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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있는 자, 왕이 없는 자
계 11:15-17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사람이 자신의 왕을 섬긴다는 것은
왕의 어명(왕명, 칙령)에 절대복종을 한다는 전제 조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왕의 뜻이 옳게 느껴지든지, 옳지 않게 느껴지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명령에 그저 순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왕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왕정시대가 아니기에 이런 개념을 생소하게 느끼는 분들이 많겠지만
우리나라도 불과 115년 전엔 왕정국가였습니다.
대중들이 각자 자기만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판단하며, 행동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국가에 왕이 없는 오늘날에는
각자가 마음속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 왕의 자리를 맡고 있으며,
그 왕의 뜻에 따라 사람은 말하고, 행동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하나님만을 유일한 왕으로 모시고 있기에
하나님의 뜻인 성경말씀을 삶의 유일한 교훈이자 지침으로 삼고,
그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 자신이 왕이 되어 판단하고,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떤 이유로 교회에 다니고는 있지만
하나님을 유일하신 왕으로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하나님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자신이 왕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선택하고,
또한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범하여 다시 죄의 종이 되기도 합니다.
이단과 사이비에 미혹된 사람들은 교주를 자신의 왕으로 모신 채
교주가 내리는 모든 악한 명령들에 그저 맹목적인 복종을 하면서
지옥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 사람의 마음속에는 왕의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모시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 섬기는 왕입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것 같던 ‘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 62:5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사사기 17-20장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에’ 나타났던 타락에 대해 묘사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왕이 없어서 무질서하며, 혼란스러웠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며,
그 분의 뜻에 순종하기도 싫어함으로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죄들과 타락으로 인해
암흑기가 이어졌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삿 17:3
(3)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삿 17:5-6
(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17장을 보면 미가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 가증스러운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면서도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포장하여 얼토당토않게 합리화를 시도했습니다.
그 여자의 아들인 미가는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불신앙으로 지극히 혼탁해진 타락의 모습을 보입니다.
본래 이스라엘의 제사장 제도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것으로서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들만이 대대로 세습하도록 되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가는 에브라임 사람이면서 하나님의 뜻을 멸시한 채 자신이 스스로 결정권자가 된 모습으로
마음대로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원래 레위인은 각 지파에 흩어져서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 하던 성직자들이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자신이 맡은 직무를 버리고 떠돌이가 된 어떤 레위인 청년이 있었고,
미가가 어느 날 그를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미가는 자신의 아들을 폐위하고, 그 레위인 청년을 제사장으로 다시 임명합니다.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레위인을 고용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하나님의 법도는 무시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행했으면서도
복은 받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행한 것입니다.
기복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삿 17:13
(13)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미가는 복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고용했고,
레위인 청년은 돈을 벌기 위해 취업을 했던 ‘거래 관계’였을 뿐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분의 뜻에 따르려는 순종의 마음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겉으로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척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돈과 권력, 기복과 탐심이라는
실질적인 왕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삿 18:19-20
(19)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20)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니라
한편 이주하여 정착할 곳을 찾던 단 지파의 정탐꾼들은
미가에게 고용되어 제사장이 된 레위인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레위인 청년은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자신은 삯을 받으며 고용된 제사장인 것을 자랑스럽게 말함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천박해진 성직자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단 지파의 정탐꾼들은 타락한 그의 모습을 보고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채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라며 신탁을 요청했고,
제사장, 레위 청년은 무슨 근거로 그랬는지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라고 답변합니다.
그야말로 눈먼 자들끼리의 어리석은 대화인 것입니다.
정탐꾼들은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라이스’라는 지역을 점령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그 결정은 과거 여호수아와 갈렙의 가나안 정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음으로서
사람이 보기엔 불가능해보여도, 다른 모두가 반대를 했어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순종으로서 담대히 결정한 ‘믿음의 증명’이었지만
타락한 단 지파의 정탐꾼들, 그들의 의도는
라이스의 땅이 외형적으로 보기 좋기에, 점령이 쉽고 편해 보이기에,
즉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안목의 정욕을 따라, 편한 것만 좇는 나태한 모습으로
행동의 방향을 결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단 지파는 600명의 무장한 전사들을 준비하고 레위 청년을 찾아가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라며
지금 하는 제사장직을 버리고, 단 지파로 옮기라는 제안을 합니다.
그러자 레위 청년은 기뻐하면서 즉시 미가를 배반하고,
에봇과 드라빔과 우상을 챙겨 단 지파를 따르는 선택을 함으로
타락한 성직자의 면모를 끝까지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이제 그들은 라이스로 진격하여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살던 백성들을 기습해서 칼로 죽이고, 성읍을 불살랐습니다.
단 지파는 자신들의 기업을 차지하지도 못한 채 가증한 우상을 등에 업고,
약한 민족을 골라 자신들의 안목의 정욕대로 침략하여 잔인하게 빼앗았으며,
자신들을 위하여 새롭게 우상까지 세우는 타락의 끝을 보여주게 됩니다.
삿 19:1-2
(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2)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이어서 19장을 보면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던 어떤 레위인과
그의 첩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레위인의 첩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 더불어 간음을 한 뒤에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에 있는 친정에서 지냈는데
그 레위인은 첩을 다시 데리러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원래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를 담당하는 제사장이기에
기생, 혹은 성적으로 타락하여 부정하게 된 여자를 취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었지만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순종하지도 않던 당시의 타락은
성직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따르면 살인죄와 간음죄, 그리고 부모를 폭행하는 죄는
어떤 제물로도 속함을 받을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첩을 데리러 간 레위인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보다
첩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김으로
그녀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베들레헴까지 찾아가 다정한 말로 첩을 설득했습니다.
첩의 아버지인 장인어른은 사위 레위인에게 더 머물고 가라고 강권했고,
그는 장인어른의 청을 받아들여 3일간 먹고 마시며 유숙했습니다.
떠나기로 했던 넷째 날, 장인어른이 또 붙잡자
그는 다시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하룻밤을 더 자고 가게 됩니다.
다섯째 날 아침 일찍 출발하려고 했지만 장인어른이 또 권하자
그는 다시 앉아서 먹고 마시다가 저녁이 되어버렸고,
하룻밤을 더 자고 가라는 장인어른의 말을 이제는 거절하고 늦은 시각에라도 떠나게 됩니다.
(다음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레위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떠났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레위인으로서 성직을 맡고 있다면 게으름을 버리고
성소에서 직무를 수행할 준비를 미리 성실하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간음죄를 범한 첩을 데리러 가서도 게으르고 나태하게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내면서 최대한 뒤로 미루다가 안식일이 가까이 온 시점이 되어서야,
즉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최후의 시각까지 미루다가 억지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장인어른의 권유를 받아들여 먹고 마시면서 돌아가기를 차일피일 미루는 이 내용,
즉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반복적인 이 내용을 굳이 성경에 기록해주신 이유를
우리가 그냥 생각 없이 넘어가지 않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답이 보입니다.
‘마땅히 우선해야 할 중요한 일들은 최대한 뒤로 미룬 채
나태하고 게으른 모습으로 먹고 마시며 놀기 좋아하는 자는
왕이 없는 자,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된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이 왕이 된 자의 특징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 중요한 일을 최대한 뒤로 미루고 게으르게 행동하는 나태함입니다.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다가 늦게 출발을 했기에
밤이 되었어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레위인 일행은
들짐승이나 도적떼의 위험을 피해 기브아에서 유숙하기로 결정했지만
아무도 그들을 재워주지 않았습니다.
‘나그네를 사랑하고 대접하라’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가르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거리에 앉아 있는 나그네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후하게 대접하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며
이를 어길시 공회 앞에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브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무시하며,
율법과 관습도 우습게 여기고, 처벌도 두려워하지 않는
타락한 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고 돌아왔는데
그는 에브라임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레위인 일행의 사정을 듣고 전통적 관습을 따라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씻게 하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대접했습니다.
삿 19:22-26
(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23)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그 때에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인 노인을 향하여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라고 말합니다.
마치 소돔 성에서 천사를 끌어내라고 했던 타락한 그들과 완전히 동일한 모습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대담하게 행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기브아 성읍의 백성들 전체가 암묵적으로 이 일에 동참하고 있었거나
또는 묵인하고 있었던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기브아 성읍은 과거 소돔이었던 사해와 가까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즉 기브아에 거주하던 타락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소돔을 불로 크게 심판하셨던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동성애와 성적 문란함,
그 타락한 방종의 길을 똑같이 걸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인은 자신의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주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불량배들은 여전히 레위인과의 동성 성행위를 원했습니다.
그러자 레위인은 사랑한다던 자기 첩을 억지로 붙잡아서 밖으로 끌어내어 불량배들에게 내주었고,
불량배들은 그 여자를 밤새도록 능욕하여 집단으로 강간을 한 후 새벽에 놓아주었습니다.
결국 레위인의 첩은 새벽에 겨우 돌아와 문지방에 두 손을 올린 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녀가 문지방에 손을 올린 행동의 의미는 당시의 미신적 풍습과 관계있는 것으로서
문지방 아래에 그 집안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여러 종류의 귀신들이 붙어있다고 믿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즉 그녀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직자, 레위인의 첩이면서도 문지방에 두 손을 올리며
귀신들이 자기를 보호해주고, 몸을 회복시켜주기를 바라는 타락한 모습으로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레위인은 그동안 범했던 자신의 죄악들을 회개할 생각은 하지 없고,
오로지 적개심에만 사로잡혀 크게 분노하여
집으로 돌아가서 첩의 시신을 열두 조각으로 나눠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게 보내어
기브아 사람들의 범죄를 공개적으로 고발함으로 그들에 대한 응당한 징벌을 촉구했습니다.
이 일로 결국 이스라엘에는 큰 내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공격에 대비하여 기브아 성읍으로 모인 베냐민 지파의 전사는 2만6천 명,
기브아 주민 중에서 뽑은 전사는 700명으로서 합치면 총 2만6천7백 명이었고,
타락한 기브아를 공격하기 위해 모인 이스라엘 전사는 40만 명이었습니다.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었고 이스라엘 각 지파가 모인 연합군의 사망자는
첫 날에 2만2천 명, 둘째 날에 1만8천 명, 셋째 날에 약 30명이었으며,
베냐민 지파는 셋째 날까지 총 2만5천1백 명이 죽으면서 기브아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이처럼 왕이 없던 사사시대는 어느 한 사람이나 집단의 일부가 타락했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타락하여 죄 가운데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럽게 표류하던 암흑의 시기였던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통치법은 하나님의 율법이었고,
입법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들의 유일한 왕이신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섬김으로서 그 분의 질서에 잘 따랐다면
아무 문제없이 온 백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결집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해주심 아래 있었을 것이나
그들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고, 이방 나라들의 세속적인 왕정제도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시도했으며,
또한 마치 법이 없는 자들처럼 스스로 왕이 되어 자기들 마음대로 행했습니다.
이처럼 암흑기를 맞이한 이스라엘은 ‘우리들에게 왕이 없어서 그렇다.’고 착각하며
핑계를 대는 모습으로 왕을 고대하게 되었고,
하나님이 아닌 인간 왕,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할 지도자를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시어 왕을 세워주셨지만
하나님께서 우려하신대로, 또한 우리가 성경말씀을 통해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 왕국’은 이후에도 여전히 수많은 죄의 문제들로 심하게 얼룩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타락–징벌–회개–구원’을 계속해서 반복했던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
즉 자신이 섬기는 왕이 있든, 없든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싫어하고, 순종을 미워하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 싶어 하는 악하고,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입니다.
잠 1:29-31
(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결국 문제의 핵심은 나라에 왕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 개인이, 더 나아가 공동체가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여
그 분을 자신의 유일한 왕으로 섬기며, 순종하는 것이 단 하나의 해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면
그들 마음속엔 유일한 왕이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에
국가에 왕이 있건, 없건 아무 상관없이 항상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 18:36-37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이스라엘 사사시대의 암흑기가 주는 교훈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완전히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유일한 왕으로 모신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왕의 자리가 비어있어서 줏대 없이 자주 왕이 바뀌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끌어내리고 자기 자신이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교만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유일하신 왕으로 경외하며 섬기고 있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고자 고심하며,
어떤 일 앞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순종하기를 힘쓰고,
항상 하나님의 눈치를 최우선적으로 살피지만
마음으로 확정한 왕이 없기에 자주 왕이 바뀌는 사람과
자신이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도를 어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을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세상의 오염된 마귀의 가치관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비난합니다.
또한 자신이 왕이 되어 살아가는 자들 중
영적 타락뿐 아니라 육신적으로까지 타락한 자들은
죄를 짓고 싶으면 거리낌 없이 짓고,
게으르게 지내고 싶으면 마음대로 나태하게 지내며,
먹고 싶을 때만 먹고, 먹고 싶은 것만 먹으며, 자면 안 되는 시간에도 자고 싶으면 잡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규칙, 규범, 원칙을 지키기를 싫어하여 무시하고, 증오합니다.
당연히 사회생활도 정상적으로 하기가 어려우며
인생에서 무엇도 이루어낼 수가 없는 형편없는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구원으로 향하는 올바른 신앙생활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선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소개하면서도
왕이신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왕으로 인정이야 하지만 자신은 왕을 섬길 생각이 없기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마치 영혼 없는 짐승처럼 육신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잠 12:1
(1)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요 8:34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롬 6:16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신이 왕의 자리에 앉아 교만에 사로잡힌 자들은
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면서 살아가기에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죄의 종이 되었기에 죄를 왕으로 섬기면서 죄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귀를 자신의 왕으로 섬기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는 것을 원치 않는 타락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오늘날의 자신이 하나님을 미워하고 경멸하면서
마귀를 왕으로 섬기며, 죄의 종이 되어 있다는 심각한 문제를 전혀 자각하질 못합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크게 후회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존함으로 철저히 회개하여 돌이키면 참 다행이지만
끝까지 깨닫지 못하거나,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시점이라면
안타까운 자, 그저 그런 인생을 살다가 끝내 버려진 채
영원한 지옥 불에서 형벌을 받게 될 사람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눅 19:14, 27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27)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하나님만을 유일하신 왕으로 섬기는 자는
반드시 그 분의 뜻에 따르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왕께서 내리신 명령, 그 분의 법도와 질서를 항상 마음 중심에 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도 왕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선적으로 행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왕의 명하심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먼저 깊이 생각하고,
왕께 여쭈면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왕의 명하심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구별된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요 14:15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나님이 무서워서도 아니고, 억지로도 아닙니다.
나를 먼저 사랑해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그 위대하신 왕을
이제는 나도 가장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고전 8:3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모든 피조물은 유일한 신이시며, 창조주이시며, 친아버지이신
왕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 왕이 없던 사사시대 암흑기에 있었던 일들을 확인했듯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자신이 왕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산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멸망의 길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리석고, 하나님을 떠난다면
결국 각자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왕을 따르려면 당연히 먼저 왕의 법을 알아야 합니다.
왕의 법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성경을 묵상하여 하나님 말씀의 진리와 교훈을
우리 마음 중심에 귀하게 모시고 있으면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갈팡질팡할 필요 없이 왕이신 하나님 뜻에 따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늘 자신이 품은 욕심 때문에 시험에 들고,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약 1:14-15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묵상에 이어서 꼭 필요한 두 번째 방법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참된 기도를 통해 매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어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맞춘 응답을 주셨을 때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연락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전화를 하거나 찾아와서 친밀한 척을 하면
십중팔구 돈을 빌려 달라거나 보험에 가입해 달라는 내용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기도를 거의 안 하던 자라도 갑자기 힘든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 아버지~”하면서 도와주시기를, 당신의 뜻을 알려 주시기를 간구하여 기도하면
물론 하나님께서는 내치시지 않고, 도와주시고 알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는 달리 항상 선하시며, 사랑이 많으시며, 인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각종 죄의 문제들로 인하여 하나님과 나 사이에 높은 담이 쌓였고,
또한 평소에 기도를 하지 않았기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그동안 꽉 막혀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진리에 대해 알려주셔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며,
친히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며 도와주셔도 그것이 도움인 것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하심과 나의 욕심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즉 육신적인 욕심을 품고 자신이 왕이 된 채
왕좌에 앉아서 하나님께 명령하듯, 혹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으면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뜻을 알 방법이 없거나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우며,
그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문제해결의 기도만 하는 경우가 더 많기에
끝내 응답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의 반복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처럼 성장 없이 시간만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약 4:2-3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왕이신 하나님께 매일 나아가 친히 도와주시기를, 의의 길로 이끌어주시기를
수시로 구하면서 무엇을 명하시든지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사소한 것도 하나님 아버지께 상담을 요청하면서 간구하면
하나님께선 ‘아, 저 녀석은 매번 상당히 귀찮게 구네...’하시지 않고,
“그래, 네가 나를 정말로 의지하는구나.”하고 기뻐하시면서
온갖 좋은 것들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은 분이십니다.
이것은 사실 엄청난, 놀라운 특혜입니다.
감히 일개 피조물 따위가
유일하신 온 세상의 왕을 언제든 알현할 수 있는 자격을 받았다는
그 사실 자체가 엄청나게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엄청난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셨기에 가능하게 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고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은
죽는 날까지 나를 살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인생을 살아가야 마땅합니다.
이 마음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기를 힘써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만이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눅 1:31-33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유일한 신이시며, 창조주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왕으로 삼지 않겠다고 아무리 거부해도
그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태초부터 영원토록 온 세상의 유일한 왕이십니다.
유일하게 원인 없이 스스로 계시며, 온 세상을 지으셨고, 영원한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 마음속 중심의 유일한 왕으로 모시며, 온전히 경외하면서
또한 그 분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십시다.
하나님께서 기다려주고 계실 때, 은혜의 때가 다 지나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 겸손히 머리를 조아리며 나아가는 자들만 이 엄청난 특혜를 받을 수 있으며,
또한 영원한 둘째 사망을 피하여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하루살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한 번 사는 짧은 우리의 인생,
무려 신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 매일 만나는 친밀한 사이가 되어
언제든지 알현할 수 있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상대할 대적이 어디에도 없는 가장 강하신 든든한 아버지가
항상 내 옆에 계셔주신다는 안정감을 느끼면서
각자에게 남은 시간을 위대하신 왕의 충직한 신하로,
사랑스러운 자녀로 지내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안타깝지만 솔직히 우리의 믿음은 견고하지 못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을 때
바다를 가르고 목숨을 살려주셨을 때는 매우 기뻐하면서 경외하며 감사하다가
시간이 조금만 지나 힘들고 배고프면 “애굽에서 노예였지만 고기 가마 옆에서 먹던 때가 그립다.
물이 풍성하지 않아서 힘들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이제 질린다.
우리를 죽이려고 끌어냈다.“며 계속 불평을 이어간 것처럼
우리도 힘들고 지치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새롭게 고통스러운 일들을 만났을 때면
언제 하나님께 감사하며 경외했었냐는 듯 쉽게 돌변하여 불편해하고,
감사의 마음은 희미해지다가 아예 사라지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서로 사랑하는 자, 그 분을 유일무이한 왕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면
이런 문제에서도 자유를 얻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가장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아무리 힘든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또한 절대복종의 전제를 가지고 오직 한 분의 왕을 종신토록 섬기는 충성스러운 신하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상황에 두시더라도 그 분과 교제하며 뜻과 의도를 잘 알면
항상 경외와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을 수 있고,
순간적으로 연약함 가운데 잠시 잃었다 해도 즉시 되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점은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선하지 않은 분, 가혹한 분이라 해도 피조물로서 복종해야 함이 당연한데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로 많이 사랑해주고 계신 분, 선 그 자체이신 분이기에
우리가 안심하고 하나님께 절대복종해도 우리에겐 아무런 후회도 없고, 손해도 없으며,
오히려 더 크고 귀한 복을 많이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진리의성령교회에서 말씀의 꼴을 먹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부디 각자의 마음 중심에 있는 왕의 자리에 영원히 하나님만을 모시고,
그 분의 법도와 질서를 즐거워하며, 순종으로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으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십시다.
각자의 삶속에서 항상 잊지 말고, 하나님만을 나의 유일하신 왕으로 경외하십시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세상의 오염된 가치관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여 아직도 남아있는 그릇된 마음들을 과감히 내버리고,
오늘날 자신은 무엇을, 누구를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관하여 심각하게 점검하며,
하나님, 오직 한 분만을 왕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권속으로 남아
새롭게 시작될 진짜 인생, 영원히 지속될 천국에서의 삶을 잘 준비하여
언제 갑자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어도 후회가 없을 최고의 인생을 완성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롬 5:21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요 14:21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5.11.30.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102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1.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2.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전에 즐기던 세상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
3.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못해
[후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첫댓글 아멘! 만왕의 왕 되시는 하나님 앞에,
충신이 되기를 다시한번 작정하고 다짐 합니다.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는 충신답게
앞으로도 변함없이 매일 이어가는 말씀묵상과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시며,
이 짧은 인생에서 조금의 후회도 남기지 않는 성공의 인생을 완성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