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은 부자고 자신의 가정집을 골로새 교회로 헌신하며 예배를 드린 사람. 이 집에서 도망친 노예가 오네시모. 오네시모가 로마에서 붙들려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다(10). 오네시모라는 이름의 뜻이 유익한 자다. 그런데 실제로는 무익한 자였다(11-12). 오네시모를 심복이라 표현했는데 심복은 심장이라는 것. 무익한 자가 유익한 자가 되었다는 것은 큰 변화이고 심복이라는 것은 엄청나게 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으로도 성에 안 차서 내 심장이라고 말한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너무 좋아하는 것이다.
오네시모에게 있어서 변화의 핵심은 관계다. 무익과 유익의 기준이 되는 것은 관계라는 것. 전에는 관계가 안 좋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관계가 좋은 사람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유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공부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이 굳이 유익한가? 그냥 자기가 공부를 잘하는 것이고 돈이 많아서 뻐기고 다니는 게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다.
내가 잘난 인간이 되면 세상에 유익한 사람이 되는 줄 아는데 유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관계가 좋아져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해서 관계를 좋게 하면 은사나 능력이 없어도 된다.
오네시모는 죄인이었고 허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유익한 사람이 되었을 때는 죄와 허물이 없을까? 여전히 있다. 우리가 복음으로 변화되었어도 죄와 허물은 여전히 있다. 전보다 덜 하지 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절대 기준에서 죄가 사라진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가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유익한 사람이 된 것이다.
전에는 은사를 자기를 위해서 다 썼지만, 이제는 섬길 줄 안다. 관계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 유익한 자다. 우리가 유익한 자가 되기 위해서 무능에서 벗어나고 강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리 관계 속에 들어와서 섬길 때 진짜 유익한 것이다.
오네시모가 변화됐다는 것을 우리는 그가 완전해진 것으로 생각한다. 율법주의적 잘못된 접근이다. 우리도 지금은 불완전한데 완전해지면 하겠다고 하는 것은 죽어도 안 되는 것이다. 무능하고 약한 그대로 있어도 된다.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살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인데 방향만 바뀌어도 유익한 자가 된다. 무익한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이기적이고 이익적인 삶을 산다. 모든 것을 다 갖췄는데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 욕심만 구하는 사람은 무익한 자다.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십자가의 사람이 유익한 자다. 우리 인생에 최고의 유익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가 지옥의 백성이 될 수밖에 없는데 천국 백성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신 방법이 십자가 죽음의 희생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익한 분이다. 오네시모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유익한 사람이 된 것이다.
먼저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졌다(10).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복음으로 낳았다는 것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낳은 것이다. 로마서에서 중요한 개념이 의. "Justification by faith"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것(=디카이오수네). 올바른 관계, 좋은 관계라는 뜻이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관계인데 복음의 핵심이다. 이 관계를 모르니까 제대로 믿지 못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죄로 인해서 깨졌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이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 것. 관계가 회복된 사람을 의인이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 것인데 의인이 됐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져서 화평을 누린다는 것이다(롬5:1, 골1:20). 오네시모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모든 행복의 출발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사형수들이 모여서 서로를 격려한다. 너는 좋은 사람이다. 너는 무죄다. 자기들이 기준을 정한다. 공로를 세우고 공덕을 쌓으면 무죄가 되어서 풀려날 거야. 자기들끼리 모여서 룰을 만들어 봐야 자기들 얘기다. 빌면서 지성을 드리면 된다고 하는 종교인들이 있다. 삼보일배하면 죄용서가 된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죄가 없어진다고 누가 그랬나? 인간들끼리 모여서 만든 얘기다. 위에 암이 생겼는데 빨간 약을 바르면 낫는다고 한다. 누가 그랬냐고 했더니 여기 있는 사람이 다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된장 바르면 낫는다고 했다. 병원을 안 가고 사람 말 듣다가 다 죽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외에는 길이 없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방법을 받아들여야 한다.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하면 오직 예수 이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는데 다수결로 되는 줄 안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아무리 올바른 이야기를 할지라도 인간적인 얘기에 불과하다. 오네시모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변화된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속에서 살아가면 그다음에는 사람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살아야 한다. 우리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십자가 지면 된다(눅9:23). 그럼 하나님과 관계 회복이 돼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자가 된다. 믿는다고 하면서 유익을 주지 못하고 계속 이기적으로 사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다(11).
자기를 위해 잘 먹고 잘사는데 쓰려하니까 열매 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돈이 많으면 선물도 할 수 있고 밥도 사 줄 수 있고 구제나 선교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를 위해서 쓰겠다고 하면 무익한 자가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어도 된다. 잘 웃어 주고 인사만 잘해도 관계 회복이 된다. 자기중심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산다면 큰 유익이 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최고의 악한 죄는 교만과 거짓말, 이간질, 수군수군하는 것이다. 우리는 악질적인 죄를 살인 정도로 보는데, 성경에서 교만이나 거짓말, 이간질하는 것을 큰 죄로 보는 것은 관계를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천사 3분의 1을 마귀가 되게 만들었다. 관계가 다 깨진 것. 그래서 무익한 자는 관계를 깨는 자다.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관계를 다 깨는 사람들로 지옥불에 들어간다(마5:22). 그래서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들에게 원망 들을 일이 생각나면 제단에 예물을 두고 먼저 화해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것이다.
예배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인데 예배의 정신이 관계 회복이다. 분쟁하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보라. 형제들과의 관계 회복이 없는 예배는 지옥이다. 은혜가 없다.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지옥을 경험한다.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남자는 남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관계가 무엇인지 몰라서 엉망이 된 것이다. 사람들을 마주하기 힘드니까 정오에 물을 뜨러 온다. 관계가 다 깨진 여인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니까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외친다. 전도하기 위해 기쁨으로 관계에 들어간다.
지금도 어떤 사람은 나는 예수를 믿어도 조용히 믿고 싶다고 한다. 병든 신앙인데 잠시 잠깐은 그럴 수 있다. 계속 그렇게 믿으면 지옥 불이다. 힘들어도 관계로 들어가야 한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관계 회복을 위해서 만나러 간다. 그것이 복음이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보라. 거기 제사장 레위는 목회자다. 그런데 가는 길에 강도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을 만난다. 제사장과 레위는 자기 일에 투철했다. 죽은 사람을 만지면 안 되는 일 때문에 그냥 지나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일보다 중요한 게 관계라는 것. 선한 사람이 도와주었다.
예수님의 마지막 질문이 너의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 강도 만난 사람이 핵심이다. 나를 중심으로 ‘누가 내 이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되어줄까?’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복음 안에서 변화되니까 관계 회복에 관한 말을 한다. 주님 내가 누구의 것을 속여서 뺏은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을 것이고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겠습니다. 자기 재산을 관계 회복에 쓰겠다는 것이다. 반면에 그 옆에 있던 바리새인들은 수군수군 한다. 저가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자기가 의로운지 아닌지에만 관심이 있지 관계 회복에는 관심이 없다. 성경에 보면 관계 회복을 저버린 모든 사람은 다 악인이고 관계를 깨는 모든 행동은 죄악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관계 회복이 되는데 우리의 모든 시각과 기회,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해서 관계 회복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이 임하면 깨진 가정과 교회와 상처받고 거절당한 마음들이 회복된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혼자서 맺을 수 있는 열매는 없다(갈5:22-23). 열매는 관계 속에서 맺는 것이다. 성령은 관계의 영이시다. 관계 속에서 열매가 맺어지고 풍성해지는 것이다.
오네시모의 메시지를 통해서 유익한 자는 관계 회복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 쓰는 자다. 불평은 멀어지는데 최고이고 감사는 친밀해지는데 최고다. 서로 인사하고 감사하며 서로를 인정해 주라.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니까 문제가 풀리고 구원의 길이 열린다.
하나님과 성도와 성도 사이에서 좋은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선교 가는 이유도 관계 속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하기 위해서다. 관계는 길을 닦는 것이다. 관계 속에서 시온의 대로가 열린다. 건물도 아니고 장소도 아니고 믿는 자들의 관계가 교회다. 건강한 관계를 이루는게 건강한 교회다. 관계를 통해서 다 일어서게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