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가스로 알려진 아산화질소가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더구나 이 가스는 단 1시간의 치료만으로 2주 이상 우울증 증상을 현저하게 개선시키며, 항우울제를 처방받아도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치료 저항성 우울증’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무색의 기체로 물과 알코올에 잘 녹는 아산화질소는 마취·환각 효과가 있어 흡입할 경우 20~30초 동안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를 이용해 한때 아산화질소가 담긴 풍선이 해피벌룬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환각물질로 분류되어 치과나 수술에서 단기적인 통증 완화를 위한 마취제 등으로만 사용된다.
웃음가스로 알려진 아산화질소가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게티이미지뱅크
항우울제를 처방받아도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들은 전체 우울증 환자 중 약 1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때문에 이들은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우울증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과 시카고대학 연구진은 24명의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들에게 각각 1개월 이상의 간격으로 세 차례 웃음가스 치료를 시행했다. 이들은 항우울제 치료에 평균 4.5회의 실패 경험이 있는 환자들이었다.
처음에는 1시간 동안 아산화질소 50%와 산소 50%가 섞인 가스를 흡입하게 했으며, 두 번째 치료에서는 동일 환자에게 아산화질소 25%, 산소 75%가 섞인 가스를 흡입시켰다. 세 번째 치료인 위약 시험에서는 아산화질소 없이 산소만 흡입시킨 것.
실험 완료자 중 85%가 우울증 증상 개선돼
그 결과 총 17명의 환자가 아산화질소 50% 및 25%를 흡입한 이후 우울증이 개선됐다. 50%와 25%의 차이는 치료 효과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와 관련이 있었는데, 50% 혼합물을 흡입한 경우 2주 후에도 항우울제 효과가 더 컸다.
하지만 치료 부작용 측면에서는 25% 혼합물의 효과가 더 우세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산화질소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메스꺼움을 느끼는 것인데, 50% 혼합물을 흡입했을 때만 메스꺼움을 경험하고 25% 혼합물에서는 아무도 메스꺼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
이 연구의 모든 치료와 후속 검사를 마친 20명 중 11명(55%)은 우울증 증상이 절반 이상 현저하게 개선되었으며, 20명 중 8명(40%)은 임상적으로 더 이상 우울해지지 않는 상태를 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20명 중 17명(85%)은 임상 분류가 적어도 한 단계 낮아질 만큼 유의미한 개선 효과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중증 우울증에서 보통 우울증으로 개선되는 식이다.
뇌의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 수용체에 영향을 미치는 기존의 항우울제는 우울증 환자의 증상을 개선하는 데 종종 몇 주가 걸린다. 그러나 아산화질소는 뇌세포의 다른 수용체인 NMDA 수용체에 작용하며, 몇 시간 내에 증상을 개선하는 경향이 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 6월 9일 자에 발표됐다.
25% 농도로 치료하면 부작용 없어
연구진은 몇 년 전에 행해진 이전 연구에서 아산화질소 50% 농도로 치료 후 24시간까지만 우울증 개선 효과를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연구에서는 25% 농도로 치료해도 우울증 개선 효과가 거의 동일했으며, 단 한 번의 치료만으로 우울증 증상 개선이 평가 기간인 2주 내내 지속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연구의 저자 중 한 명인 시카고대학의 피터 나젤(Peter Nagele) 교수는 “부작용 감소가 예상 밖이었으며, 파격적이게도 한 번의 투여 이후 효과가 2주 내내 이어졌다”라며 “이는 이전에 밝혀진 적이 없는 아주 멋진 발견이다”라고 말했다.
시카고대학의 피터 나겔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항우울제로서의 아산화질소 잠재력에 대해 연구해왔다. ©University of Chicago
이번 연구 결과는 기존의 항우울제로는 치료가 잘 되지 않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빠르고 효과적인 치료법의 일환으로 아산화질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NMDA 수용체와 상호작용하는 또 다른 마취제인 케타민도 치료 저항성 우울증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연구진은 케타민보다 아산화질소가 몇 가지 장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아산화질소는 휘발성 기체이므로 마취 효과가 매우 빨리 없어져 치료 후 회복 시간이 빠르다는 게 바로 그 같은 장점 중 하나라는 것.
이에 대해 연구진은 케타민과 아산화질소의 효과를 위약과 비교하는 대규모 다기관 연구를 빠른 시일 내에 실시해야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