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클린디젤’ 정책을 공식 폐기했다. 디젤차를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 저공해경유차 인정 기준과 혼잡 통행료 감면 등의 혜택을 지웠다. 정말 디젤에겐 미래가 없을까?
글 강준기 기자|사진 각 제조사
왜 디젤은 ‘적폐’ 로 몰렸나
클린디젤. 우리 정부는 2000년대 후반, 가솔린차보다 연비가 좋고 이산화탄소(CO2)를 덜 뿜는다는 이유로 디젤에 ‘클린’이란 이름을 달았다. 특히 2010년부터 유로5 기준을 만족하는 디젤차는 환경개선부담금을 면제했다. 폭스바겐과 BMW 등 수입차 제조사는 주력 제품에 2,000cc급 디젤 엔진을 얹어 출시했고, 덩달아 국내 디젤차 보급률이 크게 치솟았다.
그러나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여파로 상황이 반전됐다. 불법 소프트웨어를 달아 디젤 승용차의 배출가스를 조작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럽 내에서 디젤차를 포함한 ‘내연기관차 전체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오는 2040년까지 엔진만 얹은 신차 판매를 금지할 계획이다. 일부 노후 경유차는 생산년도에 따라 도심 진입을 막았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대책을 발표하면서, 2030년 경유차 운행 중단, 고등어구이 등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서울시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할 경우 당일 오전 6시~오후 9시 노후 경유차 운행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올해 BMW 520d 등 2.0L 디젤 엔진 얹은 BMW 승용차가 화재 사고를 겪으면서 디젤차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정작 본고장 유럽에선 잘 팔려
유럽에서는 디젤차가 꾸준히 팔리고 있다. ‘유럽자동차제조사연합(ACEA)’ 자료에 따르면, 1996년 유럽연합(EU) 15개국 내 전체 승용차 중 디젤차 비율은 22.9%였는데 2010년엔 52%까지 치솟았다. 2015년 디젤 게이트가 터졌을 때 비중은 52.1%. 2016~2017년엔 각각 49.9%, 45.7%였다. 점유율은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유럽 소비자가 디젤차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착한 연비(한층 넉넉한 항속거리)와 강한 토크(힘) 때문이다. 디젤 엔진은 열효율(연료로 만든 열에너지 가운데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비율)이 높다. 대신 제조원가가 비싸다. 압축비가 높아 엔진 강성도 확보해야 하고, 배출가스 후처리를 위해 DPF(디젤 미립자 필터)뿐 아니라 SCR(선택적 환원 촉매), 요소수 등 각종 장치를 결들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디젤 엔진을 빚어온 자동차 제조사는 여전히 그 가치를 높게 보고 있다. 연구결과에서도 드러난다. 2013년, ‘미국 에너지 정보국(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이 발표한 ‘운송 연료 효율성’ 관련 조사에 따르면 디젤의 에너지 밀도를 능가하는 운송용 연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디젤이 100이면, 가솔린은 87, LPG는 64 수준이다.
디젤 엔진의 발전 잠재력
<표1. 배출가스 허용기준>
최신 디젤차의 상품소개를 보면, ‘유로6를 만족하는 엔진’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현재 대부분 디젤차는 유로6 중에서도 C단계(유로6C)를 만족한다. 참고로 유로6 기준은 A단계부터 D단계로 나아간다. A와 B는 실험실에서 측정했고, C부턴 실제 도로주행을 치르며 배출가스를 측정한다. 2020년부턴 유로6C보다 배출가스를 절반으로 줄인 유로6D로 접어든다.
2017년 9월, <오토모티브 월드>는 “디젤차의 질소산화물(NOx) 감소에 드는 비용은 비선형적으로 증가한다. 유로6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유로3보다 3배 이상의 투자비용이 발생한다. 이는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져 소형차 시장에서는 디젤차의 점유율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중형차급 이상 시장에서는 여전히 50% 이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한 바 있다.
오히려 ‘클린’은 지금 붙여야
일부 제조사는 이미 유로6D 기준까지 만족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가솔린차와 비교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얼마나 차이 날까?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중 2.0L 디젤 엔진을 얹은 E 220d는 1㎞ 당 138g, 2.0L 가솔린 터보 엔진 쓰는 E 300은 1㎞ 당 158g을 뿜는다. BMW 5시리즈 등 다른 차종도 최신 디젤 엔진이 가솔린보다 앞선다.
역설적으로 클린디젤 정책 시행 초기보다, 오히려 지금이 ‘클린’을 붙이기엔 제격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을 뿐 아니라, 2020년부턴 질소산화물(NOx) 배출도 1㎞ 당 0.12g 수준으로 옥좰 예정이다. ‘가솔린 직분사 엔진보다 유해물질 배출이 적다’는 주장이 나올 만도 하다. 아울러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왔지만, 내연기관차를 대체하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표2. 2015년 대기오염물질 부문별 배출량|출처 : 국립환경과학원>
따라서 모든 디젤 승용차를 뭉뚱그려 ‘미세먼지 주범’으로 모는 건 적절치 않다. 국립환경과학원이 발표한 초미세먼지(PM2.5) 부문별 배출량을 보면, 제조업이 40%로 가장 많다. 그 다음 비산먼지 15%, 생물성 연소 12%, 도로이동 10% 순이다. 이 중 도로이동 오염원은 유종과 관련 없는 전 차종 합산수치다. 모든 책임을 디젤에게 전가시킬 이유가 없다.
예전엔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 등 자동차를 오래도록 아껴 타는 문화를 독려했다. 반면 이젠 새 차로 바꾸길 유도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연비 좋고 깨끗하다며 혜택까지 안겨준 디젤 승용차를 구입한 소비자들은, 한순간 ‘먼지 유발자’로 몰려 벼랑 끝에 섰다. 디젤차도 디젤차 나름이다. 엄격한 규제를 만족하는 디젤 신차는, 앞으로도 한동안 우리 곁을 지킬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