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큰절을 조금 지나 오른편쪽 갈라지는 길로 곧장, 숨결이 목젖을 세차게 흔들어댈만치 오르다가 막 하늘과 산이 맞닿는 곳. 그곳에 백련암은우뚝 서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도인(道人)이 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모두구비한 풍광, 산성(山城)을 연상시키는 돌석축담을 끼고 돌면서 문득 드러나는 암자의 첫 인상이 시리게 싱그럽다. 말이 암자(庵子)지 적광전, 관음전, 고심원, 정념당, 염화실, 원통전 등으로 이뤄진 사격(寺格)은 어지간한 사찰의 그것을 넘는다.
“아니, 뭐라구! 큰스님이 입적을 한 후에 백련암이 더 붐빈다고? 그럴리가, 뭐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기자가 백련암을 찾은 것은 백련암의 근황을 한 지우(知友)로부터 전해들은 게 동기가 됐다. 성철스님과백련암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던 터라 그곳이 대단한, 그것도 굉장한 영험이 있는 기도도량이라는 게 선뜻 다가오지 않았고, 성철스님과 기도와 영험이라는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은 단어들의 배열이 이내 화두처럼 뇌리를 떠나지 않았음이다.
이러이러한 연유로, 막 단풍이 가야산 자락에 드리우기 시작한 초추지야(初秋之夜)에 가야산 꼭대기 백련암 앞마당까지 발길을 옮기게 된 것이다. “이런 도량에서 도인이 안되기는 정말 어렵겠는걸.” 그러나, 암자 초입에서의 공연한 망상도 잠시. 눈앞을 바삐 오가는 단정한 승복(이곳에서는 법복이라고 부른다) 차림의 선남자 선여인들이 이내 시선을 잡아챘다.
“우리절은 여느 절과 많은 게 달라요. 절을 아주 많이하고 아비라 기도와 능엄주를 외지요. 큰스님께서 절많이 하고 아비라 기도와 능엄주를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다고 했어요. 이것만 매일 일과로 하더라도마음병, 몸병, 팔자병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고 그러셨거든요. 실제로 불치병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여기서 기도해 나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예.” 신도회 총무소임을 보는 정천월(正天月)보살은 “백련암은 대학으로 치면 서울대학에 해당하는 절이고, 그러니 신도들은 서울대학생인셈”이라며 밝게 웃는다. 일체의 법문이 없고, 신도들이 스스로 참회하고 기도·수행하며, 반드시 단정하게 법복을 입어야 하고, 기도가 곧 수행인 독특한 기도법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 신도들이 말하는 `백련암이 여느 절과 다른 점'들이다.
백련암에서만 행해지는 독특한 기도법은 `백팔대예참', `아비라 기도', `능엄주 독송'을 큰 축으로 하고 있다. 기도라기 보다는 일종의 수련이요,수행에 가까운 것인데, 그 과정에서 `부수입'으로 얻어지는 부처님의 가피가 적지 않으니 중생의 눈에는 영락없이 영험많은 기도처가 되는 셈이다. 백련암을 찾는 신도들은 절에 오면 우선 백팔대참회를 시작한다. 1천배의 절을 하는 두 시간 동안의 백팔대참회를 마치고 나면, 아비라 기도에 들어간다. 아비라 기도는 성철스님이 고안해낸 독특한 기도수행법. 장궤합장의 자세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비밀진언인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를 30분간 외우는 기도방법이다. `차라리 아이를 낳는게 낳지, 이렇게 힘든 기도를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아비라 기도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일 정도로 어려운 기도법이다. “한 10분쯤 하면 머리끝에서부터 무릎까지 땀이 솟아나면서 흘러내립니다. 이 땀은 보통의 땀이 아니지요. 우리의 몸 속에 들어있던 각종 번뇌와 오염의 찌거기라고 할까요. 이런 속진들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이든 아비라 기도를 하루만 하고 나면 안색이 환하게 바뀝니다.”(英岩 거사). “백련암의 기도방법은 우선 절을 통해 참회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아비라 기도와 능엄신주 봉독으로 이어집니다. 이 기도방법은 성철스님께서 성불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연구하다가 본격적인 화두공부의 전단계로 고안하신 것 같아요. 저희들은 큰스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법을 그대로 실천하면 반드시 성불을 할 수있다고 믿고 있습니다.”(中山 거사)
아비라 기도, 삼천배·1만배 등 백련암에서의 기도는 이처럼 출산의 고통이나 신병훈련소의 훈련보다도 힘든 과정이다. 또 기도의 분위기를 해치는사람이 있으면 즉시 암자에서 쫓겨날 정도로 전 과정이 엄격해 단단히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큰코를 다치게 되어있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기도에 익숙하다 보니 자연 백련암 신도들은 가정에돌아가서도 매일 기도생활을 빼놓지 않는다. 백련암 신도라면 누구든 `일과(日課)'라고 하는 하루 천배나 삼천배 기도를 하고 능엄주를 외우는 기도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속의 속진을 우려내는 강도높은 기도로 업장을 녹이고 몸을 맑힌후 능엄신주 기도로 바른 참선공부의 길을 체득하는 일을 일상으로 하고 있으니, 몸병·마음병은 물론 팔자병이 모두 치유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성철스님께서 석남사에 계실 때부터 참회 및 능엄주를 외우는 철야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만공스님도 정혜사에 철야기도를 열으셨다고 했는데 아마 그때 철야기도법이 좋겠다는 생각을 내신 것같습니다.” 백련암 감원 원택 스님은 이러한 스님의 뜻을 받들어 큰스님의 열반 1주기때에 신도들과 의논을 해 해마다 기일을 맞아 7일7야 철야 팔만사천배 참회법회를 봉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독특한 백련암의 기도법과 영험담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차츰 많은 신도들이 백련암을 찾아오는 것같다는 원택 스님은 앞으로 보다 많은 불자들이 백련암의 기도에 동참, 성불의 길에 들어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련암은 매월 음력 초하루에 참선법회, 1·3주 토·일요일에 3천배 및 1만배 철야법회,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 참선정진기도, 매년 정월과 4월·7월·10월에 아비라 기도, 매년 성철스님 기일에 7일7야 철야 팔만사천배 참회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백련암 가는 방법- 대구 서부터미날에서 15분 간격으로 해인사행 버스가 있다. 해인사 입구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어 도보로 갈 경우약 1시간이 소요되고, 택시를 이용할 경우 5천원의 요금을 내야 한다. 0599)32-7300.
[이학종 기자]
인터뷰-백련암 신도회장 김 천진성 보살
“성철 큰스님께서는 언제나 남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전생의 업장을 녹이는데는 절이 제일, 참선정진을 위한 몸을 만들려면 아비라 기도가 제일, 바른 참선법을 배우는데는 능엄주를 외우는게 제일이라고늘 강조하셨지요. 백련암은 그런 큰스님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체득시켜주는도량입니다.”
부산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백련암 신도회장 천진성(天眞性·66) 보살은`큰스님으로부터 입은 은혜가 너무나 커서 그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는다는마음으로 신도회장직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30여년전 큰스님을 만난 후각종 기도나 행사는 물론 암자의 대소사에 빠지지 않다보니 백련암이 이젠내집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절을 해야 건강을 찾는다고 호통을 치신 성철큰스님 덕에 젊었을적 말도 못하게 고생을 했던 방광염을 치료했고, 또 관절염을 삼천배 참회를 통해 완치하는 가피까지 입었으니 자신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느냐”는 천진성 보살. “일주문 안에만 있는 불교가 아닌 생활 속의 불교, 타율이 아닌 자율적으로 성불의 길로 가는 불교를가르쳐주는 곳이 바로 이곳 백련암”이라며 “더 많은 불자들, 특히 젊은불자들이 참 부처가 되는 길을 찾는 가장 고귀한 영험을 백련함 도량에서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련암?
백련암(白蓮庵)은 수행도량만이 아니라 노송과 잣나무, 기암절벽, 산새소리와 백운이 걸쳐진 봉우리로 둘러싸인 가야산 해인사 산내암자 중 제일로 손꼽히는 기도처이다.
해인사 큰절에서 동쪽으로 약 2킬로미터 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고, 주위에는 서남쪽으로 용각대(龍角臺), 서쪽으로 봉황대(鳳凰臺), 뒤쪽으로 절상대(絶相臺), 동쪽으로 환적대(幻寂臺)와 신선대(神仙臺) 등이 자리하고 있어 전망이 아주 빼어나다. 이러한 연유때문인지 옛부터 도인(道人)이 많이배출되었다. 경내 뜰에 있는 불면석(佛面石)과 쌍두꺼비(일명 거북)바위, 백호바위도 이곳이 예삿 도량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들이다.
경암관식(鏡岩慣拭·1743∼1804)스님이 쓴 `해인사백련암중수기'에 의하면, 백련암은 1605년 서산문인 소암(昭岩)대사에 의해 창건돼 송운, 일헌,인수, 여찬, 쌍휘 스님과 해명당, 보광, 도봉, 월파 등 여러 대덕 스님들의 노력으로 인해 현재의 가람으로 발전돼 왔다.
그동안 환적, 풍계, 성봉, 인파, 활해, 신해 스님 등 고승들이 주석했고근세에는 포산 윤혜천, 이제산 스님 등이 정진했다. 불교정화 이후 1964년부터는 조계종 종정으로 국민적 종교지도자로 추앙받았던 퇴옹당 성철(性徹)스님이 주석,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지금은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택 스님이 감원을 맡아 가람을 가꾸며 성철스님을 따랐던 전국의 수많은 불자들과 함께 성철 스님의 가풍(家風)을 선양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성철 스님이 입적한 이후에 더많은 불자들이 찾아오는 등 백련암은 불교계의 대표적인 기도·수행도량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법보신문 1997-10-22/440호>
입력일 : 1997-10-22
첫댓글 관세음보살~~_()()()_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