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나무위키에 이 글이 전제되어서 언급해두는데,
학계의 통설이라 함은 누군가가 처음 들어보거나 잘 모르는 사실들을 제외한 걸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학계의 통설은 대체로는 교과서에 실린게 답니다만 역사학이 그런 것만
논하도록 정해지진 않습니다.
이 글은 신형식 교수의 저서, 중국 학자의 논문, 박종기 교수의 고려사 재발견 등의
책을 참조해 남긴 기록이며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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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공정론자들이 줄창 부르짖는
"왕건은 중국계다!" 라는 소리가 완전 헛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춘다면 저 또한 쿨한 척은 혼자 다하면서 동북공정 논리에 복무하게 되는
골빈충들의 대열에 들어가고 마는 것이겠죠. 제대로 된 결론은 역시 왕건은 고구려 유민이란 겁니다.
1. 생각해볼 점
하필이면 평로치청번진 제나라와 오늘날의 황해도 일대에 "백산"이란 지명이 동시에 유독 자주 관찰됩니다.
이것이 예맥계 말갈로 유력한 백산말갈의 흔적이라는 신형식 교수의 지적은 음미할만 합니다.
백산말갈들은 영주에서 거진 다 탈주해서 발해를 세우는 데 동참했던 속말말갈과는 달리,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영주에 남아 있다가 이정기 일가에게 합류했거나, 혹은 요동 방면에서 방향 틀어서
패서 일대 잔류한 고구려 유민에게로 복귀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어째서 속말말갈과 계속해서 같은 보조를 취하지 않았는진 일단 미스테리의 영역입니다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1-1. 그런데.... 이정기 일가의 평로치청번진 제나라에 유독 고구려계 "왕씨"들이 자주 모습을 보인다?
2. 후당이 왕건한테 보낸 조서를 보면 왕건을 "회이 무족"이라고 칭하는데, 물론 이건 왕건이
후당한테 찔러준 정보를 바탕으로 구성된 것입니다만 왜 하필 산동성 일대를 지칭하는 회이 무족이라고 했는지가
관건입니다. 이 점은 위 1, 1-1과 더욱 의미심장하게 맞물린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3. 다들 아다시피 왕건 일가는 신라 치하에서 어느 정도 자치를 유지했던 패서 고구려 유민의 후손입니다.
일단 진지하게 눈여겨볼 부분은 여기까지고, 이 다음부터는 그냥 제 추정입니다.
* 왕건 일가는 고구려 유민이었고, 일명 "당숙종"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 실은 이정기 일가의 평로치청번진
고구려 유민 왕씨였는데, 어떠한 사정으로 당시 황해도에 자리잡았던
왕건 일가의 데릴사위 쯤으로 들어왔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뭐 어쨌든 당나라에서 온 건 맞다고도 볼 수 있으니,
당숙종 드립질이 완전 허구에서 만든 떡밥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됩니다.
첫댓글 진짜 농서 이씨 후손이 맞았나?? 하면서 들어왔네요 ㅋㅋㅋ
당연히 그럴리 없죠.
작제건설화에서 백두산이 강조되기도 하죠.
더군다나 왕건조상들이 전승한 조상들 이야기는 작제건설화의 기본베이스가 되었다고 봐서요. 설화자체가 이것저섯 차용한 케이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