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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임재와 부재의 연속성
소 주 제: 동일하신 하나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
날자 및 분류: 240714낮 설교 창 조 의 말 씀
성 구: 욥42:1-6
저 자: 정 헌정 목사 http://cafe.daum.net/changcho
[본문]욥 42:1-6.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기서는 욥의 고통과 아픔과 괴로움에서 견딜 수 없는 외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아우성치지만 하나님은 욥을 만나주시지 않고 외면하는 듯하다,
욥 23:8-14.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14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며 하나님의 답은 사실 우리로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늘과 땅을 말씀하고 온 우주와 사후세계를 논하는 모든 영역과 산 염소 들 나귀 말 이런 모든 야생동물을 동원하여 설명하시는 내용들이 우리한테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으로 마무리하시고 끝으로 욥의 짧은 회개가 나오고 그 후에 어떤 보상같이 그 가족의 축복. 재산의 축복 같은 것이 나오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미급해 보이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사실 이 결론의 중요성은 오늘의 본문 속에 들어있는데 5절에 있는 바와 같이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 고백이 욥기에서 가장 많이 함축되어 있는 말씀일 것이다,
물론 다른 구절도 중요한 내용들이 있기도 하다,
욥 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대단히 중요한 고백이다, 이 고백을 5절에 묶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귀로 듣기만 하던 주님을 눈으로 본다는 의미는 욥기 전체에 있어서 욥의 비명과 불평 속에 들어있었던 부분이다, 하나님이 날 외면하셔서 억울한 고통 속에 있다. 이런 고통에 대한 답을 욥이 얻는다는 뜻이다, 세 친구들이 욥에게 네가 당하는 지금의 재난은 네가 하나님을 외면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욥은 친구들의 그 말에 나는 하나님을 외면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시니 그 이유를 알고 싶다, 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 사이의 혼란 이것이 욥기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욥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외면한 탓인가 물론 제일 먼저는 그 친구들이 보는 것같이 욥 네가 하나님을 외면해서 하나님 없는 자리에 들어와 이 재앙이 생긴 것이다가 맞냐! 그런데 욥기서에 보면 욥은 설정에서부터 욥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욥은 죄를 짓지 않았고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내기에 혹은 시험 같은 것으로 출발했지. 욥에게 하자가 없었다,
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러니까 욥의 비명을 우리는 중요하게 들어야 된다, 나는 하나님을 외면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은 나를 왜 외면하시는가, 여기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라고 말하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느꼈던 하나님의 부재라고 생각했던 것도 임재였다, 그런 뜻이다, 내가 당한 고난이 하나님의 외면으로 말미암아 생긴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껏 나를 축복하시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라고 이해를 하는 것이다 그것 뭐냐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의 그 말하자면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어떤 불연속 갈등 이런 것을 대표적으로 경험한 사람이 엘리야이다,
왕상19장에 가보면
왕상 19:8-14.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우리가 잘 아는 장면이다, 엘리야가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하고 바알을 따르는 제사장들을 다 죽이고 아세라 제사장들도 다 죽이고 이스라엘백성들의 마음을 돌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고 3년 반 동안 오지 않던 비를 오게 하고 아합의 마차 앞에서 뛰어 궁전으로 들어갔는데 그의 부인 이세벨이 아직도 살기가 등등하게 살아서 엘리야에게 내가 너를 죽이고야 말겠다고 말한다, 엘리야가 기절초풍하여 놀라서 호렙산까지 도망을 한다, 엘리야의 생애에는 17장에서 출발이 되는데 시작부터 하나님이 너 시냇가에 가 있으라고 하신다, 거기서 하나님의 종으로 대기하고 있다가 가뭄으로 시냇가에 물이 마르자 사르밧 과부댁으로 보내진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불러놓고 이렇게 큰 힘으로 사역을 하시지 않고 늘 도망 다니고 숨게 해서 엘리야는 평생의 불만인 것이다, 엘리야가 할 수 있었던 건 자기를 찾아오는 그래서 자기를 죽이려는 아합의 병사들을 기도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죽인 것이 다이다, 변변한 것을 못하다가 갈멜산에서 하나님과 우상들 사이에 누가 진짜 하나님이냐를 확인하는 대 전투에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엘리야가 준비한 재물을 받는다, 굉장한 승리이다, 엘리야가 이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비가 내리는 것 속에 마차 앞에서 자기 발로 뛰어 궁전까지 뛰어 들어간다 그런데 이세벨이 파랗게 아직도 살아서 큰 위협을 가하고 엘리야는 놀라서 도망 온 장면이다,
하나님께서 계속 묻는다, 엘리야야 너 네가 왜 여기 있느냐 너 있을 자리에 있지 않고 왜 네가 여기 있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은 사실상 엘리야가 묻고 싶은 질문이고 하고 싶은 말이다, 하나님 어떻게 된 것 인가요.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 버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다 죽이고 나만 남았는데 어떡하란 말인가요. 이게 엘리야의 불만이며 반론이며 항의이다, 하나님께서 그 앞에 강한 바람을 보내시고 불을 보내시고 거기에 지진이 나고 그러나 거기에 계시지 않고 세미한 음성 속에 계신다, 다시 묻기를 엘리야야 왜 여기 와 있느냐 그가 대답한다, 나 하나 남았습니다, 어찌하란 말인가요.
15절 이하에 답이 나온다,
왕상 19:15-17.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다는 증거를 엘리야에게 보여 주신다,
당시의 아람은 이스라엘의 최고의 적국이다, 그런데 아람 왕을 세우고 이스라엘은 어는 왕 하나라도 하나님께 순종한 왕이 없다, 남 왕조이스라엘 즉 유다는 가끔씩 하나님깨 순종하는 왕이 나왔지만 북 왕조 이스라엘은 언제나 다른 데와 ;손잡고 남 왕국 유다를 괴롭히던 나라인데 북 왕조 이스라엘에 님시 아들 예후을 왕으로 삼으라. 예후도 아합 못지않게 악한 왕이다, 그리고 엘리사를 네 후계자로 세워라
내가 비운 자리. 외면한 시간은 없다. 라고 답하신다, 이것이 엘리야선지자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다, 그가 뭘 했냐 그러면 하나님이 보이게도 일하시고 감추고 일하셨다 엘리야 선지자의 가장 큰 특징이다, 우리는 이 문제가 다만 엘리야에게 나타났던 것이 아니라 다윗의 생애에서도 그 사건을 동일한 사건을 보는데 다윗이 제일 어려웠던 일이 초기에 그가 어린 나이로 적장 골리앗을 물매 돌 다섯 개로 이마를 명중시켜 골리앗을 잡고 그 목을 베고 이스라엘의 구국의 영웅이 되었는데 나중에 어디까지 피난을 가느냐하면 적국 블레셋의 가드까지 간다, 이스라엘을 위협한 적국 그 적국의 장군을 주인 구국의 영웅이 되어서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갔던 피난처는 그 블레셋이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이냐.
너는 칼과 창을 의지하여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와 함께 하신 하나님은 어디 가서 그렇게 죽이고 그렇게 짓밟은 적국의 그 안으로 도망가 목숨을 구해야 했나 이거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 그 이해할 수 없는 그 연속성을 본다, 어떤 연속성 하나님의 일하시는 성실함과 기적의 연속성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복 받고 외면하시면 벌 받는 이런 이분법보다 더 큰 성경의 설명. 하나님의 일하심의 기이함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해야 한다,
고난으로 일하시는 건 싫다, 그러나 하나님이 복으로 주실 수 있는 걸 고난으로 주시는 것은 우리가 납득할 수 없지만 우리가 그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안에 조건이 내가 잘할 땐 복주시고 못할 때 벌주십시오. 그렇게 우리는 할 수 없다, 우리는 잘 할 틈이 없다, 우리는 잘하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은 매일하고 있다, 잘하면 복주고 못하면 벌주십시오. 하면 남아 날자가 없다, 우리가 잘하는 때도 없고 못하는 것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셔야만 되겠습니다, 그것도 형통함으로 복을 주시는 것과 고난으로 복을 주시는 것은 같은 원리이다,
마 13:10-17.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이 설명은 앞에 있는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한 설명이다, 주님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못 알아듣게 하려고 그런데 우리의 이해 속에서 이 말씀은 알아듣지 말라고 하는 거다, 이런 표현이다, 그나 그게 정말 그런 뜻일까 거기에는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
씨 뿌리는 비유는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고 더러는 돌밭에 떨어지고 더러는 가지떨기에 떨어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졌다, 그래서 길가에 떨어진 건. 새가 와서 먹어버렸고 돌밭에 떨어진 건 뿌리를 못 내렸고 가시떨기에 떨어진 건 가시떨기에 막혀서 못 크고 좋은 밭에 떨어진 좋은 땅에 떨어진 것만 30배 60배100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이렇게 들린다, 받아 낼 수 있는 건 밭이 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밭은 그나마 날려고 하는 것도 방해를 하면 했지 밭이 무엇을 만든 게 아니라 내가 뿌린 씨로 결실하는 거였다, 좋은 밭이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씨가 떨어져야 된단다. 너희는 돌 짝밭이거나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굳은 땅이거나 가시떨기뿐이란다, 내가 씨를 뿌릴 뿐만 아니라 그것이 자라도록 옥토로 만들지 않은 한 결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근데 너희는 씨를 달라고 하거나 씨를 주면 만들어낼 그런 능력도 안목도 생각도 없단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해봤자 너희는 알아듣지 못한 단다, 그런 말씀이다, 그런 말씀을 왜 하시는가, 너희는 씨를 스스로 만들 수도 없고 키를 키울 실력도 없는데 내가 이 말을 하는 뜻은 그렇게 할 생명과 능력을 가진 이가 여기 왔다는 뜻이다, 그런 비유이다, 듣고 알아먹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이가 이미 왔다, 너희는 아무 준비도 되지 않고 아무런 필요도 아무런 바람도 생각도 없는 때 내가 왔단다. 그게 이 비유이다,
롬 5:6-8.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모를 때의 일이다,
우리를 위해서 오셨을 때도 몰랐고 우리를 위해서 말씀하셨을 때도 몰랐고 우리들 위해서 죽으셨을 때도 몰랐다, 그러니 욥에게 하나님께서 답하시는 거다, 네 이해 네 합의와 너의 간절한 같은 것 위에 하나님의 은혜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 무지 너의 한계 너희 어떤 고집 이런 모든 것을 초월하여 나의 성실함과 거룩함이 있단다. 네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 하나님 이러실 수 없습니다, 나는 왜 이럴 까요
양쪽 다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능력과 자비하심이 없다면 모든 존재는 소망이 없다, 내가 그 모든 것 위에 나를 근거로 하여 내가 성실함과 자비와 긍휼과 능력으로 일을 한다는 걸 네가 안다면 너한테 일어나는 어떤 것도 겁낼 필요가 없단다. 맞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했다, 떠나가셨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의 연속성을 분별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잊지 말라 하신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제 알겠습니다, 귀로 만 듣던 주님을 눈으로 뵙옵나이다, 하나님의 임재뿐만 아니라 부재에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아는 실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