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대학생 황정훈은 TV ‘체험 삶의 현장’에서 노량진 수산시장 구루마(수레) 끄는 일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밤에 4시간 정도 일하면 용돈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다. 태어나 처음이었다. 무서웠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연고 없는 청년에게 일감을 주는 가게는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매일 밤 시장을 찾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산오징어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됐다. 그러다 집에 빚이 생기면서 그걸 갚느라 계속 일하다 생업이 됐다. 허드렛일로 시작했지만, 16년 동안 하루 20시간씩 일하니 내 이름으로 된 가게가 생겼다. 지금은 노량진에서 가장 많은 생선을 파는, 가락시장에 분점이 있고, 을지로 편의점 ‘고잉메리’에 회를 납품하는 직원 28명을 둔 ‘형제 상회’의 대표다.
요즘 같은 방어철이면, 황 대표는 주말 기준 하루 1톤의 방어를 판다. 그에게 방어에 관한 모든 것을 물었다.
◇방어, 진실 혹은 거짓
방어(魴魚)는 영어로 ‘옐로 테일(Yellowtail)’ 일본어로는 크기에 따라 불리는 명칭이 다 다르며, 80㎝가 넘어야 겨우 대방어를 의미하는 ‘부리(ブリ)’라고 부른다. 그런데 진짜 대방어가 작은 것보다 더 맛있을까.
“전에는 작은 방어를 팔았어요. 그런데 한 10년 전부터 인터넷에 대방어 글이 쏟아지자 찾는 사람이 많아지더니, 지금은 대방어만 찾아요. 원래 방어는 싼 생선이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가격이 세 배 이상 올랐어요. 대방어가 맛있는 건 지방 때문이에요. 식감이 좋고 고소하지요. 보통 10㎏ 이상을 대방어라고 해요. 그중 통통한 놈들을 ‘돼지방어’라고 하고요. 돼지방어는 느끼해서 못 먹겠다는 사람도 많아요.”
음식 블로거 ‘비밀이야(본명 배동렬)’는 “식당에서 하는 대표적 거짓말 중 하나가 ‘우리는 대방어만 씁니다'라는 말”이라고 했다. 사실 일반인이 식당에서 썰어놓은 방어회를 보고 ‘중방어’와 ‘대방어’를 구분하기란 어렵다.
“보통 방어는 뱃살, 배꼽살, 가마살(아가미 부위), 사잇살(뼈 사이) 등을 먹어요. 다른 살은 비스듬하게 썰어 대방어인 것처럼 속일 수 있는데, 세로로 결이 난 뱃살은 그게 안 돼요. 그러니까 썰어 나온 뱃살의 면적이 크지 않으면 대방어라고 보기 어렵지요.” 황 사장이 귀띔해준 대방어 뱃살의 단면은 가로 10㎝, 세로 2㎝ 정도. 이보다 많이 작으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엔 ‘일본산 양식 방어를 국내산으로 속여 판다'는 말이 나와 논란이다. 황 대표는 “속여 파는 건 문제지만 일본산이라고 해서 국내산보다 꼭 싼 건 아니다”라고 했다.
“경매 가격 차이는 거의 없어요. 오히려 A급은 일본산이 더 비싸요. 국내 자연산은 품질이 왔다갔다하는 편이라, 업장에서는 안정적인 일본 양식을 선호하는 편이지요. 일본이 얄밉도록 양식을 잘하거든요. 맛은 일본산이 더 기름진 편이에요.”
◇어떻게 먹는 게 맛있나?
한국과 일본은 방어회를 먹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 한국은 씹는 맛을 좋아해 두툼하게 썰어 먹고, 일본은 얇게 썰어 겹쳐 먹는다. 식감을 즐기려면 두께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
“숙성이 많이 된 건 1.5㎝ 정도, 숙성이 덜 된 건 1㎝ 정도요. 숙성이 안 된 건 살이 단단해 두껍게 썰면 질겨서 못 먹어요. 가장 맛있는 부위는 ‘뱃살’. 별미는 ‘사잇살’이에요. 사잇살은 죽은 지 오래될수록 피를 머금어 안 좋은 맛이 나요. 사잇살을 먹어보면 신선한 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요.” 황 대표가 건넨 검붉은 사잇살에서는 신선한 육사시미 맛이 났다.
황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방어 먹는 법은 ‘구이’다. 그중에서도 ‘방어머리구이’라고 했다. 성인 손바닥 두 개만 한 대방어 머리를 구워 먹으니 양념을 찍지 않아도 고소했다. 살도 많이 나와 머리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회와 구이에 이어 마지막으로 먹는 것은 매운탕이 아니었다. 기름기가 많아 매운탕감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 대신 뼈가 두툼하고 커 김치찜에 제격이다.
“신김치에 일반 생선 졸이듯이 하면서 물만 조금 더 넣어 자작자작하게 끓여줘요.”
살이 붙은 방어뼈에 신김치, 대파 등을 넣고 끓인 ‘방어김치찜’은 고등어김치찜보다 살이 부드럽고 고소했다. 공깃밥에 살 한 점 올리고 국물을 살짝 담가 한 숟갈 넣으니 입안이 개운하게 싹 정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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