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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통문화의 산책 원문보기 글쓴이: 김광호
서울특별시
길 상 사
위치: 서울 성북구 선잠로5길 68
서울 성북동 중턱에 위치한 길상사는 옛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사찰로, 대원각 주인이었던 김영
한님에게 당시 시가 1000억원이 넘던 대지와 건물을 시주 받아 1997년에 개원하였다. 길상사에는
대중들의 정진 수행공간인 ‘길상선원’과 ‘침묵의 집’이 있다.
무소유, 영혼의 모음, 말과 침묵, 물소리바람소리,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등을 저술한 법
정스님이 있던 곳으로도 유명하며, 파리에 길상사 분원이 있다.
1997년 세워진 길상사는 역사는 짧지만 개원법회가 있던 날, 김수환 추기경이 개원 축사를 하였
고,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교수가 직접 조각한 관세음보살상과 기독교 신자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
장이 기증한 7층 석탑을 보유하고 있어 종교 화합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봉 은 사
위치 :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코엑스 맞은편에 위치한 봉은사는 신라의 고승 연희국사가 원성왕 10년(794) 견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후 1천 년 이상을 이어온 고찰이다.
조선시대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가 연산군 4년(1498)에 성종의 능(선릉) 동편에 있던 견성사를
성종의 명복을 위해 건립하는 사찰인 원찰로 삼고 이름도 봉은사로 고쳤다.
명종 때 수렴청정을 하면서 막대한 권력을 휘둘렀던 문정왕후가 고승 보우를 등용해 불교 중흥을
도모할 때 중심에 섰던 사찰이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가 죽기 사흘 전에 썼다는 판전의 현판을 비롯해 보물을 품고 있다.
경기도
위치 : 경기 화성시 용주로 136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갈양사로 창건된 후 병자호란 때 소실되면서 폐사됐던 용주사는 젊
은 나이에 뒤주에 갇혀 숨진 사도세자를 그리던 정조가 보경스님의 설법을 듣고 넋을 위로하기 위
해 세운 절이다.
정조는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으로 옮겨와 현릉원(이후 융릉으로 승격)
이라 이름 짓고 용주사를 세워 원찰로 삼았다. 숭유억불 정책을 펼치던 조선시대에 국가적 관심을
들여 세운 사찰로,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애틋한 효심을 알 수 있다.
시인 조지훈이 용주사의 승무제를 보고 시 <승무>를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며, 사찰 인근에 화성
행궁, 수원화성, 융건릉 등 정조 관련 유적지가 많다.
신 륵 사
위치 : 경기 여주시 신륵사길 73
원효대사의 꿈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있던 연못을 가리키므로 절을 지으
라는것으로 알고 사찰을 지으려 해도 잘되지 않아서 7일 동안 기도를 올리니 9마리 용이 하늘로 승
천한 후에야 절을 지을 수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남한강 옆에 위치해 경치가 빼어나고 높은 탑, 오래된 비 등이 아름다워 조선시대 문인들이 오래
도록 칭송했던 사찰이다.
6백 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와 향나무가 있어서, 더욱 옛 역사가 그리운 곳이며, 미
국의 뉴스 전문채널 CNN이 운영하는 <CNN Go>가 선정한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
중에 하나로 선정되었다.
보 문 사
위치 : 인천 강화군 삼산면 삼산남로 827
강화도 서쪽의 석모도에 자리하고 있는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함께 3대 해상관음
기도도량이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 회정대사가 창건했는데 진덕여왕 3년(649)에 어부들이 불상과 나한, 천진석
상 22구를 바다에서 건져 천연석굴에 봉인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웅전 앞 범종은 조성 당시에는 국내 최대 규모로 화제가 된 바 있다. 33관음보탑을 중앙에 두
고 둘러싼 각기 다른 표정의 5백 나한상은 장관이다. 대웅전 옆 4백19개에 달하는 계단을 따라 올
라가면 서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눈썹바위가 있고, 이 절벽에 높이 32척 너비 12척의 관음상을
새겼다.
강원도
백 담 사
위치 : 강원 인제군 북면 백담로 746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 지장율사가 한계사로 창건한 이후 영조 51년(772)까지 운홍사, 삼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불리다가 1783년에 최붕과 운담이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가 1백 개 있다고
하여 백담사라 개칭했다.
10여 차례 소실됐다가 57년 재건된 백담사는 한국 근현대사 질곡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내설악은 깊은 오지에 자리 잡고 있어서 많은사람들이 좀처럼 찾기 힘든 수행처였던 백담사에서
<님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민족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이 입산수도한 사찰로 유명
하다.
현재 만해기념관과 만해교육관을 통해 한용운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부속 암자로는 봉정암, 원명암, 오세암 등이 있는데 오세암은 동명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사랑
받았다.
낙 산 사
위치 : 강원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풍광을 가진 낙산사는 관동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
낙산사는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러 온 의상대사가 통일신라 문무왕 11년(671)에 창건하였으
며 해수관음상은 높이 16m, 둘레 3.3m, 최대너비 6m의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며 마치 바다 위에 우
뚝 선 듯하다.
조선 세조 때 다시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 홍예문 등이 남아 있었지만 2005년 큰 산
불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됐다.
경상북도
불 국 사
위치 :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
신라 천년고도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불국사는 가장 유명한 사찰 중 하나다.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의 발원으로 창건하였다. 그러나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
古今創記)」에 의하면, 이차돈(異次頓)이 순교한 이듬해인 528년(법흥왕 15)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과 기윤부인(己尹夫人)이 이 절을 창건하고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574년(진흥왕 35)에는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이 절을 중창하고 승려
들을 득도하게 하였으며, 왕의 부인은 비구니가 된 뒤 이 절에 비로자나불상과 아미타불상을 봉안
하였다고 한다.
또한, “670년(문무왕 10)에는 이 절의 강당인 무설전(無說殿)을 짓고 신림(神琳)·표훈(表訓)등
의상(義湘)의 제자들을 머물게 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석가탑과 다보탑은 세계적인 유산다.
부 석 사
위치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후 입적할 때까지 떠나지 않은 사찰로, 국보 제18호 무량
수전, 국보 제19호 조사당, 국보 제45호 소조여래좌상, 국보 제46호 조사당벽화, 국보 제17호 무량
수전앞석등 등의 국보와 3층석탑, 석조여래좌상 등의 보물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이 중 가장 유명
한 무량수전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고려시대 목조건축물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건축물이다.
소박하면서도 형태미와 비례미를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으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경상남도
해 인 사
위치 :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명산인 가야산을 뒤에, 매화산을 앞에 둔 해인사는 국내 최대 사찰다운 웅장함을 자랑한다.
해동 화엄종의 초조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과 그의 제자 이상이 신라 40대 임금인 애장왕 3년
(서기802년)에 창건했다.
창건 이후 오랜 역사를 함께한 사찰인 해인사는 수많은 역사적 유적을 품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 제32호인 대장경판과 제52호인 대장경판고가 대표적이다.
고려의 대몽항쟁을 대표하는 유물인 고려팔만대장경판은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것을 지천사로
옮겼다가 태조 8년 해인사로 옮겼다. 이후 해인사는 호국신앙의 중심지로 역할을 감당하며 불교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됐다.
해인사는 일곱여 차례 큰 화재를 입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만은 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팔만대장경 외에도 보물 제264호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518
호 원당암다층석탑및석등, 보물 제128호 반야사원경왕사비, 보물 제222호 해인사마애불, 유형문
화재 제145호 사명대사비, 보물 제1242호 등 70여 점의 유물이 산재해 있다.
용 문 사
위치 : 경남 남해군 이동면 용문사길 166-11
남해군립공원으로 지정된 호구산에 자리한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찰로, 원효대
사가 금산에 있던 보광사를 옮겨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흡사 원시림을 떠올리게 할 만큼 험한 산
에 숨어 있는 사찰인 용문사가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임진왜란 때로, 용문사에서 사명당의 뜻을 받
든 승려들이 나라를 위해 승병을 일으켜 싸운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용문사는 삼혈표라는 대포를 보관하고 있고, 숙종이 내린 수국사 금패가 보존되어 있다.
대 흥 사
위치 :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국토 최남단에 위치한 두륜산을 배경으로 한 대흥사는 진흥왕 5년(544) 아도화상이 창건한 이후
13인의 대종사를 배출했다.
임진왜란 때 승병장이었던 서산대사 이후 사찰 규모가 확장됐고, 초의선사로 인해 차문화의 성지
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등이 위치한 북원, 천불전을 중심으
로 용화당, 봉향각 등이 있는 남원, 사명대사의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전라남도가 선정한 ‘전남 으뜸경관 10선’에 선정되기도 한 대흥사는 서남해의 독특한 자연 풍광
을 간직해 현재 유네스코 불교유산 등재가 추진 중이다.
미 황 사
위치 : 전남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미황사는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 자락에 위치해 아름다운 풍경으로 수행을 돕는다.
통일신라 경덕왕 8년(749)에 처음 지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조선 선조 31년(1598)에
다시 지었고, 영조 30년(1754)에 수리하였다.
석가모니 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주춧돌은 앞면 4개와 옆면 2개를 특이하게 연꽃무늬에
자라, 게 따위를 조각한 돌을 사용하였으며 나머지는 자연석을 썼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
몄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식인데 가운데에 불교어인 ‘범(梵)’를 선
명하게 새겨 놓았다.
미황사 뒷산에는 ‘토말(土末)’이라고 쓰여진 비석이 있는데 우리 나라 육지의 끝을 표시한 것이다.
선 암 사
위치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신라 진흥왕 3년(542) 아도가 비로암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헌강왕 5년(875) 도선국사가 창
건했다는 설도 있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선암사는 봄이면 매화와 벚꽃, 철쭉이 만발해 ‘꽃절’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가지고 있다.
경내의 순천 선암매는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기도 했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
이라고도 불린다. 선암사를 대표하는 무지개다리 승선교는 보물 제400호로 지정됐다. 숲의 운치를
만끽하며 다리를 건너 흙길을 따라 걷는 길이 선암사 여행의 묘미. 보물 제1311호 대웅전을 비롯해
선암사대각국사의천진영(보물 제1044호), 선암사삼층석탑(보물 제395호), 선암사금동향로(유형문
화재 제20호), 선암사동종(보물 제1558호), 선암사불조전(유형문화재 제295호)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전라북도
선 운 사
위치 :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동백꽃이 가장 유명하지만 가을에는 단풍, 봄에는 벚꽃을 비롯해 꽃들이 만연해 계절마다 빼어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사찰이다. 경내의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
며, 대웅보전은 보물 제290호이다.
577년(백제 위덕왕 24)에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하였으며, 그후 폐사가 되어 1기(基)의 석탑
만 남아 있던 것을 1354년(공민왕 3)에 효정선사(孝正禪師)가 중수하였다. 1472년(조선 성종 3)
부터 10여 년 간 극유(克乳)가 성종의 숙부 덕원군(德源君)의 후원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는데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본당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버렸다.
창건 당시는 89개의 암자와 189채의 건물, 그리고 수도를 위한 24개소의 굴이 있던 대가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613년(광해군 5)에는 무장(茂長)현감 송석조(宋碩祚)가 일관(一寬)·원준(元俊) 등 승려와 함께
재건을 도모, 3년에 걸쳐 대웅전·만세루(萬歲樓)·영산전(靈山殿)·명부전 등을 건립하였다.
충청북도
법 주 사
위치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379
우리나라 유일의 전통 목탑, 속리산 법주사는 명승 제61호로 지정되어 있는 사찰이다. 오랜 시간
한반도의 중심에서 미륵 신앙의 요람이 됐던 법주사에서는 곳곳에 숨겨진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국보 제55호로 지정된 팔상전은 현존하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현재 건물은 임진왜란 후 다시
짓고 1968년 해체, 수리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한 팔상도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이 붙었다.
경내에 있는 높이 33m의 금동미륵대불은 단일 불상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충청남도
수 덕 사
위치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
백제 위덕왕 때 처음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수덕사는 고종 2년(1865)에 만공이 중창한 후로 선종
유일의 근본도량으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석가모니 삼불상을 모셔놓은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봉정사극락전(국보 제15호), 영주부석사무량수전(국보제 18호)
에 이어 오래된 목조 건물로서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단층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이며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물 중 특이하게 백제적 곡선을 보이는 목조건축이다. 정교하
게 다듬어진 부재들과 치밀한 결구법, 섬세한 장식 등 고려 건물의 공예적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마 곡 사
위치 :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옛 백제의 기운을 품은 공주 권역을 병풍처럼 둘러싼 태화산에 자리한 마곡사는 ‘춘마곡’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 마곡사를 둘러싼 나무와 봄꽃들로 빼어난 풍경을 볼 수 있는 사찰이다.
사찰 곳곳의 탐방길과 휴식공간에서 사찰의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산세를 감상할 수 있다.
백제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유존된 건물 중 가장 연대가 오래된 영산전은 세조가
친히 판액을 써서 하사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영산전은 고려 건축양식이 잘 나타나 있어 보물 제800호로 지정됐다.
창건 당시 30여 칸에 이르는 대사찰이었지만 현재에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영산전(보물 제800호), 사천왕문, 해탈문 등이 남아 있다.
강원도
월 정 사
위치 :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자장(慈藏)이 당(唐)나라에서 돌아온 643년(신라 선덕여왕 12)에 오대산이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하여 지금의 절터에 초암(草庵)을 짓고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
견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또한 민지(閔漬)가 쓴 《봉안사리 개건사암 제일조사 전기(奉安舍利開建寺庵第一祖師傳記)에 인용한
대산본기(臺山本記)》에는 이때 그가 머물던 곳이 바로 현재의 월정사 터이며, 자장은 훗날 다시 8척(尺)
의 방(房)을 짓고 7일 동안 머물렀다고도 전하고 있어 이 절은 643년 자장이 건립했다고 볼 수 있다.
자장은 이곳에서 초가집을 짓고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태백산 정암사에
서 입적하였다. 이후 신의(信義) 선사가 암자를 건립하여 머물며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이후 한동안은 머무는 승려가 없어 황폐해 졌다가 유연(有緣)이 머물면서 암자를 건립하여 사찰
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30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이일(而一)이 중창하였고 1833년에 또다시 불이나 전소되었다.
1844년 영담(瀛潭), 정암(淨庵)이 사찰을 중건하였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후퇴 때
사찰의 대부분이 전소되었으나 1964년 이후 탄허(呑虛), 만화(萬和), 현해(玄海) 등이 중건하였다.
주요 문화재로는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8각 9층석탑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있
다. 이 밖에 일명 약왕보살상(藥王菩薩像)이라고도 하는 보물 제139호인 석조 보살좌상(菩薩坐像)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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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통문화의 산책 원문보기 글쓴이: 김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