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기자의 시각
[기자의 시각] 진짜 전략자산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입력 2023.05.20. 03:00
https://www.chosun.com/opinion/journalist_view/2023/05/20/WZWPEO2TSZBDVLL67ILWI36E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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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만 33세의 나이로 한국군 첫 대장이 됐던 백선엽 장군(왼쪽)과 북이 가장 두려워했던 김관진 전 국방장관./조선일보 DB
작년 취재차 워싱턴DC 미 국방부(펜타곤)에 갔을 때다. 세계 최강 군의 심장부로 불리는 곳. 화염 뿜는 핵폭탄, 첨단 무기의 사진과 모형물이 가득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보다 인물 사진이 많았다. 오각형 펜타곤을 둘러보는데 복도 양옆으로 ‘너무 빽빽하다’ 싶을 정도로 참전용사, 역대 각군 부대 지휘관, 보직자 인물 사진 액자가 줄지어 전시됐다. 인디언·흑인·무슬림·장군·병사 등 인종·종교·계급 불문이었다.
왜 이렇게 인물 위주로 전시를 했을까. 펜타곤 인솔 장교에게 물었다. “사람, 즉 우리가 중요하다는 거죠. 무기를 개발하고 쓰는 것도 사람 아닙니까. ‘저 액자 속 선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미국이 있다’ ‘우리도 후배에게 저 선배처럼 되기 위해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 이런 의미입니다.”
이날 펜타곤에선 한미 국방부 장관이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를 열고 미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상시 배치에 준하는 수준으로 전개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가 마중물돼 올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협의그룹(NCG)’ 창설이란 성과가 나왔다. 북 도발 시 “정권 종말”이라는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하기 위해 미국의 전략 자산을 적시에 한반도에 전개하고 미 핵무기 운용에 우리 정부의 입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NCG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협의체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양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대북 억지력으로 우리 안보를 강화하겠지만 동시에 미 전략 자산에 대한 의존성은 커져 자주 국방 역량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 최고인 미군과 훈련하고 이들 핵심 전력 노하우를 공유받는다면 그 자체로 얻는 혜택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다만, 결정적일 때 ‘미국이 지켜주겠지’라는 막연한 의존성이 역병처럼 우리 군에 퍼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륙간탄도미사일·전략폭격기·전략 핵잠수함도 좋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빠져선 안 되는 전략 자산은 ‘찐 군인’이다.
김정은도 태평양 등에서 한반도에 일시적으로 왔다가는 미 전폭기나 항모보단 침과대적(枕戈待敵)과 같은 기세를 뿜어내는 코앞의 한국군 사령관이 더 위협적일 것이다. 실제로 김관진 장군이 국방장관일 당시 북한은 그의 결기에 눌려 도발 한번 제대로 못 했다. ‘겁먹은 개가 짖는다’고 북 선전 매체는 표적물에 김 장군 얼굴을 그려 넣고 훈련하며 불안 심리를 드러냈다. 김 장군이 군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 미 전략 자산의 한반도 상시 배치와 같은 효력을 냈던 셈이다. 6·25전쟁 당시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고 했던 고(故) 백선엽 장군의 일성은 지금도 울림이 크다. 그의 유산은 미군도 ‘공유’받고 싶어 하는 한국 전략 자산이다. 한반도의 인적 전략 자산은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