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 해미 국제성지(海美國際聖地)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조산리>
2026.4.25(토) 서산 한우목장길 웰빙산책로(2.1km, 47분 소요) 트레킹후 해미 국제성지로 이동하여
약 40여분(13:40~14:20) 동안 해미 순교자 국제성지 탐방하는 시간을 갖는다.
생명의 책 - 2014 제작
생명의 책
프란치스코 교황(2014.8.14~18)이 해미 숨겨진 성지에서 이루어진 아시아 주변들과의 만남에서 말씀하신 평화와 사랑해 메시지를 담기 위한 조형물이다.
작품 속에 심어진 호야나무는 과거 천주교 박해의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미래의 가능성을 염원하고자 하였다.
해미 순교성지 입석
충남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에 위치한 한국 로마 가톨릭 교회 순교 성지이다.
조선시대 내포지방의 중심이었던 이곳은 1418년 태종 18년에 병마절도사가 설치되었고
1491년 성종 22년에 진영이 완성되면서 군사 요충지로 자리 잡았던 곳이었는데
1866년 천주교 '병인박해'부터 1872년까지 약 6년 동안 천주교인들이 해미읍성으로 붙잡혀와
박해와 고문을 받고 처형 또는 생매장을 당했는데 그 수는 1,000여 명에 달한다.
처음에는 해미읍성에서 처형을 하였는데 그 수가 많아지자 천주교인들을 해미천(海美川)으로 끌고 나가 생매장을 시키는 등 수많은 학살을 하였다.
이 요충지는 훗날 신앙인들에게는 피와 눈물의 장소로 남게 되었다.
1790년부터 1880년대까지 거의 100년 동안 수천 명의 신자들이 이 땅에서 체포되어 국사범으로 규정되어 잔혹한 고문 끝에 순교했던 곳으로
당시 붙잡혀 온 신자들은 인근 진둠벙에 산 채로 던져저 생매장되거나 해미읍성 일대에 갇혀 극심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켰다.
이렇게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 132명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이들은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채 땅속에 묻혀 있다.
당시 읍성 서문 밖 돌다리에서 신자들을 처형하였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많아 큰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했다고 한다.
당시 신자들이 죽을 때 '예수 마리아'를 부르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잘못 알아들어 이 지역을 '여숫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해미읍성에서 여숫골 성지까지의 1.5km 길을 실질적인 '해미순교성지'(海美殉敎聖地)'라할 수 있다.
팔각의 탑
이는 종탑이 아니다. 세상 끝날까지 교회와 함께 하시면서 지켜주고 계시는 주님,
진복팔단을 말씀하신 주님을 상징하는 팔각 모양의 탑으로 파수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교회를 상징하는 대성전과 다리(브리지)로 연결되어 있다(주님은 우리 교회를 지켜주시는 파수꾼!)
해미 무명 순교자들의 어머니
이름 없는 집
순례자들이 이름 없는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기 위하여
"성경 이어쓰기"를 하는 곳으로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2025년 4월 21일 선종하였다.
제266대 교황이며 재위 기간은 2013년 3월부터 2025년 4월까지이다.
2014년 8월 15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바로 이곳 해미국제성지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는데
교황의 방문은 이곳이 단순한 추모지가 아니라 신앙의 살아 있는 증거임을 다시금 일깨줘 주었기에
오늘날 서산 해미성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성지로 선포되어 많은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방문하는 성지이다.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우리나라를 방한하여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에 대한 시복식 참석 및 미사를 거행하였다.
시복식에는 17만 가톨릭 신자와 일반 시민 등 약 100만 명이 참석했다
사무실 입구의 성모님
해미순교성지(여숫골) 안내도
해미순교성지는 수많은 이름 모를 신앙선조들의 순교성지이다.
대성당/소성당, 기념관(유해참배실), 자리개돌, 진둠벙, 노천성당, 복자상, 무명순교자의 묘, 순교탑, 야외제대, 유해 발굴지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시복 선포되신 인언민(마르티노), 김진후(비오), 이보현(프란치스코) 성화
1층 소성당
소성당은 대성당을 축소한 형태이다.
소성당은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주님을 바라보며 순교자들을 본받아 기쁨의 삶을 살아가도록
천정의 십자가와 함께 밝은 톤의 문창살로 벽을 꾸며 환한 집 안을 나타내고 있다.
농사를 짓던 농부에 의해 순교자 유해가 발견된 곳
순교자들의 대부분은 이름을 모르는 순교자로 남아 있지만 최근까지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132명이며
이 가운데 인언민(마르티노), 이보현( 프란치스코)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 이신 김진후(비오) 3분은
가톨릭 교회 공적 공경 대상인 "복자(福者)'로 추대되었으며 같은 해인 2014년 8월 16일 세분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시복되었다.
※ 복자(福者)란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신앙을 위해 순교한 자를 의미하며
시복은 이러한 사람들을 복자로 선포해 성인의 전 단계로 인정하는 의식이다.
2021년 로마 교황청에서 해미순교성지(여숫골 순교지)를 해미국제성지로 지정하였으며
이러한 지정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 세계에서는 단 30곳 밖에 되지 않는다.
뒷면에는, 프란치스코 1세 교황님께서 시복하신 해미순교 복자(福者) 세 분의 기념비를 직접 제막, 축복하시다.
2014. 8. 17.
해미 순교성지 기념관 - 유해참배실
발굴된 유해가 상홍리 공소 쪽에 모셔져 있다가 다시 본래의 장소인 생매장 터로 모실 때
김종수 주교의 의견으로 진토된 유해는 순교탑 앞에 모시고 아직 완전히 부식되지 않은
치아와 유골은 눈으로 직접 뵙고 참배할 수 있도록 투명한 아크릴로 진공 포장해서 따로 모셨다.
이 유해들을 왕릉의 형태를 본 따 떼를 입힌 봉분 형태로 지붕을 만들고 그 안에 모셨다. 말하자면 묘지인 셈이다.
신자들이 들어가 유해참배를 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도록 하기 위해 안 쪽에 유해를 모신 유해참배실을 만들었는데
그 공간 밖은 생매장 순교를 이해 할 수 있는 약간의 그림 등 소품들로 꾸며져 있다.
기념관 내부에는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물,
그리고 박해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순교자들의 무덤을 형상화한 독특한 디자인의 기념관이다.
이곳에서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만날 수 있다.
여숫골
순교성지가 조성되어 있는 이곳은 "여숫골"이라 불린다.
"예수, 마리아"를 부르는 교유들의 기도소리를 사람들이 "여수머리"로 알아들으면서 생긴 이름이다.
이곳에는 1935년에 서산성당 범 베드로 신부의 노력으로 발굴한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신 '순교기념관'과
무덤, 순교돌인 '자리개돌', 수장터인 '진둠벙', 순교자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 등이 있어 순교 당시를 기억하게 해준다.
또한 해미읍성에서 이곳 여숫골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이 만들어져 있어서 순교자들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 걸을 수도 있다.
해미 국제성지 노천성당
해미순교탑과 무명 생매장 순교자들의 묘
성지 곳곳에 설치된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예수님의 수난과 순교자들의 희생을 묵상할 수 있다.
순교자 기념관은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물, 박해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1866년 병인년으로부터 1868년 무진년에 이르는 대박해 때에는, 인원이 많아지자 시체 처리의 간편함을 위해 생매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생매장이 시행되면서 여름철 죄인의 수효가 적을 경우에는 사령들이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서 수장형을 시켰다.
개울 한가운데에 있던 둠벙에 죄인들을 꽁꽁 묶어 물속에 빠뜨려 죽였는데
천주학 죄수들을 빠뜨려 죽인 둠벙이라 해서 '죄인 둠벙'이라 불리고 있다.
십자가의 길
각처의 조형물은 죄수의 목에 채우던 족쇄형 큰 칼의 모형을 본딴 것이다.
재료는 화강석이다. 큰칼 구멍에 원형의 돌을 깎아서 끼워 넣고 그 표면에 그림을 조각하였다.
스힘의 한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고, 다른 한면은 순교자들의 죽음의 행진을 묘사하였다.
한국식 판화로 제작하였다.
제1처 감옥에서 의연한 순교자
주님께서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히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그렇구 말구,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을 천주님께 바치는 거야." 해미지역 첫 순교자 인 언민 마르티노의 말씀
진둠벙 순교지는 박해기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처형 방법의 하나인 익사 및 수장이 행해지던 곳이다.
순교 자리개 돌
순교 자리개 돌은 해미읍성 서문 밖 수구위에 놓여있던 돌다리로서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자리개질로 처형했던 사형도구이다.
그동안 서문 밖 순교지에 보존중이었으나 해미도시계획 도로개설로 인하여 생매장 순교성지(여숫골)로
2009년 1월 8일에 옮겨 보존하고 있고 그곳에는 모조품으로 꾸며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