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금리.환율 3고 고통 속
외환위기 악몽 떠올라 몸서리
행안.법무장관이 나설때인가
경제 장관들은 왜 보이지 않나
신문 사회면 보기가 두려워던 시기가 있었다.
외환위기 때 그랬고, 2002년 카드 사태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그랬디.
그럴때면 신문 사회면은 늘 가슴 아픈 얘기로 채워졌다.
경제적 고통이 어떻게 한 가정을 망가뜨리고 극단적 선택까지 몰고 가는지 한 줄 한 줄 읽어내기 어려웠다.
최근 물가가 치솟아 20년 만에 6%까지 올랐다고 하니. 20여 년 전 외환위기 악몽이 조건반사처럼 움찔한다.
그떄 얼마나 많은 직장인이 거리로 내몰려 실직자로 떠들고,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무너졌던가.
스산한 기억의 파편들이 지난달 전남 완도 앞바다에서 초등학생 조 모양이 부모와 함께 차량 속 주검으로 발견된 사건 앞에
다시 멈춘다.
우리는 그 가족의 삶이 어떠했는지 세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아빠가 1억원이 넘는 돈을 코인에 투자했다가 수천만 원 손실을 봤고, 빚도 1억원이 넘는다는 사실,
가족 체내에서 수면제가 검출된 사실 등을 보면 그들 삶의 마지막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경제위기는 취약계층에 유독 잔인하다.
'패자 부활'이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 한번 추락한 가정은 거의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금융위기가 파고가 잔잔해질 무렵인 2013년 부산-제주 카페리 여객선에서 일어난 사건도 그러하다.
10월 1일 새벽 시간 차를 두고 아무 연관도 없는 승객 4명이 차례로 바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서를 남긴 첫 번째 사망자는 외환위기 이후 사업 실패로 가족과 연락을 끊고 행상을 하며 살았다.
두 번째 사망자는 시신은 건졌지만 가족이 없어 무연고로 처리됐다.
그가 살던 원룸에서는 '나는 바다로 간다'는 쪽지가 나왔다.
나머지 둘은 부부였다.
남편은 수년간 공공근로를 하며 치매 아내를 돌봐왔다.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
남편은 아내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마지막 길을 같이했다.
한날 한배에서 벌어진 이 기막힌 사건은 가난과 고독, 병마에 시달리는 한국 노인들의 현실이 압축돼 있다.
그리고 경제위기 파장이 얼마나 질기게 따라붙으며 보통의 삶을 파괴하고 생활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가를 보여준다.
지금 서민들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퍼팩트 스툼'을 정면으로 맞고 있다.
대외 악재에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른 경기 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위기 속에 있다.
한국은행 초유의 빅스템은 기계가 감내해야 할 고통이 상상한 것보다 크고 더 길어질 것이라는 경고다.
무엇보다 3고 경제는 소득이 적고 빚이 많은 이들에게 심각하다.
이들이 기나긴 침체의 시기를 견뎌낼 수 있을까.
대법원 회생파산위원회는 이미 코로나19의 피해자인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줄도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채무 연장으로 겨우 억제해왔던 도산이 하반기에 한꺼번에 터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걱정한다.
그런데 정부의 절박감이나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 마당에 '정부가 과연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만 더 커지고 있다.
요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런저런 일로 뉴스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스타 장관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지만 이들이 '스타'가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경제부총리, 대통령실 경제수석, 경제 관료들이 매일 나와서 국민들에게 경제 상황을 알리고
밤낮없이 민생 대책을 내놓는 모습으로 '스타'가 돼야 한다.
윤 대통령이 정식기자회견을 열어 복합위기를 헤쳐 나가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줘도 부족한 시기다.
20여 년 전 외환위기를 떠올리는 불안한 심리가 경제를 흔들지 않도록 모든 이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글로벌 경기로 어쩔 수 없다면, 이해를 구하고 고통 분담을 호소해야 한다.
다시 신문 펼쳐 들기 두려워 아침이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정부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전병득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