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ㅂㅏ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ㄴㅐ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ㅈㅣ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ㄱㅏ지겠습니다
2
ㅇㅏ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ㄱㅏ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ㄴㅐ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ㄷㅏ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ㅡ 김선우(1970~)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07) 중에서
"낙화, 첫사랑" 전문
돌고 도는 세상이어서
산벚꽃 훨훨 다 지고
동백(춘백)꽃은 톡톡 지고
모란은 펑펑 피고 할미꽃은 고개 숙여
슬그머니 피었다
가고 오고,
피고 지고,
울고 웃고...
요 며칠,
바람이 엎치락뒤치락 수선을 떤다
나무들은 주정뱅이처럼 비틀거리고
잔가지 뚝뚝 부러져 뒹굴고
보리밭은 파도처럼 일렁인다
느긋하게 마루에 앉아 녹차를 우려 마시며
빨랫줄에서 펄럭펄럭 나부끼는
하얀 이불보를 바라보며
브람스와 스트라우스를 불러 놓고
오후를 콕콕 찍어 먹는다
참외향은 언제나 살맛나고
딸기향은 언제나 탐욕스럽다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1840~1928)의 장편소설 에서
가난한 테스의 삶을 짓뭉개 버린 그 시작도
부잣집 바람둥이 사촌오빠 알렉이 건넨
딸기가 아니었던가
그리고는 장미 꽃다발이었으니 뻔하다
거기다 알렉이 테스를 유혹하며
휘파람으로 분 노래는
"내 붉은 입술에 키스해 주오"였으니
순박한 시골 처녀를 홀리기엔
더할 나위 없다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 감독이
나스타샤 킨스키
(Nastassja Kinski, 테스 역)와
레이 로우슨(Leigh Lawson, 알렉 역)을
주인공으로 1981년에 개봉한 영화
는 어쩌면 소설보다 더 유명하다
딸기맛은 누군가의 인생을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부드럽고 새콤달콤하고 향기롭고...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보면
좋은 것에는 항상 좋지 않은 것이 가려져 있다
때문에 예로부터 "호사다마"라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좋지 않은 일이나
원치 않는 일에도 좋은 것이 숨어 있다
"전화위복"이니까
"새옹지마"이니까
일찍이 2500년 전에 노나라 공자께서
이르셨다
"좋아도 문란하게 좋아하지는 말고
슬퍼도 가슴 아프게는 슬퍼하지 말라"고
"낙이불음 애이불비"라 셨다
웃음과 눈물을 다 가진 생명체가
우리네 인간이니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늘을 뿌옇게 만든 황사를 보면서
흐린 하늘에 윙크한다
누군 큰 돈 들여 사막여행을 떠나는데,
돈 한 푼 안들이고 배나 비행기도 안 타고
여기 멀뚱히 서서,
멀고 먼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았으니 이 또한 횡재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