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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100번 이상을 오른 산성이다. 남한산성, 병자호랑 당시 전쟁다운 전쟁 한번 해보지 못하고 성안에서 47일간 말의 전쟁이 벌어졌던 곳, 380여년전의 이야기이나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힘을 길러야 한다. 힘이 없으면 언제나 공허하다. 남한산성 영화를 보고 다시 한번 국력을 키워야 함을 생각한다.
영화 남한상성의 줄거리와 2008년에 남한산성의 작기 김훈선생과 함께 한 남한산성 산행기를 여기에 남겨둔다.
2017년 추석 개봉작, 남한산성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청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든다. 추위와 굶주림,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 속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 대신들의 의견 또한 첨예하게 맞선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청의 치욕스런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그 사이에서 ‘인조’(박해일)의 번민은 깊어지고,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은 더욱 거세지는데...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혔다!
병자호란 [丙子胡亂]
163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에 침입하며 일어난 전쟁. 1636년 4월,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 새로운 군신관계를 요구한다. 청의 압박이 점차 거세지자 이에 대한 조선의 조정은 둘로 나뉜다. 청과의 화친을 통해 후일을 도모하자는 주화파, 그리고 청과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자는 척화파. 조선의 왕 인조는 척화파의 손을 들어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1636년 12월, 청은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 이로써 병자호란이 발발한다. 청이 순식간에 한양 근처까지 당도하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 하지만 길이 막혀 실패한다. 결국 가까운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하게 되고 점점 좁혀 오는 청의 공격으로 인해 남한산성에 고립된다.
남한산성 [南漢山城]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 24km 떨어진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위치한다. 해발 500m가 넘는 곳에 자리 잡은 산성으로 성곽의 전체 길이는 12.4km이다. 1621년 후금의 침입을 막고자 석성으로 개축하기 시작하였으나 준공치 못하고, 후금의 위협이 고조된 1624년부터 축성되어 1626년에 완공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방어력을 높이기 위한 여러 차례의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71년 3월 17일 경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About Movie ]
견뎌 후일을 택할 것인가, 싸워 죽음을 택할 것인가? 같은 충심, 다른 신념으로 맞선 두 신하.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47일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중국 명의 쇠퇴와 청으로 이름을 바꾼 후금의 번성, 이어지는 청의 새로운 군신관계 요구와 이에 척화로 맞선 조선. 그로 인해 병자년 12월, 청이 조선을 침략하며 병자호란이 발발한다. 적이 기병을 앞세워 한양 인근까지 빠르게 진격해 오자 조선의 왕과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하지만, 청의 대군에 둘러싸인 채 성 안에 고립된다. 추위와 굶주림, 적의 거센 압박과 무리한 요구, 그 안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채 치열하게 조선의 앞날을 논했던 남한산성에서의 47일(1636년 12월 14일-1637년 1월 30일)이 스크린에 처음으로 그려진다.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청의 굴욕적인 제안에 화친(나라와 나라 사이에 다툼 없이 가까이 지냄)과 척화(화친하자는 논의를 배척함)로 나뉘어 첨예하게 맞서는 조정, 참담하게 생존을 모색했던 낱낱의 기록을 담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남한산성>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충심은 같았으나 이를 지키고자 했던 신념이 달랐던 두 신하를 중심으로 한 팽팽한 구도 속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한층 드라마틱하게 완성되었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청과의 화친을 통해 후일을 도모하려 하는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과 청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고자 하는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 두 신하의 날카로운 논쟁과 갈등은 옳고 그름을 넘어서 ‘무엇이 지금 백성을 위한 선택인가’에 대한 고민과 화두를 던지며 380여 년이 흐른 현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깊은 울림과 메시지를 전한다. 여기에 강대국의 압박에 무력한 조정과 고통받는 민초들의 모습을 보듬으며 당시의 절박하고 고단했던 나날 또한 묵묵하게 눌러 담아낸 <남한산성>은 나라의 운명이 갇힌 그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명분과 실리, 신념과 원칙을 논하고 백성과 나라의 앞날과 생존을 진심을 다해 갈구했던 우리의 이야기로 올 추석, 관객들에게 가슴 뜨거운 여운을 남길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 배우 이병헌-김윤석의 첫 만남
박해일-고수-박희순-조우진의 강렬한 존재감
스크린을 압도하는 깊은 연기, 뜨거운 시너지를 만난다!
<남한산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배우 이병헌과 김윤석이 처음으로 한 작품에서 만나 기대를 더한다. 2012년 개봉해 1,232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왕과 천민을 오가는 1인 2역을 완벽 소화해내 극찬을 받은 이병헌은 치욕을 견디고 청과의 화친을 도모하고자 하는 ‘최명길’ 역을 통해 다시 한 번 명품 사극 연기를 선보인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도 차분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신념을 전하며 상대를 설득하려는 캐릭터를 탄탄하고 흡인력 있는 연기로 소화해낸 이병헌은 깊은 눈빛과 대사로 강한 울림을 전한다. <추격자> <도둑들> <검은 사제들> 등 매 작품 폭발력 있는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아온 김윤석은 청과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고자 하는 ‘김상헌’ 역을 통해 묵직한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남한산성>을 통해 첫 정통 사극 연기에 도전한 김윤석은 무엇이 백성을 위한 길인지를 깊게 고민하는 김상헌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청의 공격을 피해 임금과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숨어든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청과 화친할 것인가, 맞서 싸울 것인가를 두고 대립하는 두 충신으로 분한 이병헌과 김윤석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팽팽한 연기 시너지로 관객들의 몰입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것이다.
이병헌과 김윤석이 뜨거운 에너지로 스크린을 압도한다면, 박해일, 고수, 박희순, 조우진은 묵직한 존재감으로 극을 빈틈없이 채운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대신들 사이에서 고뇌하는 조선의 왕 ‘인조’ 역의 박해일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왕이 느꼈을 고통과 참담함을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표현해냈다. 격서 운반의 중책을 맡은 남한산성의 대장장이 ‘서날쇠’ 역의 고수는 민초의 신분에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우직하면서도 따뜻한 면모로 새로운 매력을 전하며, 혹한 속에서도 묵묵히 남한산성을 지키는 수어사 ‘이시백’ 역의 박희순은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으로 묵직함을 더한다. 또한 조선 천민 출신으로 청의 관직에 오른 역관 ‘정명수’ 역의 조우진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쌓은 탄탄한 연기 내공으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더한다. 이처럼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뜨거운 연기 시너지는 어디서도 만나볼 수 없었던 <남한산성>의 백미가 될 것이다.
김훈 작가 소설 원작
<도가니> <수상한 그녀> 황동혁 감독 연출
대한민국을 사로잡은 베스트셀러, 스크린으로 재탄생하다!
2007년 출간 이래 70만부 판매, 100쇄를 기록하고 제1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은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의 왕, 그 앞에서 벌어지는 두 충신의 대립, 그리고 흔들리는 조선의 운명 앞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을 통찰력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김훈 작가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문장과 생생한 묘사로 독자들의 만장일치 호평을 모은 바 있는 소설 ‘남한산성’이 출간 10년 만인 2017년, 스크린으로 새롭게 그려진다. “소설에 넣은 몇 개의 이미지가 있다. 가장 주요한 것은 고립무원, 그리고 고립된 성에서의 무서운 추위, 마지막으로 봄이 오는 아주 희미한 냄새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어떻게 영상으로 그려질까. 그리고 양극단을 이루는 인물들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그것이 통합을 이뤄가는 과정도 담겨야 할 것이다. 소설로 말하고자 했던 것이 영상과 극으로 표현되어 많은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는 김훈 작가의 기대와 바람이 더해진 영화 <남한산성>이 황동혁 감독에 의해 새로운 숨결이 담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가슴 아픈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해 466만 관객을 동원한 <도가니>, 따뜻하고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며 865만 관객을 사로잡은 <수상한 그녀>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연출력을 선보였던 황동혁 감독이 <남한산성>으로 첫 사극에 도전한다. “‘남한산성’ 소설을 읽고 가장 놀라웠던 것은 지금의 상황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 선조들이 했던 고민과 결정을 다시 한번 되짚어 봄으로써 현대에 당면한 문제와 해결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전한 황동혁 감독은 진중하고 묵직하며 힘 있는 사극 연출의 정공법으로 작품을 이끌었다. 무엇보다 원작에 표현된 최명길과 김상헌의 날 선 논쟁의 대사들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기고자 했던 황동혁 감독은 최대한 원작의 대사들을 살리면서도 이를 현재의 관객이 듣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윤색하는 작업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통해 보다 생생하고 드라마틱하게 완성된 영화 <남한산성>은 올 추석, 관객들을 1636년 병자호란의 현장으로 이끌며 특별한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웰메이드 사극의 계보를 잇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암살> <사도> <밀정>
촬영, 미술, 의상, 분장, 국내 최정상 제작진 총집합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정상 제작진들이 <남한산성>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도가니> <수상한 그녀>에 이어 황동혁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추는 김지용 촬영감독과 채경선 미술감독을 비롯해 조상경 의상감독, 조태희 분장감독까지 국내 최고의 제작진이 함께한 <남한산성>은 실력파 스태프들의 가세로 보다 생생한 볼거리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완성해냈다.
<달콤한 인생> <밀정> 등 영화의 색감과 캐릭터의 특성을 살린 강렬한 촬영 스타일로 호평받으며 제26회 청룡영화상 촬영상을 거머쥔 김지용 촬영감독은 간결하고 담백한 원테이크 촬영으로 컷을 최소화하여 배우들의 뜨거운 열연을 고스란히 담아내 마치 연극을 보는 듯 몰입도를 높였다.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상의원> 등 리얼한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극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두 차례 대종상영화제 미술상을 수상한 채경선 미술감독은 행궁, 성첩, 대장간 등 남한산성 안팎의 공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평창에 오픈 세트를 제작한 것은 물론, 당시 청나라 군막 형태와 같은 몽골의 게르(Ger)를 직접 공수해 오는 등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에 <아가씨> <암살> <군도:민란의 시대> 등 매 작품마다 시대를 완벽히 담아내는 의상을 선보여온 조상경 의상감독은 17세기 한복의 실루엣과 병자호란 속 조선의 궁핍한 상황을 드러내는 동시에 컬러와 재질의 차이로 신분과 캐릭터의 특성을 담아내는 의상을 비롯 조선 갑옷과 종이로 만든 지갑(紙甲), 청나라 부대 갑옷 총 300벌을 직접 제작하는 등 사실감을 높였다. <최종병기 활> <광해, 왕이 된 남자> <사도> 등 여러 편의 사극 작품에서 완성도 높은 분장을 보여준 조태희 분장감독은 200여 장이 넘는 스케치를 통해 피부 톤과 수염의 길이, 관자의 크기 등 캐릭터별로 세부적인 컨셉을 달리하는 등 정통 사극의 리얼리티를 한층 더했다. 이렇듯 촬영, 미술, 의상, 분장에 이르기까지 국내 최고의 제작진이 가세해 완성해낸 <남한산성>은 웰메이드 사극의 계보를 새로이 쓸 것이다.
5개월의 혹한을 견디며 담아낸 생생한 볼거리
1636년 병자호란을 완벽 재현하다!
<남한산성>의 제작진은 11월부터 5개월간 혹한 속에서 전국 올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하며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을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남한산성의 추위와 풍경을 리얼하게 재현하기 위해 모든 장면은 야외 공간과 오픈 세트에서 촬영되었다. 대신들 간의 첨예한 대립이 펼쳐지는 외행전의 경우 강원도 평창에 오픈 세트를 제작해 창호지가 흔들릴 정도의 바람과 입김이 끊임없이 나오는 추위를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인조가 기거하는 내행전은 남한산성으로 급하게 피신하며 옷가지와 이불조차 챙길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해 최소한의 소품만 갖춘 비좁고 소박한 공간으로 그려냈다. 또한, 송파강을 가로질러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예조판서 ‘김상헌’의 모습을 담기 위해 강원도 인제에서 얼음 두께가 30cm에 이르는 실제 얼어붙은 강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격서를 전달하기 위해 빙벽을 등반하는 ‘서날쇠’의 장면은 실제 빙폭(氷瀑)이 형성되어 있는 양주 가래비 빙벽장에서 사나흘에 걸쳐 촬영하는 등 생생한 현장감을 전하기 위해 제작진과 배우 모두 총력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아 실제 대장장이가 사용한 소품으로 꾸민 서날쇠의 대장간, 직접 몽골에 가서 공수해온 군막과 직물로 연출한 삼전도 청의 진지 등 영화 속 모든 공간과 작은 소품 하나까지 리얼하게 연출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조선과 청의 전투 장면은 제작진의 남다른 투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남한산성>의 명장면 중 하나로 평창의 산 속에 제작한 성첩 세트에서 촬영되었다. 성첩 세트는 남한산성의 성첩 도면이 기입된 문헌 자료를 토대로 제작되었으며 수차례의 남한산성 답사를 통해 실제 쌓여 있는 성첩의 돌과 여장(女墻,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의 사이즈를 측정하여 완성했다. 뿐만 아니라 전투 장면에서 군사들이 사용했던 조총과 칼, 활 또한 실제 사이즈로 재현되었으며 군사들의 투구와 갑옷은 당시 전쟁에서 사용했던 짐승의 가죽과 화선지 등의 재료로 6개월의 수작업을 거쳐 제작되었다. 이처럼 제작진과 배우들의 혼신의 노력으로 1636년 병자호란을 완벽히 재현한 <남한산성>은 한시도 눈 뗄 수 없는 생생한 볼거리를 선보일 것이다.
작가와 함께 한 남한산성
. 산행일자 ; 2008년 1월 19일 김 훈 작가 외 시애라 클럽회원 100여명
. 산행코스 ; 남문-> 종로 로타리->침괘정->숭렬전->수어장대->성벽->서문->연주봉 옹성->북문->행궁->마방(하남)
병자년 겨울, 1636년12월 13일, 청의 대군이 몰려오자 3명의 신하와 함께 송파 나루를 건너 산성 남문으로 들어와서 47일간 청나라에 항거한 곳이 바로 남한산성이다. 20만 청나라 대군에 포위되어 12천 여 명의 군사와 함께 47일간 항전하던 사항을 김훈 작가가 남한산성을 소설로 썼는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바로 오늘은 작가 선생님을 모시고 이곳에 왔다.
우선 남문에 올랐다. 송파에서 산성으로 들어오는 가장 빠른 길은 서문이었으나 군주의 위엄을 감안하여 남문으로 들어 왔다고 한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그런 명분이 그리도 중요한가 생각해 본다. 남문 안쪽으로는 至和門이라고 남문 안쪽으로 걸려 있는데 글씨에 힘이 없고 균형을 잃었다. 어린 아이가 쓴 것이 아닌가 하고 작가는 얘기한다.
성안의 중심지, 종로 로타리로 이동하다. 이곳은 동서남북이 오거리로 되어 있고 현재의 모양이 병자호란 당시의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고 한다. 임금의 공간인 행군이 5분 거리에 있고 이 곳은 백성들이 모이는 공간이었는데 임금이 들어오자 관리의 공간으로 바뀐 중요한 위치로 지금의 중부 파출소 자리는 병자호란 당시에는 포도청의 자리였다고 한다.
백제 온조의 궁궐터라고 하는 침괘정을 지나 소나무 숲을 걸어 올라 숭렬전에 다다르다. 이 곳의 소나무 숲은 조선왕조가 보호하던 소나무이고 그래서 이 곳에는 무덤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성안에서는 무덤이 보이지 않는다. 숭렬전은 백제 온조왕의 사당으로 온조 임금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남한산성의 주봉 청량산의 정상에 위치한 수어장대(일명 서장대)에 다다른다. 여기는 군사시설의 중심지로 1만 2천명의 병사로 20만 청나라 대군과 맞서던 수어사가 주둔한 4개 부대의 최고사령부 건물이다. 경복궁의 도성이 바라다 보이고 산성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요지 중의 요지이다.
남한산성의 성벽은 견고하게 잘 쌓은 성으로 3한 1타의 작은 구획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밖의 경사에 따라 총구멍의 경사도가 다르며 성을 꾸불꾸불하게 쌓았는데 이렇게 꾸불꾸불한 연유는 적들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쏘기 위하여 꾸불꾸불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 성안에 벽돌 공장이 있었고 바닥은 지금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서문은 말을 타고 나갈 수 없을 정도의 가장 초라한 성문인데, 이 서문을 통과하여 삼전 나루에 나가 청나라에 항복하였다. 임금의 체통상 남문으로 나갈려고 했는데 청나라 태종이 받아 주지 않아 결국 서문으로 나갔고 1시간 반이면 갈 거리를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5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내려가는 길이 경사가 급한 눈길이라 말들이 꼬꾸러 져서 임금이 몇 번 빙판에 넘어 졌다고 한다. 당시의 치욕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겨 낼 수 있으리라.
서문 밖을 돌아서 산성 서북쪽을 관찰할 수 있는 연주봉 옹성으로 이동하다. 이곳에 가면 성벽 밖을 관찰 할 수 있고 용마산, 예봉산, 검단산과도 연결이 되어 봉화로 서장대와 연락할 수 있는 곳이다. 당시에 검단산에 조선의병들이 왔으나 봉화로만 응답하고 성을 구하지 못하고 전사하였다고 한다.
다시 내려 오면 북문이다. 병자호란 때 대규모 전투가 없었는데 김유장군이 300여명의 정예군사를 이끌고 북문 밖 가파른 비탈길로 나가다가 산 뒤에 숨겨진 청나라 복병들에게 전멸을 당하였다. 여기에서 패전한 뒤 사기가 떨어지고 결국 47일만에 청나라에 투항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종로로 내려와서 침괘정을 거처 행궁으로 이동하다. 행궁은 전쟁 때 피난하기 위해 지은 곳으로 강화도, 수원, 북한산성에도 행궁이 있었다.이곳은 당초 목적지가 아니었으나 이미 강화도 가는 길은 막혀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내행전 자리는 임금과 딸린 사람들의 자리였고 이곳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이두문자가 나왔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중요한 자리로 추정된다. 내행전의 자리에 않으니 바람이 없고 따뜻하다.
하남의 입구 마방에 들러 점심을 들고 김훈 선생님의 특강을 듣다.
본인은 혼자 숨어서 글 쓰는 사람이다 . 남한산성-병자호란 때 47일간 버티면서 고립무원의 성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를 그려냈다. 당시에 별의 별 놈이 다 있었다. 갇힌 성안에서 달아나야 살아난다고 하여 도망간 사람도 많았고...그러나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함께 싸워야 산다고 산성으로 들어 온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을 존경하지도 않는다. 끝까지 싸우고 싸운 지식인들 , 김상헌 대감과 청빈한 지식인들.......매우 높은 이상과 고매한 조선의 지식인들-자손만대에 추앙을 받아야 하겠지만 눈앞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장님들이었다. 성문을 열고 적의 노예가 됨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최명길,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돼지, 개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 양대의 축이 있었다. 오늘은 싸우자고 하고 내일은 투항하는 사람들, 각양각색의 사람들, 정치적 식견없이 살아가는 일반인들, 별의 별 놈들이 많았다. 아무 말도 안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 것도 그려 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소설은 미완성이다.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정9품이나 되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뎌 내었을까? 생각만 해도 진 땀이 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고 뒤에 태어 난 것을 감사한다.
인조 임금이 투항하고서 전쟁은 끝난다. 7년 전쟁을 하면서 백성들의 학살, 국가가 거들이 났다. 일본의 군사적 야망이 좌절되고 우린 완전히 참패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승리였다. 1만2천명의 군사는 성 주변에 있던 군사들이 모여든 향병이었다. 일관된 지휘계통이 안 잡혔고 훈련이 안된 군사들이었다. 45일을 버틸 수 있는 식량, 간장 220통이 전부였다. 화약이 있고 대포가 있었으나 쏘지 못했고 성밖은 20만명의 청나라 군사가 포위하고 있었다. 청나라 태종이 군사들을 인솔하고 내려 왔다. 아시아 최강의 군대 20만명에 포위되어 그 성안에서 47일간 무엇을 했는가?
가장 열심히 한 것이 말(言)이었다. 싸움은 거의 이루어 지지 않았다. 성안의 궁핍한 생활을 알고 있었고 성을 깨 부시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을 포위하고 기다렸다. 싸움이란 북문에서 일어난 싸움이 전부였다. 그외 성벽에 오르는 군사를 죽인 것이 싸움의 전부였다. 밖과 싸우기보다 안과 싸우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말과 말들이 서로 부닥치는 것을 그렸다.
결국 임금은 투항했다. 매우 처참하고 굴욕적으로 투항했다. 이 지구상에 청나라만 있는 것으로 알고 살겠다. 청나라가 요청하면 기한을 어기지 않고 나가겠다. 군사시설을 만들지 않고........해마다 처녀 500명을 뽑아 청에게 받치겠다. 미모의 수준을 유지하겠다. 처녀를 지방에 할당하여 못 채우면 곤장을 쳤다.
인조의 투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배를 가르고 죽어야 할 치욕이다. 강한 나라로 살아가야 한다. 투항이 약소한 민족, 생존술로서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반대의 생각도 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투항하기 전날 김상헌 선생은 자살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발견되어 미수에 그친 위대한 정신이 있었다. 동양성리학이 길러 낸 훌륭한 인재다. 그러나 그 길은 혼자 가면 되는 길이다. 자손만대 추앙하면 된다. 거룩하고 고귀한 길이나 따라 갈 수 없는 길, 비극적인 아이러니다.
생활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결말이 매우 빈약한 소설이다. 대장장이가 전쟁 끝나고 성에 돌아와서 새봄이 오니 농사를 시작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난다. 그 이상의 희망을 제시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희망이라고 하면 세상을 속인 것이다. 소설을 다 쓰고 나서 매우 슬펐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거짖말을 쓸 수가 없었다. 일상을 써 나간 것이다. 사실의 언어, 사실위에 정의를 세우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정의 위에 사실을 건설 할 수는 없다. 정의, 신념이 아닌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신념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타고난 허무주의자, 신념을 가진 자보다 의심에 가득 찬 사람을 존경한다. 관념, 추상으로 엮어진 신념이란 가치를 의심한다.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일상의 구체성으로 복귀한다. 의사가 병을 고친다. 감기라는 추상성, 그것을 고치는 것이 아니고 감기에 들린 인간을 고친다. 감기라는 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고통은 다르다. 언어와 글과 삶 사이에 벌어지는 복잡하고 난처한 것 의심하는 편의 자다. 구체적인 편이다. 행복하고 밝고 남을 편하게 해 주는 글을 쓰고 살았는데 비극적인 글이 되고 말았다.
악과 폭력에 끝없이 짖 밟혀 가면서 인간의 운명이 드러난다. 대안이나 결론을 제시 할 수가 없었다. 정치지도자가 아니다. 운명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 내는 것으로 나의 임무는 끝났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작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은 이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건배를 제의 하겠다 해군은 바다로를 세번 한다. 육군은 앞으로를 세번 한다.
앞으로!, 앞으로! , 앞으로!
남한산성은 육군의 싸움터다. 군사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소설을 집필하는데 6~7개월이 걸렸다. 그전에 답사를 많이 하였다 2~3년간 답사하였다. 그 당시에는 성벽이 허물어진 그 상태로 남아 있었다. 성벽을 보는 순간 너무 놀랬다. 조국의 견딜 수 없는 비극, 참담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이런 슬픔이 소설을 쓰겠다는 계기가 되었다. 구석구석 들여다보면서 계절의 묘사, 지형의 묘사...이 성을 좋아해서 여기 와서 거의 살았다.
질문 1
유명작가와 3번째의 만남이다. 지천명의 나이인데 소설을 쓰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려 달라.
-> 잘 모르겠다. 앞이 뿌였게 보일 뿐이다. 안개가 끼어 있는 느낌, 구름이 걷히고 선명하게 느끼는 것, 소설을 쓰려면 세상을 악착스럽게 들여다 보고 악착같이 해석해 내고 훈련이 필요하다. 되도록 안 하는 게 좋다.
질문 2
이번 산행에 큰 마음 먹고 왔는데 회사 가서 전할 메세지가 무엇인가? 아들 딸에게 돌아가면 뭐라고 얘기해야 하나?
-> 그거야 잘 모른다. 내 책 광고하느라 출판사에서 버스에 내 얼굴 붙이고 광고하고 돌아 다녔는데 꼭 그렇게 해야 하냐고 친구가 묻더라.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로 본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추한 것도 아니다. 본래 기업은 그런 것이다. 선악미추의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문제다.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실패하면 거대한 사회악을 만드는 것이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국익을 저버리면 그것은 악이다.
질문 3
소설이 100만부가 팔렸으면 엄청난 부자인데, 돈에 대한 철학은 무엇인가?
-> 아들아 돈을 벌어 와라. 돈을 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자기 인격을 완성하려면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야 인격이 완성되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은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기자 시절에 월급 타다 와이프한테 갖다 주면 용돈을 받았다. 월급 타면 외상값 받으로 오고 ....... 그 꼴을 보면 추잡스럽고 산다는 게 울분이 났다. 그러면 그 돈으로 술을 먹는다. 돈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미워하는 것은 잘 못된 것이다.
질문 4
칼과 말로 되어 있는 역사, 몽고도 그랬고 우리를 점령했는데 왕을 왜 안 없앴는가? 조선의 왕을 안 없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 짐작이다. 중국은 왕조가 자주 바꼈다. 200년마다 바꼈다. 그게 나라도 건강하게 만들었고
강력한 지도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강력 할 때 한반도를 쳐들어 왔다. 모택동까지 쳐들어 왔다. 중국의 왕조는 한반도가 멀어서 완전히 지배하려고 하지 않고 조공 바치고 말을 잘 듣는 변방국가로 두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 것 같다.
질문 5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봉사활동에 대하여는? 깊은 슬픔, 나 하고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로 보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 태안에 가서 이틀간 기름 닦고 왔다. 끝이 안 난다. 밀물 때마다 기름이 들어 온다. 그 넓은 바다를, 돌맹이 하나하나도 닦아야 한다. 삶을 관찰하라. 거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게 글 쓰는 자의 태도이다. 삶의 태도와는 다르다. 기름은 닦아야 한다. 바다 앞에 거대한 유조선- 이 세상에 돌아 다녀서는 안 된다. 크레인이 더 무서웠다. 왜 저런 괴물같은 크레인이 돌아 다녀야 하는가? 그런데 대안이 없다. 고민 할 뿐이지 알 수가 없다.
질문 6
광해군은 외교의 줄타기로 나라를 지켰다. 소현세자, 며느리 독살설이 있는데 인조의 리더로서 자질은? 리더로서의 평가, 덕목에 대하여 얘기해 달라.
->광해군은 인격 파탄자, 패륜아라고 하는 것이 상당한 사실 같다. 외교는 균형이 이루어 질 때 전쟁을 피할 수 있다. 동북아 균형자리- 그것은 한계가 있다. 명과 청이 대등한 세력이므로 균형이 이루어졌다. 그 후 대륙에서 균형이 깨지고 그 결과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인조가 투항한 것은 능동적인 선택이 아니고 단 하나의 길이었을 뿐이다. 그 후 북벌정책을 만들었고 청을 쳐들어 갔다. 대의명분을 노린 정권의 국내기반 강화였다.
투항 한 것은 리더쉽의 중요한 본질이다. 북벌정책은 이념적인 것이다. 북학파- 청나라 문물을 배우게 되었다. 조선 정치사의 장관이다. 진화하는 자 만이 지도자의 길을 갈 수가 있다. 북벌이 위대한 것이 아니고, 북학전환이 위대하였다. 전환노력이 중요하다. 이것이 전환기 리더의 덕목이다. 사실에 입각한 정신이 중요하다. 관념이 아니고 ....나는 수행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상은 작가와 산행을 중심으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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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기 소개하신 내용은 우리나라 어느 전문가도 흉내조차 낼수없을정도의 전문성과 내공있는 글이네요.
전공이 의심스러울정도 훌륭 하십니다.
문화? 역사?영화?작가?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우리가 항상 오르는 남한산성이야기입니다,
세월은 지났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국제환경은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국력이 많이 신장되었습니다,
남한 산성을 갈 때 마다 그 때보다 더 어려울 때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힘을 냅니다. 좋은 시절에 태어나서 좋은 세상을 살고 있음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