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장님이 다녀가셨나 봐요.
이 영 주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에어컨과 선풍기를 켜 본적이 없다.
올해는 집에 테라스 작업을 한 달 넘게 했다.
일하시는 두 분이 땀을 흘리기에 그동안 틀지 않았던
선풍기를 연실 틀어댔다.
작업이 다 끝나고 그들은 돌아갔지만
선풍기가 목이 부러져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여보 아무래도 이번에 선풍기 하나 새로 장만해야겠어.
오늘 춘천에 택배 가지고 나갔다가 오면서
선풍기하나 사가지고 올까?”
“선풍기는 잘 돌아가는데 목이 부러졌으니
수리를 해 쓰면 좋겠는데?
안 되면 후평동 며느리내 집에 쓰지 않는 선풍기가 있던데
그 것을 가지고 오던지요.”
아내 성격에 새것으로 사기는 힘들겠고 고쳤으면 하는 눈치였다.
끈으로 부러진 목을 묶어 보고 철사를 가져다 묶어 봤지만
잘 돌아가다가 다시 목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어떻게 하면 선풍이 목이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고정되어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내가 저 선풍기 목을 안전하게 고쳐 노리라”
시간이 지날 수 록 아내보다도 내 자신이 오기가 생겼다.
풀을 깎으려고 뒤 창고에 들어가 예초기를 가지고 나오는데
데라스 공사 할 때 쓰던 ‘ㄱ’ 자로 된 양철이 보였다.
그래 저거야!
크기도 적당하여 저것을 선풍기 목에다 밖아
고정시키면 되겠다는
생각이 번득 들어 예초기 대신 ‘ㄱ’ 자를 가지고 나와
선풍기 밑에 고정시켜 피스를 박았다.
아! 선풍기 날개 밑에 고정을 시키니 밖으로
표가 나지 않고 완벽하다.
목이 정상으로 고정되어 잘 돌아가는 선풍기를 보니
에디슨이 발명한 뒤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아내는 내가 이렇게 완벽하게 고쳤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할 테니까
퇴근해서 선풍기를 보면 당신이 고쳤냐고 감탄할 것이다.
그런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그리 덥던 날씨가 선풍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서늘하였다.
덥지도 않은데 선풍기를 틀수도 없었다.
아내가 퇴근을 하고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빳빳이 목을
곧게 세우고 있는 선풍기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 똑바로 서 있는 선풍기를 보고 모를 리가 없는데”
선풍기가 돌아가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저녁을 하려고 가스 불을 켜고 커피포트를 돌리니
방이 좀 덥다 싶어, 이때다 하며
“가스 불을 켜니 방이 덥지 않아! ”
한마디 내 뱉으며 선풍기를 잠시 틀었다 끄는데도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참 센스가 형광등이네!
선풍기를 고치고 3일째 된 날이었다.
테라스공사를 하고 그동안 가져가지 않은
남은 공구를 비롯해 집주변
마무리 공사를 해주고 돌아갔다.
저녁에 퇴근한 아내는 “이사장님이 다녀가셨나 보죠,
남은 도구며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선풍기까지도 깔끔하게 고쳐준걸 보니”
그동안 얼마나 집안일에 나 몰라라 했으면
저런 말밖에 들을 수 없단 말인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0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