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8:40-56야이로의 집이 받은 복
옛말에 화가 바뀌어서 오히려 복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선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선교회 모든 분들이 이 말씀이 적용되기를 축원합니다.
야이로라고 하는 회당장이 있었는데 그 회당장 야이로는 무남독녀 외딸 12살 먹은 딸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딸을 살려보려고 백방으로 알아보고 명의를 찾았어도 그래도 딸에 병은 고치지 못 했습니다.
결국 자기 딸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눅8:26-39에 보면 예수님은 거라사 지방에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서 그 예수에게 벌써 오셨습니까? 때가 아직 되지도 안았는데 그런 귀신들린 자를 예수님께서 명령하여 꾸짖으시고 치료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그는 그 예수를 만나야 내 딸이 살겠다는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죽어가는 딸을 위하여 모든 수고를 함께 모아 예수그리스도를 찾았는데. 바로 그 예수님을 찾아간 회당 장은 목적대로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그 노상 에서 또 열 두해를 혈루 증으로 앓고 있는 혈루 증 여인이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한 그 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여자는 예수님 뒤로 와서 예수님 모르게 그 옷에 손을 대니 12년 동안 고치지 못한 혈루 병이 깨끗이 치료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손을 댄 예수님 자신만이 아는 느낌으로 나에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묻자 많은 무리들이 다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항상 성질 급한 베드로가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고 밀었을 뿐 손을 댄 자가 없다고 그렇게 대답을 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아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다 내게서 그 병이 치료되는 능력이 나간 줄을 내가 알고 있다고 대답을 하자 혈루 증에서 치료된 여자가 스스로 숨길 수 없음을 알고 떨며 예수님 앞에 나와 엎드려 그 손댄 연고와 치료된 사실을 모든 사람 앞에 고하니 예수님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혈루 증 여인과 대화하는 중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회당 장에게 말하되 이제 예수님을 당신의 집에 초청하지 마소서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더 괴롭게 하지 마 십시오 이렇게 말하니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대답하시기를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고 야이로의 집에 이르러 아이 부모와 제자 중 요한과 베드로 야고보를 데리시고 모든 사람들이 아이가 젊어서 죽었으므로 낙심하며 울고 통곡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희가 죽은 줄 알고 예수님의 그 선언을 듣고 비웃더라 그랬습니다.
예수께서 야이로에 그 열두 살 먹은 딸에 손을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 하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일어난 것을 예수께서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라하시니 그 부모가 놀라는 지라 예수께서 경계하시기를 이일을 아무에게도 말 하지 말라 하시니 이것이 본문에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죽음으로 보여주신 그 표적들은 복음을 설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셨다 거나 앉은뱅이를 치료했다거나 중풍병자를 치료했다거나 혈루 증을 치료했다거나 이 복음서에 보여주신 표적들은 모두가 복음을 설명하는데 뜻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영적인 복음의 의미가 무엇이기에 예수님께서는 그 한 테마에서 두 사람의 질병을 고치는 모습을 영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가를 우리가 진리를 통해 깨닫기를 바랍니다.
첫째 야이로 라는 이름의 뜻은 비침이라는 뜻입니다.
빛이라는 예기거든요 빛이 비춰졌다 여러분 그 빛은 예수그리스도 자신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빛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너희는 빛이다 고 말씀 하십니다.
둘째 직분은 회당장의로 회당 관리책임자입니다.
저는 이스라엘 쪽에 성지 순례는 가지 못하고 유럽 쪽 특히 로마에 카타콤 지하 굴을 들어갔다 오긴 했습니다만 이스라엘에 성지 순례를 가시면 두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에 큰 돔으로 세운 성전이 있고 그 외에 동네마다 하나씩 회당이 있답니다.
성전은 소와 양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리는 곳이라면 회당은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곳으로써 주로 안식일에 모여서 모세오경을 토론하고 가르치고 하는 곳입니다.
눅4:15-19에 행13;15. 15:21. 17:2절에 보면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셋째 회당장직은 장로회의 의장입니다.
넷째 그 지역 사회에서 존경 받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뜻하지 않게 무남독녀 외딸이 죽어가고 있는 비극적 상황에서 그는 자기 딸을 고칠 그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소식을 인편으로 듣고 야이로에 집으로 가던 도중 노상에서 열두 해를 피를 흘리며 살아가는 혈루 증 환자가 아무 의사에게도 효험을 보지 못했던 그 환자를 노상에서 예수님이 만납니다.
왜 노상에서 열두 해 동안 혈루 증으로 앓고 있는 혈루 증 여인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야이로의 집에서는 열두 살 먹은 딸이 죽어가고 있을까 하는 그 말입니다.
여러분 레위기 12장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면 그는 칠일동안 부정할 것이요
제 팔일에는 그 아이에 양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 삼일이 지나야 선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기 전 기한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십칠일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선혈이 깨끗케 됨은 육십 육일이 지나야 하리라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자를 낳으면 칠일이 부정하고 삼십 삼일이 지나야 깨끗케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자를 낳으면 이십칠일동안 부정하며 육십 육일이 지나야 깨끗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여자는 혈루 병을 몇 년 동안 앓고 있었습니까?
12년 동안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노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 피 흘리며 살다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의미는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이 의미는 다음과 같은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남자아이를 낳은 여자도 산혈이 끝나는 날이 있고 여자의 경도도 일주일이면 끝나는 날이 있다면 만약 여자 아이를 낳고도 이십칠일 만이면 부정한 그 혈이 끝난다면 구약에서 아담과 화아가 모세를 통하여 범죄 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그 말씀에 제사가 무슨 제사냐면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드리는 피에 제사입니다.
모세율법에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을 때는 양을 잡고 소를 잡고 가난한자는 비둘기를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그 피를 하나님께 보여 죄 사함을 받는 의식적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구약에서 예수의 그림자인 소를 잡고 양을 잡는 제사는 신약에서 무엇을 의미합니까?
히10:1-10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개혁할 때 까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라 그랬습니다.
바로 구약에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잡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피에 제사는 언제 끝나느냐면 예수그리스도가 오시면 그 제사는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모세오경에서. 시가서 에서. 선지서 에서. 이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겠다고 하는 이 약속된 말씀이 실제로 예수님이 오셨다면 성전에서 짐승을 잡아 피에 제사를 끝내는 자가 질병에서 치료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성전에서는 소를 잡고 있었습니다. 양을 잡아서 피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구약에 피 흘림에 제사입니다
이게 혈루 증 환자에 비유입니다.
여자의 경도가 끝난 날이 있다면 남자를 낳고 산혈이 깨끗해지는 날자가 있다면 여자를 낳고 자기 몸에 산혈이 끝나는 날이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이 구약에 제사를 끝내야 된다는 예기입니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실존에 메시야가 오셨으면 그 제사가 끝나야 되는데 피를 계속 흘리는 제사를 끝내야 되는데 여전히 예수가 오셨는데도 성전에서는 소를 잡고 양을 잡아 피에 제사를 드리는 그 제사는 결코 사망입니다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도 교회를 다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약에서 끊을 것을 끊지 않고 버릴 것을 버리지 않고 지금도 구약에 제도를 그대로 수용하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산자가 아니라 죽은 자 입니다.
실존으로 예수님이 오셨으면 소와 양의 피에 제사. 개혁이 되어야 할 텐데 구약39권에 모세오경에 글. 시편에 글. 선지자의 글을 읽고도 설교하면서 구약에 제도를 못 버렸다면 열두 해를 소나 양을 드렸던 유출 병 환자와 같은 것이고 그 신앙생활은 마지막 사망 일 뿐이며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히10:10에는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에 수많은 소와 양을 드렸음에도 우리를 거룩하게 하지 못 했지마는 예수그리스도가 한번 드려지는 십자가의 피는 우리를 거룩하게 되어짐을 믿습니다.
이 혈루 증 환자는 십 이년 동안 소를 바치고 양을 바친 여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났으므로 죽을 제사를 지내던 신앙생활을 죽을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던 것이 예수를 깨닫고 만남으로 생명에 믿음에 부활로 변화된 축복에 순간을 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혈루 증 환자의 여인이 병에서 놓임 받는 비결은 예수님에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정말 그 예수님이 입고 다니시는 그 옷을 만지기만하면 그냥 낫느냐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옷에 의미를 보면 사61:10 그가 구원에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사64:6에 보면 우리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롬13:14에 보면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랬습니다. 갈3:27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이 말씀에 의미는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은 구원이시다 그 말입니다.
그 혈루 증 환자는 예수는 구원이다 그 말이여 예수님이
구원인줄을 그 시대 누가 알았느냐 저 성전에 소 잡고 양 잡은 피를 흘리는 계속 피를 흘리는 제사장들이 알지를 못 했습니다 그러나 계속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 앞에 짐승에 피에 제사를 드려도 구원을 받지 못 한다고 하는 그 환자는 예수는 구원이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겁니다. 당신은 나에 구원입니다.
좀 어려운 예긴데 이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그걸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겁니다. 성전에 제사장들이 성경을 안 읽었습니까? 사두개인들이나 바리세인들이 성경을 안 읽습니까? 금식을 안 합니까? 종교적으로 그 분야에서 보면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종교 행위가 거룩하지만 진리를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그래서 성경을 읽어 놓고도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하고 그냥 소를 잡고 양을 잡는 피에 제사가 예수님이 오시면 끝나야 되는데 끝이지 않고 그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 그게 바로 혈루 증 환자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 혈루 증 환자는 그 제사로는 구원 받을 수가 없 구나 할렐루야// 본문 말씀으로 되돌아가서 회당 장에 딸이 죽어가고 있고 죽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무남독녀 외딸입니다 여러분 교인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아십니까? 그 사람을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해서 지옥을 보낼 사람이냐 천국을 보낼 사람이냐 이게 중요한 겁니다.
교회를 다니고 지옥 갔다면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내게 찾아오는 천국을 이루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