸던지 말이죠?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최고 높으신 분이신데, 교장 선생님이 장학사님한테 굽신굽신거리시는 걸 보니까 일개 학생이었던 저는 오죽했겠어요?
교육청에서 장학사 한 사람만 나와도 그렇게 야단이 났었는데, 만군의 여호와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언약의 사자를 보내시겠다고 하시니 이 얼마나 두렵고 긴장이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말라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언약의 사자가 누구예요?
하나님께서 보내실 언약의 사자는 세례 요한을 일컫는 거라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시리라고 말씀하신 언약의 사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들의 구주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오시는 날, 우리들은 그 분 앞에 감히 설 자가 없습니다.
누가 감히 그 분 앞에 설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오실 그 분께서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로 우리들을 깨끗하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다 하나님 앞에서 금이요, 은인 줄 믿습니다.
지금 여러분들 얼굴을 보니까 정말 금보다고 은보다도 더 빛나고 밝고 명랑해 보입니다.(할렐루야!)
요즘 금값이 무척 비싸다고 하던데, 우리 성도들은 주님 앞에서 금보다도 은 보다도 더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가치 있는 금은보화와 같은 성도들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믿음을 정금처럼 깨끗하게 소유해야 되는 거예요.
순금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번 불에 녹여서 불순물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우리들의 믿음도 여러 번의 시련과 연단을 거쳐야 순수하고 깨끗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 - 할렐루야!
요즘 아이들 때문에 걱정을 하시는 부모님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남들은 다 공부를 잘 하는데 너는 왜 공부를 못하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생겨난 말이 ‘엄친아’라는 말이 생겨났대요.
엄친아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 ‘엄마 친구의 아들’이라는 뜻이거든요.
만날 엄마는 엄마 친구네 아들 얘기만 하면서 걔는 그렇게 잘 하는데, 너는 도대체 이게 뭐냐고 늘 야단만 치는 거예요.
한번은 어떤 아이가 성적표를 들고 왔더랍니다.
엄마가 아들의 성적표를 보자마자 기절을 할 뻔 했대요.
성적이 너무 말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아이를 닥달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넌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렇게 공부를 못하니? 제발 책상에 좀 앉아서 공부 좀 열심히 해 봐라!”
그러면서 나무랐더니 그 아들이 콧방귀도 안 뀌더래요.
“엄마 엄마는 에디슨도 몰라? 에디슨은 학교 공부는 빵점이었지만 발명왕이 되었거든요?”
그랬더니 그 엄마가 하는 말이 압권이예요.
“야, 이 녀석아! 에디슨은 영어라도 잘 했지!”그랬대요.
그러데 똑 같이 공부 못하는 아이라도 부모님의 태도에 따라서 다르거든요.
어떤 아이는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성적이 다 ‘가가가가양가가’그렇더래요.
얼마나 한심했겠어요?
그런데 걔네 아버지가 그 아이를 불러서 뭐라고 말을 했는지 아세요?
“얘야, 너무 한 과목에만 치중해서 공부하지 말거라!”그랬대요.
같은 사건이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지는 거예요.
우리 집 얘기를 해서 죄송한데요, 우리 큰 아이가 공부를 곧잘 하길애, 둘째 아이는 아예 한글도 안 가르치고 초등학교를 보냈거든요.
그랬더니 초등학교 3학년 때 받아쓰기를 빵점을 받아 온 거에요.
아니, 어떻게 열 문제 중에 하나도 못 맞추냐고요?
그런데 혜상이는 아주 태연한 거예요.
아주 밝고 명랑해요.
그래서 그냥 수고했다고 그러고 말았죠.
그런데 얘가 커서 중학교에 가더니 전교 1등을 하고, 전교 학생회장을 하고요, 얼마나 잘 하는지 몰라요.
어려움을 만나면 그냥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되는 거에요.
“하나님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들을 주님께 부탁드립니다. 우리 남편을 주님께 부탁드립니다. 우리 가정과 사업을 주님께 부탁드립니다.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도와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실 언약의 사자가 오시면 우리들을 불로 연단하여서 정결한 금과 은으로 만드실 뿐 아니라, 우리들의 모든 죄악들을 양잿물로 씻어서 새하얗게 빨래를 하듯이 깨끗하게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도 공의롭고 깨끗한 것을 드히게 될 줄 믿습니다.(말3:3)
기말 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어제 아이들을 데리고 ‘뉴문(New Moon)’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는데, 거기 참 느끼한 대사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그 영화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한테 선물을 못 주어서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네가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겐 큰 선물이야!”그러는 거예요.
막 닭살이 돋으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여자들은 남자들이 그렇게 한 마디 해 주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그까짓 거 립 서비스로 한 마디 해 주는 것으로도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데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물을 정성껏 준비하고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들이 어찌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대림절 기간 동안 주님을 사모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런데 정작 주님께서 오실 때에 칭찬을 들을 사람이 있고 책망을 들을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주님 앞에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말씀하신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청함을 받고 자리에까지 들어갔으면서도 예복이 없어서 쫓겨난 억울한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3장 1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주님은 갑자기 성전에 임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때에 주님 앞에 부끄러움이 되지 않고 자랑스러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