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상경하여 행사에 참석하고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동창녀석과 당구치다가 허겁지겁 심야버스로 내려왔다. 마누라 곁에서 하룻밤 자고 이튿날 내려온들 누가 뭐랄 사람도 없건만 일을 앞에 놓고는 조급증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천성이라 서둘러 내려온 것이다. 이런 주말부부도 얼마 있으면 끝이라니 오히려 아쉬운 생각이 든다. 가로등만 휙휙 지나가는 검은 차창을 보며 잠을 청해 보건만 아슬아슬하게 빠진 쓰리쿳션이 어른거리고 강의자료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직업이 교수가 아니니 온갖 생각이 들락거려 몸만 뒤척이다 새벽 2시가 넘어 광주에 도착했다. 빈 택시들만이 줄지어 졸고 있는 택시 승강장을 가로질러 어제 상경할 때 이마트에 주차시켜 놓은 차를 가지러 부리나케 달려갔다. 혹시나 주차료 시비가 붙을까 봐 걱정이 앞선 것이다. 하지만 이마트 셔터는 이미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지난번 언젠가 염치없이 주차했다가 7만원을 부과한다는 태그를 보고 깜짝 놀라 가슴조이며 도망치듯 빠져 나온 악몽이 되살아났다. 대책이 없어 솜처럼 피곤한 몸을 택시에 싣고 텅 빈 사택에 몸을 뉘우니 어느덧 아침 8시가 넘었다. 차도 빼오랴 강의 자료도 검토하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서둘러 바지를 주워 입었으나 오른쪽 주머니가 텅 비어있다. 명함과 신용카드를 함께 넣어 둔 명함지갑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바지를 몇 번이나 뒤져봤지만 텅 빈 주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칠칠맞은 나를 핀잔하고 나선다. 신용카드, 기업카드, 복지카드, 교통카드, 골프연습장카드, 구내식당카드, 심지어는 마일리지를 얻으려고 넣고 다니는 음식점 카드까지 카드란 카드는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이 순간 누군가 카드를 쓰고 있을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에 강의고 나발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분실신고를 해야 하는데 전화번호를 알 수가 없다. ‘우선 컴퓨터를 켜고 신용카드 회사를 검색해보자’ 컴퓨터 부팅은 왜 이리 더딘가? 애타는 속을 모르고 오늘따라 늑장을 피우는 컴퓨터가 야속하다. 아직까지 휴대폰에 결제대금 문자 메시지가 뜨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결제금액이 뜰까 초조함에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간신히 전화번호를 알아내 콜센터에 전화를 걸자 무슨 멘트가 그리 많은지 조급증 걸린 사람 인내력 테스트하는 성 싶다. 어렵게 분실 신고를 마치고 고속터미널 분실물센터로 달렸다. 바지 양쪽 주머니가 불록 튀어나오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신경이 가장 예민한 사타구니 주위에 지갑을 넣고 다녔건만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꼴이다. 어제 밤 뒤척거리며 고속버스 의자를 뒤로 재끼는 바람에 빠진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네 도끼냐?” 마치 나무꾼이 빠뜨린 도끼를 산신령이 들고 나와 묻듯 이것저것 들어 보이건만 이것도 저것도 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택시에서 빠진 것일까? 지금 까지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누군가 악용할 의도임에 틀림없다. 분실신고를 했으니 그나마 안심을 하고 이마트로 향했다. 염치없이 주차한 차량에 과태료를 부과할 경우를 대비해 사과 몇 알과 감자 몇 알을 사들고 주차장으로 올라갔다. 혹시 주차료 시비가 붙으면 물건을 샀다며 떼를 쓸 요량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지없이 과태료 태그가 운전석 앞 유리창에 붙어있다. 신용카드 잃어버린 것은 뒷전이고 금방이라도 호루라기를 불며 경비원이 나타날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며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주차비 시비가 붙지 않은 잠간의 행복에 여유를 갖고 잃어버린 지갑을 떠올리다보니 뒤늦게 신고하지 않은 기업카드가 떠오른다. ‘앰병 할!‘ 기업카드를 분실신고 하려고 전화를 거니 카드번호를 대란다. ‘그렇겠지. 기업카드이니 주민등록번호가 소용없겠지’ 내 카드번호도 못 외우고 있는데 기업카드 번호까지 외고 있으란 말인가? 이미 강의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나 어쩔 도리가 없어 자습으로 시간을 때우라 이르고 회사로 차를 몰았다. 카드발급대장을 확인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무슨 도로가 이렇게 막혀? ’ 머피의 법칙이 꼭 이럴 때 적용되다니...... 무거운 기분으로 강의를 마치고 다시 고속터미널 분실물 센터를 향했다. 오후 6시가 넘도록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주운 사람이 사용정지 된 사실을 알고 화가 나 쓰레기통에 버린 것은 아닐까? “어제 밤 10:20분 17번 좌석에서 지갑을 분실했는데......” 마치 고속버스에서 분실한 것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말을 빼자 직원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밤색인가요?” 손님 것인지 모르지만 금호고속 영업소라는 곳으로 가보란다. ‘하느님! 제발 제 카드가 맞다고 말 좀 해 주세요’ 한 움큼 들고 온 지갑을 뒤적이는 직원이 건성으로 뒤져보고 없다고 말할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며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지갑을 분실한 사람이 많을까? “이겁니까?” “밤색인디...“ 우물거리자 다른 명함지갑을 들고 나오는 걸 멀리서 보아도 틀림없이 내 것이다. 아! 혹시 죽은 자식 살아 돌아오면 혹시 이런 기분이 아닐까? “아따. 금호고속 최고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그 직원의 손을 잡고 흔들자 씽긋 웃는 뚱땡이 직원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제일 친절하고 멋져 보였다. 080930
|
출처: 춘식아! 놀자! 원문보기 글쓴이: 창강
첫댓글 다행이예요.. 저도 지갑 잃어버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죠.. 신분증 및 카드 재발급등 뒷처리 할 생각땜에요.., 창강님은 평소에 마음을 잘 쓰셔서 운이 좋으셨나봐요.. 그 반가운 마음 그대로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그러게요 저도 그런 기억들이 종종있어서 ..나중에 찾아들고 카드를 쓰려면 그담에 절차가 장난이아닙니다
ㅎㅎㅎ얼마나 놀랬다 기뻤을까요?
철렁~~내려앉았다가 다시 제자립니다 삼식씨 조심하시어요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