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 이치운
난생처음 가는 길이어서 두렵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곳으로 나서려니 숨이 가쁘다. 준비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발끝에서, 손끝에서, 가슴으로 숨만 잘 거두어 가면 된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산소콧줄을 제외하고 생체리듬을 체크하려고 붙여둔 전자기기를 모두 떼어 냈다. 작은아들은 어머니의 맥박을 한 박자라도 놓칠세라 온 신경을 손목에 집중한다. 여름 풀벌레 소리가 방 분위기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이런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었다는 듯 큰아들은 숨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어머니에게 형제들의 이름을 쩌렁쩌렁 고한다. 얼굴 근육의 미세한 떨림으로 답한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몸 구석구석을 만져드린다. ‘제가 당신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를 알리기 위함이다. 평소 어머니를 만나면 자식과 며느리와 손주들이 당신의 몸을 늘 만져주었기에 손끝 감촉만으로도 누가 왔는지를 알 것이다. 큰며느리와 작은며느리는 평소 섬을 찾으면 어서 오라고 반가운 손짓을 하던 고마운 손을 만져드리고, 큰딸, 작은딸, 막내딸은 자신들을 키우느라 마음 편히 땅에 발 한번 붙이지 못했던 발바닥을 주무른다.
맥박이 약해진다. 자식들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서운하고 고마웠던 이야기를 독백처럼 한다. 큰딸은 가슴과 배를 쓸어 드리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끄집어낸다. “열다섯쯤이었을 거네. 친구들하고 군밥 해먹는다고 제사에 쓸 쌀 두 줌을 퍼갔다고 대나무 빗자루로 머리와 등짝을 얼마나 얻어맞았던지. 쌀을 가져가지 못해 친구들에게 따돌림 받는 딸보다 제사를 더 챙기는 엄마가 정말 서운했네. 조상이 있었기에 우리 가족이 있다는 엄마의 한마디가 서운한 내 마음을 돌려놨네. 원망하는 마음 갖지 않게 해주어 고맙네.”
둘째 딸이 엄마의 왼발바닥을 주무르면서 말을 한다. “위로는 언니와 오빠, 아래로 두 동생 때문에 밥을 먹는지 어디가 아픈지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늘 서운했네. 한겨울이었네. 방안에 웃풍이 심해 손등을 대고 잔 탓에 보드라운 손목에 화상을 입었을 때 된장 한 스푼을 발라주고 손수건 감아준 게 다였네. 큰아들이 그랬다면 난리가 났겠지. 상처가 덧나 뼛속까지 욱신거려 석 달 넘게 참 힘들었네. 상처보다 마음이 어찌나 아팠던지. 엄마 기억하는가? 그때 엄마가 참 미웠네. 덕분에 복잡한 세상 남 탓 하는 법 모르고, 둥글둥글 살 수 있게 해주어 고맙네.”
막내딸이 오른 발바닥을 문지르면서 훌쩍거린다. “목젖이 갈라진 나를 낳고 말을 못 할까봐 얼마나 울었는가. 딸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다고 엄마를 얼마나 원망했는가. 엄마가 그랬지. 큰오빠가 공장을 다니면서 적금을 붓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수술비 마련되어 수술 날짜 잡혔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엄마, 얼마나 고맙던지. 수술을 받고 코로 바람이 새지 않아 피리 소리를 들었을 때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엄마! 막내딸 걱정하지 말고 잘 가세요.”
큰 며느리가 말을 잇는다. “내가 결혼하고 큰 아이를 낳아서 섬에 갔을 때 어머니의 솔직한 말투에 며칠 밤낮을 마음이 상해 울었답니다. 기억하실 겁니다. 장손자라 얼마나 애지중지 하셨겠습니까. 손주 목욕시킬 물이 뜨겁다고 며느리에게 ‘이년아 애 죽이겠다.’는 말을 듣고 말입니다. 자식들에게만 쓴다는 어머니의 육두문자를 며느리가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흘렀답니다. 어머니의 정이 담긴 그 말을 한 번 더 듣고 싶습니다.”
남동생이 방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엄마, 나도 엄마가 참 미웠네. 절벽 밭에 보리 단을 저 날라야 하고, 고구마 가마니를 짊어지고 벼랑길을 오르내리다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절벽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집중할 수 있게 사탕 한 봉지 사 달라 했는데 엄마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서운하던지. 물때가 좋지 않아 아버지가 바다에 나간 지가 오래되면 집안 사정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몰랐네. 자식들은 말만 하면 무엇이든 어머니 주머니에서 나오는 줄 알았지. 자식을 키워보니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네. 동생이 엄마의 볼에다 얼굴을 비벼댄다.
작은며느리가 말을 이어간다. “어머니, 섬에 갈 때마다 아버님이 바다에서 잡아 온 우럭과 쏨뱅이를 해풍에 말려 가마솥에 쪄내는 퀴퀴한 냄새는 입덧하는 사람처럼 구역질이 났답니다. 그 냄새가 구수한 냄새로 바뀌는데 강산이 한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생선 살을 발라 주던 어머니의 인정 깊은 마음을 오래 간직하겠습니다.”라고 훌쩍거린다.
큰손주가 말을 이어간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배포가 크신 분이에요. 사촌 동생들 데리고 섬에 갔을 때 손주들 먹인다고 이십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들여 해녀 밥상을 주문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밥값이 할머니 한 달 생활비인데 그 돈을 탁 털다니. 손주들을 챙기는 할머니의 마음,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할머니 고마웠습니다.” 장남이 어머니의 머리를 쓸어내리면서 말을 이어간다. “우리 엄마의 낫질은 섬에서 최고였네. 매년 가을이면 풀베기 대회가 열렸네. 엄마는 낫을 직접 숫돌에 갈아 날을 세우고 잘 갈아낸 묵직한 조선낫 손잡이에 침 한 번 ‘퉤’하고 뱉고, 섬마을 선생 노랫가락으로, 이마에 땀을 식혀주는 해풍이 불어오면, 원추리 잎처럼 가냘픈 손목으로 태풍도 견뎌낸 철사같이 질긴 쐐기풀들을 보리 베듯 순식간에 베어 넘겼네. ‘자식들 굶기지 않으려고, 바다에 목숨을 맡기고 뱃일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힘이 불끈 솟는다 했네.’ 자식들에게 보리밥이라도 굶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엄마를 보고 자란 큰아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을 먼저 챙기는 팔불출이 되었네. 그래도 고맙네.”
눈을 크게 뜬다. 자식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담으려는 듯. “서러운 마음 갖지 말고, 슬퍼하지도 말거라. 구십 년을 재미나게 살다 간다. 아버지를 혼자 떠나보낸 지 20년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다리겠느냐. 평생을 함께했던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고 기쁘구나.” 말하는 듯 입술이 움찔거린다.
눈을 감는다. 식구들에게 먹일 것을 더 내놓으라고 갯벌과 다투지 않고, 농사짓는 땅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집에서 키우던 짐승들에게 밥 한번 굶긴 적 없다고 회상하는 듯 살며시 숨을 내쉰다.
숨이 옅어진다. 이제야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까. 열반에 드는 노스님을 위해 상좌들이 독송하듯 자식들은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섬마을 선생’을 합창하기 시작한다.
구십 년 동안, 지(地)·수(水)·화(火)·풍(風)에 갇혀있던 육신이 오온(五蘊)을 벗는다. 색(色)을 벗고, 수(受)를 벗고, 행(行)을 벗고, 식(識)을 벗는다. 인연의 끈에 묶여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았던 육신이 새로운 세상을 향해 깃털처럼 가뿐히 날아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