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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쌍춘년이라 합니다.
쌍춘년에 결혼을 하면 잘 먹고 잘 산다고 하는 풍습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결혼 소식이 전해져 옵니다.
금낭화 고개 숙여 피던 꼭 이맘 때 가온의 결혼식이 생각납니다.
.........!!!!!
서울을 떠나 경기도 광릉 인근에 살던 가온이 숲 관련 단체의 교육에 참여하면서 당시 간사로 있던
아내를 처음 보았다.
가온과 아내가 도시에서 만난 것은 월드컵 당시 찾아간 혜화동과 올림픽 공원에서의 길거리 응원,
인사동의 경인 미술관 등이 전부인 것 같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숲과 들에서 보냈다.
교육 일정 덕분에 야외에서 만나거나 매주 아내가 광릉 숲에 오는 날이면 가온의 집에서 나물을 캐어
찌개를 끓이고 쑥을 뜯어 대추, 잣, 밤 등이 들어간 밥을 해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는 오곡과 견과류가 있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채취해 담근 마가목, 오미자, 산국, 산뽕나무,
돌배, 산머루, 칡 등의 술과 아카시, 쑥, 칡 등을 발효시킨 효소음료 그리고 구절초, 감국 등을 말린
차도 있었으니 어디 간들 이보다 풍성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당시 가온은 산골 집에만 머물러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준비해 놓은 식량들이었다.
어느날 고향 다녀오는 길의 서해대교에서 손바닥만한 이 그림을 사서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무슨 뜻이 담겨 있는지 알아 차렸다.
우리는 부부로 연을 맺는 의식은 하늘을 증인으로 물 한 그릇이면 족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원래의 계획은 백두산이나 태백산에 올라 고천 하는 것이었으나 부모님들을 생각하여 조촐한
절차를 준비하였다.
아내는 그림을 배경으로 초대장을 만들어 집에서 출력하였다.
주변에서 현재 관계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발송하였는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와주었다.
되도록 정장을 하지 말고 자유로운 복장으로 와주기를 전하였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나타나 주셨다.
축의금은 안 받으려 했는데 하객 중 일부가 성화를 해서 의식이 끝나고
종이 박스에 만원 이하만 받는다고 써놓았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죄송한 발상이었다.
별도로 고향 친구들이 여행 경비로 쓰라고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 주었다.
덕분에 계획에 없었던 여행을 다녀왔다.
둥둥 두둥둥...!
천지 생명에게
천지 신명에게....
혼례의식은 천지의 생명에 고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택견 지도자로는 첫번째 제자인 박성우 선생이 혼례를 알리는 북을 울렸다.
서울 사는 동안 그림자처럼 지냈는데 지금은 서울 송파에서 전수관을 하고 있다.
그가 우리의 길 문을 열어 주었으니 이보다 좋은 사제가 어디에 있을까?
결혼식은 가온이 잠시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운영했던 경기도 광릉 인근의 민들레울이라는
공간에서 했다. 따로 예식장을 구하는 비용이나 번거로움이 없었다.
이곳이 아니었으면 그냥 적당한 숲에서 했을 것이다.
제자와 후배들이 풍물패를 구성해서 길 문을 열어주고 미리 깍아 둔 세 마리의 새를 들고 입장하였다.
아내는 드레스도 면사포도 싫다고 하였다.
가온의 여동생이 주변에 핀 봄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주었다.
초롱을 든 친구들은 즉석에서 만난 꼬마들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연의학을 하시는 스승님을 따라온 환우들이었다.
연속되는 사진들 속을 유심히 살펴보면.....
아! 저보다 더 진지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고맙고 고마운 나의 어린 동무들이여! 천사들이여!
아직도 저 여자아이는 누구인지 모른다.
아내와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점봉산에 오른 적이 있다. 가온이 가장 감명을 받은 숲이 그곳에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원시림 보호지역인데 대부분의 지역은 산나물 채취로 생계를 이어가는 현지 주민들만 들어 갈 수 있다.
가온도 예전부터 나물 뜯고 꽃과 나무들을 보러 다녔는데 오작골로 올라 곰배령으로 내려 오다가 태풍에 쓰러진 다릅나무를 가지고 왔다.
나는 잘 잘라서 다듬은 다음 아내의 이름을 서각하였고 아내는 나에게 줄 나무를 열심히 다듬었다.
이것에 동백 기름을 먹여 예물용 목걸이를 만들었다. 친구가 은가락지라도 하라고 했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장모님이 아쉽다며 이불을 해주셨다.
아내와 나는 홀로 지내고 있었던 터라 서로 집에서 쓰던 밥그릇, 컴퓨터, 냉장고, 작은 티브이, 책장, 낡은 옷장을 함께 합치니 오히려 두개씩인 것이 많았다.
야외 촬영하고, 예물 교환하고, 새살림 장만하고, 한번 입을 옷 맞추고, 결혼 식장 빌리고, 주례 모시고, 폐백하고, 여행가고......
관행에 따라 행해지는 결혼은 애초에 고려해 보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의 의견이라는 것도 없이 부부의 본질만을 생각하였다.
어린 동무들이여!
그대들은 고맙게도 그 시간 동안 꼼짝도 않은 채 무슨 생각을 하였는가!
아! 허리 숙인 저 진지함이여!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그리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대들이 곧 하늘이었구나!
아침 일찍 일어나 평소보다 단정히 수염을 다듬고 머리를 묶었다.
아내도 이에 준하였다. 가온의 여동생이 아내를 보더니 화장품을 꺼내어 다듬어(?) 주었다.
야외촬영이나 웨딩 촬영을 하지 않았다.
다만 결혼 당일 사진은 매제에게 부탁하였는데 후배들이 알아서 찍어 주었다.
사진을 보니 동영상도 찍혔는데 받아 보지는 못했다.
어이 각시여! 무슨 웃음을 그리 참고 있는겨?
우리는 꼬까옷을 입었다.
가온이 지금까지 유일하게 아내에게 사준 옷이다.
아내는 오래 전부터 먹물로 염색해 입고 다니던 바지를 깨끗이 빨아 다려 주었다.
가온이 외출하고 수련을 하고 목수일을 하고 숲에 다닐 때 늘 입고 다니던 바지이다.
윗도리는 가온이 제 멋대로 소매를 자르거나 허리를 잘라 입던 옷뿐이라며 아내가 사주었다.
이날 우리의 옷은 신발과 더불어 결혼 준비를 위해 장만한 유일한 것이었다.
하늘이 주재자이자 천지생명과 더불어 증인이었기에 주례가 없었다.
그 하늘에 고하는 마음을 담아 그곳에 이르게 할 전령인 목오(木烏)를 솟대에 얹어 세웠다.
순간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우리의 마음을 알았는지 솟대를 세우는 동안 때아닌 기러기 한 쌍이
광릉 숲의 주봉인 저 주엽산과 솟대 사이를 가로질러 솟대가 바라보고 있던 북쪽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연출이라도 한 것처럼 감동적이었다고 나중에 사람들이 이야기 해주었다.
우리는 하늘에 고하는 마음이 하늘새를 통하여 전해지기를 바라며 고천문(告天文)을
한 구절씩 낭독하였다.
천지에 주재하시는 하늘님께 고하나니
저 임주연과
저 박범남은
하늘의 은혜와 하객들의 증인 속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저희가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몇 가지 맹세를 하건대
첫째,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둘째, 믿음과 신뢰로써 서로를 사랑하겠습니다.
셋째, 부모님을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겠습니다.
넷째, 스스로의 마음을 속이지 않겠습니다.
다섯째, 하늘이 주신 대 자연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통하여 하늘의 진리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계미년(癸未年) 4월 경오일(庚午日)에
재리(渽裏) 임주연과 가온 박범남이 고합니다.
이렇게 고천문은 피리 소리를 타고 하늘새의 전령으로 하늘에 이르렀다.
가온은 무엇이라고 정의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어느 한가지에 집중되거나 구속되어 있지 않다.
사회적 지위도, 재물도....가온은 갖고 있는 것이 없었다.
알고 지내던 지인의 허름한 빈집에 칩거하면서 아내를 만났다.
우리가 마음을 정한지 얼마 안되어서 아내의 두 어른이 가온이 살고 있는 집에 방문하였다.
양가 부모님이 상견례 하기 직전까지 아내는 물론이고 아내의 부모님도 가온의 가족사와 신상에
대하여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가온 또한 그러했다.
몇 남 몇 녀인지? 무엇을 하는 분인지? 상견례 후에 그냥 자연스럽게 알아갔다.
가온이 사랑하는 부모님은 가난한 농부이자 목수이시다.
아내의 집안은 가온과는 대조적인 도시인들이었다.
장인은 소위 말하는 S대 출신의 철학자이자 치의학인으로 역시 치의사인 처남과 함께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큰아버지도 같은 학교의 치의학 교수였으며 가까운 인척은 전 경기 도지사였다.
그러한 사실들이 가온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사회적 지위는 인간의 본질과 무관함을 알기 때문이다.
가온에게는 늘 든든한 하늘이라는 빽이 있다. 살아가는 방법은 하늘의 이치에 거스르지 않는 것이면 된다.
가온은 그 하늘이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무슨 일이여?" 하고 대답하는 하늘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가온에게 있어 하늘은 묻고 갈구하고 바라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주변에 모든 것이 쓰여져 있으니
그것을 읽어 내는 혜안만이 필요할 뿐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가온을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장인 어른은 가난한 의사이고 장모님과 더불어 가온이 보아온 사람 중에 가장 검소한 분이셨다.
오전에만 일을 보시고 오후에는 학문에 계신다. 많이 벌 생각이 없으시며 양심적이다. 장모님도
가르치고 나누는 일에 즐거워 하신다. 그러니 물질적으로는 가난하고 정신적으로는 부유하시다.
두 분은 진심으로 하늘을 섬기고 있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아시는 분이다. 아내의 언니도
수녀의 신분으로 교단에 계시며 또 다른 처남도 성직자 수업을 받은 적이 있는 카톨릭 집안이었다.
아내는 오래 전에 특정 종교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했지만 인디언들처럼 우리 모두의 하느님(하나님/하늘님)이
하나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고 가온이 세상의 이념과 종교에 대하여 자유로운 이유도 알고 있었다.
양가 부모님은 결혼 준비와 의식에 대하여 아무런 의견도 보태지 않고 알아서 하라고 하였다.
다만 상견례 때 장모님이 조심스럽게 "머리와 수염을 깍았다가 결혼 후에 다시 기르면 안되겠나?"
"제가 살아온 모습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가고 싶습니다"
"그려그려! 알았네!"
"그럼그럼!" 옆에서 장인이 거들어 주셨다.
이리하여 머리와 수염이 덮수룩한 싸가지 있는 사내인 채로 각시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그 동안 많은 무예들을 접해 보았다.
감히 확신하건대 가온은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무예를 통하여 알았다.
이제 무엇을 하던 평생 검과 활과 태껸만큼은 함께 갈 것이다.
고천문 낭독을 끝으로 하늘 사람으로 부부가 함께 갈 것임을 알리는 효시를 날렸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기 이전부터 각각 평소 신고 다니던 낡은 검정 고무신과 흰고무신으로 갈아 신었다.
야외 활동이 많은 우리에겐 운동화가 훨씬 용이하지만 살아가면서 진정 마음을 둘 곳이 어디인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결혼 의식은 아주 빨리 끝났다.
하지만 2부 공연은 풍성했다.
재미있었지만 다들 배고파서 혼났다고 한다.
밥 먹으러 가는 듯한 결혼 세태에 일부러 반기를 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꼴이 되었다.
신촌에서 음악을 하는 처남과 동료들이 공연을 해주었다. 지금도 처남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어서
행복해 한다.funky band 얼스(http://www.freechal.com/earls)
민들레울의 터줏대감인 방장로님이 구수한 입담과 민요가락으로 축하 해주었다.
항상 흥에 차 있는 교회 장로님이신데 전통놀이, 상여놀이, 구전민요 등에 능하시다.
재수하던 시절부터 태껸을 배운 경수가 탈춤을 추었다. 질문이 많아 이성관, 인생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고등학교 내내 풍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루어갔다.
태껸선생으로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이 공연을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마당 고른다며 모래도 펴고, 청소하고, 마을 회관에서 의자와 상도 나르고, 주차 안내하고, 음식 준비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갖 궂은 일을 마다 않고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
그런데 이처럼 항상 선하고 반듯한 친구들이기에 힘들게 살아간다.
필요악이라 하는 온갖 사회 제도와 가치관이 이들의 자유를 흔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끊임없이 배우길 멈추지 않고 의로움을 알며 밝고 활기차고 단단한 근육 덩어리로 뭉쳐있는
멋진 사내들이다.
세상은 싸잡아 분류하고 있지만 나는 그들이 일등을 지향하는 운동선수 혹은 체육인이 아니라 진정한
무예인 이기에 다르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태껸, 피리, 풍물, 탈춤, 민요, 모둠북, 인디밴드, 나무와 바람, 새 등 모든 공연과 자연의 친구들은
짜임새 없이 자유롭고 자발적이었다. 고맙고 또 고마울 뿐....
특히 결혼의식이란 것이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에 의한 축하와 어울림이 되어주니 훨씬
감동적이었다.
하객들이 가온에게도 한판 놀아 줄 것을 요구해 칼춤을 추었다.
신랑이 칼춤을 추는 결혼식은 처음 보았다고 한마디씩 한다.
결혼 후 가온은 이렇다할 벌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나마 가진 재주가 유효기간이 없는 것이라서 필요할 때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팔불출이라 하겠지만....
아내는 한번도 살림에 대한 불만이나 걱정스러운 소리를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해민이는 모유를 먹고 자랐고 옷도 충분히 얻어 입혔다.
아내는 텃밭을 열심히 가꾸었고 싱싱한 먹거리도 많이 수확했다.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는 아내이기에 어디든지 함께 갈 수 있고 든든하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동안 아무런 요구 사항이 없었듯이 지금까지 가온이 무슨 일을 하던 모든 것을
믿고 도와 주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비닐로 코팅된 만원 짜리 털부츠에 감사하였고 매년 가온의 바지로
겨울을 났다. 생각해보니 아내에겐 집에서 입을 만한 겨울 바지가 없었다.
얼마전 빨래 건조대에 걸려 있는 아내의 런닝셔츠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낡고 낡아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것이 남아 있는 천보다 구멍의 면적이 넓어 보였다.
어쩌다 필요한 옷을 골라 보라고 하면 한결같이 손사레를 쳐온 아내였으니 처녀 때부터 입던
속 옷이 분명하다. 가온의 속옷을 보고 깔깔거릴 때는 언제이고 정작 자신의 옷은 더했던 것이다.
가온은 아내로부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가온이 아내를 선택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 모르게 귀농학교에서 귀농을 준비한
도시 처녀가 어느 날 재래식 뒷간이 딸린 집을 구해 달라고 부탁을 하면서이다.
아내는 물건에 대해서나 아이에 대해서 욕심이 거의 없다.
가온은 마지못해 검소했고 아내는 있어도 검소하였다.
얼마 전에 해민이 동생이 태어났다.
사실 이 글도 거룩한 산모였던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더듬어 본 것이다.
좀처럼 하긴 힘든 가족사를 이야기 하다보니 결국 자랑 아닌 자랑 잘난 것 아닌 잘난 척을 하게 되었다.
또한 처갓집 기둥보고 절하는 놈이 되었다.
가온이 왜 이렇게 장황하게 결혼식이며 처가집을 들먹였는가!
그 동안 난감한 경험을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가온이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놀랄 것이다.
가온의 소망에 위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팔자에 없으면 좋을 사장님 소리를 과거 민들레울이나 이곳에서 자주 듣는다.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착각을 하기도 하며 이런 모습을 선망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아이들조차 그런 경우가 있다.
그래서 빨리 벗어 던지려 하는 것이다.
물론 부자가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가온은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가온이 굉장한 부자인 줄 안다.
우리에겐 자동차가 두 대이다.
가온의 짚차는 15년이 되었는데 왠만한 것은 손수 고치고 정비 하다보니 아직도 쌩쌩하다.
검사소에서도 놀랜다. 조금 늙었다고 버리는 일 없이 끝까지 지켜 줄 것이다.
또 다른 차는 아내가 결혼 전부터 숲 체험 활동을 하면서 가지고 다니던 승용차이다.
결혼 후에도 가온이 길게는 몇 달씩 집을 비워 왔는데 우리 마을의 대중 교통이라는 것이
하루 세번의 버스가 고작이니 참으로 용이하다.
과거 민들레울은 교회 장로인 주인(위에 그분)이 눈여겨 보고 있다가 "생각대로 해보게" 해서
무일푼으로 운영을 했던 것이며 지금 살고 있는 이곳도 가까운 어른이 요긴하게 써보라고 돈을
맡겨 주어서 임대하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온은 아무 사람 것이나 받지는 않는다. 또한 아니다 싶으면 미련없이 반납을 한다.
머지 않아 이곳을 떠나 또 다른 곳으로 갈지 모른다. 그곳 또한 처음 보는 어느 스님이 불쑥 나타나셔
"그냥 살게나"하고 등을 밀어 주는 곳이다. 이번의 경우도 인연이 아니면 도저히 생길 것 같지 않은 일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소중한 인연을 통해서 얻게된 가온에겐 너무나 과분한 것들이다.
무예도 목수일도....
가온은 10대 후반부터 오로지 하고 싶은 일에만 빠져왔다.
애초부터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이 사회에 합류 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세상의 방관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가온도 세상의 일부이니까.....
고향에서 토굴을 파고 지내던 시절...
텐트를 메고 홀로 산 속을 떠돌며 지내던 시절.....
오로지 무예수련과 생명에 대한 물음만이 나의 전부였다.
그 동안 가온은 많은 제안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데 이것저것 안다고 생각했기에
강의도 하고 단체활동도 해보았다.
다양한 무예를 접한 가온이 상품 가치가 있어 보이는지
국내에서, 독일에서, 캐나다에서, 호주에서,
최근에도 다시 미국에서 무예선생으로의 초빙 제의를 받았다.
심지어 영화 제작자로부터, 네이쳐 스쿨 기획자로부터....
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내 것이 없음을 안다.
그것들은 인연이 닿아 있는 동안만 가온과 관계 될 뿐이다.
그래서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하여 뛰지 않는다.
가온이 부러워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만일 무엇이 주어진다면 정직하게 그리고 양심 만큼이다.
가온은 가온의 소망대로 살고 싶다. 천천히 그렇게 걸어가고 싶다.
"부부는 천지의 결합인 고로 하늘 사람을 태어나게 하는 시초이고 온갖 복의 근원이라"
- 스승님 말씀 중에서 -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가온님이 허락하신다면.....이글을 좀 퍼다.저의방에 (바오로방) 옮겨놓고싶은데..허락하실련지요? 우리가 추구하는것들을. 삶으로 이뤄가는 가온님의 생각과 삶을 함께 공유하고 닮아가고싶어서..요
가슴에 품고 살아내도 될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 낸 것은 이미 놓아버린 것이니 임자가 따로 없습니다. 다만 저도 고삐를 놓치지 않으려고 열어 보인 것인지라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보여지는 것과는 달리 많은 욕심을 안고 있는 가온입니다. 바오로방....언젠가 구경 가보고 싶군요.
다음카페.......바오로방. 치면... 제가 자료실로 쓰는곳입니다.. 음악과 악보자료..좋은글. .....저의자료실입니다.....
놀러오세요..좋은글도 남기시구요......
사람이 살다보면 누군가와 같은 생각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의 일치에 놀라고 즐겁고 기쁘고...그리고 또...그래 내가 사는 것도 맞는 삶이야 하는 확신을 갖게 되죠....가온 선생님이 누군지, 무얼하셨는지 어떻게 지내시는지 주변의 분들이 누군지 묻지도 않았지만...알 필료도 별로 느끼지 않았음에도...그저..하늘처럼
흐름대로 순진이 아닌 순수로 살아가시는 분이란것을 느꼈습니다...하여 예의, 겸손, 배려, 신뢰의 사가지가 늘 함께 하는 분이란것.....좋은 기분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들꽃과 새에 다가가듯이 향기맡고 싶었습니다...물 흐르듯이....물 가듯이....법(法)처럼....함께 흐르고 싶습니다...
하여 같이 숨쉬고 같이 느끼고.....기억만으로도 좋은 사람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이러한 기운도 한곳으로 모이나 봅니다. 가만히 보면 이미 그런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자하선생님은 그 구심점에 계시고요. 참으로 위험하고도 좋은 역할입니다. 모든 생명의 분께 늘 감사드립니다!
고맙고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 늘 건강 하소서
네. 혼자가 아닌 세상....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비마님도 늘 건강하세요.
가난한 세계관이 아닌 풍요로운 세계관을 갖고 싶습니다. 모든것에 감사하고 너그러울수 있는..애써봐야죠.아마 이미 그런 세계관을 가진분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잘 읽고 갑니다!
풍요로운 세계관......참 가슴에 와닿는 말씀이십니다. 많은 이들의 가난은 마음의 가난이며 스스로 선택한 상대적인 가난인 것 같습니다. 이럴수록 절대적 빈곤에 처한 노인들과 아이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온선생님의 세계가 모두 담겨있는 글 잘 보았습니다. 천지만물이 하객이 되어준 결혼식은 전무후무할 듯 싶네요. 두분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모습도 마음도....그야말로 일심동체시군요.
"살아보아라! 내 살아보니 이러하노니 너희도 이러할지니" 긍정도 부정도 못하겠습니다. 모든게 뜻대로 이루어진다하니 이왕이면 희망을 갖겠습니다. 저희 또한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간혹 주변에서 그러한 분들을 뵈오니 희망도 있는게지요^^
가온선생님도 그렇지만 마님이 더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긱이 듭니다. 자연과 더불어 물 흐르듯이,, 저는 이렇게 사는 삶이 정말 풍요로우며, 행복한 삶임을 늦게나마 조금씩 깨닫는 중이랍니다. 그럼 마음 끝자락에서 명규, 가영의 캠프로 가온샘을 알게 되었음을 느께게 되네요. 많이 느끼고, 배우고 갑니다! 도심의 삶이지만 매일 조금한 것부터 하나씩 저도 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예요..그런 저에게 힘이 되는 곳이 되었네요!!!
저희에겐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그 말씀 그대로 이웃들과 시선을 나란히 할 수 있는 삶이기를 희망합니다. 자아에만 빠져있던 가온이 어느날 수면 위에서 다른 이들을 만났을때 관계란 부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 관계란 저에게도 힘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맙고요.
참 멋진 분들이시네요!
참....참....참.....도대체 어떤 분들 이신지.....혹 벅수들이 아니신지.......,
가끔 소문만 듣던 결혼식입니다. 재리님의 웃는모습이 영락없는 천사의 모습인것같네요. 자연인을 접하는것같아 순수함에 잠시 빠졌습니다. 행복하세요~~^^태견을 배우고싶었는데 나이가 조금 있어서 배울수있는기회를 가질수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