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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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글로리오(Maglorius)
축일 10월 24일
성 마글로리우스(또는 마글로리오)는
남부 웨일스(Wales)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
성 일투드(Illtud, 11월 6일)의 보호를 받고
성장하여 수도자가 되었고,
성 삼손(Sampson, 7월 28일)과 함께 사제로
서품되어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선교 길에 올랐다. 여기서 그는 커푼트 수도원의
원장을 역임하면서 동료인 성 삼손의
선교 사업을 지원하다가 돌에서 주교가 되었다.
그 후 주교직을 사임한 그는 돌 지방의
한적한 곳에서 혼자 지냈으나, 병자를 돌보고
치유하는 은혜 때문에 늘 사람들의 방문이
잦았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 사크족의 족장이
중병을 앓을 때 그가 기적적으로 완쾌시킴으로써
그 답례로 그들의 섬 일부를 선물로 내 놓았고
또 수많은 개종자를 얻게 했다고 한다.
그는 멜로르(Maelor)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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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코(Mark)
축일 10월 24일
로마 순교록에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Campania)의 용맹한 군인 성 마르코(Marcus)라고
언급하나,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
(Gregorius I)는 그를 마르티누스(Martinus)라고
부른다. 그는 마르시쿠스 산의 조그마한 동굴 속에
혼자 살았는데, 뱀의 형상으로 된 사탄이 매일
나타나서 3년간이나 심각한 물 부족을 해결해
주었다고 한다. 또 그는 동굴 속에서 지낼 때에는
발목을 쇠사슬로 묶어 그 끝을 바위에 감아둠으로써
멋대로 거주지를 벗어나지 않게 하였다고 전해온다.
한번은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에서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메시지가 당도하였는데,
그 내용은 “만일 그대가 하느님의 종이라면
쇠사슬로 묶지 말고 그리스도의 끈으로 묶으시오”
였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그는 즉시 쇠사슬을
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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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티노(Martin)
축일 10월 24일
프랑스 낭트(Nantes) 출신인 성 마르티누스
(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프랑크계이며
성 펠릭스(Felix)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프와투(Poitou)로 선교여행을 떠났다.
그는 우선 자신이 머문 집 주인 부부를
개종시켰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다가,
낭트 부근의 강변 숲 속으로 들어가서 은둔소를
지었는데, 이것이 베르투 대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그에 대한 자세한 전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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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세녹(Senoch)
축일 10월 24일
성 세녹은 프랑스 프와투(Poitou) 태생이나
이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고,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면서부터 집을 떠나 은수자가 되려고 하였다.
그는 프랑스 중부의 투렌(Touraine) 지방을
방황하다가 한 마을에 적당한 곳을 발견하여
자신의 움막과 소성당을 손수 돌을 날라다 지었다.
성 세녹에게는 3명의 제자들이 모였지만 그는
자기 혼자 독수생활을 즐기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성덕은 더욱 높아졌고 따르려는
사람도 줄을 이었다. 투르(Tours)의 주교
에우프로니우스(Euphronius)가 서거했을 때
투르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는
그를 찾아가 주교를 계승하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성 그레고리우스 주교의 품안에서 고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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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펠릭스(Felix)
성 아우닥투스(Audactus)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성 셉티모(Septimus)
성 포르투나투스(Fortunatus)
축일 10월 24일
북아프리카 티뷰카(Thibiuca)의 주교인
성 펠릭스(Felix)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의 첫 희생자에 속한다.
황제의 그리스도인 검거 명령서 내용 가운데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그리스도교 관련 저술을
없애는 일이었다. 성 펠릭스 주교는 모든
성서를 관계 기관에 넘겨주라는 명을 거절하여
체포되었다. 그는 카르타고(Carthago)의 관리
앞에서도 이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거룩한 책들을 도둑들에게 넘기기보다
차라리 태워버리는 것이 더 낫다.
나는 사람들에게 순종하기보다 하느님께 순종하겠다.”
그는 황제의 명에 불순종한다는 죄목으로
화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전승에 의하면 성 펠릭스는 사제인
성 아우닥투스(Audactus)와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그리고 성 셉티무스(또는 셉티모)와 성 포르투나투스
(Fortunatus)와 함께 순교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료 순교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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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톨로메오, 비첸자의(bartholomew)
축일 : 10월 24일
바르톨로메오 브레간자는 파두아에서
공부하던 중에 창설자로부터 직접 도미니칸
수도복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치푸루스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이때 팔레스티나에서
프랑스의 성 루도비꼬를 만나 위대한 성왕과의
우정을 맺게 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잉글랜드의 교황 특사로 활약하였고,
나중에는 비첸자 주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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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레타(Aretas)
축일 10월 24일
아라비아 남서부 하드란(Hadran)의
베니 하리트(Beni Harith) 공동체의 원장이며,
압둘라 이븐 칸(Abdullah Ibn Kahn)으로도
알려진 성 아레타와 340명의 주민들이 듀 노와스
(Dhu Nowas) 또는 두난(Dunaan) 휘하의 유대인들의
무리들로부터 특사를 받은 직후에 학살되었다.
두난은 유대교로 개종한 인물이며,
악수미트 에티오피아인들을 상대로 폭동을 일으킨
인물이다. 이 학살은 도시 전체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모하메드에 의해 코란 속에도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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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Anthony Mary Claret)
축일 10월 24일
성 안토니우스 마리아 클라렛
(Antonius Maria Claret, 또는 안토니오)은
에스파냐 카탈루냐(Cataluna) 지방의 비크(Vich)
교구 관할인 살렌트(Sallent)에서 직물공의
아들로 에스파냐에서 태어나 1835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5년 후부터 그는 카탈루냐 전역을
다니며 사목하고 피정을 지도하였다. 그 후 그는
보다 큰일을 해보려고 1849년 7월 16일 다섯 명의
사제들을 모아 설교 활동을 하는 수도회를 세웠는데,
지금은 이 회를 클라렛 선교 수도회
(Claretian missionaries) 라고 부른다.
다음 해에 그는 에스파냐의 이사벨 2세(Isabel II)
여왕의 요청으로 산티아고데쿠바의 대주교로
선임되었다. 이 교구의 주민들은 흥분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클라렛의 엄격하고 세심한 개혁 운동은
많은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신학교 개혁과 성직자
쇄신을 추진하면서 방대한 관할 구역을 수시로
순회하였다. 또한 결실을 많이 얻을 수 있는
농사법을 권장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가정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협동조합을 결성하도록
도왔다. 이 과정에서 성 안토니우스는 수많은
반대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1857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에스파냐로
돌아온 그는 이사벨 2세 여왕의 고해신부 겸 왕실의
영성 지도자가 되었고, 설교와 간행물을 통한 선교의
중요성을 깨달아 출판사를 설립하여 많은 가톨릭
서적들을 보급하였다. 또한 그는 문화 방면에도
관심이 커 에스코리알(Escorial)에 과학 연구소,
자연사 박물관, 음악 학교, 언어 학교들을 세우고,
바르셀로나(Barcelona)에는 수도자 도서관을
세우기도 하였다.
1868년의 혁명 때 그는 급진주의자들에 의해
추방된 이사벨 여왕과 함께 로마(Rome)로 가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Vatican Council)에
참석하였으나 이후 에스파냐로 돌아가지 못하고
1870년 프랑스 나르본(Narbonne) 근처
프롱프루아드(Frontfroide)의 클라렛 수도원에서
사망하였다. 성 안토니우스는 1934년 2월 2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50년 5월 7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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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베르지슬로(Evergislus)
축일 10월 24일
독일 쾰른의 성 세베리누스(Severinus)가
벨기에의 통그레
(Tongres, 오늘날의 림부르흐, Limburg) 교회를
방문했을 때 한 소년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그를 자세히 관찰했는데, 그는 매우 뛰어난
영혼의 소유자였다. 이 소년이 바로
성 에베르기슬루스(또는 에베르지슬로)였다.
그 후 그는 성 세베리누스의 부제가 되었다가
스승의 뒤를 이어 쾰른의 주교로 승품되었다.
그는 매우 성실한 사목자로 큰 존경을 받았으며
밤마다 그곳의 성모 성당으로 가서 기도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러
그 성당으로 가다가 강도들을 만나 최후를
맞이하였다. 쾰른의 ‘골든 세인츠’ 성당에서
이 성인에게 기도하면 두통이 사라진다는
전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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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엘레스바안(elesbaan)
축일 : 10월 24일
황제 유스틴 1세와 알렉산드리아 총주교의
요청으로, 악수미트의 왕 엘레스바안은
유대교로 개종하여 유대인들의 폭동을 이끌던
두니안을 상대로 하는 원정단을 인솔하였고,
또 악수미트 에집트인들의 통치를 반대하여
예멘에서 항거하는 아랍인들과도 싸웠다.
그들은 남 아라비아의 나이단 마을에서 배교에
응하지 않는 남녀 크리스챤들을 모두
살해하였던 것이다. 엘레스바안은 두나안을
반격하는데 성공하여 그를 죽였으며, 두나안의
추종자들을 모두 섬멸하였다. 그 후 그는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 준 뒤, 여생을 모범적인
은둔자가 되어 참으로 성스러운 삶을 살았다.
이 때문에 로마 순교록에는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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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부오니(John Buoni)
축일 : 10월 24일
그는 부모를 잃은 뒤에 만투아의 집을 떠나
이곳 저곳을 다니며 정처없이 살다가,
40세 때에 중병을 앓고난 다음부터 새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주 성당을 찾다가 만투아 주교의
안배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고독한 생활 속에서 자신을 극복하는데
성공하여 높은 성덕을 쌓았다. 이 소문이
퍼져나가자 수많은 제자들이 주위에 몰려들므로
요한은 공동체를 세우고 교황의 승인을 구하니,
성 아우구스띠노의 규칙을 내려주었다.
요한은 초자연적 은혜를 많이 받았고, 또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추운 겨울에도
가벼운 옷으로만 지냈고, 잠자리도 극히 불량하였다.
그의 수도회는 보니티로 알려졌는데, 보니티회는
그가 생존할 당시에 이미 11개의 수도원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1256년, 교황의 명에 의하여
다른 수도회와 합하고, 수도회 이름을
성 아우구스띠노의 은수자회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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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쁘로끌로(proclus)
축일 : 10월 24일
콘스탄티노플 태생인 성 프로클루스(또는 프로클로)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의 제자로서 독서직을 받았으나 이상하게도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반대자인 아티쿠스
(Patriarch Atticus)로부터 부제품과 사제품을 받고
그의 비서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이던 아티쿠스가 죽은 뒤
그는 아티쿠스의 후임인 시신니우스(Sisinnius)로부터
키지쿠스(Cyzicus)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미 수도자인 달마티우스(Dalmatius)를 주교로
선출한 그 도시 성직자와 주민들의 반대로 실제
부임하지는 못하고 콘스탄티노플에 머물면서 설교로
명성을 얻었다.
그 후 434년에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네스토리우스(Nestorius) 이단과 기타
군소 이단들이 소용돌이치는 매우 혼란스런 시대였다.
그래서 그는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1월 2일)와
나지안주스(Nazianzus)의 성 그레고리우스
(Gregorius, 1월 2일)의 교리를 따르도록 권함으로써
정통교리를 지켰다.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성 키릴루스(Cyrillus, 6월 27일)는 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신심이 충만하고, 정통교리의
세심한 옹호자이다." 훌륭한 설교가였던 성 프로클루스는
446년 7월 12일경에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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