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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 이대로 창 27:18~23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19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20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21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22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23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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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물원에 고릴라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천상 다른 고릴라를 수입해 와야 하게 생겼는데요... 그러려면 돈도 많이 들고 기간도 오래 걸리니까 동물원장이 한 가지 묘책을 세웠습니다. 사람하나를 채용해서 고릴라 가죽을 뒤집어씌워서 동물원 개장시간에만 우리에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채용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고릴라 가죽을 쓰고 그냥 우리에 있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오버를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바나나도 먹고 써커스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칩니다. 그러자 흥이나서 이번엔 그네를 탔습니다. 사람들이 환호를 지릅니다. 그래서 그네를 있는 힘껏 구르다가 그만 튕기쳐 나가서 이웃 사자우리에 떨어졌습니다.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까 사자가 어슬렁, 어슬렁 다가오는 겁니다. 이 사람이 놀래서 소리를 지릅니다. “사람 살려!” 그랬더니 이 사자에게서 사람의 음성이 들립니다. “쉿 조용히 해... 사람들이 눈치 채기 전에... 둘 다 직장 짤리고 싶어? 요즘 취직하기기 얼마나 힘든데...” 보니까 그 사자도 사람이 사자탈을 쓰고 연기하던 가짜사자이었습니다.
요즘에 현대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서로 가면과 탈을 쓰고 사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그대로 내놓지 못하고 삽니다. 다른 사람으로 바꿔서 살고 싶어 합니다. 돈 많고... 잘생기고... 잘나가는 사람으로 그렇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형편과 사정이 허락하질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런 체”를 하면서 삽니다. 돈 있는 체.... 잘 생긴 체... 잘나가는 체...하면서.... 그런 가면을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꿔 쓰면서 삽니다. 그러는 동안에는 자기 자신의 모습은 온데, 간데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더 멋저 보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모습으로 가면 놀이를 하면서 삽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자신에 대해 가치를 두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얼마나 있으십니까? 나에 대한 가치를 얼마나 처 주면서 사십니까?
어떤 분이 실수로 돈을 오십 만원을 잃고 너무 상심이 되니까 자기를 자책합니다. “이그~ 못난 놈! 그거 하나도 못 간수해서 잃어버려?... 그게 어떤 돈인데 오십만원이면 낡은 냉장고 를 바꿀 수 있는 돈인데...” 너무 상심을 한 나머지 잠도 못자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병이 생겨서 입원합니다.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의 값어치를 오십 만원도 못치고 있는 셈입니다. 온 우주보다도 더 값진데 말이죠...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자기를 자기로 살지 못합니다.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들이고...학력과 계급과 권력까지 동원합니다.
사람이란 원래 약합니다. 그래서 자꾸 실수를 합니다. 완벽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수치스럽고 연약하고 모자라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 모습 이대로 인정하면서 떳떳하게 살아도 별 지장 없습니다. 왜요? 다 그러니까...그런데도 안 그럽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약점 잡히지 않고 좀더 우월하게 보이려고 말이죠...그래서 취하는 행동이 자기 자신을 자꾸 멋있게 자기를 포장을 하고,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는 겁니다.
옛날에 제가 일본 어떤 작가가 쓴 글을 읽었는데 그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소도시에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같이 사는 기숙사가 있었습니다. 그 기숙사에 사는 어떤 여자가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저녁으로 편지를 받는 겁니다. 사람들이 다 부러워합니다. “오늘도 편지가 왔네요? 어쩜 그렇게 열열히 사랑하는 사람이 다 있대?”
그러던 어느 날 이 여자가 그 앞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 여자가 항상 메고 다니던 가방에서 부치려고 준비해둔 편지가 수두룩하게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그 편지를 봅니다.“이게 웬 편지?” 그런데 그 편지주소가 다 자기 앞으로 돼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멋있게 보이려고 자기가 자기에게 편지를 썼던 겁니다. 이것이 바로 가면이요 연기입니다.
그런데 솔직해야하는 교회에서 조차 이런 식의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란 어떤 곳입니까? 사람이 변화하는 곳입니다. 미워하고 증오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용서의 사람, 사랑의 사람으로 변하고요...욕심 많던 사람이 예배를 통해 나눠주는 사람으로 변하고요...누구처럼? 삭개오처럼.. 그래야 하는데...
그런데 교회를 그렇게 오래 다녔는데도 그렇게 변화하지 않습니다. 왜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거북하니까 외면해 버리고 말이죠.. 형식적이고 육신적인 믿음으로 세상의 것을 구하니까...변화가 안 됩니다. 그러나 체면상...남 보기에 변화한 것처럼 보여야 하겠고... 그래서 연기를 합니다. 사랑하는 체... 변화된 체..합니다. 속에는 탐심이 있는데도 겉으로는 안 그런 것처럼... 속으로는 며느리가 미워 죽겠으면서도 겉으로는 사랑이 많은 것처럼 연기를 합니다.
신앙의 연륜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신앙이 성숙하는 게 아니라...연기가 성숙해 갑니다. 교회 내에서 신앙의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쓰는 솜씨가 놀랍게 숙달 됩니다.
여러분, 중국 서커스에 보면 변검이라고 해서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재빨리 얼굴에 쓴 가면을 다른 가면으로 바꿔쓰는 묘기를 하지요... 얼굴을 한번 가렸다가 보이면 순식간에 다른 가면이 됩니다. 참 신기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적인 교인은 탁! 눈치를 보다가 어떤 상황이 되면 그 상황에 맞는 연기를 합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다들 은혜 받았다고 하면 자기도 은혜 받은 척 합니다. 은사집회 하는데 가서는 자기도 은사 받은 것처럼 연기하기도 합니다. 그 연기력에 따라서 신앙이 얼마나 좋은가가 결정되는 줄 압니다.
이 연기로 감쪽같이 이웃과 가족과 하나님을 속입니다. 자기 자신까지 속입니다.
여러분 배우들이 연기할 때. 몰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극중 인물로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 습관 가치관..완전히 자신은 버리고 극중 인물이 되는 것 보고 몰입이라고 합니다. - 탤런트 안내상씨가..조강지처클럽에 출연하면서 찌질이 한원수로 얼마나 몰입을 했던지...가정에서도 그 몸짓과 말투가 나온답니다.
성도가 이렇게 척 하는 가식적인 신앙으로 오래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구원받지도 못했는데 구원받은 사람처럼...미움이 가득한데도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자신을 몰입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소용 없습니다. 자기만 그런 줄 알지...조금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이 옆에서 보면 다 알아봅니다.
요즘 티비에서 체인지라고하는 프로가 있습니다. 유명한 연예인을 다른 사람의 모양으로 특수 분장시켜서 그 사람이 잘 아는 사람.....식구나 친한 친구에게 접근을 하게 해서 평소에 그에 대한 본심을 알아보는 건데요... 그런데 그 프로도 오래되니까 눈치 채더라고요.
최근에는 여자가수로 활동한 방송인 조갑경씨에게 그 남편 홍서범씨가 특수 분장을 하고 자기 아내 앞에서 다른 사람인척 접근을 했는데요. 조갑경씨가 척 알아보더라고요. 코를 잡아 뜯으니까 특수 변장한 특수고무가 얼굴에서 주르륵 뜯어지면서 정체가 탄로 나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아무리 자신을 꾸며도 알 사람은 다 압니다. 하나님이 알고요. 그 하나님과 잘 통하는 사람도 압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그 내면세계가 얼마나 망가졌는지...그래서 왜 성질이 더러운지를 알아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요..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 가까이하려고하지 않습니다. 목사에게 이상하게 거리를 둡니다. 목사가 가까이 가서 교제를 나누고 싶어 해도 선을 정해 놓고 더 이상 접근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왜요? 들킬까봐...자기 본색이 드러날 까봐...
그러나 다행히도 영적눈이 어두워서 잘 판단을 못하고 자기 연기력에 넘어가게 생긴 사람에게는 안심하고 접근합니다. 누구처럼? 눈이 어두우진 이삭에게 접근한 오늘 본문의 야곱처럼...
오늘 본문을 보니까...눈이 어두워진 이삭에게 둘째 아들 야곱이 말이죠. 에서로 변장을 하고 접근을 합니다. 왜 접근합니까? 에서에게 임할 장자축복을 가로채려고...이런 야곱에게 이삭이 묻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19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여러분, 야곱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야곱은 평소에 자기 자신의 처지가 못마땅했습니다. 불과 몇 초 차이로 장자가 되지 못한 것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으로 살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라도 에서로 살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기회있는 대로 에서가 되려고 합니다. 팥죽한 그릇에 에서의 위치를 넘봅니다. 그런다고 장자가 되나요? 그만큼 자기가 싫었던 겁니다.
요즘 보면 우리도 자기가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왜 나는 첫째가 아닌가? 왜 나는 남자가 아닌가? 왜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는가? 왜 나는 부모를 잘 못 만났는가?
그러는 동안에는 행복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보실 때, 야곱도 야곱 나름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야곱이 야곱으로 살 때에 행복이 있는거지 에서로 살아가지고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행복은커녕 들킬까봐 초조하고 불안하게 살 뿐입니다. 거짓의 삶을 살 뿐입니다.
19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20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합니다.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할 때 첫째...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거짓인생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 아니라 그 누구도 자기로 살지 않으면 이렇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우리 아이가 왜 거짓말을 할 까요? 자기로 살지 못하고 항상 꾸며서 사는 그런 부모 밑에 사는 아이들이 거짓말을 안 하겠느냐고요?
둘째로....자기 자신으로 살지 않을 때..... 불안한 삶을 삽니다. 왜요? 그 거짓의 삶은 언제 들킬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21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22 야곱이 그 아비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이때 야곱이 얼마나 당황했을까?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요 입이 바짝 바짝 마르고요...피가 거꾸로 흘렀을 겁니다. 들키면 죽으니까... 야곱이 야곱으로 살지 못할 때...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야곱은 다행히도 들키지 않습니다. 이삭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23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얼마나 십년감수 했겠습니까? 무사히 넘어갔으니..그러나 그것을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또 언제 어느 순간에 들킬지 모르니까... 아닌게 아니라 시간이 조금 흐르니까 에서가 늦게 헐레벌떡 와서 이 사실을 알고 야곱을 죽이려고 찾습니다. 그러니까 걸음아 날 살려라 밧단 아람으로 36계 줄행랑을 놓습니다.
항상 무언가에 쫒기고 불안한 삶.....이것이 바로 야곱이 야곱으로 살지 못할 때 당하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렇게 쫒기듯 외삼촌 라반집에서 사는 야곱에게는 편안이 없습니다. 왜 계속 속여야하니까....이때 야곱의 삶은 속이고 속는 삶 그 차제 였습니다. 자기를 속여 열 번이나 약속을 어긴 외삼촌을 이번에는 자기가 속이고 밤에 몰래 탈출 합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금방도로 쫓아오는데요. 집에 가면 뭐 합니까 속임을 받은 형이 이를 갈고 있는데요...이 상황을 일컬어 사면초가 진퇴양난이라고 하지요...이것이 바로 속이는 인생의 결과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 방법은 바로........얍복강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런 삶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압복강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자기가 그동안 속여서벌은 재산..다 두떼 세떼로 나눠서 다 건너보낸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낮선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 가십니다. 그랬더니 이 야곱은 무조건 알 것도 없이 낯선 사람과 한판 씨름을 합니다.
여러분 왜 야곱이 씨름을 했을까요? 보통 사람이라면 낯선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합니까? 인사를 하고 서로 악수하고 자기소개하고 그러지요 그러나 쫓기는 사람은 낮선 사람을 보면 적으로 알고 적대시합니다.
야곱으로 살지 못하는 야곱은... 무조건 싸우러 대듭니다. 교회 내에서도 보면 안 싸운 사람이 없는 성도가 있습니다. 새로운 신자가 오면 적의를 품고 대해서 기어이 교회에 못나오게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야곱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이랬던 그가!!!!!!!!!!!!! 압복강가에서 하나님에 의해 꺼꾸러지면서부터 자신을 찾습니다. 환도뼈가 부숴지고서야 자기를 자기로 고백합니다..
창 32:27절에 하나님께서는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에게 묻습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이제야 야곱은 자기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말합니다. 그 숱한 세월동안 부르기조차 싫어했던 그 이름이 그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나는 야곱입니다 속이는 자입니다. 욕심장이 이고 거짓말 장이입니다.! 야곱은 지금 그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 어쩔 수 없이...자기의 모든 가면을 벗어버리고 자기 본색을 드러내고 맙니다. 자기를 자기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고백합니다. 그 순간 야곱의 이름이 갑자기 업그레이드 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놀라운 이름으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그래야합니다. 우리 인생의 끝...진퇴양난의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그래서 나를 위장했던 가면이 있다면 모두 벗어버리고... 나의 본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위상은 더 이상 수치스러운 존재가 아니요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격상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있는 오늘 이 예배의 자리가 압복강가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내 거짓의 환도뼈가 부러져야 합니다. 부르기조차 힘들었던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자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놀라운 이름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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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의모습 말씀에 비추며 살아 가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