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9월 1일 월삭예배
○ 디모데후서 2장 20-21절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많은 젊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싶어서 교회와 기도원에 가서 자신을 이 시대에 써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써주시면 온전히 충성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부르짖습니다. 이런 헌신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자로 부르셔서 자신의 일을 맡기고 계십니다. 이 시대에는 그런 헌신자가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 나라에 초대 선교사로 왔던 언더우드선교사는 어릴적부터 이런 헌신의 기도를 드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조선땅을 밟았고 일생동안 선교를 하다가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지금의 감리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 뿐 아니라 교회의 긴 역사 속에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의의 일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자신의 사람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에게 그 시대에 전할 복음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던 사도 바울처럼 각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시대의 빛이 되어 그 시대를 비췄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쓰임을 받는 필수요소가 무엇인지를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이 9월의 시작에서 하나님이 찾으시고 쓰시는 일꾼은 어떤 사람인지를 듣고 하나님의 손에 들려 온전히 쓰임받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선 오늘 본문 말씀인 20-21절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큰 집은 하나님의 집을 의미합니다. 작고 가난한 집에 비하여 큰 집에는 크고 작은 그릇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많은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집에는 손님들이 적습니다. 그러나 큰 집에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특히나 잔치를 하거나 장례를 치루거나 할 때 작고 가난한 집에 비하면 큰 집은 손님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 이유는 큰 집 주인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 큰 집에 있는 모든 그릇들이 매일 쓰이지는 않습니다. 어떤 것은 매일 쓰이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일년에 한 두 차례 쓰이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잔치때에만 나오는 그릇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그런 그릇들 가운데는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고,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도 역시 금같은 믿음의 사람이 있고, 은같은 믿음의 사람도 있고, 나무나 질그릇 같은 믿음의 사람도 있습니다. 또 쓰일 곳에 따라 사람의 가치나 쓰임새가 다르기도 합니다.
성경을 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왕이나 황제가 다스리는 시대입니다. 왕이나 황제는 인재를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에 맡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운영하는데 평생 농사일만 해온 노인을 쓸 수는 없습니다.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아이들을 쓸 수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경우에 합당한 사람을 세워서 써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도 역시 각 시대마다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의 역사를 공부해보면 알겠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마다 똑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쓰신 것은 아닙니다. 각 시대마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운동을 일으키신 때가 있습니다. 말씀회복 운동, 종교개혁 운동, 경건주의 운동, 부흥 운동, 선교 운동, 회개운동, 제자훈련 운동, 구세군 자선남비운동, 학생운동, 복음회복 운동, 하나님 나라 사역 운동, 아버지학교운동 등 많고 다양한 운동들이 일어났었습니다. 이런 운동들이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은 그 일에 맞는 사람과 동역자들을 세우셔서 그 운동을 이끌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교회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드러냈습니다.
지금도 역시 하나님은 또다른 어떤 운동을 일으키시기 위해 사람을 준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앞으로는 어떤 영적인 운동들이 일어날까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떠나 점점 세속화되고 있는 이런 시대 속에서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고자 하실까요? 그리고 그 일에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일으킬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타나 이 타락한 세상을 바로 잡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여러분들 역시 여러분들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비춰야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20절의 앞부분을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하게 쓴다는 말과 천하게 쓴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다른 번역본들을 참고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에 대한 쉬운 성경을 보면 약간은 평범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그릇과 흙으로 빚은 그릇 또한 있습니다. 그 그릇 가운데 특별히 귀하게 쓰이는 그릇도 있지만 평범하게 쓰이는 그릇도 있을 것입니다” 천하게“라는 단어를 ”평범하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약간은 사도 바울이 의도한 것보다는 약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에 반해서 우리말 성경의 번역을 보면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사용되고 어떤 것은 막 사용되기도 한다”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은 귀하게 사용되고 어떤 것은 막 사용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천하게 사용된다”는 말을 “막 사용된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귀한 것은 혹시나 깨질까봐 조심스럽게 사용하지만 평범한 그릇들은 얼마든지 많아서 이 그릇이 깨지면 다른 그릇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귀한 그릇은 깨지면 쉽게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소중히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함부로 막 사용하다 보면 너무나 비싼 그릇을 깨뜨리게 되고 그런 것을 구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그릇들은 아무나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그만큼 그 그릇을 다룰 줄 아는 일꾼들에게 맡깁니다. 그래야 잔치 손님들을 대접하는데 기분이 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20절에 대한 현대어 성경의 번역은 이렇습니다. “부잣집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만이 아니라 나무와 진흙으로 만든 그릇도 있어서 값비싼 그릇은 손님을 접대하는 데 쓰이고 값싼 그릇은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데 쓰입니다”
여기서도 역시 값비싼 그릇은 매일 같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한 번 손님이 찾아오면 내놓는다고 하고, 값싼 그릇은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데 쓰인다는 것입니다. 이 그릇들은 매일 쓰이지만 그만큼 귀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귀한 그릇으로 쓰임받기를 원하십니다. 다음 구절을 유의해보십시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여기서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그릇에 대하여 설명하고 계십니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데 어떤 것으로부터 깨끗하게 하라고하시는 걸까요? 그 첫 번째가 망령되고 헛된 말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16절을 보면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교회에서 말다툼을 일으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분열시키는 이런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이런 망령되고 악한 말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과 같이 퍼져나가며 그들의 말로 인해 사람들의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말하는 망령되고 악한 말이 무엇입니까? 바로 부활이 지나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로 끝났기 때문에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무너뜨리는 말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참된 복음으로 인해 세워진 믿음을 무너뜨리는 망령되고 헛된 가르침에서 떠나야 합니다.
다음으로 모든 불의로부터 깨끗해야 합니다. 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교회는 옳지 못한 것에서 떠나야 합니다. 교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지체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하지 말고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 교회, 그런 성도가 복이 있습니다. 그런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 앞에 귀한 그릇이 되는 것은 당연하며 하나님은 그런 귀한 그릇을 쓰십니다.
세 번째로는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22절을 보면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하십니다. 젊은 사람들의 정욕은 이성적입니다. 정욕을 따르는 자는 파멸을 당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욕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정욕을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들을 맡기실 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요셉을 보십시오. 보디발의 아내가 노골적으로 유혹을 하는데도 그 자리를 피하여 도망쳤습니다. 옷을 붙잡고 늘어지자 그 옷을 벗어 던지고서라도 도망쳤습니다. 많은 죄가 맞서 싸워야 하지만 정욕은 피해야 합니다. 괜히 맞서 싸우겠다고 달려들면 넘어집니다. 믿음에 큰 타격을 입으며, 마음에 큰 상처로 남습니다. 그런 사람은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흠있는 그릇은 이미 귀한 그릇이 아닙니다. 그런 흠있는 상태의 그릇으로 귀한 손님을 대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망령되고 헛된 말과 불의와 정욕이라면 해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한 번 따라 해보십시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깨끗해야 하지만 공동체적으로도 깨끗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마치 귀한 그릇들은 귀한 그릇들대로 따로 놓듯이 참된 그리스도인들 역시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기 때문에 항상 깨끗함을 유지함은 물론 다른 그리스도인들 역시 깨끗한 상태를 보전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오늘 9월 첫날을 맞는 이 시간에 여러분들은 귀한 그릇이 되기 위해 온갖 더럽고 망령된 말을 여러분들의 마음에서 제거하게 해달라고 구하시고, 모든 불의와 정욕에서 지켜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기로 결단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선한 일에 사용하셔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며,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을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귀한 그릇의 샘플로 사용하셔서 교회와 세상에 드러내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일꾼으로 쓰임받는 이 축복이 9월 월삭예배를 하나님께 드리시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