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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전례 상식] 자네, 밥과 국은 제대로 먹었나?
몇 달 전에 첫영성체를 한 어린이가 대뜸 묻는다. “신부님! 우리는 언제쯤 성체와 성혈을 다 모실 수 있나요?” 첫영성체 교리 시간에 수녀님이나 교리교사한테서 종종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들었을 텐데 미사 때마다 성혈을 모실 기회는 전혀 없고 성체만 모시고 있으니 당연히 그런 의문이 생겼을지 모른다. 밥은 먹었는데 국물은?
영성체는 성체와 성혈, 양형으로 할 때에 표지로서 더 충만한 형태를 지닌다. 양형 영성체로 성찬 잔치의 표지가 한층 더 완전하게 드러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 주님의 피로 맺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이 표현되며, 성찬 잔치와 아버지 나라에서 이루어질 종말 잔치의 관계가 더욱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81항).
교구나 본당에서는 신자들이 자신이 참여하는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 특별한 기회(예를 들면, 소규모 단체 미사)에 한층 더 분명한 성사적 표지의 형태인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권장해야 한다. 하지만 양형 영성체를 집전하려면 주의해야 할 점도 많다. 영성체하는 이의 수가 너무 많으면 성찬례에 필요한 포도주의 양을 가늠하기 어렵고 “거행 끝에 모셔야 할 그리스도의 피가 너무 많이 남을”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양형 영성체가 집전되는 경우, “주님의 피는 성작에서 직접 마시거나 성체에 적시어 모시거나 또는 대롱이나 숟가락을 이용하여 모실 수 있다.”(245항) 그 준비 사항은 다음과 같다.
① 성혈을 성작에서 직접 마시게 할 경우에는 충분히 큰 성작을 하나 준비하거나 보통 크기 성작을 여러 개 준비한다. 다만 미리 주의를 기울여 거행 끝에 모셔야 할 그리스도의 피가 너무 많이 남지 않게 한다.
② 성혈에 적셔서 분배할 경우에는 축성된 빵이 너무 얇거나 작아서는 안 된다. 보통 때보다 좀 더 두꺼운 빵을 사용하여, 성혈에 적신 다음에도 쉽게 분배해 줄 수 있어야 한다(285항).
성혈을 성작에서 직접 마시는 경우에는 영성체할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신 다음에 성작 봉사자에게 가서 그 앞에 선다. 봉사자는 ‘그리스도의 피.’하고 말하고 영성체하는 사람은 ‘아멘.’하고 응답한다. 이어서 봉사자가 성작을 건네주면 영성체하는 사람은 두 손으로 성작을 잡아 입에 대고 조금 마신다. 그다음에 성작을 봉사자에게 돌려주고 물러난다. 봉사자는 성작 수건으로 성작 가장자리를 닦는다(286항). 축성된 빵을 성혈에 적셔서 모실 경우에는 영성체할 사람이 턱 밑에 받침 성반을 받쳐 들고 사제에게 다가간다. 사제가 거룩한 성체 조각을 담은 그릇을 들고, 그 옆에 봉사자가 성작을 들고 선다. 사제는 축성된 빵을 집어 한 부분을 성작에 적신 다음 그것을 보이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하고 말한다. 영성체하는 사람은 ‘아멘.’하고 응답하고 사제에게서 입으로 성혈에 적신 성체를 모신 다음 물러난다(287항).
오늘날에는 성체만 받아 모셔도 영성체의 온전한 효력이 있다는 교리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머리말 14항). 교회는 한 가지 형상만의 영성체로도 그리스도를 참된 성사로 온전하게 모두 다 모시는 것이므로, 그 효과와 관련하여 오직 한 가지 형상만 모시는 이들도 구원에 필요한 은총을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282항 참조)고 가르친다. 교회는 신자들이 성찬의 표지가 더 명백히 드러나는 방식으로 거룩한 예식에 더욱 열성스럽게 참여하도록 종종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자네, 주님의 식탁에서 밥과 국은 제대로 먹고 마셨나?
[기도하는 교회] ‘파스카 성삼일’의 삼일은 어느 날인가요?
7세기부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 교회는 성삼일을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의 삼일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성삼일은 사순 시기에 속하며 주님 부활 대축일은 성삼일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성삼일은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삼일’(신경 참조)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며 바오로 사도는 가장 먼저 전해야 할 복음이 이것이라고 하였습니다.(1코린15,3-4 참조)
첫째 날은 성금요일, 곧 ‘주님께서 돌아가신 날’이며 주님 수난 예식을 거행합니다.
둘째 날은 성토요일로서 ‘주님께서 무덤에 묻히시며 저승에 가시어 저승문을 부수신 날’이며, 시간전례 외에 이날의 고유한 전례는 없습니다.
셋째 날은 주님 부활 대축일로서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부활성야미사를 거행합니다.
보통 전례일은 자정부터 시작하여 다음 날 자정에 끝나지만, 주일과 대축일은 전날 저녁부터 시작되며(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규범 3항) 보다 성대한 대축일에는 고유한 전야미사까지 거행합니다.(전례주년 11항) 성삼일은 전체 전례주년의 정점이므로 당연히 전야미사가 있는데, 바로 성목요일 저녁에 거행하는 주님 만찬 미사가 성삼일의 전야미사입니다. 그래서 성삼일은 성목요일 저녁 주님 만찬 미사로 시작하여 주님 부활 대축일 제2저녁기도 후 자정에 끝납니다.(전례주년 19항)
성삼일의 절정인 부활성야미사는 성토요일 저녁에 해가 진 이후에 시작할 수 있고 주님 부활 대축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는 마쳐야 합니다.(로마미사경본 361쪽, ‘파스카 성야’ 3항) 비록 부활성야미사를 자정 전에 거행할 수 있다고 해도, 이 미사가 성토요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부활 대축일에 속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파스카 성야’ 4항)
[교회 상식 팩트 체크] (10) 신부님도 가끔 ‘핑크’를 입는다?
일 년에 두 번 입을 수 있는 ‘장미색 제의’
신부님 하면 어떤 색이 떠오르시나요? 평소에는 수단의 검은색이 떠오르고 미사 중에는 전례시기에 따른 여러 색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핑크’를 입을 때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전례에서 색깔은 전례의 의미를 한눈에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제는 전례에 따라서 다른 색깔의 전례복을 착용해서 신자들에게 그날 전례의 의미를 알려주고, 전례에 더 깊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은 “거룩한 옷에 여러 가지 색깔을 쓰는 것은 거행하는 신앙의 신비의 특성과 전례주년에 따라 진행되는 그리스도교 삶의 의미를 겉으로도 더욱 효과 있게 드러내려는 것”이라고 그 의미를 설명합니다.(345항)
전례복의 색깔을 활용한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12세기 인노첸시오 3세 교황님은 전례 축일과 각 시기에 따라 전례복의 색상을 사용하도록 규정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례 안에서 활용했습니다. 이후 비오 5세 교황님이 이 규정을 「로마 미사 경본」에 반영했습니다.
교회는 오랜 전통에 따라 각각 전례를 나타내는 색깔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먼저 흰색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변모와 부활한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하면서 영광, 결백, 기쁨을 드러냅니다. 주로 부활·성탄 시기나 주님과 성모님, 성인들의 축일에 사용합니다. 뜨거운 사랑과 피와 불을 상징하는 빨간색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성령 강림 대축일, 주님의 수난 행사, 순교자들의 축일 등에 사용합니다. 초록색은 신자들의 생활과 소망을 의미하며, 연중 주일과 연중 평일에 쓰입니다. 보라색은 죄에 대한 뉘우침과 속죄, 그리고 고행과 금식을 나타냅니다. 사순·대림 시기나 위령미사에 사용합니다.
이 밖에도 성대한 전례 중에는 황금색을, 장례·위령미사 때는 검은색을 쓰기도 합니다. 또 각 주교회의가 사도좌에 제안해 각 지역교회에 필요한 전례색을 쓰기도 하는데요. 한국 교구들에서는 특별히 성대하고 기쁜 전례 예식 때는 황금색을, 죽은 이를 위한 미사와 시간 전례에서는 흰색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1년에 딱 2번 입을 수 있는 색이 있습니다. 바로 장미색이라고도 부르는 분홍색입니다. 장미색 제의는 오늘 사순 제4주일과 대림 제3주일에 입습니다. 이날들은 장미색 제의를 입는 주일이라 해서, ‘장미주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두 주일은 각각 즐거워하여라 주일(Gaudate, 사순 제4주일), 기뻐하여라 주일(Laetare, 대림 제3주일)이라고 부릅니다. 각각 그날 주일미사 입당송의 첫 단어에서 따온 말입니다. 사순과 대림은 각각 참회와 절제를 통해 부활과 성탄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만, 곧 다가올 부활과 성탄을 희망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반드시 장미색 제의를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장미색 제의를 사용하지 않는 본당도 있습니다. 혹시 오늘 ‘핑크’ 옷을 입은 신부님을 보지 못하더라도, 장미주일의 의미를 기억하면서 다가오는 예수님의 부활을 장밋빛처럼 환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어떨까 합니다.
[알기 쉬운 미사 전례] (10) 본기도인가 모음 기도인가?
미사의 방향성 드러내는 공동체 전체의 기도
“사람이 죽음을 맞이할 때면, 그의 손이 열린다고 합니다. 이는 죽음으로 완성되는 자기 포기를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자세입니다”라고 에곤 카펠라리 주교는 「전례와 일상의 거룩한 표징」에서 말합니다. 처음으로 로마의 카타콤바를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적인 벽화 중 하나가 ‘오란스’(Orans), 곧 손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 옛날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이가 하느님을 향해 항상 팔을 벌려 기도하고 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미사를 드릴 때 주례 사제가 담당하는 기도를 할 때면, 팔을 벌리고 공동체의 모든 마음과 정성을 모아 바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본기도’(Oratio)와 ‘모음 기도’(Collecta)라는 용어가 함께 사용되는 주례자 기도입니다. 로마 전례에서 이 기도를 5세기 이래 줄곧 단순히 ‘기도’(Oratio)라고 불렀습니다. ‘모음 기도’(Collecta)는 옛 갈리아 전례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제가 모든 교우들의 기도를 모아서 바친다는 의미와 시작 예식 중에 바친 모든 기도를 종합하고 마무리 짓는다는 의미이지요.
본기도는 기도 권고, 침묵, 기도, 아멘의 차례로 진행됩니다. 이 기도는 “기도합시다”라는 초대로 시작되며,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사제뿐만 아니라 함께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본기도 안에서 종종 “당신의 백성”, “당신의 가족”, “당신의 교회”라고 하며 신자 공동체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사제는 잠깐 침묵하는 가운데, 자신이 하느님 앞에 있음을 깨닫고 간청하는 내용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교우들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생각하고 개별적으로 기도할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침묵이 끝나면 사제는 팔을 벌리고 기도를 바칩니다. 중세 중엽까지는 사제와 교우들이 모두 동쪽을 향해 양팔을 올리고 기도했습니다. 본기도의 내용은 대체로 전례 시기, 축일, 거행하는 미사 등의 특성을 반영합니다. 기도의 전반부는 축일이 기념하는 하느님의 본질이나 구원 업적 등을 묘사하며, 후반부는 그에 상응하는 은총을 청합니다. 연중 주일의 경우 일반적인 진리나 구원 신비를 제시합니다.
맺음말은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삼위일체, 곧 하느님 아버지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바친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기도가 끝나면 교우들은 “아멘”하고 환호하여, 이 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삼습니다.
이 기도를 바칠 때 사제가 유의해야 하는 것은 본기도가 비록 짧지만 미사 전체의 방향성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경건하고 명확하게 천천히 바쳐서 모든 교우가 한마음으로 참여해 공동체 전체의 기도가 되게 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 및 공동체의 이름으로 바치는 기도이기에 함부로 다른 내용을 삽입하거나 수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기도를 하면서 사제는 팔을 벌리고 입술로 기도하지만, 교우들은 손을 모으고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전례 시기와 축일에 맞게 구성된 기도문은 항상 같은 분이시지만 때와 필요에 따라 다른 목소리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을 깨닫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혼자가 아닌 ‘한마음 한뜻’(사도 4,32)인 교회 공동체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입니다.
[기도하는 교회] ‘십자가의 길’ 기도 중 제대 앞을 지날 때 절하나요?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경우 주례자와 복사가 각 처로 이동하다가 제대 앞을 지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제대에 절하는 것이 맞을까요?
공경하는 대상에는 용무가 있어 다가갈 때 절하고 용무가 끝나서 물러날 때 절합니다.(주교예절서 72항, 73항, 76항) 정해진 용무가 없이 공경하는 대상 앞을 지나는 일은 삼가야 하지만, 부득이 지나가야만 한다면 결례에 대해 삼가는 표시로 절합니다.(주교예절서 76항, 77항) 다만 예식 중에 행렬하여 지나가는 것은 결례가 아니므로 이때는 절하지 않습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74항)
주례자와 복사가 십자가의 길 각 처로 이동하다가 제대 앞을 지나는 경우는 행렬하고 있으므로 제대에 절하지 않고 다음 처로 이동합니다. 이때, 십자가의 길 기도에 참여하는 회중이 회중석에 있다면 제대를 지나는 경우가 아니므로 제대에 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회중이 주례자를 따라 이동하는 경우에도 행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므로 제대를 지날 때 절하지 않습니다.
[교회 상식 팩트 체크] (9) 주님 부활 대축일은 양력일까? 음력일까?
양력과 음력 모두 사용한 방법으로 결정
- 바티칸 시스티나경당의 프레스코화 ‘325년의 니케아공의회’. 「거룩한 부활절에 대한 거룩한 니케아공의회 교령」을 통해 춘분 뒤 보름달 다음 주일에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낼 수 있도록 정해졌다.
주님 성탄 대축일은 12월 25일입니다. 그럼 주님 부활 대축일은 몇 월 며칠일까요? 대충 4월쯤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날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올해 주님 부활 대축일은 3월 31일입니다. 그런데 지난해는 4월 9일이었고, 지지난해는 4월 17일이었습니다. 설·추석을 음력으로 쇠는 우리로서는 양력 날짜가 들쑥날쑥한 것이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어쩐지 음력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주님 부활 대축일의 음력 날짜를 보니 올해는 2월 22일, 지난해는 2월 19일, 지지난해는 3월 17일입니다. 양력도 음력도 딱 들어맞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주님 부활 대축일은 어떻게 정할까요? 주님 부활 대축일은 춘분 뒤 보름달이 뜬 후에 오는 주일로 정합니다.
춘분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입니다. 태양이 기준이다 보니, 보통 양력으로 세는 날이지요. 양력으로 평년에는 3월 21일이, 윤년에는 3월 20일이 춘분입니다. 그런데 ‘보름달이 뜨는 날’은 음력 15일입니다. 그리고 다시 ‘주일’은 양력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주님 부활 대축일은 양력과 음력을 모두 사용해서 정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이런 복잡한 계산법이 나왔을까요? 주님 부활 대축일은 그리스도인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한 날, 곧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구약의 파스카 축제와 연결되는 날이다 보니 초기 유다인 신자들은 유다력으로 파스카 축제일인 니산(nisan)달 14일에 성찬례를 지내며 주님 부활 대축일을 기념했습니다. 유다력은 우리 음력처럼 달의 삭망을 기준으로 하는 역법입니다. 그러면서도 춘분이 있는 달을 한 해의 첫 달인 ‘니산’달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지역의 신자들은 유다력의 파스카 축제일이 아니라 그 다음에 오는 주일에 주님 부활 대축일을 기념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 다음날, 바로 주간 첫날인 ‘주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 유럽에서 사용하던 율리우스력과 유다력, 이집트 지역 등이 정한 춘분 날짜가 달라 각 지역마다 주님 부활 대축일 날짜가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어느 곳에서는 단식과 참회를 하고, 어느 곳에서는 부활 축제를 벌이는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325년 니케아공의회 교부들은 「거룩한 부활절에 대한 거룩한 니케아공의회 교령」을 통해 춘분 후 보름달 다음 주일에 온 교회가 함께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주님 부활 대축일의 일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16세기 기존 율리우스력의 오차를 수정·보완한 그레고리오력이 도입됐지만, 동방 정교회는 기존 율리우스력을 따르면서 ‘춘분’ 날짜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동방정교회의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는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양측 대표가 주님 부활 대축일 날짜를 통일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며 “주님 부활 대축일 통일은 2025년 희년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25년은 니케아공의회 1700주년이라 주님 부활 대축일의 통일이 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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