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입사한 용역사원들이 무리지어 현장으로 들어온다. 협력사 부장이 인솔하여 현장을 돌면서 자리배치를 하는 모양이다.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이들은 낯선 공장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부장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다.
회사가 바뀌고 달라진 게 있다면 신규사원을 뽑지 않고 용역사원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현장사원의 고령화로 지난 2년 동안 정년퇴임한 사원이 많았으나 그 빈자리를 용역사원들로 메워 가고 있다.
나는 어설픈 동작으로 부장의 뒤를 따라가는 무리 중에 낯익은 얼굴이 보여 깜짝 놀랐다. 시침 뚝 떼고 긴장한 얼굴로 무리에 섞여 있는 두 사람. 그들은 바로 2년 전까지 현장노동자들을 괴롭혔던 독사와 면도날이라는 악명 의 인물들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 회사에는 “안전관리자”란 직책이 있다. 이 직책은 현장을 돌면서 위험한 시설물을 찾아내어 보호시설을 갖추도록 건의하고, 작업자의 안전보호구 미착용 및 위험한 작업을 하지 못하게 선도하여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게 그 임무다.
칼을 차면 휘둘러보고 싶은 게 사람의 욕심이듯 이들도 직책을 악용하였다. 왼팔에 “안전관리자”란 완장을 차고 현장을 순찰하는 이들은 대단한 권력이라도 쥔 양 횡포를 부렸다. 위험한 시설물을 개선한다거나 위험한 작업을 못하도록 선도하는 본연의 임무는 제쳐 두고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 마구잡이로 적발,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데 앞장섰다.
안전과에 소속된 이들은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다. 현장 몇 라인이 해체되면서 안전과로 자원하여 갔던 것이다. 회사는 이들을 앞세워 기강을 확립한다는 이름 아래 노동자 길들이기에 이용하였다. 산업안전 자격증 하나 없었지만 이들은 현장을 순찰하면서 완장의 마력에 한껏 취해 살았다. 이들 중 특히 독사와 면도날의 횡포는 극에 달하였다.
완장의 위력은 대단하다. 아무도 완장의 권위를 무시한다거나 거역하지 못한다. 2인1조로 현장을 순찰하는 이들은 티끌 하나 묻지 않은 흰색안전모를 쓰고 칼날처럼 다림질한 작업복을 입는다. 반짝반짝 광나는 안전화를 신고 현장에 나타나면 노동자는 머리 숙여 공손하게 인사를 해야 한다.
“야! 너 왜 졸았어,”
“너! 자세가 그게 뭐야,”
“왜! 안전모 안 썼지,”
졸지 않은 사람 졸았다 하고, 자세를 문제 삼고, 휴식하는 사람에게 안전모 안 썼다 트집 잡아도 항의는커녕 잘 봐 달라고 싹싹 빌어야 한다. 이렇게 지적당한 사람은 바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징계를 받는다. 징계는 경고․감봉․정직․해고 4종류다. 감봉과 정직이 많았다. 징계위가 월1회로 열릴 만큼 징계 받는 사람이 많았던 것은 위험작업이나 안전사고가 많아서가 아니라 안전관리자들의 횡포에 의한 희생이라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없던 시절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갓 입사한 기사가 아버지뻘 되는 반장님 따귀를 때려도 항의도 못했던 시절이다. 노동자를 개․돼지 취급하던 저 유명한 제5공화국시절이다. 안전관리자들의 횡포를 견뎌내지 못하고 끝내 퇴사한 노동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아무에게나 ‘야!’ ‘어이!’ 반말이고 ‘이놈!’ ‘저놈!’ 삿대질에 멱살잡는 것도 예사다. 위․아래도 없고 앞면 몰수하는 이들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했다. 참을 수 없는 굴욕, 그러나 이들이 생존권을 쥐고 있으니 비굴하지만 참는 수밖에 없다. 독사․면도날․매 발톱 섬뜩한 이름들이 그들의 별명이다. 얼마나 못 돼 먹었으면 이런 별명이 붙여졌을까? 이들을 일컬어 악질 삼인방이라 했다. 이들 중 독사는 시내 유흥가에 술집을 차려 놓고 술을 팔아 주는 자에게는 관대함을 베풀었다. 원숭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는 현장노동자들로부터 많은 돈을 차용하여 도주하였다.
용광로가 뿜어내는 숨 막히는 폭염, 쇳물을 다루는 일이 얼마나 험한 일이며 12시간 주․야 맞교대 근무는 또 얼마나 지겨운 시간인가. 1600℃쇳물을 다루는 노동자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한 삽을 들어도 허리가 휘청거릴 만큼 무거운 합금철을 하루 종일 퍼 담아야 한다. 시야를 가리는 매연과 불똥에 안전모와 작업복은 넝마 같다. 하루 일이 끝나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든다. 그렇게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 앞에 추우면 히터를, 더우면 에어컨을 켜 놓고 늘어지게 잠을 자다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거드름을 피우는 이들의 횡포를 견뎌 낸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안전관리자가 있었다. 이 아이가 운동장에 놀고 있으면 이 아이보다 조금 큰 아이들이 몰려와서 너희 아버지 ㅇㅇ회사에 다니지 하면서 머리를 쥐여 박고, 너희 아버지 안전관리자이지 하면서 또 쥐여 박고, 이름이 ㅇㅇㅇ이지 하면서 발길질하고, 운동장에만 나가면 아이들이 몰려와 집단으로 괴롭히니 이 아이는 학교에 안가겠다고 떼를 쓰더라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들은 아이 아버지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회사를 사직한 것도 이 즈음의 일이다.
“사원을 가족처럼” 이란 구호가 펄럭이는 현수막 아래서 벌어지는 참담한 현실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들이나 악질 안전관리자들이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몰랐던 것이다. 그들은 잔학한 학대의 자아에 도취되어 그런 세상이 영원불변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6․29가 선언되고 억눌려 왔던 분노가 폭발하여 전국이 파업의 물결에 소용돌이칠 때 제일 먼저 파괴된 곳이 안전관리사무실이다. 그렇게 오만불손하던 그들은 꼬리에 불붙은 개 마냥 울타리 구멍으로 줄행랑 쳤다. 노동자는 하나의 소모품에 불과하다며 인권을 짓밟았던 경영진은 노동자의 억센 팔에 낚아채어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며 구타당하는 망신을 당했다.
한 번 시작된 변화의 물굽이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다.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발전하지 못했던 회사는 끝내 망하고 남의 회사에 넘어갔다.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목에 힘을 주고 눈을 부라리며 기고만장해 설쳐대던 독사와 면도날. 이 두 사람은 한때 완장을 차고 자신들이 짓밟으며 능욕했던 사람들 틈에서 땀에 젖어 산다. 제강공장에서 가장 일이 힘들다는 *래들 조립을 한다. 그것도 정규사원이 아닌 용역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용역사원의 상징인 황색안전모에 넝마 같은 작업복, 누가 그들의 처지가 그렇게 딱하게 될 줄 알았을까?
왁자지껄한 탈의장에서나 현장에서 동료들의 우스꽝스런 행동을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마치 바보 같은 척 하면서도 재빠르게 분위기를 파악하려는 공포에 질린 눈초리가 매섭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의 일이다. 직책이 좀 괜찮다고 우쭐할 일도 아니다.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