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우기(測雨器)는 조선 시대에 강우량 분포를 측정하던 기구로서,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이다.
조선 세종 때 처음 만들어 전국에 보급·시행하였다
1442년(세종 24년) 6월 15일(음력 5월 8일)로 여겨진다.
이때부터 《조선왕조실록》에서 측우기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쇠로 제작된 측우기는 길이 1척 5촌(약 32cm), 지름 7촌(약 15cm)이며,
비가 그친 후 주척(周尺)을 써서 푼(分) 단위까지 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 시간과 그친 시간을 기록하게 하였으며,
전국적으로 강우량을 측정하도록 했다
조선 초기에는 농업 등에 참조하기 위해
각 지방의 강우량을 측정하여 보고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비온 후에 고여 있는 빗물의 깊이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흙에 스며드는 정도가 서로 달라
1441년(세종 23년) 음력 8월 장영실을 시켜 서운관(書雲觀)에서 빗물을
측정할 수 있는 그릇을 처음 제작하게 하였고,
한양을 중심으로 관측에 활용하였다.
1442년(세종 24년)에는 측우에 관한 제도를 정하여
서운관에서 빗물의 깊이를 측량·기록하게 했으며,
지방에서는 각 관가의 뜰에 설치하여 수령 자신이 측량·기록하게 했다.
처음에는 쇠로 만들었으나 뒤에는 구리로 만들기도 하였고,
이외에 자기·도기로 대용하기도 하였다.
이는 이탈리아의 가스텔리보다 약 200년 앞선 것이다.
측우기는 흔히 장영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졌는데,
세종실록 23년 4월 을미(양력 1441년 5월28일) '근년 이래로 세자가 가뭄을 근심하여
비가 올 때마다 비 온 뒤에 땅을 파서 젖어 들어간 깊이를 재었으나
정확하게 푼수를 알 수 없었으므로 구리로 만든 원통형 기구를 궁중에 설치하고,
여기에 고인 빗물의 푼수를 조사했다'는
기록은 문종에 의해 발명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우량계 측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