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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밤 박수미
처마 끝에 눈 녹은 낙숫물 소리와 깊은 자연의 소리가 화음을 이루는 산사의 밤‥ 마루 끝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섬돌 위에 흐르는 낙숫물 소리, 빈 물동이에 떨어지는 눈 녹은 물소리가 부딪치는 대상과 위치에 따라 제각각 다른 소리를 내는 타악기가 되고, 앙상한 가지에 스치는 바람소리도 그 풍속에 따라 서로 다른 현악기가 된다.
가끔 잠들지 않은 산새의 울음소리는 훌륭한 관악기가 되기도 하니 이것이 하나의 오케스트라며 멋진 화음이 아닐까? 속담에 비들기 마음 콩밭에 있다더니 30년 세월을 오직 음악의 외길 로 살아온 탓이기도 할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음악이란 사람이 만들어낸 하나의 창작물이 아니라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본래의 그 소리를 아름답게 엮어좋은 일종의 표절이라면 지나친 말일까..이렇게 넓고 깊은 세계에 나는 왜 여기에 와 있을까.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면 참으로 사람의 길은 알 수도 없고 그 갈림길도 많구나 하고 느껴진다. 꿈 많던 여고시절 가끔 문학소녀의 꿈을 키우기도 했고, 배구, 농구, 테니스 등 구기 운동을 즐겨하기도 했었다. 그런 어는날 선생님의 권유로 교내 콩쿠르대회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수상 한 것이 영원한 나의 길이요, 직업이 될 줄이야.! 입에서 입으로 소문을 타고 당시 KBS 방송국 전속가수 선발대회에서의 대상수상은 나의 전업으로 굳혀진 계기가 되어버렸다. 그 어떤 분야든 성공의 길은 험하고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가수라는 길이 이렇게 험하고, 높고 좁디좁은 길이라는 것을 시골 소녀가 어찌 알았으랴. 천부적 소질이 뛰어난 것도 아니요. 그 누구도 추종할 수 없는 천재도 아닌 나는 그 높은 벽에 때로는 죄절과 절망을 거듭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고 내가 즐겨워하는 이 길을 포기할 수가 없어 악보에 눈을 뗄 수가 없었고 건반에 손을 놓을 수가 없어 멀고도 먼 이길을 택한 것이 나의 삶이여 길이다. 대성하지 못한 지방 가수로 음악세계의 그 깊이와 넓이는 감히 알 수 는 없어도 삶의 애환을 가락으로 표현하는 짜릿한 이 길을 나는 평생버릴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즐겁고 남이 좋아하는 음악, 들어서 좋고 불러서 즐거운 노래를 오늘도 내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행복이란 물질적 소득의 많고 적음이 그 기준이 될 수 없고, 최고가 아니면 모두가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은 아니지 않는가. 자연의 세계는 큰 것이 있어 작은 것이 더 아름답고 잘생긴 것은 못생긴 것이 있어 그 빛을 내지 않는가.
나는 오늘도 이러한 조화의 묘미와 그 어울림의 뜻을 생각하고 이 깊은 산속 산사에서 명상에 잠겨 마음의 평화와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있다. 마치 저 섬돌 위에 물방울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물은 물일뿐, 그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그것들이 모여 또다시 개울물이 되고 지평의 온도에 따라 안개와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눈과 비가 되어 이 넓은 대지와 산속을 젹셔줄 것이니 이것이 깊은 밤 잠 못 이루고 그 소리를 듣고 느끼는 즐거움이다.
가끔 친구들로부터 도대체 너는 무슨 취미로 그 외롭고 적막한 산속에 사느냐고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몇 년 동안 일주일의 절반을 이곳 산속 산사에서 살고 있으니 지금은 모두가 나의 벗이요. 길동무 말동무가 된 것 같기도 한다. 봄이면 여린 잎새들이 때 맞추어 피어나고 여름이면 무성한 숲속 넉넉한 너그러움을 느끼게 하고 가을이면 오색단풍과 풍성한 열매를 되돌려줄 준비를 하는 성숙함이 아름답다. 더욱이 겨울이면 모든 나무들이 칼바람의 차갑고 매서운 눈보라를 참고 견디는 인내가 내 마음을 숙연케 한다. 흐르던 개울물은 빙점을 지나 얼음이 되고 다시 녹아 흐를 때를 기다림은 조급한 내 마음을 길들이기에 충분하니 여기가 나의 안식쳐요. 내일을 살아갈 디딤돌이다. 이제 한두 밤을 지나면 또다시 생동하는 도심 속으로 내 삶에 충실하기 위해 핸들을 잡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것이다. 남에게 좀 더 즐거움을 주기 위해, 나에게는 좀 더 큰 기쁨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이 밤도 산사의 밤을 즐기며 맞이한다.
문학예술 2010년 봄호 |
첫댓글 정말 멋있고 아름다운 글입니다~