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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도(生死島) 3-11
육초량은 그녀가 더듬고 있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아무
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울퉁불퉁 튀어나온 석벽의 거친
면일 뿐이었다.
『그 아래쪽을 만져보세요. 뭔가 느껴지는 것이 없나요?』
이자청이 더듬던 곳을 만져 보았다. 비로소 돌출부 중 한 곳이
다른 면보다 매끄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손때가 묻
어서 그런 것이 분명했다. 그 차이는 아주 미세한 것이어서 여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는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자청이 육초량 곁에 쪼그리고 앉아서 다시 그것을 세심하게
더듬어 보기 시작했다.
『이곳에 기관이 장치된 이상 조심하지 않으면 안 돼요. 자칫
잘 못 건드리면 어떤 위험에 떨어질지 모르니까요.』
기관학에 대하여 문외한인 육초량은 그저 그녀가 빨리 석벽을
열기를 바랄 뿐이었다. 조금만 더 지체하다가는 뒤쫓아오고 있는
군웅들과 마주치게 될 것이었다.
육초량이 초조해하는 것과는 아랑곳없이 이자청은 여전히 신중
하고 조심스럽게 석벽 주위를 더듬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석
벽에 귀를 대고 가볍게 두드려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매끄러
운 돌출부를 중심으로 손바닥을 펴서 사방의 거리를 재는 듯 대
보고,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며 열 손가락을 꼽는 것이 암중에 복
잡한 계산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동안 골똘하게 생각에 잠겨 있던 이자청이 손뼉을 쳤다.
『됐어요.』
이자청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저의 생각이 틀림없다면 이것은 건양팔진 중 이수(離數)의 양
강지학 이론에 따른 기관이 분명해요.』
건양팔진(建陽八陣)이 무엇인지, 이수(離數)며 양강지학(陽剛
之學)이 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육초량은 그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이자청이 토목지학
에 조예가 깊다는 것은 뜻밖의 발견이었던 것이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씀드리고..... 우선 제가 하는 것을 잘
보아 두세요.』
그녀가 돌부리를 잡아 두 번 누르고 좌로 세 번, 우로 두 번을
비튼 다음 다시 한 번 힘껏 눌렀다. 그러자 석벽 깊은 곳에서 끄
르륵거리는 마찰음이 들려오더니 돌이 어긋나는 소음과 함께 석
벽 전체가 서서히 움직여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께가 석 자
나 되는 거암(巨岩)이었다.
『어서 서두릅시다.』
육초량은 큰 호기심을 보이며 여전히 기관을 살피고 있는 이자
청을 재촉하였다. 십여장 밖, 통로의 꺾여진 부분을 돌아 바람처
럼 달려오고 있는 군웅들이 보인 것이다. 육초량의 손에 이끌려
석문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서도 이자청은 아쉬운 듯 뒤를 돌아보
았다.
그그그긍-!
등뒤에서 다시 석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았
다. 석문이 닫히기 전에 뛰어 들어온 군웅들은 오십 여 명 가까
이 되는 것 같았다. 석문 안으로 이어진 동굴은 다른 곳들과 마
찬가지로 수없이 꺾이고 굽어 있었다. 방향감각을 잃은 지는 이
미 오래 전이었다.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육초량은 무작
정 앞만 보고 달려갈 뿐이었다.
<5>
얼마나 달렸을까, 앞쪽 어디에선가 은은한 괴성이 들려오기 시
작했다. 육초량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방향을 잡아 더욱 힘껏
땅을 박찼다. 숨 한 번에 십여 장을 내달리던 그가 억! 하는 비
명을 지르며 급히 멈추어 섰다. 다시 하나의 석문이 굳게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저리 비키세요!』
다급히 외친 이자청이 앞으로 나섰다. 잠시 석문 주위를 살피
던 그녀가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석문에 붙어 있는 철패를 잡
아갔다.
『잘 보세요. 이것은 아까의 것과는 상반되는 것이에요. 감수
(坎數)의 순음(純陰)에 이치를 둔 수음오방진(水陰五方陣)의 기
관이지요.』
그녀가 손바닥을 철패에 밀착시키고 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
다.
『일기(一氣)로 철패를 달구는데, 입김을 불어서 김이 서리지
않을 정도로만 해야 한답니다. 조금이라도 더하거나 덜하면 파탄
이 생기지요.』
그녀가 진지한 안색으로 연신 입김을 불어 보며 철패에 내력을
가했다.
『됐어요!』
손을 뗀 그녀가 신속하게 물러서며 철패를 향해 가볍게 일장을
날렸다. 퍽, 하는 마찰음과 함께 철패가 석문 안쪽으로 두어치쯤
밀려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와 함께 거대한 석문이 미끄러지듯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뒤쫓아 온 군웅들은 이미 지척에 다
다라 있었다. 육초량은 그들이 기어이 이자청을 죽이려고 한다면
일전을 벌이겠다는 각오로 석문을 등지고 돌아섰다.
실상 군웅들이 육초량의 뒤를 끈질기게 쫓아오고 있는 것은 이
자청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자청의 존재는 더 이상 그
들의 안중에 없었다. 그들은 다만 사국천이 빼앗아 간 감리보록
만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육초량이 이자청을 데리고 필사적
으로 달아나고 있으니 그가 사국천이 있는 곳을 아는 모양이라고
추측하고 뒤따라 왔던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육초량이 사납게 노려보며 철검을 잡
아갔다. 그때, 그의 앞에까지 밀려든 군웅들이 갑자기 온몸을 굳
히며 멈추어 섰다. 그들의 얼굴 가득 경악의 기색이 어려 있었다.
『아악-!』
등뒤에서 석문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던 이자청의 날카로운 비
명소리가 들려왔다. 비로소 육초량은 군웅들의 시선이 자기를 지
나쳐서 석문 안쪽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일인가
가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육초량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완전히 열려진 석문 안쪽을 바
라본 순간, 그는 심한 충격으로 웁! 하는 신음을 터뜨리며 자신
도 모르게 주춤 물러섰다.
석문의 안쪽은 사방 십여 장의 반듯한 석실이었다. 사면의 벽
에 자색의 육면체를 가진 수정들이 가득 박혀 있었는데, 천장의
거대한 야명주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빛을 받아 석실 전체가 자색
으로 어둡게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 사국천이 서 있었다.
역겨운 악취와, 발 밑을 적시고 흥건히 고여 있는 검붉은 액체
를 밟고 옆모습을 보이며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그의 금포 자락은 갈기갈기 찢겨 너덜거렸고, 봉두난발한 모습
에 피투성이가 되어 그렇게 서 있었던 것이다.
왼쪽 팔이 무엇인가에 의해 뽑혀져 버린 듯, 어깻죽지에서 빠
져나와 몇 가닥의 힘줄에 의해 대롱대롱 매달린 채 허리 아래에
서 땅에 끌리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는 허벅지의 살점이 뭉텅 떨
어져 버려서 골반에 연결되어 있는 허연 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
었고, 두 눈도 이미 잡아 뽑혀져 뻥 뚫린 시커먼 어둠만이 이마
아래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역한 피비린내와 지독한 악취 속에서 그 처참한 모습을 하고서
도 사국천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헐떡거리면서도 그의 온전
한 오른 손이 깡마른 괴인의 목줄기를 갈퀴처럼 움켜쥔 채 조금
씩 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주위에는 십여 구의 짓뭉개진 시체들이 아무렇게나 널브
러져 있었다. 하나같이 깡마르고 거무튀튀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시체들이었다. 머리통이 박살나고, 가슴이 으깨어졌는가 하면,
복부가 뚫려 내장을 쏟아내고 있는 그 참혹한 주검들이 역겹기
짝이 없었다.
그들의 주검에서는 놀랍게도 검게 변색된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숨을 쉴 수 없게 하는 지독한 악취는 바로 그 검은 피
에서 풍기고 있었다. 사국천은 이곳에서 혼자 생사도의 괴인들을
상대로 하여 처절한 사투를 벌였던 것이다. 그 결과 십여 명의
괴인들과 함께 그 또한 처참한 종말을 맞고 있었다.
『끄으으... 어느 놈도 본좌를 막지는.... 못해. 으으... 감히
네놈들이... 보록은 본좌의 것... 이다...』
그의 목이 쉴새없이 끄르륵거렸다. 탁하게 갈라져 알아듣기 어
려운 음성으로 더듬더듬 말하며 괴인이 목줄기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가하고 있는 사국천이었다.
『끼이익- 끼익-』
기괴한 비명을 흘리고 있는 괴인의 입에서 지독한 악취가 나는
검은 액체가 뭉클뭉클 토해져 나왔다. 괴인의 두 손은 사국천의
가슴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저러고도 아직 살아 있는 사국천이
나 괴인에 대해서 군웅들은 물론 육초량도 넋을 잃고 말았다.
『우욱, 욱!』
이자청이 허리를 꺾고 심하게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로
서는 더 이상 참고 볼 수 없는 지독한 광경이었던 것이다.
으드드득-!
괴인의 목뼈가 사국천의 손안에서 산산이 으스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모두의 등줄기에 전율을 일으켰다.
『끄으으--』
마지막 신음을 흘린 괴인이 축 늘어졌다. 그러나 그 자의 두
손은 사국천의 가슴 깊이 박혀 있어서 땅에 완전히 쓰러지지 못
했다. 얼핏 본다면 마치 두 무릎을 꿇고 사국천의 가슴에 매달려
있는 듯한 기이한 모습이었다. 사국천은 군웅들을 향해 돌아서고
싶으나 가슴에 매달려 있는 괴인의 주검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
는 모양이었다. 그는 어깨만 움찔움찔하고 있었다.
육초량은 그의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며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당대 제일의 고수이자 효웅이라고 자타가 엄지손가락을 꼽아 주
는 그의 종말이 너무나 처참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와아악-!』
사국천이 굉열한 외침을 터뜨리며 남은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
에 박혀 있는 괴인의 두 팔을 내리쳤다. 마지막 한 모금의 내력
을 다 사용하여 쳐 내린 그의 수도가 괴인의 팔꿈치에 떨어지자
으드득 하고 뼈가 부서지는 끔찍한 소리가 났다.
『흐으-』
괴인이 가슴에서 떨어져 나가자 한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해 비
틀거리던 사국천이 신음을 흘리며 비로소 군웅들을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마치 스스로 솟아 나온 나무 가지처럼 그의 가슴에 박
혀 있는 두 개의 팔뚝이 출렁거리며 흔들렸다.
그의 모습은 귀기스러움을 넘어선 극한의 괴이함이었고 공포였
다. 시커멓게 뚫려 있는 동공 속에서 더운 선혈이 연신 흘러내리
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그가 힘겹게 걸음을 옮겨 군웅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으으...』
너무도 끔찍한 그 모습에 군웅들은 모두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다.
『크흐흐.... 보록은... 본좌의 것이다... 오너라... 모조리 죽
여...』
알아듣기 힘든 말을 웅얼거리던 사국천의 신형이 크게 휘청거
렸다.
『끄으...』
그에게는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무너지듯 그대
로 엎어져 버린 그가 몇 번 발작적인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잠
잠해졌다. 절명한 것이다.
『휴-』
육초량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후까지 보여준 그의 무서운
집념에 어이가 없었다.
사국천의 죽음을 확인한 군웅들의 눈빛이 다시 욕망의 불길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품안에는 감리보록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사국천의 주검을 향하여 조금씩 다가갈 때였다.
삐이익-!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석실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군웅들이 다시 물러서며 경계의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
다. 스르릉거리는 가벼운 소리를 내며 석실의 맞은편 벽이 물러
서고 있었다. 눈앞에 갑자기 입을 벌리고 드러난 그 어둠 속에서
비릿한 냄새가 풍겨왔다. 군웅들의 잔뜩 긴장한 눈이 일제히 그
곳을 바라보았다.
끼익, 끽-
기이한 소리가 어둠속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동굴 속
의 어둠을 벗어나 석실로 들어서는 자들이 있었다. 다섯 명의 괴
인들이었다. 깡마른 체구에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는 그들의 눈
은 흰자위 뿐이었다. 그것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
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사람도 아니고 시체도 아닌 괴인들을 육초량은 본
적이 없었다. 사국천이 거느리고 있던 비천맹의 실혼인과 비슷하
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눈앞의 괴물들은 단지 신지를 제압
당하고 있을 뿐인 실혼인들과는 또 달랐다. 어느 구석에서도 생
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괴물들인 것이다. 그것이 훨씬
더 공포스러웠다.
끼익, 끽-
그것들이 팔다리를 움직여 다가올 때마다 뼈마디가 서로 어긋
나는 듯한 섬뜩한 기음이 스며 나왔다.
『활강시(活疆屍)!』
군웅들 속에서 누군가가 공포에 떠는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그
것들은 사람이 아니라 고도로 정련된 괴물인 강시들이었던 것이
다. 실혼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무서운 괴물이 바로 그것들이
었다.
삐이익-!
동굴 안쪽에서 다시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울려왔다. 그것이
신호인 듯, 두리번거리던 강시들이 끼아악! 하는 괴성을 터뜨리
며 무릎을 꼿꼿이 편 채 군웅들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 * * *
날수독검(惡辣毒劍) 이효기(李曉起)는 사천 지방을 떡 주무르
듯 하던 흑도의 거물이었다. 잔인하고 깨끗한 그의 살검은 사천
무림의 일절로 꼽히기도 했다. 이효기가 그의 몰인정하고 무정한
성품을 고스란히 지닌 검을 휘두르며 하나의 활강시를 맞이하고
있었다.
『차합!』
그의 힘찬 기합 소리가 검에 힘을 더욱 실어 주었다. 흑풍혈차
(黑風血叉)의 연환검은 그의 필생의 절기였다. 이효기는 자신의
일검이 활강시의 몸통을 충분히 두 동강 낼 것이라고 믿었다.
피이잉-!
예리한 파공성을 뒤에 두고 소리보다 빠르게 쳐 나온 그의 검
이 활강시의 정수리 위에 떨어졌다. 응당 뼈가 깎이는 소리와 함
께 비명이 터져 나와야 했다. 그러나, 캉! 하는 쇳소리가 났다.
마치 우뚝 솟아 있는 쇠기둥을 내리친 것 같았다.
『어헉!』
호구가 파열되어 버린 이효기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
져 나왔다. 하나의 철골 같은 손이 곧장 뻗어와 그의 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천 무림의 패자로 군림하던 이효기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었다.
우두둑-!
그의 목뼈가 수수깡처럼 꺾여 떨어졌다. 거칠게 이효기의 주검
을 내던진 괴물이 다시 파풍도를 휘두르고 있는 대한을 잡아갔다.
『이, 이런...!』
육초량의 눈이 분노로 부릅떠졌다. 두어 번 숨을 쉬는 사이에
벌어진 목불인견의 참상이었다. 다섯 구의 활강시들이 펄쩍펄쩍
뛰며 군웅들을 덮쳐온다 싶었는데 어느새 십여 명의 고수들이 변
변히 저항해 보지도 못하고 그것들의 손에 무참히 죽어버린 것이
다.
『으으...』
『어떻게 이럴 수가...』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모두 공포로 떨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쳤
다. 그러는 동안에도 다시 다섯 명의 고수가 활강시들의 손아귀
에 잡혀 처참하게 찢겨 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터뜨리는 단말마
의 비명 소리가 석실 안을 온통 공포와 절망의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익!』
이를 갈며 분통을 터뜨린 육초량이 철검을 뽑아 들고 앞을 막
고 있는 자들을 헤치며 나섰다. 마침 활강시 하나가 정면에서 달
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마물(魔物)들. 모조리 부수겠다!』
사납게 외치자 가슴 가득 솟구친 살심을 알아챘다는 듯, 그의
철검이 낙뢰처럼 뻗어 나갔다.
캉-!
귀청을 찢을 듯한 요란한 쇳소리가 났다. 육초량의 무시무시한
검격이 정면에서 달려들던 황강시의 몸을 비스듬히 쪼개고 빠져
나왔다. 호구가 저려오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물러서는 그의
눈에 두 쪽으로 갈라져 떨어지는 끔찍한 몸뚱이가 보였다.
『모두 물러서시오!』
군웅들에게 외친 육초량이 다시 성큼 나섰다. 마음이 이는 곳
에 검기가 미치는 의검경(意劍境)든 자신의 검이 활강시를 벨 수
있다는 사실에 용기 백배해진 그였다.
『끼야압!』
좌측으로 도약해 들어가며 그대로 뿌린 비연참의 일격이 활강
시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끄아악-!』
머리가 두 쪽이 되어 무너지는 활강시의 입에서 처음으로 비명
이 터져 나왔다. 육초량은 다시 팔을 타고 흐르는 저르르한 충격
을 견디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며 물러섰다. 그러나 머뭇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직 힘이 남아 있을 때 하나의 마물이라도
더 베어야 하는 것이다.
『차핫!』
다시 뛰어든 육초량의 검이 수직으로 내리 꽂혔다. 그의 검신
을 타고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던 새하얀 검강이 빨려들 듯 세 번
째 활강시의 정수리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그것의 두개골에 박혀든 검을 회수해 들일 여유가 없었다. 뒤
에서 달려드는 활강시의 두 손이 뒷덜미를 잡아오고 있었던 것이
다.
(잡히면 끝장이다!)
사국천의 처참한 최후를 떠올린 육초량이 오싹 끼쳐드는 소름
을 참으며 돌아선 그대로 맹렬하게 일장을 뻗어냈다. 그의 혼신
의 진력이 실린 엄청난 장력이 날선 창처럼 뻗어 나갔다.
빠아악-!
철판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활강시의 가슴에서 터져 나왔다.
가슴이 산산이 바수어진 채 괴이한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는 그것
의 얼굴을 향해 육초량의 발길질이 다시 한 번 맹렬하게 쳐 나갔
다. 잘 마른 박이 밟혀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허연 뇌수가
튀어 올라 사방으로 뿌려졌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활강시를 동강내 버리고 나자 나른한 피
로가 밀려들었다. 극심한 진기의 소모 때문이었다. 석실 안은 이
제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는 주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몰려들었
던 군웅들 중 어느새 이십 여 명이나 죽어 있었던 것이다. 역한
악취와 피비린내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이것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육초량이 군웅들을 돌아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온 군웅들을 모두 죽이려는 생사도주의 음모가 틀림없
소. 눈앞의 일들이 그 증거요. 이곳에 더 이상 미련을 두고 있다
가는 결국 모두가 저와 같이 되고 말 것이요.』
육초량의 손가락이 이곳 저곳에 널브러져 있는 처참한 주검들
을 가리켰다. 그것을 바라보는 군웅들의 얼굴이 회의와 갈등, 공
포, 그리고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욕망으로 일그러져 갔다.
『우리는 한 시라도 빨리 이 음모의 섬을 벗어나 중원으로 돌아
가야 하오. 가서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 것
이요.』
군웅들 속에서 작은 소요가 일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와하하핫-! 어느 누가 노부의 허락도 없이 돌아갈 수 있단 말
이냐!』
굉렬한 웃음소리와 함께 동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자가 있
었다. 사공영호였다.
제 5 장 대폭발(大爆發)
<1>
『사공대협, 당신이 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이요!』
그의 인자하고 중후한 얼굴을 바라보며 군웅들이 입을 모아 소
리쳤다.
『하하, 그대들의 과욕이 불러들인 일. 그대들 자신의 어리석음
을 탓해야 할 것이다.』
사공영호가 입가에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띈 채 태연히 말했다.
『본도가 생사도라는 것을 잊은 건 아니겠지? 노부가 죽음 편에
선 이상 이곳은 이제 오직 사도(死島)일 뿐이라네.』
속삭이듯 친근하게 하고 있는 그 말이 그를 더욱 가증스럽고
무섭게 보이도록 했다. 군웅들은 할 말을 잊은 채 두려움으로 몸
을 떨었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사공영호가 입술을 오
무리고 날카로운 휘파람을 불어댔다.
마른 장작개비로 땅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쿵쿵 울려오더니
동혈 속에서 철골의 활강시들이 다시 겅중겅중 뛰어 나오기 시작
했다. 군웅들의 얼굴이 보기에도 처참할 만큼 공포와 절망으로
질려갔다.
『하하, 이미 겪어 보았으니 알겠지만, 이것들은 노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일생일대의 걸작이지. 좋은 놀이 상대가 될 것
이네.』
사공영호가 다정하게 말하며 그의 좌우에 도열해 선 열 구의
활강시들을 대견한 듯 바라보았다.
『사공 늙은이!』
육초량이 차갑게 외치며 성큼 나섰다. 사공영호의 눈썹이 꿈틀
했다. 감히 자신의 면전에서 그렇게 부르는 자가 있다는 것이 견
딜 수 없었던 듯, 부드럽던 눈빛이 흉흉해지고 있었다. 육초량이
싸늘한 눈으로 그런 사공영호를 정면에서 노려보며 손가락질했
다.
『너는 설마 네 꼬임에 빠져 이곳에 온 육백 여 명의 군웅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건 아니겠지?』
그는 서슴없이 사공영호를 <너>라고 불러 버렸다. 그의 눈 속
에는 분노가 이글거렸고, 입가에는 경멸의 조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런 육초량을 무섭게 쏘아보던 사공영호가 부드득 이를 갈았다.
『잘 물었다, 애송이 꼬마 놈. 노부는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을 생각이다.』
『억, 그럴 수가...』
『어찌, 사공대협, 그대가, 그대가...』
군웅들의 절망에 찬 부르짖음을 비웃으며 사공영호가 스산한
눈빛을 번쩍였다.
『흐흐흐, 너희들을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면 중원 무림은
그야말로 빈 껍데기만 남는 셈이지. 노부가 그것을 수중에 넣는
것은 주머니 속의 물건을 취하듯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너희
들의 생각은 어떤가?』
생사도에 찾아 온 육백 명의 고수들 중 수행원으로 동행하고
있는 자들을 제외하더라도 한 지역의 웅주, 패자로 자리잡고 있
는 자들의 수가 무려 삼백여 명에 달했다. 그들이야말로 중원 무
림의 절정 고수들이요, 실제적인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이다.
사공영호의 말대로 그들이 만약 이곳에서 모두 죽는다면 강호
는 일시에 공백 상태에 빠져들 것이었다. 생사도의 힘으로 그런
무림을 장악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공영호의 그 말에 군웅들의 안색은 이제 창백하다 못해 파랗
게 질려갔다.
『결국 네놈의 더러운 속셈은 그것이었나?』
버럭 외친 육초량이 철검을 겨누었다.
『노부에 의하여 무림은 새로운 질서로 재창조되는 것이다.』
성큼 물러선 사공영호가 다시 날카롭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
자 용수철에 퉁겨지듯, 열 구의 활강시들이 부채 살처럼 퍼지며
군웅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 * * *
『헉, 헉... 지독한 마물(魔物)들...』
창백해진 안색으로 육초량은 입술을 악물었다.
『가랏!』
그의 철검이 은빛 섬광을 뿌리며 뻗어 나갔다.
『끼아악-!』
일기(一氣)의 검강에 허리가 반쯤 꺾인 활강시 하나가 주춤하
고 멈추어 섰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을 뿐, 덜렁거리는 몸통
을 매달고 여전히 다가선 그것이 흉맹한 일권을 내뻗었다. 완전
히 동강나거나 머리통이 쪼개지기 전에는 결코 그 움직임을 멈추
게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검력이 떨어졌다.)
육초량은 당황했다. 다시 세 구의 활강시들을 쪼개 버리고 나
자 기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던 것이다. 이제는 일검으로 활강시를
동강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그를 초조하게 했다.
『으아악!』
『끄악!』
처참의 극을 치닫는 비명소리가 석실 안에 가득 찼다. 놀란 메
뚜기 떼처럼 좁은 석실 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군웅들을 활
강시들이 하나씩 잡아 찢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지쳤고, 전
의를 상실하고 있는 그들의 도검과 권장은 활강시들의 전진을 잠
시 멈추게 할 뿐,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
육초량을 향하여 세 구의 활강시들이 기성(奇聲)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육초량은 문득 사국천의 처참했던 최후를 떠올리고
전율했다.
(정면에서부터 해치운다!)
이를 악물고 품안으로 뛰어들 듯 마주쳐 가며 벼락같은 일검을
쳐내는 그의 모습이 활강시들 못지 않게 흉맹스러워 보였다.
카캉-!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정면에서 부딪쳐 오던 활강시의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져 쩍 벌어졌다. 그것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풍차
처럼 몸을 돌려 물러선 육초량의 곁을 두 개의 주먹과 다섯 개의
손 그림자가 간발의 차이를 두고 스쳐 지나갔다. 이러다가는 모
두 죽고 만다는 절박한 생각이 육초량을 초조하게 했다. 이제는
십여 명의 고수들만이 남아서 다섯 구의 활강시들을 상대하며 겨
우겨우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이자청은?)
육초량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철
렁하였다. 조금 전까지도 벽에 붙어 서서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그녀를 보았던 것이다.
『타합!』
좌측에서 달려드는 활강시를 향해 일검을 뿌려대며 재빨리 사
방을 살펴보았다. 그 잠깐 동안의 방심을 뚫고 들어온 깡마른 손
하나가 육초량을 거머쥐었다.
『어억!』
어깨를 잡아오는 무지막지한 힘을 느낀 육초량이 비명을 터뜨
렸다. 싸늘하게 밀려드는 한기(寒氣)에 금방 왼팔이 마비되어 갔
다. 이야압! 하는 굉렬한 외침을 터뜨리며 허리를 낮추고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검을 돌려 쳤다. 뼈가 깎이는 무딘 소리와 함께 역
한 악취를 풍기는 검은 액체가 쏟아져 나와 그의 온몸을 덮어 씌
웠다.
쇠스랑으로 긁어낸 듯 길게 찢긴 어깨의 고통을 참으며 몸을
빼낸 육초량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석실의 한 구석에서
활강시 하나가 찢어대고 있는 푸른 옷자락을 본 것이다. 그 사이
로 피혜(皮鞋)가 벗겨진 작은 맨발이 드러났다. 종아리가 뽀얀
한쪽 발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이 소저!』
그 끔찍한 광경에 절규하듯 부르짖은 육초량은 그만 고개를 돌
려버리고 말았다. 돌아서는 활강시의 손안에서 으깨지고 있는 이
자청의 얼굴을 본 것이다. 선명하게 붉은 피가 허공을 적시며 확
퍼져 나갔다.
『용서하지 않겠다!』
육초량의 눈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흉악한 살기와 광기로 물
들어 번들거렸다.
『끼요옷-!』
괴이한 기합과 함께 뻗어나간 눈부신 검강이 이자청의 피로 물
든 채 끄덕거리고 있던 활강시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그대로
다가서며 다시 창백한 검광을 날리는 육초량이었다. 끄악! 하는
억눌린 비명을 터뜨리며 다시 한 구의 활강시가 두 쪽이 되어 널
브러졌다.
육초량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그
의 검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창백하게 시
린 백색의 검강이 쳐 나가는 곳에는 오직 용서 없는 죽음이 있을
뿐이었다.
남은 두 구의 활강시를 무시한 채 돌아선 육초량의 철검이 사
공영호의 경악해 있는 얼굴을 향하고 곧장 뻗어 나갔다.
『으헛!』
크게 놀란 사공영호의 일권이 마주쳐 왔다.
카카카캉-!
검강을 깨고 쳐 나와 검신을 두드리는 막강한 권력이 육초량을
주춤거리게 했다.
『으흡!』
육초량의 입가로 한 줄기 선혈이 스며 나왔다. 요란하게 뒤흔
들린 기혈이 들끓었다.
『놈! 노부의 상상 이상이로구나. 제일 먼저 네놈을 제거해야겠
다!』
사납게 외친 사공영호의 일장이 다시 육초량의 가슴을 때려왔
다. 기혈을 억누르고 호흡을 돌릴 틈이 없었다. 석실안이 웅웅거
리는 진동음으로 가득찼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기파(氣波)가 폭
풍처럼 휩쓸어 왔다. 석실을 한 순간에 진공의 상태로 만들며 소
용돌이쳐 오는 장력의 가공함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육초량은 그 장력의 폭풍 앞에 버티고 서서 이를 악물었다.
(정면으로 부순다!)
그의 무모하기까지 한 오기와 고집이 불끈 머리를 들었다.
『이야압-!』
혼원지기(混元之氣)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한 번 내리친 검이
뇌전처럼 꽂혔다.
짜자작-!
철검이 부서져 버릴 듯 진동하고, 눈부신 검기가 몸부림을 치
며 터져 나왔다.
콰아앙-!
천 근의 화약이 폭발한 듯한 엄청난 굉음이 석실을 뒤흔들었다.
먼바다에서 해일이 몰려오고 있는 듯 우르릉거리는 여음(餘音)이
가공할 압력을 동반하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으헉!』
『흐윽!』
그 속에서 답답한 두 마디의 신음이 흘러 나왔다.
창백한 안색으로 날려 가는 육초량의 입에서 검붉은 선혈이 화
살처럼 뿜어졌다. 반대편 석벽에 거세게 부딪쳤다가 퉁겨져 나오
며 그 탄력을 싣고 다시 일검을 뿌려대는 육초량이었다. 삶과 죽
음은 도외시한 채 오직 사공영호를 쪼개 버리고 말겠다는 무시무
시한 투혼만이 실려 있는 검격이었다.
씨이이-
섬전(閃電)이 작렬하듯 일기(一氣)의 검광이 직선으로 뻗어 나
갔다. 비연참의 일격이었다.
짜아악-
사공영호의 장포 자락이 길게 베어지고 그 사이로 쩍 벌어진
가슴이 드러나 보였다. 경악과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사공
영호가 신음을 흘리며 물러섰다. 그의 피가 금방 옷자락을 붉게
물들였다.
억지로 신형을 추슬러 선 육초량의 눈에 비틀거리며 물러서고
있는 사공영호의 모습이 보였다.
『으아악-!』
잠시 잊고 있었던 처절한 비명이 귀를 찔러왔다. 힐끗 돌아보
는 육초량의 눈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두 명의 군웅이 막 두
구의 활강시들에 의해 처참하게 찢기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끼기기-
상대를 모두 없애버린 활강시가 기성을 흘리며 육초량을 향해
돌아섰다.
(야단났다!)
육초량의 눈에 다시 당황한 기색이 가득 어렸다. 이제 석실 안
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은 그 혼자 뿐이었다. 사공영호 하나만 해
도 견딜 수 없는데, 뒤에서는 두 구의 활강시들이 덮쳐들고 있었
다. 아무리 염두를 굴려 보아도 이 좁은 석실 안에서 다른 방법
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극한의 위기에 처할수록 더욱 맹렬한 투지에 불타는 것이 야성
이 그에게 심어준 체질이었다. 육초량은 뒤흔들려 버린 내부의
고통을 참으며 더욱 강렬하게 눈빛을 빛냈다.
『크하하하....! 어린 놈. 과연 중원에 너 같은 자가 또 있을지
의심스러울 만큼 대단하다. 하지만 네놈은 오늘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해야 할 운명이다!』
가슴의 상처를 눌러 지혈한 사공영호가 득의의 대소를 터뜨리
며 손가락질했다.
『늙은이, 네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고 말겠다!』
육초량도 이를 악물고 지지 않겠다는 듯 부르짖었다.
* * * *
씨이잉-!
눈부신 검광이 횡으로 쓸어간 곳에서 불똥이 튀었다.
카카캉-!
활강시의 가슴에서 요란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흐으... 벨 수 없다!)
육초량은 비틀거리고 물러서며 비통하게 외쳐야 했다. 활강시
들을 베기에는 그의 내력이 이미 현저하게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위기감이 그의 뒷골을 잡아당겼다.
끼기기-
역겨운 기음과 함께 활강시 하나가 무릎 뼈를 덜그럭거리며 다
가오고 있었다. 그것을 제압할 방법이 이제는 없다는 것이 육초
량을 분하게 했다.
『하하하... 네놈의 처참한 최후를 지켜보았다가 세상에 그대로
전해 주마. 그러니 너무 섭섭해하지 말아라!』
사공영호의 비웃음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이익!』
어금니를 악문 육초량이 사납게 몸을 날려 정면에서 다가들고
있는 활강시에게 부딪쳐 갔다.
카캉, 캉, 캉-!
벼락 같이 쳐낸 그의 팔 검이 우박처럼 마물의 전신을 두드렸
다. 그러나 활강시는 끼긱거리며 두어 걸음을 물러섰을 뿐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채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
가 버리는 허탈감이 육초량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일 각만, 일 각만 쉴 수 있다면...)
육초량은 내심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일 각의 시간 동안만 운
기행공을 할 수 있다면 다시 충만한 기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회복력이 강한 그의 혼원지기와, 단목굉이 전해 준 건곤일선기공
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촌각의 여유도
없었다.
정면의 활강시가 어느덧 세 걸음 앞까지 다가와 있었고, 등뒤
에서는 다른 한구의 마물이 쿵쿵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육초량은 검을 고쳐 쥐고 으드득 이를 갈았다.
『끼야압-!』
외치며 돌아서는 그대로 몸을 날려 혼신의 힘을 다해 등뒤에
다가온 마물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카캉-!
호구가 파열될 듯한 통증과 함께 무지막지한 반탄력이 육초량
을 퉁겨냈다. 그 힘을 빈 육초량이 몸을 틀며 쏜살같이 사공영호
를 바라보고 부딪쳐 갔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을 각오한 필살의
일격이었다.
『흥, 가소로운 놈!』
허리를 튼 사공영호가 순식간에 일곱 번 보법을 바꾸어 디디며
왼 손의 일장과 오른 손의 금나수(擒拿手)를 절묘하게 배합하여
쳐왔다. 그의 몸놀림은 과연 귀신 같이 빠르고 경쾌하면서 산악
처럼 무겁고 충실했다.
따당-!
검신(劍身)을 가볍게 쳐 낸 그의 좌수가 우수와 바뀌어서 잡아
채 오고, 우수는 수도(手刀)로 변하여 퇴로를 차단했다. 육초량
은 이처럼 경쾌하고 치밀한 초식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가 잠
시 당황할 때,
『돌아갓!』
어깨를 잡아챈 사공영호가 마치 공깃돌을 던지듯 육초량을 가
볍게 던져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견정혈을 제압 당한 육초량
은 우측 반신이 마비되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
육초량의 눈 가득 절망이 어렸다. 떨어지는 그를 잡으려고 팔
을 벌린 채 달려드는 두 구의 활강시들이 눈 아래 보였다. 그 마
물들의 손에 떨어지면 그 즉시 전신이 갈가리 찢기고 말 것이었
다. 이게 마지막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텅 비게 했다. 절
대절명의 순간이었다.
쉬아앙-!
동굴 안쪽에서 무시무시한 파공성을 뒤로하고 번갯불처럼 쳐
나온 일기의 검광이 그대로 활강시들의 허리를 쓸고 빠져나갔다.
『끼아악!』
『끼익!』
괴성을 터뜨리며 펄쩍 뛰는 활강시들의 허리가 썩은 무처럼 썽
둥 잘려 떨어졌다. 역겨운 악취를 풍기는 흑혈(黑血)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상체와 하체가 각기 분리된 두 구의 활강시들이 제
각기 석실 바닥에 처박혀 꿈틀거리다가 곧 잠잠해졌다. 가공할
검강이었다.
『으헛!』
사공영호의 입에서 경악의 외침이 터져 나올 때, 동굴 속에서
바람처럼 튀어나온 괴 그림자는 이미 육초량을 받아 안고 한 구
석으로 물러서 있었다.
『아, 공야선배!』
그를 알아본 육초량이 크게 외쳤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바
로 검신(劍神) 공야승(孔爺乘)이라는 것이 그에게 뜨거운 감동을
가져다 주었다.
『잠시 쉰 후 나를 도와주게.』
재빠르게 말하고 난 그가 육초량을 내려놓고 천천히 사공영호
를 향해 돌아섰다.
『공야 형, 이건 무슨 뜻이요?』
사공영호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분노가 어리고 있었다.
『사공영호, 그대의 심사는 지나치게 악독하다. 설마 이렇게까
지 사태를 몰고 갈 줄은 몰랐다.』
엄숙하게 꾸짖는 공야승을 대하는 사공영호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흐흐, 그래서? 이제 와서 공야승 그대가 노부에게 등을 돌리
겠다는 말인가?』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합니다,
흥미가 갈수록
w재미주여줘요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합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정도...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육초랼 사공영호 공야승~~~
잘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즐독 ㄳ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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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갑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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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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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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